[타산지석] 중국주재 미국 대사관 근처 폭발사건으로부터
중국시민
기사입력: 2018/07/31 [14:56]  최종편집: ⓒ 자주시보

 

2018년7월 26일 오후 1시 경, 중국 수도 베이징(북경)에서 폭발사건이 일어났다. 워낙 총격, 폭발 따위 사고가 가물에 콩 나듯 하는 중국인데다가 발생지점 또한 미국 대사관 부근이어서 유달리 주목을 받았다. 

 

▲ 미국 대사관의 철책, 팻말의 글자는 “대외사무 용지, 문전 주차 금지” [사진출처-인터넷]     

 

중국 순경들이 신속히 움직여 혐의자를 통제하여 병원에 실어갔고, 베이징 공안국은 그날로 웨이보(중국판 트윗)를 통해 초보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차오양구(朝阳区조양구)의 톈저로(天泽路천택로)와 안쟈러우로(安家楼路)가 교차하는 네거리에서 네이멍구(内蒙古내몽골) 퉁랴오시(通辽市통료시) 출신의 26살 난 쟝(姜강) 아무개가 폭죽 비슷한 장치를 터뜨렸는데 그 자신이 손을 다쳤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고, 다른 부상자도 없다, 쟝 아무개는 이미 병원에 실어다가 치료중이고 경찰은 진일보 조사 중이라고. 또한 경찰은 쟝 아무개가 편집성 정신장애로 치료를 받은 전력이 있다고 공개했다. 

 

▲ 베이징 공안국의 웨이보 화면들 [사진출처-인터넷]     

 

중국 경찰의 이런 대응을 외신은 이례적이라고 평하면서 중미가 무역 전쟁으로 민감한 시기에 처했기 때문에 빠르게 소식을 공포했다고 분석했다. 

한편 중국 외교부는 그날 오후 정례기자회견에서 대변인 겅솽(耿爽경상)을 통해 “고립적인 치안사건(孤立的治安事件)”이라고 정의했으니 사건의 확대나 지나친 해석을 경계하겠다는 의미다. 

또한 미국 대사관도 그날로 언론에 소식을 전했으니, 대사관의 건축물과 부지 위 소유물들이 손실을 보지 않았다는 내용이 공안국의 공표보다 많았다. 

 

며칠 동안 새로운 진척이 없는데, 예전의 사건, 사고들에 비하면 이번 폭발사건은 상당히 간단한 셈이다. 필자가 알기로는 베이징에서 정말 외국 대사관을 겨냥한 폭발시도가 적어도 2번 있었다. 

한 번은 1984년 미국 레이건 대통령의 중국 방문기간에 외국 특공대원이 폭탄을 휴대하고 미국 대사관으로 달려들다가 보초병에게 저지되었다. 자신을 끌어안은 보초병에게 물러나라고, 그렇지 않으면 다 죽는다고 외쳤으나 목숨을 내건 보초병이 포기하지 않으니 특공대원이 결국 겁을 먹어 자살공격을 포기했다 한다. 이는 이른바 해피엔딩으로서 예전에 경찰잡지에서 소개됐는데 사후에 상을 받은 보초병 이름도 적혔으나 유감스럽게도 필자가 날자와 인명을 까먹었다. 

다른 한 번은 1976년 4월 29일 오전 소련 대사관 문 앞에서 일어났다. 대사관 서쪽 아스팔트길로 종종걸음을 놓는 사내가 나타났다. 왼쪽 어깨에 비옷을 걸치고 오른쪽 어깨에 누런 색 여행가방을 맨 모습을 보면 대사관에 가서 볼 일이 없을 사람이건만 걷는 목표는 분명 대사관이었다. 게다가 여행가방에서 연기까지 나왔다. 

그 사람이 대사관 정문에서 20여 걸음 떨어진 곳에 이르렀을 때, 순찰을 하던 5년차 노병 리덩구이(李登贵리등귀)가 다가가면서 질문하고 막아서니, 사내는 가방 안에 폭약이 들었다고, 비키라고 그렇지 않으면 너를 폭발로 죽여버리겠다면서 대사관으로 달려들려 했다. 리덩구이는 사내를 덥석 잡아 바깥쪽으로 끌었고, 사내는 기를 쓰고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정문의 고정 위치에서 보초를 서던 3년차 병사 치궈싱(祁国兴기국흥)이 달려가서 도우려 하는 순간,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아스팔트길에는 큰 구덩이가 생겼고 대사관 건축물의 유리가 깨졌으며 세 사람은 허공으로 날려갔다. 

경위련(경위중대) 련장(중대장) 이빙쿠이(衣丙奎의병규)가 폭발음을 듣고 달려가 보니 두 병사가 보이지 않고 경비실이 뒤집어졌으며 대사관 땅과 벽에 피 자욱이 가득했고 나무에 옷 조각이 걸렸다. 

아스팔트 위에 까무러친 치궈싱은 28곳을 다쳤으나 치료를 거쳐 기적적으로 살아났고, 리덩구이는 대사관 맞은 편 길로 날려가 떨어졌는데 당장에서 숨졌으니 옷이 갈갈이 찢겨졌다.  

폭발사건 제조자는 머리가 날아가 얼굴을 가려볼 수 없었다. 

중국과 소련이 국제적으로 팽팽하게 맞서고 국경에서 100만으로 헤아리는 군대가 대치하던 시기라 사건의 성격을 확인하는 게 굉장히 중요했다. 

전문 수사조가 무어져 현장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모아서 맞춰보는 과정에서 허베이성(河北省하북성) 한단시(邯郸市한단시)에서 베이징으로 오는 기차표가 발견되었고, 비옷 조각에서 볼펜으로 쓴 “샤다윈(夏大云하대운)”이라는 세 글자가 발견되었다. 하여 수사조는 한단시로 가서 어려운 조사를 진행했고, 숱한 대상을 배제한 뒤 끝내 한단 강철 광산 기지의 청년 노동자 샤다윈이 혐의자임을 밝혀냈다. 샤다윈은 아버지가 반혁명죄로 감옥에 들어가서 가족이 연루되니 불만을 품고 중국에 망신 주기 위해 사건을 일으켰다고 분석되었다. 

폭발목적이 소련 대사관 공격이 아님이 확인된 뒤, 소련 대사가 다른 외교관들을 거느리고 리덩구이가 희생된 지점에 가서 경례를 하여 감사를 드렸다. 당시 중소 관계로서는 소련 대사관이 할 수 있는 최상의 표시였다. 

1976년 5월에 리덩구이에게 “영용하고 두렴 없는 경위전사(英勇无畏的警卫战士)”라는 영예칭호가 추서되고, 7월에는 혁명열사로 인정되었다. 또한 그의 동생이 입대하여 역시 대사관 경위전사로 되었다. 당년 중국 청년들의 으뜸가는 선택이 군대로 되는 것이고 입대가 굉장히 어려웠음을 감안하면 리덩구이의 동생은 형의 덕을 톡톡히 본 셈이다. 

 

이번의 미국 대사관 부근 폭발사건이 중국 정부에 대한 불만 때문인지 미국에 대한 분노의 표출인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이제 어떤 판결을 끌어낼지는 두고 보아야 한다. 혐의자가 만약 정신질환 때문에 일을 저질렀다면 법적처벌을 면할 수도 있다. 미국 대사관 부근이라는 지점도 우연한 선택이라면 큰 문제로 되지 않을 테고, 의도적인 선택이라 해도 미수에 그쳤기에 과도한 처벌이나 해석이 불가능해진다. 

헌데 대사관 폭발 사건 혹은 미수사건들로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어떤 사람이 대사관이나 영사관 부근에서 특이한 행동을 하거나 대사관에 난입하려 하면 경찰은 일단 위험하다고 판단하여 저지해야 되고, 외교관들 역시 위험에 대비하여 그런 사람을 막거나 피해야 된다. 이건 상식이다. 

 

그러나 한때 중국에서는 정반대되는 현상들이 제조되었다. 바로 탈북기획자들의 기획에 의해 탈북자들이 중국 주재 외교기구, 외국인 학교들에 뛰어들거나 벽을 타고 넘는 장면들이 연출된 것이다. 그런 행동이 사진과 동영상으로 촬영되어 선전에 널리 사용되었으니 여러 방면 사람들이 미리 짜고 치는 고스톱이었다. 

중국 정부가 강력히 항의하고 과감한 조치들을 취한 뒤 그런 행동이 사라져버렸고 몽골, 동남아를 거치는 “탈북 루트”들이 개발되어 지금까지 쓰인다. 

 

2018년에 들어와 조선(북한)과 미국의 관계가 급변하면서 수교와 대사관 설치도 뭇사람의 입에 오르내린다. 대사관은 대등한 규모로 부지를 주고 건축물도 엇비슷한 크기로 정하는 게 관례다. 단 미국은 이라크 전쟁 이후 폭발, 포격 위험에 시달리다나니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서 워싱턴 주재 이라크 대사관보다 엄청 큰 땅을 차지하고 이른바 “그린 존”을 만들어 안전을 유지했다. 조선 수도 평양에서는 당연히 그런 수가 통하지 않는다. 허나 미국 식 사고법에 익숙하고 조선 사람들의 대미 적개심을 아는 미국인으로서는 대사관을 넓은 땅에 큼직하게 짓는 게 속 편할 것이다. 물론 그러자면 워싱턴에서 상응한 자리를 내줘야 한다. 

이제 평양에 생겨날 미국 대사관이 얼마나 클지는 미지수이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일단 세워지면 굉장히 안전하리라는 것. 단 미국이 괜히 변덕을 부린다면 안전하지 않을 수 있다. 폭발물은 둘째 치고 쓰레기들이 먼저 날아갈 수도 있을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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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대사관 18/07/31 [16:01]
평양에 미국대사관...그날이 언제일까
그날이와도 남쪽은 여전히 친일파가 장악하고있을테지만...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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