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산지석] 아버지 부쉬와 프랑스 시위, 그리고 미국 군비
중국시민
기사입력: 2018/12/04 [18:19]  최종편집: ⓒ 자주시보

 

미국 전 대통령 아버지 부쉬가 죽으니 찬양 일색이다. 냉전을 종식시킨 업적을 운운하는 데는 의문이 간다. 1990년대에 부쉬가 바닷가에서 큼직한 물고기를 들고 친구와 함께 찍은 사진이 나왔는데, 친구가 잡은 고기를 들었다는 설명이 붙었다. 소수의 체취가 특이한 사람들은 그 손으로 미끼를 낚시에 꿰면 물고기가 미끼를 물지 않는단다. 낚시를 좋아하나 절대 낚지 못하는 사람들 중에 그런 경우가 간혹 있는데, 부쉬가 그런 예였단다. 그런 사람들은 비닐장갑을 끼고 미끼를 낚시에 꿰거나 남이 꿰어준 미끼로 낚시질해야 물고기를 잡을 가망이 있단다. 냉전의 국면을 돌려세운 건 부쉬의 전임 레이간이었다. 미국과 소련이 여러 면에서 팽팽히 맞서던 시절, “스타워즈”계획으로 군비경쟁을 부추기는 한편, 외계인이 쳐들어오면 미소가 합쳐서 싸워야 하지 않겠느냐는 황당한 논리로 소련의 새 지도자 고르바쵸브를 속여 넘긴 게 레이간이다. 아버지 부쉬도 놀고먹지는 않았으나 질적인 변화를 가져오지는 못했다. 한편 고르바쵸브라는 얼뜨기가 없었더라면 소련이 급격히 몰락할 리 없고, 옐친이라는 희대의 건달이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 지도자와 함께 소련 해체 협의를 체결하지 않았더라면 소련이 허망하게 무너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소련이 해체된 1991년에도 여론조사 결과는 대다수 소련인들이 소련의 유지를 바랐음을 보여줬는데, 위에 집중된 권력구조가 민의를 무시하는 해체결과를 낳았고 그 후유증은 지금까지 가셔지지 않았다. 러시아 대통령 푸틴이 옐친에게 “러시아 제1대 대통령”이라는 고유 칭호를 올리고 옐친을 비판한 적 없으나, 러시아에서 특히 우크라이나와의 모순이 격화된 현시점에서 옐친이라는 인물을 높이 평가하는 러시아인은 드물다. 

 

소련의 해체는 내부에서 일어난 돌연변이였기에 정보전문가들도 예측하지 못했다. 그로 인한 냉전 종식을 아버지 부쉬의 공로로 돌리는 건 과하다. 냉전 종식 초기에는 물론 아버지 부쉬 생전에도 그런 얘기는 없었거나 별로 없었던 줄로 아는데, 죽으니까 급작스레 세계 역사를 바꾼 위인으로 둔갑한다는 게 황당하지 않을 수 없다. 

 

아버지 부쉬가 레이간의 인기정책 덕을 보아 공화당 후보로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면, 2017년 프랑스 대선에서는 기존 정당과 노정객들이 하도 미움을 샀기에 때가 덜 묻고 기반도 약한 마크롱이란 젊은 정객이 대통령으로 되었다. 그에게 큰 기대를 건 사람들이 많아 취임 초기에 지지율이 높았는데, 이제는 7, 80% 국민의 반대를 받게 되었다. 유류세 인상이 유발한 노란 조끼 시위가 격렬해지면서 폭력사태가 속출하는 판이다. 아무리 과격시위가 드물지 않은 프랑스라도 이번의 시위와 폭란은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에서는 마크롱이 굴하지 않고 과격시위를 용서하지 않으면서 맞선다는 식의 보도가 많았고, 저걸 보면 한국의 평화로운 촛불시위가 얼마나 대단하냐고 자찬하는 반향도 나왔다. 중국에서는 시위와 과격행위 자체를 보는 시각이 조금 달랐다. 

 

일단 시위에 대해서는 프랑스와 서방의 응보라는 반향이 비교적 많았다. 여러 나라에서 색깔혁명을 부추긴 결과, 그 모습이 고스란히 프랑스에서 재연되었다는 것이다. 구소련 국가들이나 중동, 아랍 국가들에서 비슷한 장면이 나올 때에는 프랑스를 비롯한 서방이 “혁명”이라고 극찬하면서 독재자와 독재정권에 맞선 국민들을 찬미했는데, 지금은 프랑스 시위자들을 비난하는 게 이중 잣대라는 비판도 나왔다. 다른 면으로는 프랑스의 저런 시위가 바로 민주를 보여준다면서 중국에서는 기름 값이 자꾸만 올라도 시위들 못한다거나, 중국에서는 “태평견(太平犬, 태평시절의 개)” 노릇이나 한다는 자조 혹은 비판이 나왔다. 워낙 태평시대의 개보다 난리 속의 사람이 못하다는 말이 있는데 그를 뒤집어서 중국인들이 개꼴이라고 비꼰 것이다. 허나 “우리가 평화시대에 살고 있는 게 아니라 운 좋게 평화로운 국가에 살고 있다(我们并不生活在一个和平的时代,而是有幸生活中一个和平的国家)”는 말이 꽤나 인기를 끈 중국에서 “태평견” 운운은 큰 호응을 얻어내지 못했다. 유류세 인상이 프랑스 다수 백성들의 삶에 영향을 준 것과 달리, 중국에서의 기름 값 인상이 차를 굴리는 사람들에게는 영향을 주더라도 다수 백성들의 삶과는 직접 관계가 없기에 기름 값 따위가 전국은 물론 어느 대도시의 민심도 자극하기 어렵다. 

 

최근 중국에서 주목 받은 건 개선문 낙서와 박물관의 문화재 파괴였다. 시위를 하겠으면 하지 왜 문화재를 파괴하느냐는 비판이 나오는 외에 문화재를 파괴하겠으면 프랑스 국산을 파괴하라고, 중국에서 약탈해간 문화재들은 건드리지 말라는 댓글 따위가 흥미로웠다. 프랑스는 19세기에 청나라 침략과 약탈에서 활약하여 엄청난 수량의 문화재를 가져갔기 때문이다. 그런 반향은 중국을 내놓고는 혹시 이집트에서나 나올 상 싶다. 

프랑스는 전통적으로 독자적인 성향이 강했고 문화 자부심이 강했으며 수도 파리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사랑도 유난했다. 냉전 시기 프랑스 대통령 드골이 나토에서 탈퇴했던 원인의 하나로 모스크바 방문이 꼽힌다. 소련의 미사일 소개를 듣다가 파리도 겨냥했느냐고 물으니 소련 지도자가 당연히 그렇다고 대답하여, 드골은 파리 보호를 위해 나토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얼마 전 마크롱이 유럽인들이 유럽을 지키자고 유럽의 군사독립을 내건 것도 드골부터 내려오는 전통과 갈라놓을 수 없다. 마크롱의 주장에 미국 대통령 트럼프가 발칵 화를 내고 여러 모로 압력을 가했는데, 자기 나라, 자기 대륙을 자기가 지키겠다는 거야 당연한 일이건만 미국은 정치, 경제 이익 때문에 반대했고 마크롱이 이끄는 프랑스는 압력에 못 견뎌 일단 물러났다. 

 

지금 프랑스의 혼란상을 보면 마크롱이 유럽의 군사독립을 추진하려고 애쓰더라도 유럽 군비에서 프랑스가 낼 부분마저 제대로 나올지 의문이다. 

유럽의 군사독립을 극력 반대한 트럼프 또한 군비 때문에 말썽이 많다. 그는 미국의 국방비용이 너무 많다면서 예산을 줄이라고 지시했다는데, 원래의 7160억 달러에서 7000억 달러 정도로 줄어든다 한다. 원래 수자가 한화로 800조 원 미만이니 한국에서 미국을 가리켜 부르는 “천조국”은 과장이었나? 트럼프의 처사를 놓고 군대와 군산업체에서는 당연히 반대소리가 많이 울린다. 그런데 트럼프는 중국, 러시아와의 “억제 불가능한 군비경쟁”을 운운하면서 중단을 모색하기 위해 시진핑 주석과 푸틴 대통령과 협상하겠노라고 주장했다. 

미국은 세계 군비지출명부에서 첫 자리를 차지한지 오래다. 그 뒤에 이어진 10개 나라 군비를 다 합쳐도 미국 군비보다 적은 게 역사와 현실이다. 덩샤오핑의 “군대가 기다리라”는 정책 때문에 1980년대부터 군사비 지출을 줄였던 중국이 근년에 군사비를 늘이고 장성폭도 제법 높으나 지금도 고작 미국 국방비용의 1/3에도 못 미친다. 러시아는 더욱 적어 미국 국방비용의 8%에도 이르지 못해 인도와 사우디아라비아보다도 훨씬 적고 또 그 경제형편에 비춰보면 군비지출이 대폭 늘어날 가망이 희박하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가 군비경쟁을 운운하면서 중국과 러시아의 위협을 부각하는 자체가 웃음거리다. 근년에 죽은 미국인들 중 중국과 러시아가 죽인 사람이 있던가? 무기에 의한 미국인들의 사망은 절대다수가 미국 본토에서 미국인들의 총격이 원인이었다. 

 

남들의 몇 배 지어 열 몇 배 국방비용을 쏟아 부으면서도 불안스러워하는 미국은 분명 문제가 있다. 내부모순을 해결하지 못하면 소련의 뒤를 따를지도 모른다. 단 그렇다 해서 중국이나 러시아의 어느 지도자에게 “군비경쟁을 종식시킨”이거나 “미국을 해체시킨” 따위 수식어는 붙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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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궁금 18/12/04 [21:25]
1. 달러 찍어도 되니 군사비 정도야. 중국은 2008년 금선물거래소 개설, 2018년 1월 1일 상하이 원유 선물거래소(달러) 개설, 일대일로로 달러패권에 도전장을 던짐. 나는 미국은 트럼프 대선시절 말로 공격했고, 중국은 행동으로 공격했다고 생각함. 피장파장. 뒷수습하려고 하는 중인데 이런 것들은 테이블에서 안 보임. 테이블 밑에서 거론했을 것으로 생각 중. 2. 프랑스라는 나라는 그러면서 성장해온 나라임. 별거 아님. 한국을 아시아의 프랑스라고 불렀는데 요즘은 먹고살기 바빠졌는지 데모도 크게 안함. 세월호, 촛불 시위가 열외적이기는 하지만. 필자가 대학다니던 80년대는 매일매일이 데모였음. 나는 전두환이라는 사람을 다른 각도로 평가함. 무슨 이유에서였건, 집권내내 그렇게 데모해댔 는데도 계엄령 비슷한 것을 발동하지 않았다는 것임. 낙천적인 성격이었다고 함. 3. 중국은 시위대 그만두고 보도만 통제하고 그냥 한번 두고볼 필요성도 있음. 어디까지 확전하는지 중국지도부는 조심성이 너무 과하다는 느낌을 받음. 그러다 정말 터지면 문제 됨. 수정 삭제
궁금 18/12/04 [21:34]
상하이 원유선물 거래소(위안화) 개설 : 이게 미중 무역전쟁의 도화선이라고 나는 생각함. 중국은 찔러보았음. 까짓거 하는 무시도 있었고. 남중국해는 사전에 찔러보는 정탐 목적이라고 생각함. 안방에서의 싸움이니 미사일 화력 지원등 유리하기도 했고. 이렇게 미국의 힘을 야금야금 테스트했다가, 그 테스트에 미국이 반응을 보여주는 것임. 미니트맨-3 미사일 기술을 미국이 중국에 건네 줌. 1980년대에. 소련 견제하려고. 세상은 돌고 돈다. 수정 삭제
ㅎㅎㅎ 18/12/06 [15:26]
전두환은 6월 항쟁 때 계엄령을 발동해서 시위대를 몽땅 광주 때처럼 죽여버리려고 했다가 군부 내에서 반대 의견이 많았고 미국에서 더는 광주에서처럼 유혈극을 원하지 않는다고 신호를 줘서 폭력으로 진압을 못하고 물러난 것임. 수정 삭제
ㅎㅎㅎ 18/12/06 [15:38]
전두환이 벌인 광주 학살과 삼청교육대, 형제복지원 사건 등을 보면 전두환이 얼마나 잔인하고 포악한 인간인지 알 수 있음. 그런 전두환이 계엄령을 안 했다? 안 한게 아니라 주변의 여러 압력 때문에 못한 것 뿐임.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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