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일침 581] 자살도 문화라
중국시민
기사입력: 2019/01/04 [10:32]  최종편집: ⓒ 자주시보

 

머리를 도끼에 10여 차례 찍히고 목이 매달려 죽은 사람이 발견됐다. 타살인가? 자살인가? 자살이었다. 도끼로 자기 머리를 찍었으나 죽지 않으니 목을 매어 죽은 것이다. 흉기를 들고 스스로 찍거나 찌를 때에는 순간적으로 머뭇거리거나 빗나가거나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머뭇거린 흔적을 술어로 “유예흔”이라고 부르니, 수사에서 자살, 타살을 가르는 중요한 증거로 된다. 

 

자살은 역사와 현실, 문화와 갈라놓을 수 없다.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자살방식은 일본의 할복인데, 실제로는 가장 비효율적인 사망방식으로서 곁에서 조수가 머리를 끊어줘야 죽게 되고, 일본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전통무기를 사용한 할복과 정반대로 나간 건 미국의 일부 사람들이다. 죽고는 싶은데 스스로 죽이기는 두려워 가짜 총이나 실탄을 장전하지 않은 진짜 총을 들고 큰 사건을 일으켜서 경찰과 맞서다가 경찰의 총에 맞아 죽어버리는 방식이다. 보도된 사건들에서는 모두 경찰들이 일제사격을 가했기에 자살희망자가 여러 발을 맞고 순조롭게 죽었는데 만약 경찰들이 팔다리나 맞춘다면 고통이나 겪게 된다. 이런 방식 또한 미국처럼 총기소유가 자유롭고 경찰들이 걸핏하면 발포하는 나라가 아니라면 흉내내기조차 어렵다. 

 

동서양을 두루 살펴보면 비교적 많이 쓰인 고전적인 방식이 칼로 목을 베기, 목 찌르기, 그리고 물에 뛰어들기와 목매달기다. 특히 동양에서는 집안에 대들보가 드러났기에 목매달기가 아주 쉬웠다. 그러다가 근 현대에 들어와 집 모양과 거주환경이 변하면서 자살방식도 변화가 일어났다. 

중국의 경우 1949년 해방 후 자살방식이 농촌에서는 농약 먹기, 도시에서는 수면제 먹기가 늘어나다가 21세기에는 층집에서 뛰어내리기가 유행병처럼 퍼졌다. 아이폰 제조에서 중요한 고리를 담당한 폭스콘의 종업원들이 10여 명이나 잇달아 뛰어내린 사건이 유명했고, 부정부패 혐의를 받은 정치인들도 층집에서 뛰어내렸다는 소식이 심심찮게 나온다. 별 처분을 받지 않은 정객들이 층집에서 뛰어내리면 부고에는 “우울증” 탓이라는 설명이 붙곤 한다. 한편 벼랑에서 뛰어내리기도 흔치는 않으나 자살희망자들의 선택사항 중 하나로 되어 가끔 보도되고 2018년에는 험하기로 유명한 화산(華山)에서 관광객이 급작스레 안전벨트를 풀고 뛰어내리는 동영상이 널리 퍼져 큰 충격을 주었다. 후속보도에 의하면 그 사람은 우울증이 심했는데, 가족들이 거두기를 거부하는 바람에 화산 관리국에서 숱한 인력과 물력을 동원하여 험한 산골짜기에서 간신히 주검을 찾아 처리했다 한다. 그 사람은 죽어도 곱게 죽지 않고 민폐를 끼쳤다(중국어로는 라오민扰民이라고 함)는 욕을 먹었다. 조금 특수한 사례로는 인터넷게임에 미친 소년이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면 환생한다고 믿어 만든 비극으로서 일반적 의미에서의 자살과는 좀 다르다. 

 

추락사는 한국에서도 종종 보도된다만, 조금 신기하게 생각되는 게 중국에서는 연탄으로 자살했다는 소식을 본 기억이 없는 점이다. 중국에서도 북방에서는 연탄이 많이 쓰이는데 그걸 자살도구로 삼는 사람은 없는 모양이다. 반대로 한국에서는 승용차 안에 번개탄을 피워서 죽었다거나 자살이 실패했다는 보도들이 나오곤 한다. 이른바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조작에 관여한 국정원 모 간부도 그런 방식을 골랐는데 효과가 신통치 않았다. 

 

상식적으로는 정보기관의 사람들이 사망방식을 정통했을 법하다. 그런데 상식을 깨는 사례들이 많다. 권영해 전 안기부장의 손목 긋기 자살도 그러하다. 손목을 자른다면 몰라도 칼로 긋는데 그치면 피가 재빨리 응고되면서 더 나오지 않기 때문에 죽을 확률이 굉장히 낮다는 건 의학상식이다. 

하긴 상식을 모르는 사람들이라면 손목 긋기로도 죽음이 가능하다는 게 실험으로 증명되었다. 어느 나라의 과학자들이 사형수의 손목을 살짝 그어 피가 나게 한 다음 눈을 싸맸다. 피는 곧 멎었으나, 한켠에서 수도꼭지를 틀어 물이 똑똑 떨어졌다. 과학자들이 사형수에게 피가 떨어지는 소리라고 알려주었더니 사형수가 얼마 지나지 않아 죽어버렸다. 지나친 공포가 죽음까지 초래할 수 있음이 증명되었는데, 그 전제는 무식함이다. 무식할 리 없는 어떤 사람들이 무식한 방식으로 죽으려 했다면 “쇼”라는 질의를 피하기 어렵다. 

 

1월 3일 근자에 큰 물의를 일으킨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이 유서를 남겨놓고 사라졌다가 몇 시간 만에 생명에 지장이 없는 상태로 발견되었다. “마지막 글”이라고 모 사이트에 올린 글에는 죽기 위해 애썼으나 실패했던 과정이 그려졌다 한다. 안쓰럽다. 일부 사람들이 신 씨를 영웅으로 떠받드는 건 더구나 안쓰럽다. 

사람을 하나 죽이면 죄인이나 사람을 많이 죽이면 위인이라는 서글픈 농담이 있다. 1월 1일에는 민주화운동을 군화발로 짓밟으며 유혈, 탄압한 전두환을 “민주주의의 아버지”로 평하는 말이 알려졌는데, 3일에는 자살을 예고했다가 성사하지 못한 사람이 영웅으로 부풀려지는 기현상이 생겨났다. 2019년의 시작치고는 무척 고약하다. 

 


광고

트위터 페이스북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 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