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일침 592] 독사를 “왜놈의 뱀”이라고 때려죽인 아이들
중국시민
기사입력: 2019/02/17 [19:00]  최종편집: ⓒ 자주시보

 

최영미- 고은 소송판결 때문에 주말 내내 언짢았다. 살인죄라도 시효가 지났을 25년 전의 일이 법정에 오른다는 것부터 희한하고, 또 필자 개인적으로는 고은 작품을 좋아하지 않지만, 여러 해 해마다 노벨상 후보자로 떠받들리던 문인이 수십 년 쌓은 명성을 잃어버린 게 기막혀 그렇게 오래 살지 않았더라면 그 꼴이 되지는 않았으리라는 생각까지 들었으며, 한편 여러 해 무게 있는 작품을 내놓지 못하고 어렵게 살던 여류시인이 노문인 고발로 유명세를 타는 것도 씁쓸했다. 

 

작가는 어디까지나 작품으로 승부해야 되므로, 작품 밖의 일들로 언론에 오르내리고 법정을 드나든다는 건 불미스럽다. 그런데 근년에 한국 문인들이 참여한 진실공방들을 들여다보면 작가들의 생활범위가 너무 좁지 않나 싶다. 문인들끼리의 모임, 술자리, 뒷풀이 혹은 기성문인과 초학도의 만남, 유명문인의 강의 등이 수많은 화제를 만들고 갑론을박을 자아내니 말이다. 

 

작가의 생활경력이 작품에 어떤 영향을 주느냐는 조선(북한) 장편소설 《서산대사》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광복 전부터 창작을 했던 소설가 최명익(1902~ 1972)이 1956년에 내놓은 작품이다. 

29절 “서산대사의 편지”는 서산대사가 선종에 의하여 8도 16종 도총섭으로 임명되기 전에 잡약산에 거주하면서 여러 고장에 널려있는 제자들에게 편지를 써서 항왜를 호소함으로써 전국에 승병들이 일어나는 계기를 만드는 내용을 담았다. 

그저 어떤 편지를 어떤 사람들에게 보냈노라고 적어도 이야기 전개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을 텐데, 소설가는 서산대사가 편지를 거듭 고쳐 쓰다가 잘 되지 않으니 달밤에 지팡이를 짚고 마당으로 나가 잠든 노약자들을 보는 대목을 넣었다. 그중에는 낯이 익은 장난꾸러기들도 있다. 그날 낮에 서산대사가 지형을 살피고 약초도 캐면서 뒷산을 다니던 중에 사귄 아이들이다. 

 

“칠성이와 작은 칠성이랑 이 동네 애들과 함께 로승을 따라다니던 그애들에게는 그 로승이 수염대신으로 기른듯 한 흰 눈썹만으로도 한구경거리가 아닐수 없었다. 그뿐아니라 저희 어른들이 말하는 그 로승의 이야기를 들었던 애들은 시스럽지 않게 따라다니면서 로승이 하는양을 보아가며 저희들이 뜯은 풀을 쓸것이냐 못 쓸것이먀 묻기도 했다. 

한번은 서산이 그 애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이 산에는 좋은 약초가 많구나. 참 좋은 산이다.》 

별뜻이 업이 이런 말을 했던 서산은 오히려 놀랐다. 어른들로서는 그 까닭을 알수 없을만치 애들은 기뻐했다. 《오만!》, 《할우반!》을 부르며 동네로 달려간 애들은 《우리 산이 좋은 산이래!》하며 호미와 다래끼들을 가지고 로승을 따라 약초를 캐기 시작했다. 서산으로서는 더욱 놀라운 일이 있었다. 누가 그 애들에게 일러주었던가.- 애들은 약초를 캐던 숲속에서 혹시 도마뱀을 만나면 그 독없는 도마뱀은 우리 조선 뱀이라고 하면서 길을 비켜주고 독사나 율무기 같은 독이 있고 징그러운 뱀을 만나면 《왜놈의 뱀》이라고 하면서 기어이 때려죽이고야 마는것이였다. 물론 어린애들의 생각이요, 말이다. 그러나 이 어린애들까지도 왜적을 독사같이 미워하고 때려죽이고저 하는것이다. 

이 얼마나 귀엽고 소명한 장난꾸러기들이냐!- 하며 혼자 웃기도 한 서선 로승은 나는 이런 락을 모르고 살아왔구나- 하는 감회가 나기도 했다. 그러나 유구한 력사를 가진 이 조국땅에는 아득한 옛날부터 그런 락이 있었고 지금도 있고 또 앞으로도 영원히 있을것이다. 그뿐아니라 영원히 있도록 해야 할것이다.”(최명익 지음, 문화예술출판사 2016년 3월 출판발행, 180~ 181쪽) 

 

크게 감동을 받은 서산은 방으로 돌아와 편지를 써서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서산대사의 편지발송은 역사 사실이나 그가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어떤 일들을 겪고 편지를 썼느냐는 역사에 기록되지 않았다. 특히 어린애들이 독사를 “왜놈의 뱀”이라면서 기어이 때려 죽였다는 건 정사에 기록될 리가 없고 야사에서도 언급되지 않는 에피소드다. 

 

만약 소설가 최명익이 50년 쯤 늦게 태어났더라면 서산대사를 주인공으로 삼은 소설을 쓰면서 그런 에피소드를 넣었을까? 가능성은 희박하다. 최명익은 30여 년 일제 강점기를 겪었고 특히 1950년대 초반에는 3년 전쟁을 겪으면서 당시 노인으로 불리던 쉰 살 쯤 나이로 조선 어린이들이 적개심을 표출하는 방식을 접했고 그런 에피소드를 300여 년 전으로 옮겨다가 책에 넣었을 것이다. 소설 속의 서산대사의 경력과 심리는 바로 최명익의 본인이 보고 듣고 느낀 바라고 보는 게 맞겠다. 

 

장편소설 《서산대사》는 고적들을 뒤적이면서 짜깁기한 게 아니라, 일제의 강점, 미군의 폭격, 어린이들까지의 반항 등이 저자에게 준 충격들을 녹여 넣은 작품이다. 하기에 흥미위주의 역사소설들보다 훨씬 깊이가 있고 무게도 있다. 문인들끼리 술이나 마셨더라면 그런 작품이 나올까? 답은 분명하다. 

 

반도의 남반부에서 생활범위가 너무 좁아서 작품 밖의 일로나 이름을 내는 문인들이 적어지기를 기대해본다. 사실 근년에 한국에서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얼마나 많이 일어났는가. 현실이 얼마나 풍부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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