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주석이 만주에 남긴 발자취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8/12/03 [10:25]  최종편집: ⓒ 자주시보

 

* 아래 글은 2012년 이창기 기자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서울구치소에 구속되어 있을 때 김일성 주석 탄생 100돌을 맞으며 당시 자주민보에 보낸 글입니다.

 

* 언제나 우리 민족의 승리에 대한 확신에 가득 찬 이창기 기자의 정신이 잘 나타난 [항일유적지 취재 기사]를 다시 게재합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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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올해 415일은 서구 기술문명의 한 상징이었던 타이타닉호가 침몰한 지 100년이 되는 날이며 북에서 광명성3호 위성까지 쏘아가며 기념하고 있는 김일성 주석 탄생 100돌이 되는 날이기도 하다.

 

 

그간 한국전쟁과 분단으로 인해 김일성 주석에 대해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친북으로 몰려 고초를 겪어야 했기에 김일성 주석에 대해 다수의 국민들은 잘 모른다.

 

 

하지만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이 만주에 직접 찾아가 김일성 주석의 항일유적지를 TV에 소개하고, 일본의 와다 하루키 교수, 미국의 서대숙 교수 등이 김일성 주석이 만주 항일투쟁 당시 유명했던 명장이며 신출귀몰하게 일제를 격멸했다고 전설처럼 떠돌던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바로 북의 김일성 주석이 맞다는 것을 주장하고 여러 증거 자료를 제시하였다.

 

필자의 아버지도 일제시대 초등학교 시절 아이들 사이에서 김일성 장군은 뒤에도 눈이 달려 돌아보지 않고 총을 쏘아대도 추격하던 일본군이 막 쓰러진다.”

일본 비행기가 날아갈 때 김일성 장군이 손가락을 들어 척 가리키면 톡 떨어진다.” 이런 말이 널리 퍼졌었다고 말했었다. 칠판에 인기투표하면 항상 1등에 김일성 장군이었고 그 다음이 김구 등이었다고도 들려주었다.

 

 

 

본지에서 2005년부터 만주를 찾아 그 김일성 주석의 항일 발자취를 취재하였는데 이는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손가락 장풍으로 왜놈 전투기를 떨어뜨린 것은 아니고 일제의 허를 찌르는 영활한 군사전법으로 일제 관동군과 싸워 100100승 했던 것이다.

 

 

우리 민족은 외적을 무찌르는 뛰어난 장수가 나오면 신화적인 이야기로 변형하여 그 영웅을 떠받들고 외침을 극복할 용기와 희망을 얻곤 했다. ‘강감찬 장군이 귀신을 쫓았다는 이야기등이 그 예이다.

 

본지에서 다년간 취재한 결과 우리 조선족은 물론이요 중국의 한족들도 당시에 김일성 주석의 명성을 잘 알고 있었으면, 진심으로 존경하고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때로는 장울화처럼 김일성 주석의 안전을 위해 서슴없이 목숨을 바치기도 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 육문중학교 도서관 정면에 서있는 김일성 주석 동상, 자못 그 크기가 웅장하다     © 이창기 기자

 

지난해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시진핑 주석의 안내로 직접 찾아가 본 길림시 북산공원의 약왕묘 지하실은 김일성 주석이 길림 육문중학교 재학시절 반일독립비밀지하조직 회의실로 이용하던 유적지이다.

 

그 약왕묘 입구에서 작명소일거리를 하고 있는 한족 할아버지 두 사람도 부모님들에게 김일성 주석이 육문중학교 다닐 때 학생과 길림시민들을 불러 일으켜 일제가 건설하려했던 길림-회령 철도반대투쟁을 대대적으로 벌려 승리했는데 나이는 어렸지만 반일투쟁을 잘 이끌고 연설을 잘해서 당시 길림 사람들 사이에 이름이 크게 났었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장백의 반절구라는 마을의 한 한족 할아버지는 자신의 아버지가 당시 일제가 꾸린 경찰서의 하급경찰관이었는데는 김일성 장군 부대가 마을을 공격하여 일제 경찰서와 방어부대를 깨뜨리고 일제 식량창고와 일본인 상점만 모두 털어 주민들에게도 일부 옷감과 식량을 나누어주고 나머지는 유격대용으로 식량을 밀림 속 비밀 근거지로 옮겨갔는데 그때 그 경찰관 아버지도 동료 중국인 경찰관들과 밀가루 포대를 지고 밀림 깊이까지 짐꾼으로 끌려갔었다고 한다.

 

 

그런데 김일성 장군은 그 경찰들을 죽이고 않고 다시는 일제 개노릇 하지 말고 민족과 인민을 위해 살라고 교양을 한 다음 집으로 돌려보내 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밀림에서 내려오는 내내 깊이 반성하고 이후에 개과천선하여 나쁜 일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김일성 주석은 그 짧은 시간에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진심어린 교양을 하는 능력이 있었던 것 같다. 이런 이야기는 셀 수도 없이 많다.

 

김일성 주석이 직접 이끌던 부대에서 총을 들고 함께 싸운 한족 3형제가 남긴 기록을 보면 김일성 주석은 나이어린 한족출신 전령병이 손을 부상당했을 때 양말도 빨아주고, 소변볼 때 바지도 내려주고 또 올려 주는 등 육친적인 사랑을 베풀어 그 전령병이 감동의 눈물을 펑펑 쏟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중국 장백현 당안국에서 보관하고 있는 그 기록문을 보면 김일성 주석은 항일군대를 이끌고 행군하면서도 끊임없이 지형지물을 관찰, 경계를 늦추지 않았고, 쉬는 시간이면 늘 지도를 보며 작전구상을 했다고 적혀 있었다.

 

 

 

100100승의 비결이 바로 이런 책임감과 끊임없는 탐구에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사실 김일성 주석의 전과는 일본 관동군에서 인정하고 있다. 양정우 등 중국인 항일혁명군 지휘관들보다 김일성 장군 현상금이 열 배 정도나 더 높았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이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인터넷 검색해보면 관련 사진을 찾을 수 있음, 필자도 인터넷에 본 적 있음)

 

그리고 일본의 어떤 역사가나 정치인도 김일성 장군이 가짜네 하는 말은 하지 않았다. 물론 북에서는 김일성 주석의 이런 뛰어난 항일업적도 중시하지만 더욱 높이 평가하고 있는 부분이 이 만주 항일투쟁 과정에 창시하고 발전시킨 주체사상이다.

 

 

 

현행법상 주체사상을 언급만해도 국가보안법 위반의 소지가 있어 연구도 할 수 없고 여기에 뭐라 쓸 수는 없지만 김일성 주석의 만주 항일투쟁의 발자취를 연구해보면 그는 중국의 공산당 지도부나, 소련에서 이끌던 국제당의 노선대로만 활동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은 여러 사건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유격근거지의 소비에트 노선에 반대하여 인민혁명정부 노선을 주장했고 공산주의 세력과 민족주의 세력의 연합 노선도 김일성 주석의 독특한 주장이었으며, 민생단처형 반대, 열하원정 반대 등 여러 가지 굵직굵직한 사건에서 김일성 주석만의 독자적인 노선을 주장하였다는 것이 관련 역사학자들의 주장이었다.

 

사실 소련과 중국 주변 나라에서 소련식도 아니고 중국식도 아닌 독특한 사회주의를 건설하고 소련이 망한 후에도 변함없이 사회주의의 길을 걷고 있는 나라는 북한뿐이다. 이를 만주에서 김일성 주석이 활동의 기준으로 삼은 노선과 북한의 노선이 맥을 같이 하고 있다는 방증(여러 가지 증거 중의 하나)으로 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

 

 

 

사실 2차대전시기 파시즘과 제국주의자들의 침략전쟁 때문에 이를 막아내고 민족을 지킨 영웅들이 나라마다, 민족마다 수없이 나타났다. 영국과 프랑스는 그 자신들이 제국주의이긴 하지만 나치와 싸웠다는 측면에서 보면 영국의 처칠, 프랑스의 드골도 당대 그 나라의 영웅이었고 소련의 스탈린, 중국의 마오쩌뚱과 같은 큰 사회주의 나라 독립영웅에서 호치민 등이 활동한 동남아 그리고 아프리카, 중남미까지 제국주의 침략이 있던 곳에는 어느나라나 영웅이 있었다.

 

 

하지만 그 많은 영웅들 중 누구도 사람과 민족의 운명개척의 나침반이 되고 인류가 나아갈 진보적 미래상과 그 실현방도를 알려주는 사상을 창시한 영웅은 없다. (그래도 자랑스러워한다. 이념과 체제와 정권이 바뀌어도 제 나라 독립영웅은 여전히 영웅이다.)

 

마오쩌뚱과 스탈린이 사상관련 연구성과를 남기기는 했지만 독창적인 것은 아니다. 마르크스-레닌의 틀 안에 있는 사상이었다. 또 사회과학은 실천으로 그 진리 여부가 검증된다. 소련붕괴, 중국 사회주의 경제의 붕괴는 사실상 마오와 스탈린의 사상이 있었다고 해도 그 의미를 찾을 수 없게 하였다.

 

유럽과 미국은 정치 영웅뿐만 아니라 철학가, 사상가들마저도 인류가 나아갈 사상을 제시하기를 아예 포기하고 말았다. 뭐가 있는가? 유럽의 진보 좌파들은 여전히 막스-레닌이다.

 

그런데 인터넷 자료를 찾아보면 주체사상은 중남미, 아프리카, 동남아는 물론 최근엔 미국, 유럽, 일본에도 그 연구자들이 날로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사실 북한 외에 그래도 좀 체계를 갖춘 유일한 사회주의 국가로 인정받고 있는 쿠바의 사회주의 체제는 북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공인되어 있다. 그래서 미국이 쿠바를 그렇게 봉쇄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무상교육, 무상의료제도가 그렇다고 한다.

 

물론 북과 친하다고 다 사회주의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란의 경우를 보면 그렇다. 사실 사상과 제도는 강요한다고 해서 주입시키거나 유지시킬 것이 아니다.

 

 

 

어쨌든 2000년대 들어 북과 수교하는 나라가 비약적으로 증가하여 북한은 이제 유럽의 거의 모든 나라와 수교를 맺었다. 영국 런던엔 북 대사관도 들어섰다. 네덜란드엔 최근 처음으로 북한 식당이 문을 열었다. 북과 세계의 교류가 꾸준히 늘어날 것이 예상되고 있다. 북미관계가 정상화되면 그것은 가히 폭발적일 것이다.

 

 

이런 시대에 같은 민족인 남쪽에서 북한 현대사의 중심인물인 김일성 주석에 대해 아예 연구도 못하게 처벌하고 또 잘못된 주장을 한다면 중국, 일본, 러시아 등의 유관국들과 세계인들이 우리 남한을 얼마나 비웃겠는가.

 

 

중국의 정치인들과 역사학자들은 이미 한국 정치인과 어용학자들, 언론에 대해 얼마나 폄하하는지 모른다. 순 거짓말과 왜곡전문이라는 것이다.

 

 

필자도 기자 명함을 들고 중국에 가서 처음에 멋모르고 나누어 주다가 그것이 얼마나 바보같은 것이었는지 곧 알게 되어 명함을 고스란히 가지고 돌아왔다. 순 거짓말쟁이가 한국 기자란 것이다. 이번에도 미국, 일본 언론사까지 다 평양에 들어가 위성발사와 김일성 주석 탄생 100돌 행사를 취재하는데 같은 민족인 남쪽만 가지 못했다. 기자협회에서 정부에 절절히 방북 취재 허용을 요청했지만 결국 이명박 정부는 차단했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이것은 나라망신이 아닐 수 없다고 본다. 이것이 얼마나 큰 국가의 손실로 되돌아오는지 머지않아 기업과 국민들은 분명히 알게 될 것이다.

 

세계의 신뢰와 인정을 받는 자기나라 대표 언론도 없이 무슨 세계화이고 글로벌 경쟁인가! 나라의 신뢰가 떨어질 것이다. 경제적으로만 봐도 언제까지 막대한 해외시장 광고비를 모두 외국 언론사에 다 가져다 바칠텐가. (2012. 4. 11 청계산에서 이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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