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뜨거운 용광로 같았던 이창기
이동훈
기사입력: 2019/06/27 [16:47]  최종편집: ⓒ 자주시보

 

이동훈 주권방송 기자가 이창기 기자의 추모집을 읽고 소회를 보내왔습니다. 이에 소개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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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저렇게 뜨겁게 태울 수 있을까?

 

이 이창기 기자님

창 창대한 민족의 앞날이 열리고 있습니다

기 기세 높게 일어나셔서 김정은 위원장 답방 환영에 함께 나섭시다!! 기다리겠습니다!!“

 

이창기 선배님이 돌아가시기 며칠 전 병원에 들렀습니다. 문병을 꼭 가자는 지인의 말을 듣고 몸이 많이 안 좋으시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직접 가 뵈니 예상보다 좋지 않은 모습에 당황했습니다. 그래도 힘을 드리고 싶은 마음에 준비를 해간 삼행시를 말씀드리고 AOK 정연진 선생님이 그날 아침 찍어 올리신 평양의 일출 모습을 보여드렸습니다. 평양의 기운을 얻어 조금이나마 힘을 더 내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가득했던 기억이 납니다.

 

처음 이창기 선배를 알게 된 것은 자주민보였습니다.

그때 당시 저는 한 달에 한 번씩 학교 근처 사회과학 서점에 들러 자주민보를 사는 것이 중요한 일 중의 하나였습니다. 인터넷이 지금처럼 활성화되지 않았던 시기 자주민보는 정세를 파악할 수 있는 주요한 수단이었고 학생운동 동지들의 모범을 알려주는 중요한 통로였습니다. 자주민보를 통해 한총련 운동의 정당성과 위대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학교 후배가 자주민보에 나온 때가 있었는데, 제가 나온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 없었습니다. 전국에 있는 동지들의 모범을 보며 우리 학교도 언젠가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신심을 가졌던 기억이 납니다.

 

바보 과대표 시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처음 그 시를 읽었을 때 등줄기를 훑던 그 느낌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나는 바보의 다른 과 친구입니다.

투쟁하란 말은 없었지만 그 친구는 나에게 많은 것을 주었습니다.

저는 아직 짱돌 한 번 던진 적이 없지만 바보를 잡아간 놈들

용서할 수 없습니다. 오늘 비록 제가 잡혀 간다 하여도..."

 

지금도 이 시를 보고 이 구절을 읽을 때면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데요, 시 바보 과대표는 논리적으로 접근해 사실을 납득시키기에만 관심이 있었던 저에게 '진심'이라는 것과 '헌신'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준 시였습니다. 바보 과대표처럼 살지 못했지만 그렇게 살지 못했던 저를 반성하게 만들어 주는 기준이었고 학생회를 잘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저에게 하나의 깃발의 되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결과는 그리 좋지 않았지만 제가 단과대 학생회장을 할 때 새내기 강연으로 이창기 선배님을 초청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간접적으로 보던 이창기 선배님을 제가 제대로 본 것은 2010년대 들어와서입니다.

제가 단체 생활을 시작하고 NK 투데이에서 일하게 되었을 때 고려인분들이 자동차로 남북을 횡단하는 행사가 있었습니다. 그때 NK 투데이와 이창기 선배는 같이 서울에서 부산까지 이동하면서 취재를 했습니다. 어떻게 취재를 해야 할까 쭈뼛쭈뼛하던 저와는 달리 이창기 선배님은 적극적으로 고려인 분들을 만나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것은 경험의 차이가 아니었습니다. 고려인 분들을 만나는 것은 저나 이창기 선배님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저는 제가 잘 아는 사람이거나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면 친하게 못 대하는 성격이라는 이유로 경험이 적다는 이유로 나서기를 주저했지만 선배님은 이분들이 보고 온 북의 모습을 적극적으로 알려내기 위해서, 고려인 분들의 목소리를 알려내기 위해서, 즉 요구를 중심에 두고 인터뷰를 했습니다. , 개인의 어려움을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제가 더 놀랐던 것은 올라가는 길에 어떤 분의 장례식장에 갔다는 것입니다. 그날 아침 일찍, 서울에서 부산까지 차를 운전했고, 가는 도중에 인터뷰를 계속 하는 것도 피곤했을 겁니다. 그런데 거기서 그치지 않고 밤늦게 부산에서 출발해 새벽에 경기도 모 지역에 가서 장례식장에 들러 거기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알고 보니 관계가 깊은 분도 아니었는데... 몸도 좋지 않다고 들었는데 나이가 더 젊은 나도 힘든데... 나였다면 어땠을까? 이창기 선배님의 열정에 감탄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창기 선배님 추모의 밤의 기억도 떠오릅니다. 저는 그때 유독 많이 울었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분이 이렇게 빨리 떠나시게 된 것이 너무나 속상했습니다. 이창기 선배님이 보여준 뜨거운 열정을 생각하며 그 빈자리를 어떻게 메울 수 있겠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가슴 아프게 들었던 것은 이창기 선배님 부인의 추모사였습니다.

 

"90년 새내기 때 당신은 멋진 선배였고, 풍물꾼이었고, 시인이었고,

그런 이창기 선배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고,

애인이 되어 주었고, 남편이 되어 주었고,

아이 아빠가 되어주어서 너무 감사합니다."

 

사실 우리 집 사정 때문에 저는 부부의 사랑, 부모와 자식 간의 애틋한 정 같은 것에 민감한 측면이 있었는데 그것 때문에 더 눈물이 났던 것 같습니다. 이창기 선배님이 돌아가신 후 새롭게 알게 된 것 중에 가장 대단하다고 생각한 것이 바로 가족 사랑이었습니다. 저는 대학에 진학하면서 서울에 올라와서 집안과 관계가 그렇게 친밀하지 못했습니다. 집에 연락도 잘 안 드리고 잘 찾아가지도 않았습니다. 어릴 때 그렇게 자주 갔던 외갓집과도 관계가 서먹해졌습니다.

그런데 이창기 선배님은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막내아들로서, 사위로서 그리고 남편과 아버지로서 정말 정성을 쏟으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몸이 두개라도 모자랄 것 같은 그 활동 중에도 말입니다.

 

돌이켜보면 저는 이창기 선배님을 나와는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 뜨거운 열정과 활동을 보며 '나는 저렇게 못 할 것 같아', '왜 저렇게 과도하게 말씀하시지?' 이런 생각을 더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좀 더 배워 가면 배워갈수록 이창기 선배님은 나와 다른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은 내가 이창기 선배님처럼 더 공부하지 않기 때문에, 더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달라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많은 것을 알게 되고 더 알려고 노력하고 더 사람을 사랑하려 노력하면 저도 또 다른 바보 과대표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항상 뜨거운 용광로 같았던 이창기 선배님의 시를 읽으며 지금부터 더 노력해 뜨겁고 아름다운 사람 되겠노라고 다짐해 봅니다.

 

날 때부터

 

첫울음 터트릴 때부터

이빨 돋은 사람 없듯이

단지 이뿌리 품어지닌 잇몸이 있을 뿐

 

막 돋아난 죽순부터

대창처럼 단단하지 않듯이

단지 황토흙 비집는 뽀족한 끝이 있을 뿐

 

날 때부터 완벽한 사람 누가 있으리오

다만 어떻게 자라느냐

혼자 잘나 쑥 자란 이빨 뻐드렁니 되고

혼자 독불장군 자라난 장죽 꺾어지면

그만인 걸

 

못생겨도 가지런한 여러 이가 있어야 씹을 수 있듯

휘청 나약해도 뭉쳐야 태풍도 막아내는 대나무숲처럼

 

대나무 뿌리 깊은 사랑으로 얼크러져

못났다 잘났다 욕도 들어가며, 고쳐가며

왼쪽 어금니 아프면 오른쪽 어금니 씹어주며

더불어 살아 이빨 구실, 대나무 구실, 사람 구실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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