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산지석] 변절의 시기 선택도 일종 학문이라
중국시민
기사입력: 2019/01/08 [11:30]  최종편집: ⓒ 자주시보

 

지난 해 이맘때 필자가 품을 들여 쓴 글은 “변절의 추학”시리즈(http://www.jajusibo.com/sub_read.html?uid=38109&section=sc7&section2=)였다. 이름을 드날렸던 혁명가들이 어떻게 변질하고 변절하게 되었느냐는 흥미로운 연구과제다. 조선(북한)에는 “행세식 혁명가”라는 표현이 있어 유행에 따라 혁명구호를 외치고 혁명이론을 떠들던 사람들을 가리킨다. 중국에는 특별한 표현이 없는데, 혁명의 상승기, 고조기에 우루루 몰려들었다가 저조기에 부랴부랴 도망간 인간들은 아주 많다. 한때 지도자급이었던 명사들도 적지 않다. 게다가 혁명의 고조기에 희한한 짓을 한 사람까지 있으니 오늘 그 중의 하나를 잠깐 소개하련다. 

 

오늘 1월 8일은 저우언라이(주은래) 총리 서거 43돌이다. 1976년 저우언라이를 시작으로 하여 7월에 주더(주덕)원수, 9월에 마오저둥(모택동)주석이 서거하여 1년에 세 별이 떨어졌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이 세 분 모두와 역사적으로 인연을 맺은 사람이 하나 있었다. 

레닌식 정당에서 굉장히 중시하는 게 입당소개인(조선에서는 “보증인”이라고 함)이다. 특히 혁명시기에는 많은 경우 입당 소개인은 피소개자를 혁명의 길로 이끌어 들인 사람이다. 

1920년 11월에 프랑스로 유학을 떠날 때까지 22살의 저우언라이는 신앙을 정하지 않았다. 중국과 일본에서 접하던 여러 가지 주의를 유럽에서 재고찰한 다음 신중한 비교를 거쳐 공산주의를 평생의 신앙으로 삼았다. 당시 자발적인 공산주의자들이 좀 있었는데, 그를 공산주의조직으로 이끌어 들인 사람은 5살 이상의 지인인 장선푸(张申府1893~1986)와 4살 이상의 류칭양(刘清扬)이었으니 장선푸는 중국공산당의 초기 지도자들인 천두슈(陈独秀)와 리따자오(李大钊)의 의뢰를 받고 해외조직 건립에 착수했던 것이다. 장선푸가 제일 먼저 당원으로 발전시킨 사람은 류칭양이니 그녀는 중공의 첫 여성당원이고 얼마 후 장선푸와 결혼했다. 

 

▲ 1920년대 초반 베를린에서의 저우언라이 등, 놋대를 잡은 사람이 저우언라이고, 그 왼쪽의 여자가 류칭양, 사진 맨 오른쪽의 남자가 장선푸이다.     © 자주시보,중국시민

 

이듬해 베를린에서 장선푸는 저우언라이와 함께 군벌출신인 주더의 입당소개인으로 되면서 주더와도 인연을 맺었다. 

그보다 앞서 청년 마오저둥이 베이징대학 도서관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할 때 동갑내기 장선푸는 도서관 대리주임이어서 마오저둥의 “직속상관”이었다. 

 

이처럼 3대 위인과 관계가 있고 중국공산당이 정식 창립되기 전인 공산주의소조시기부터 지도자급으로 활약했던 장선푸는 1925년에 탈당했다. 그 이유는 중국공산당과 중국국민당이 동맹으로 되는 걸 반대했기 때문인데, 쟁론에서 이기지 못하니 홧김에 탈당한 것이다. 당시 국공합작은 북벌(중앙정권을 잡은 북양군벌을 정벌함)이라는 성과를 낳았고 결과 남방의 한 구석에 몰려 있던 국민당이 전국적인 정당으로 발전했다. 북벌과정에서 장제스(장개석)과 왕징웨이(왕정위)의 혁명배반으로 하여 공산당과 국민당좌파가 대량 학살되고 혁명이 저조기에 들어갔는데, 단순히 그 결과만 보면 장선푸의 주장이 옳을 수도 있으나, 제1차 국공합작은 성과가 많았고 1937년 일본의 침략에 맞선 제2차 국공합작의 토대로 되었으며, 지금까지도 “제3차 국공합작”이 언급되면서 타이완(대만)문제 해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장선푸는 전략적 안목이 부족하고 조직의 결정에 복종하지 않았음을 드러냈는데, 그 스스로는 자신이 부러질 지언정 굽히지 않는 인물이고, 국공합작문제에서 저우라이는 한때 자기와 견해를 같이 했는데(장의 일방적 주장임) 굽히면서 부러지지 않는 사람이어서 그랬노라고 해석했다. 

 

탈당한 후 교수와 번역가로 살아가면서 민주운동에도 참여하면서 명사노릇을 하던 장선푸는 1948년에 그 자신이 몇 해 전 창립에 관여한 중국민주동맹에서 제명당했다. 원인은 10월 23일에 《평화를 호소한다(呼吁和平)》는 글을 발표하여 장제스의 “반란평정정책(戡乱政策, 이 정책은 1990년대 초반 타이완의 ”총통“ 리덩후이가 폐지할 때까지 수십 년 동안 타이완 백색테러의 근거로 되었다)”을 지지했다. 워낙 1946년에 장제스가 몇 배의 군사적 우세를 믿고 전면적 내전을 발동할 때는 몇 달 사이에 공산당과 그 군대를 몰살시킨다고 장담했는데, 2년 쯤 지나 중공과 해방군은 전략적 반공격으로 넘어가 중요지역들에서 국민당군은 대도시들만 차지했을 뿐이었고 눈이 바로 박힌 사람이라면 모두 공산당의 승리를 내다보았다. 그런데 장선푸는 장제스도 사용을 폐기한 “비적”이라는 표현으로 해방군을 욕했으니 시대의 흐름과 정반대로 간 것이다. 민주동맹은 장선푸의 맹적을 취소했고 중공의 신문은 반역자 장선푸를 매도했으며 류칭양은 장선푸와 이혼하고 결별을 선포했다. 남들의 비난과 아쉬움에 대해, 장선푸 자신은 그 글로 은화 3, 000개 원고료를 받았다고, 그때 그 3, 000원이 절실히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은화 30닢에 예수를 팔아먹은 유다와는 비기기 어려우나 절개와 지조보다 돈을 더 좋아했음은 장선푸의 인간됨을 말해준다. 

변절의 추학 시리즈에서 다룬 변절자들이 거개 그 변절로 전날의 동지들을 죽음으로 몰아간 것과 달리 장선푸의 1920년대 탈당과 1940년대 뻘짓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지는 않았다. 허나 민주동맹은 그 바람에 이미지가 굉장히 많이 손상됐고 국민당독재를 반대하는 연합세력이 큰 타격을 입었기에 그처럼 강렬한 반향을 보인 것이다. 

장선푸가 뻘짓을 한 이듬해에 국민당이 대륙에서 쫓겨나고 중국공산당이 주도하는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되었다. 민주당파의 여러 사람들이 국가 부주석, 부장, 부부장 등 요직을 맡았는데 경력과 지위로 첫 손 꼽히는 장선푸는 아무런 공직도 얻지 못하고 베이징도서관에서 한직에 머물렀다. 전해의 글로 정치무대에서 철저히 밀려났기 때문이다. 

장선푸는 만년에 그 글은 미리 써둔 것인데 대학에서 교수노릇을 하다나니 정세변화에 어두워서 뒤늦게 발표하는 바람에 시대에 어울리지 않았다고 변명했으나 구차한 변명이다. 또한 그는 자신이 베이징대학 도서관 대리주임으로 있을 때 마오저둥이 목록카드에 쓴 글씨가 초서체여서 훈계하고 다시 쓰라고 요구했기 때문에, 마오저둥이 해방 후에 보복하여 자기를 등용하지 않았노라고 해석했다. 이는 모두 그 좁은 속알머리와 형편없는 안목을 드러낸다. 

1970년대 말에 80고령의 장선푸는 전국정치협상회의(하원 격) 상무위원으로 되어 정계로 돌아왔으나 실제적인 일은 하지 못하고 원로로서 높은 대우를 받았을 따름이다. 장선푸는 1986년에 죽을 때까지 그의 초기 경력 덕에 역사연구자들의 방문도 많이 받았다. 

장선푸에 대해 중국의 역사연구가 진이난(金一南)은 이렇게 평했다. 

 

“모든 기회가 다 그의 손에 들어있었으나 모두 새나갔다. 그는 일생동안 지극히 현실적이었고 영리하게 계산을 잘 했으나 나중에는 모두의 버림을 받았고 세인들에게 차츰 잊혀졌으며 역사의 거센 흐름 속에 가라앉았다.(所有的机会都在他手里,都溜走了。他一生极为现实,精明算计,但最后却是众叛亲离,为世人淡忘,为历史的洪流淹没。)” 

 

장선푸 같은 인간들이 존재하기에, “1948년의 변절” 혹은 “1949년의 변절”은 세상 돌아가는 형편을 모르고 엉뚱한 뜀뛰기를 조롱하는 말로 되어 지금도 곧잘 쓰인다. 

필자는 “변절의 추학”에서 중국의 대장정을 겪었으나 후에 변절해버린 인물들을 소개했고, 조선항일투쟁사에서 “고난의 행군” 뒤에 변절한 인간들도 있음을 언급했다. 어려운 시기의 변절은 그나마 어느 정도 동정이라도 받을 수 있는데, 힘든 고비를 지난 다음의 변절은 결국 변질로만이 해석할 수 있다. 

 

지나간 역사인물의 선택을 비웃기는 쉽다. 헌데 현실 속에서 선택을 잘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보다 더 어려운 건 편안히 살아왔던 사람들이 더 잘 살아보겠다고 뜀뛰기를 했을 때 정부나 단체가 그런 사람을 어떻게 대하고 다루느냐는 문제이다. 난민도 이민도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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