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일침 584] 체육계 폭력 뿌리와 뿌리 뽑기의 대가
중국시민
기사입력: 2019/01/15 [10:11]  최종편집: ⓒ 자주시보

 

2019년에는 대형국제경기가 없는 “쉬는 해”인데 연초부터 체육과 관계되는 소식들이 여러 나라에서 나온다. 

중국의 전 축구선수 가오펑(高峰)이 마약을 하다가 잡혔다는 보도를 볼 때의 기분은 씁쓸했다. 중국에서 으뜸가는 공격수였던 사람이 중년에 인생을 망친 건 자기 탓이지만, 한때 텔레비전 앞에 앉아서 열렬히 응원했던 스타의 몰락으로 자신의 인생 일부분도 허무해진 듯한 느낌이다. 

 

한국 빙상 스타가 폭로한 빙상계의 폭행 지어 성폭력에 한국인들이 강한 분노를 표출하는 것도 아마 상당기간 얼굴과 이름을 잘 알았고 경기를 가슴 졸이며 보았던 상대이기에, 광환 뒤의 그늘을 알게 되면서 허무한 느낌이 들고 심지어 배신감까지 생기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14일 보도된 유도선수 신유용의 코치 성폭행 폭로는 길게 보면 지난해 초부터 시작된 “한국 미투”의 연장선에서 이뤄졌는데, 한국인들은 어떻게 여길지 잘 모르겠다만, 필자는 전날의 연극계, 영화계, 문화계, 검찰 및 빙상계 등에서의 미투보다 다른 충격을 받았다. 유도란 호신술이고 그것도 자신보다 크고 강한 적수를 이기는 걸 표방하는 무술이기 때문이다. 다른 미투 피해자들이 위계질서 따위로 불이익을 당하면서도 반항할 능력자체가 부족했던 것과 달리 유도선수는 적어도 반항의 기술은 안다. 흔히 코치가 유도를 더 잘 안다고 하지만, 실제로 선수팀에서는 코치와 선수가 맞붙어 훈련하면서 질 때도 적지 않다. 그런데도 훈련과정에서 심하게 얻어맞고 폭행까지 당하면서도 반항할 엄두도 내지 못했으니, 유도의 취지가 무색하고 따라서 체육계의 폭행관행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보여준다. 

 

무술에 “도”자가 붙은 건 근대의 일이다. 단순히 때리고 차고 메치고 조르는 싸움기술이 아니라 정신적인 수양에도 정성을 기울여 고상한 인간으로 자라난다는 게 여러 가지 무도가 내세우는 철학이다. 헌데 실제로는 태권도, 유도, 이러저런 도들에서 불미스러운 사건들이 잇달아 일어나니 아이러니다. 

 

필자는 한국 체육계에서 폭력사건이 유달리 많은 데 대해 생각해 본 적 있다. 다른 나라 선수들은 얻어맞지 않고도 우수한 성적을 따내는데 왜 한국에서는 때려야 된다는 인식이 뿌리박혔을까? 아무래도 한국식 군사문화 탓이 아닐까 싶다. 한국의 군사문화에 일제의 잔재가 많음은 잘 알려진 바이다. 워낙 우리 민족 전통에는 스승이 제자를 가르치더라도 종아리치기 정도는 있어도 무지막지한 구타는 알려지지 않았다. 봉건왕조시대의 군율이 엄하다 했더라도 군대 내부에서 평상시에 구타가 유행되지도 않았다. 구타로 군기를 잡고 때려야 이기는 군대가 만들어진다는 인식은 일제의 침략과 더불어 들어왔다. 

 

한국에서는 유교문화권이라는 말을 곧잘 쓰지만, 구체적으로 따져보면 반도와 일본에서 받아들인 유학이 무척 다르다. 반도에서 맹자의 성선설을 숭상한데 비해 일본에서는 순자의 성악설이 더 퍼졌고,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는 전제하에서 많은 처사방식이 나왔으며 전통을 이뤘다. 군사 분야에서 옛 일본인들의 원칙과 규정을 살펴보면 전국시대 위료자(尉繚子)의 병법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다. 한국에서는 흔히 《손자병법》과 그 저자 손자가 알려졌으나, 춘추전국시대에 군사를 다루는 병가(兵家)는 백가(百家)의 하나로서 대표적 인물들이 적잖았고 이론가와 실천가들도 많았다. 위료자의 병법에서는 군사들이 적을 두려워하기보다 장관을 더 무서워하게 만든다는 게 중요한 지위를 차지한다.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평소에 갖가지 방식으로 훈련을 시키면서 상벌을 엄하게 한다. 일본군의 그 유명한 기합 따위는 바로 상관과 고참의 권위를 고착시킴으로써 병사들로 하여금 퇴각하면 죽으니까 돌격해야 살 수 있고 영광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고 한때 유명한 “반자이 토츠케키(만세 돌격)”도 만들어냈다. 그런 무지막지한 돌격이 먹혀들 때까지는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고 “무적황군”의 신화도 만들어냈으나, 소련군과 미군의 자동화기 앞에서는 시체더미만 만들면서 비참한 웃음거리로 되었다. 

 

혹시 짧은 기간 내에 큰 성과를 거두기 위해 인간의 잠재력을 총발동시키는데 폭언과 구타 따위가 일시적으로 효과를 낼 수도 있다. 그러나 후유증이 너무나도 크고, 세상에는 분명 폭언과 폭력이 없이도 뛰어난 성공을 거둔 군대와 선수들이 무수하다. 그러니까 누군가 전통과 경험을 내세우면서 코치의 폭언, 폭행을 합리화하련다면 말이 되지 않고 지금 세상에서 누굴 때렸다고 자랑할 미치광이는 없을 것이다. 단 내놓고 말하지는 못하더라도 국제경기에서의 메달 획들을 위해 폭언, 폭행을 암묵적으로 시인해주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체육계 폭력에 대해 이제는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섰는데 관행 퇴치에서 2020년 도쿄 올림픽이 하나의 큰 고비로 되겠다. 지금 심석희 선수 등을 동정하면서 분개해마지 않는 사람들이 2020년 올림픽에서 한국 팀 금메달수가 많이 줄어들고 금메달리스트 순위도 떨어지더라도 깨끗한 스포츠로 나가는 길에서 치러야 할 대가라고 여기리라고 낙관적인 기대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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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yu 19/01/17 [09:30]
맞는 말인데 얄밉네요.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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