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일침 528] 천안함 사건에 중국군이 관련됐다고?

중국시민 | 기사입력 2018/08/01 [21:40]

[정문일침 528] 천안함 사건에 중국군이 관련됐다고?

중국시민 | 입력 : 2018/08/01 [21:40]

 

북이 중국 군부 지원을 받아 천안함을 공격했다? 

 

첩보일꾼의 비밀은 무덤까지 갖고 가야 한다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전직 스파이나 전직 특수요원 심지어 전직 중정부장, 안기부장, 국정원장들이 숱한 비밀을 털어놓는다. 덕분에 볼거리, 들을 거리는 풍성해지지만, 한국 첩보기관과 첩보요원들에 대한 외부의 신임도는 낮아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한국의 특이한 현상은 한 사람이 죽지 않은 한 경력이 점점 풍부해지고 이야기 거리도 늘어나는 것이다. 흑금성이라는 암호명으로 불렸다는 박채서 씨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진 뒤 여러 해 지났는데 전에는 기사들로 엮어지고 잡지와 책자들에 조금씩 끼어넣더니, 금년에 들어와 그를 원형으로 삼은 영화 《공작》이 완성되어 8월 8일 개봉을 앞두고, 2권 본 책 《공작》은 이미 7월 말에 출판되었다. 

 

▲ 영화 <공작> 포스터     © 자주시보

 

책자 선전의 일환인지 모르겠다만, 8월 1일 일부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북한이 중국 군부 지원받아 천안함 공격했다는 것. 흑금성이 북한의 2인자였던 장성택에게서 직접 들은 말이란다. 

기사에는 “북중정상회담이 열리던 지난 2010년 5월 저녁. 흑금성은 리호남 북한 내각 참사의 연락을 받고 북경의 '중국대반점'에서 장성택 부장을 만났다.”고 나왔다. 날짜라는 육하원칙의 하나가 빠졌는데, 필자는 그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국방문을 소재로 가상소설 “내일, 세계는 뒤집혔다”를 써서 발표했기에 5월 3일부터 7일까지임을 분명히 기억한다. 자료를 찾아보니 먼저 동북의 다롄(대련)과 북방의 톈진(천진)을 방문한 뒤 5일 오후 베이징에 들어가 후진타오(호금도) 주석과 정상회담을 했고, 6일 오후에 특별열차가 베이징을 떠났다. 그러니까 흑금성이 장성택 부장을 만났다면 날짜는 5일 뿐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후진타오 주석의 만찬은 4시간 50분이 걸렸다고 한국 언론들이 보도했다. 만찬을 포함한 정상 공식일정에 빠짐없이 참가한 장성택이 언제 시간을 내서 흑금성을 만나고 그림까지 그려가면서 군부 강경파가 중국 심양군구(선양군구)의 지원을 받아 천안함을 어뢰로 공격했다고 길게 설명했을지 의문이지만 일단 사실로 믿고 장성택이 했다는 말들을 인용해본다. 

 

“다른 하나는 이러한 북한 군부 강경파의 도발에 중국 군부의 지원이 있었다고 주장한 점이다. 장성택 부장은 흑금성에게 "박 선생,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우리 잠수함이 천안함이 어디 있는지 어케 알고 어뢰 한 방으로 폭침시킨단 말이오?"라며 "중국 심양군구의 정보지원 없이 우리 해군의 전력만으로는 절대 불가능하다"라고 말했다.

"중국의 동북 3성을 관할하는 선양군구는 실제적으로는 북한과 무역투자나 군사적으로 밀접할 수밖에 없다. 북한 급변사태 발생 시에는 '병아리 작전'에 따라 선양군구 산하 부대들이 북한에 무력 진압하도록 되어 있어, 북한 내부 사정과 군부 동향은 이들의 최우선 관심사이다. 따라서 선양군구와 북한군 지도부와는 밀접한 협력관계가 자연스럽게 장기간 형성되어 왔다." (<공작2>, 456쪽~457쪽)” 

 

천안함 사건 조사진도와 5· 24조치 통과 

 

한편 한국에서는 6일 아침 이명박 대통령이 정몽준 대표와 김무성 신임 원내대표 등 한나라당 신임 원내대표단과 청와대에서 조찬을 하면서 중국이 천안함 사태를 의식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중국방문 일정을 미루고 상하이 엑스포에서 자신을 먼저 만난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또한 "천안함 사건에 대해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조사결과가 나오면 지난번 한중 정상회담 때 약속한 대로 중국 측에 통보하고 협의하게 될 것"이라며 "그렇게 할 경우 중국 정부도 납득하고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도되었다. 

실제로 천안함 조사는 당시 진도가 별로 나가지 않았고 장성택- 박채서 만남 이틀 뒤인 7일에야 민.군 합동조사단이 천안함의 선체 등에서 검출한 화약성분이 어뢰 탄두가 폭발하면서 발생한 것으로 사실상 결론 냈다고 알려졌다. 당시 독일제 어뢰라는 소리도 나왔다.

 

그 유명한 “1번 어뢰”는 5월 15일 폭발 지역 인근에서 쌍끌이 어선에 의해 수거된다. 5월 20일로 예고된 조사결과 발표회를 닷새 앞두고 “결정적 증거물(스모킹 건)”이 발견됐다는 그 사건을 가리켜 하늘이 한국을 도왔다는 희한한 반향이 나왔다. 

18일 민.군 합동조사단은 "천안함의 절단면과 해저에서 수거한 금속 파편을 비롯한 화약성분을 분석한 결과 북한의 어뢰에 의한 공격을 단정할 수 있는 결정적 물증을 확보했다"면서 "7년 전에 수거한 북한의 훈련용 어뢰 화약과 이번에 천안함에서 수거한 화약성분이 유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5월 20일 벅의 어뢰공격을 단정하는 합동조사결과가 발표되고 5월 24일 남북교류를 막는 조치들이 통과됐다. 

 

《공작》 속설은 설로 대하는 게 현명하다 

 

윗부분에서 알 수 있다시피 5일까지는 천안함 침몰 원인이 전혀 밝혀지지 않았고 잠수함의 “ㄷ자형” 움직임과 “버블제트식 어뢰기술” 등등은 언론에마저 등장하지 않았다. 

만약 5일 저녁 장성택 부장이 베이징의 중국대반점에서 박채서 씨를 만나 어뢰 한 방으로 천안함을 폭침시켰다고 설명했다면, 박 씨가 북한어뢰 폭침설을 들은 첫 한국인이 될 것이다. 그 놀라운 주장이 왜 이제야 공개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기사에 의하면 책자 《공작》은 북 군부 강경파가 김정일 국방위원장 몰래 태양절(김일성 주석 생일 4월 15일)을 앞두고 천안함 공격을 벌렸다고 주장한다. 

 

“결국 북한 군부 강경파가 중국 군부로부터 위성정보를 제공받아 천안함을 공격했다는 것이다. <공작>은 "장성택은 천안함 사태를 처음 보고받은 뒤에 전문가들을 동원해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한 끝에 이와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고 박채서에게 말했다"라고 전했다.

특히 장성택 부장은 흑금성에게 "내가 한 말의 출처를 밝혀도 좋으니 이명박 대통령과 핵심 측근인사들에게 이런 급박한 상황을 전달해주고 북남관계 개선에 힘써 달라"라고 부탁하면서 "현재의 대결국면이 지속된다면 북한 내부가 통제 불능의 상황으로 빠질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북한은 12일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을 열어 장성택에게 '국가전복음모의 극악한 범죄'로 사형을 선고하고 이를 바로 집행했다. 양 손을 포승줄에 묶인 장성택이 국가안전보위부원들에게 잡힌 채 법정에 서 있다.

하지만 흑금성은 장성택 부장의 부탁을 들어줄 수 없었다. 같은 해 6월 1일 새벽 국정원 대공수사국 수사관들에게 긴급 체포됐기 때문이다. 장성택 부장은 흑금성이 대전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지난 2013년 12월 처형됐다.”

 

천안함은 고정목표가 아니라 3월 26일 밤에도 움직였다. 바다 속으로 움직이던 잠수함이 위성정보를 어떻게 제공받아 공격했는지 얼핏 이해되지 않는다. 또한 흑금성이 6월 1일 새벽에 긴급 체포되었기에 장성택 부장의 부탁을 들어줄 수 없었다는 주장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박채서 씨가 어느 날 귀국했는지 모르겠다만, 혹시 박채서 씨가 15일 1번 어뢰 발견 전(최근에 1번 어뢰 발견 당시 쇠줄이 감겨있었는데 펜치로 끊었음을 보여주는 사진들이 공개되어 논란을 만들었다)에 귀국했다면 장성택 부장의 부탁을 들어줄 시간이 있었는데 하지 못했을 수 있고, 15일부터 20일까지 한국에 있었대도 뭔가 해볼 수 있겠다만, 20일 조사결과 발표 이후에 특히 5· 24조치 이후에 귀국했다면 6월 1일 체포까지 사실상 해볼 노릇이 없었다. 그런데 6월 1일 체포로 장성택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다고 해석하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6월 1일은 5· 24조치가 나온 지 8일 뒤고 북도 벌써 여러 번 “북한어뢰 공격설”을 강하게 반박했으며 남북관계가 꽁꽁 얼어붙은 때라 박채서 씨가 어떻게 해본대서 국면을 돌려세울 수 있겠는가? 

 

천안함 사건에 대해 많은 해석이 나왔으나 중국 참여를 지목한 주장은 처음 접한다. 선양 군구가 천안함의 정보를 인민군에 제공했다면 공격을 예상했다는 얘기로 된다. 남북무력충돌을 엄청 꺼려온 중국이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을까? 

흑금성 박채서 씨와 오랫동안 알고 지냈고 그의 주장을 검토하여 책을 써낸 김당 기자는 1일 언론사와의 통화에서 "특히 천안함 관련 이야기는 장성택 부장이 죽기 전인 2010년에 나에게 직접 증언한 것이어서 흑금성이 지어낼 수도 없다"라고 말했다 한다. 나름 믿는 구석이 있어서 중국군 관련설을 그대로 적었다는 말인데, 필자로서는 믿어주기 무척 어렵다. 흑금성이 김당 기자에게만 장성택 설을 말했고, 체포와 심문 과정에서 전혀 거들지 않았다고 상상하기 어렵고, 8년 째 그를 만난 사람들이 많은데 천안함 문제가 수없이 불거져도 중국군 관련설이 한 번도 나오지 않았음은 이해하기 어렵다. 중국 군부 지원설은 결국 중국인민해방군이 “천안함 용사”들을 죽인 공범이라는 소리다. 이번에 책출간과 언론보도로 중국에 항의해야 된다는 정치인들이 나올지 궁금하다. 허나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관련 질문을 받는다면 어떻게 대답할지는 궁금치 않다. 분명히 아니라고 말하겠으니까. 

 

흑금성 박채서 씨가 이중간첩이냐 아니냐를 놓고 벌어진 쟁론은 그의 경력이 복잡하기 때문이다. 거대한 조직들이 그를 믿느냐 마느냐를 놓고 고민했던 데는 그의 말들을 곧이곧대로 믿기 어려웠다는 점이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천안함 중국군 관련설을 포함하여 장성택 부장이 했다는 말들은 일설로 간주하는 게 현명하다. 

 

2010년 가상소설을 다시 음미해보자 

 

가상소설 “내일, 세계는 뒤집혔다”에서 필자는 이렇게 썼다. 

 

“5월 7일 평양시간(서울시간) 오후 6시, 신의주- 평양 구간을 달리는 특별열차의 김정일 위원장 집무실 안 

 

후진타오 주석에게 보내는 감사전보문을 심열하고 수개하여 발송을 지시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동안 무슨 얘기들이 나왔는지 좀 들어봅시다.》 

김양건 부장이 외신과 남반부 언론들의 반향 및 낭설들을 종합해서 보고한 다음 한심하다는 말투로 말했다. 

《그리고 우스운 것은, 남조선이 <천안함>침몰사건을 방문과 걸어서 중국에 <항의>했다가 두 가지 일이 별도라는 중국 외교부의 반박을 받자 움츠리고 만 일입니다. 그 행티 때문에 <외교>의 <외>자도 모른다는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남쪽 인터넷에도 <정부의 소행이 황당하다>는 반향이 많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의 안색이 흐려졌다. 안경을 벗어 쥐고 천천히 닦으면서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 

《참 가슴 아픈 일이요. 우리 민족은 머리가 좋고 능력도 강한데 수많은 구성원들이 그 아까운 재능을 올바른 일에 쓰지 못하고 내부소모를 하지 않나, 자존심을 구기지 않나… 이런 국면을 그냥 놔둘 수 없소. 하루빨리 돌려세워야 하겠소!》” 

 

김양건 부장의 말은 필자가 지어냈지만, 한국의 항의와 “외교”의 “외”자도 모른다, “”정부의 소행이 황당하다“ 등은 허구가 아니라, 실제사건과 실제댓글이다. 김정일 위원장의 발언은 필자가 상상했다만, 수많은 김정일 관련 자료를 본 기초에서 쓴 것이다. 

 

8년 뒤의 지금에 와서도 민족내부의 소모가 너무 많으니, 현실적 의의를 갖는다. 이러저런 설들의 생산과 전파도 내부소모이다. 특히 중국과 중국군 관련설들은 국제적인 논쟁을 야기할 수도 있다. 신중하게 다뤄야 된다. 

 

 

 

제발 18/08/01 [21:52] 수정 삭제
  중국인들은 환구시보에나 가서 글을 쓰시오. 왜 한국에서 이러시오???
제발꺼져라 18/08/01 [22:27] 수정 삭제
  중국은 옛날부터 우리나라와 형님동생하는 사이였어...자치권을 보장해주었었지
근데 양키는 주종관계지...지금도 보라구 제재는 안풀면서 비핵화만 고집하잖아
아주 씨벌종자들이지...원주민학살하고 땅뺏고 아프리카 원주민잡아다 노예로 부리면서 세운나라
중국기자가 참여하믄 얼씨구하고 반겨야지 먼 개소리냐...양키푸들종자야
제발 18/08/01 [23:11] 수정 삭제
  엣날에 한나라가 우리나라 침공해서 한사군 설치한거..요나라가 침입한거..홍건적이 침입한거..원나라가 침입한거..청나라가 침입한거..다 까먹었소??? 무슨 까마귀도 아니고..환양녀가 뭔소린줄 알지?? 언제부터 중국이 우리나라 친구였어? 수천년의 원수였지...양키가 우리나라 들어온거 50년도 안되..중국은 천년단위야. 정신좀 차리세요.
제발 18/08/01 [23:13] 수정 삭제
  우리나라 3대 대첩중 2개가 중국 상대야. 살수대첩, 귀주대첩이 어느나라 상대한거야? 중국이 언제부터 우리나라 친구였어?
제발 18/08/01 [23:18] 수정 삭제
  고구려 멸망시킨게 누구였지? 백제가 누구?에 멸망했지??? 역사를 아세요
제발흥분마세요 18/08/02 [00:06] 수정 삭제
  한사군설치한 당시라면 당연히 한나라와 싸워야했고 안시성에 쳐들어오면 또 그에 마주싸웠겠죠
지금현실의 적은 양키이니 그주적과 싸우는데 도움이 된다면 누구라도 동지로 받아들일 포용력이
있어야한다는건데...주체적인 입장만 앞세워 누구나 적대시한다면 양키입장에서는 신나는일이지요
애국심을 빙자해 괴변으로 유도할수도있고...문제는 양키극복이니 먼저 양키부터 몰아내야죠
잘알고나서 18/08/03 [14:00] 수정 삭제
  중국은 트럼프가 자금성 안으로 들어갔을때 시진핑이 이렇게 말했지, 5천년 유구한 역사의 중국은 이라 자신들을 용의자손이라고 부르며, 이 대목까지 갔을때 트럼프가 말을 끊으며 한마디 쏘아 붙였음. 이집트는 8천년 역사이니 이집트한테 한참 동생이구만. 별것도 아닌 거 같고. 시진핑, 뜨앙 1.중국 역사를보면 주, 한, 당, 송,명 이 네개 나라를 제외하면 한족이 지배한 적이 없다네. 항상 식민지상태였지. 그래서 나라를 빼앗겨도 의분 열사가 등장하지를 않지. 2.위에 적은 거 하나하나 설명 1)한사군 설치 : 당시 4군은 지금의 베이징 근처에 있음. 2)요나라 침입 : 그당시 중국은 송나라였음. 요나라에게(거란족으로 고구려의 한 부족이지) 형님 한번 봐줍쇼하는 처지. 고려가 요나라 쳐부수니 송나라가 요나라 침입에서 해방되었지 3)홍건적 침입 : 이것들 중국식 왜구였지. 내할아버지 이성계에게 다 죽었지 4)원나라 침입 : 중국 아님. 북방민족중 하나인 몽골족이 중국을 정복해서 식민지로 만들었지. 그러고나서 우리나라에 쳐들어와서 한동안 싸웠지. 중국은 얼마저항도 못하고 그 땅 다 내주었지. 5)청나라침입: 이것도 중국아님. 만주족(여진족)은 원래 고구려의 한개 부족이었지. 거기에 중국이 항복하고 식민지가 되었지. 주욱보자 : 상나라(은나라(동이족)---주(중국)---춘추전국(개판시대)---진(중국)---한(중국) --당(중국)---오호16국시대(주인없는 나라)---송(중국,많은기간 장강이남에만 존재) 이때 북방에는 요나라,금나라가 존재---원나라(몽골족)---명(중국)---청(만주족)--- 100년의 치욕시대(서양/일본이 다 갈라먹음)----중국/중화민국 송나라 이후에는 번갈아가면서 하기는 하는데 식민지시절이 더 많아. 하도 중국이 쪽팔리니까 원나라, 청나라, 요나라, 금나라 이런데를 중국역사로 각색해놓았지. 중국시민도 반박하지 못할 걸. 참으로 중국다운 각색이다. 당했으면 당한거지, 무슨 말이 많아. 원나라, 청나라만 해도 수백년 식민지라. 그러고도 입만 열었다하면 "중국은 대국". 하나만 맞다. 인구가 많다. 2030년이면 인도가 세계제일 대국이된다. 2050년이면 아프리카 전체인구는 25억명이다. 세계제일 대국이다. 방글라데시도 대국이겠네, 5억을 넘으니. 중국 선양군구하고 북한이 모종의 커넥션이 있다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다. 미국에서 이상한 거 머 하나뜨면 중국이 이거 아니다싶으면 바로 북한에 통보해주었다는 사항은 이미 신문에서 몇번 보도된 적 있다. 그게 공식 커넥션이라면 비공식 커넥션은 왜 없을까. 이제 천안함 사건의 중국 커넥션은 한국인의 가슴에 영원히 살아남아 있을 것이다. 중국은 아마 지금쯤 미-중 전쟁때문에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을 것이다. 나아가 이런때 음모를 기획해도 이상하지 않을 시점, 시기이다. 한민족 속담에, " 중국 음흉하다, 믿지 말지어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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