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심과 낙관, 열정의 화신 이창기
이미진
기사입력: 2019/07/18 [14:44]  최종편집: ⓒ 자주시보

 

이창기 추모집을 읽고 이미진 평화이음 정책국장이 본지에 글을 보내주었습니다. 글은 이창기 기자에게 쓰는 편지형식입니다. 이를 게재합니다.(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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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님 안녕하세요.

 

 

선배님과는 2014년에 처음 인사했었죠.

선배님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어느 학교 출신인지, 집은 어디인지, 지금은 어떤 일을 맡고 있는지 등등 큰 눈동자, 적극적인 말투로 제게 많은 질문을 했습니다.

제 느낌에는 처음 보는 어린 일꾼에 대한 반가움으로 여러 질문을 하며 열심히 활동하라고 격려해주고 싶은 선배의 모습이었습니다.

 

선배님의 넘치는 낙관과 신심을 따라 배우겠습니다.

선배님과 처음 인사를 나눌 때는 자유인이었지만 2015년에 첫 아이를 낳고 지금은 둘째도 어느덧 3살이 되었습니다.

제 인생이 20살에 운동을 접하기 전과 후로 크게 양분된다고 느꼈었는데, 지금은 엄마가 되기 전과 후로 또 크게 양분됩니다.

선배님의 행복이라는 시에서 꺄르르 까꿍 아이 재롱에 웃음꽃 피는 가정이 행복인가라는 구절이 있는데 아이를 낳아보니 꺄르르 까꿍 재롱을 볼 때면 정말이지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쑥쑥 커버리는 시간이 아깝기도 합니다. ‘허나 비길 수 없어라 그 행복의 품인 조국 그 조국을 위해 일하는 행복구절처럼 알토랑 같이 귀여운 내 새끼도 조국의 품에서 자라고 아이들이 어울리고 사랑하며 함께 살아갈 사람들도 모두 조국의 품에서 살아갑니다. 선배님이 시에서 얘기하시는 것처럼 조국의 품을 더 따뜻하게 더 인간답게 만드는 속에 진정한 보람도 아이들의 행복도 담보되겠지요. 그래서 20대의 저는 부당한 현실을 외면하지 말자라거나 투쟁이 올바른 것이라고 외치고 돌아다녔던 선배에서 현실에 타협하는 거짓말쟁이는 되고 싶지 않다 등의 이유로 운동의 길을 꼭 가겠다는 마음이 있었는데 아이를 낳고서는 얘들한테 주권도 없는 나라, 사대주의에 미친 정치 세력, 모든 분야에서 사람보다 돈이 최고고 남을 이기는 경쟁이 무한히 펼쳐지는 세상, 아이들을 지키지 않는 어른, 금수 같은 범죄 속에서 살게 하고 싶지 않아 빨리 조금이라도 세상을 바꾸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편한 조건 다 갖추고 하는 운동이 세상에 없고 지금 저한테 주어진 과제가 육아를 잘하면서 활동을 잘하는 것뿐인데 사실은 어떻게 더 혁신하고 기여할지가 관심사이기보다 조건과 상황을 탓하고 있던 시간이 참 많았던 것 같았습니다. 글을 쓰다 보니 많은 사람이 생사를 넘나들며 갖은 악조건에도 지키고 이어온 운동인데 아이 둘 키우며 활동하는 걸 무슨 특별한 어려움인양 생각했었나 싶습니다.

선배님도 숱한 경제적 어려움과 건강의 문제를 겪으면서도 항상 넘치는 낙관과 신심을 전파하는 사람으로 살아오셨지요. 선배님의 그 무한하고 강한 신심과 낙관은 어떻게 형성된 것일지 궁금합니다. 선배님의 글에서는 확신과 신심이 넘치는 분위기가 납니다. 아주 작은 지점도 선배님의 분석이 닿으면 승리를 앞당기는 커다란 무언가로 변하는 것 같습니다. 선배님의 신심과 낙관의 출발점에는 민족과 민중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자라는 애들한테 신심과 낙관에 넘쳐 생활하고, 활동하는 엄마의 모습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습니다.

 

사람에 대한 따뜻한 사랑으로 살아오신 선배님을 따라 배우겠습니다.

추모집에 강대석 교수님과 편지를 주고받을 때 마른 꽃잎과 풀잎을 붙였던 선배님의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나 바보처럼 살려오’, ‘사랑이라는 시에서도 만인에 대한 사랑, 베푸는 사랑의 가치에 대한 선배님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출근을 시작한 당시에는 잘 몰랐습니다. 그냥 아직 처음이니까 서서히 적응해가자 정도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반년 정도 지나고 나서 느낌이 왔는데 출근하고 두 달 정도 동안은 제 시야가 제 책상에만 있었습니다. 두 달 지나니 옆에 앉은 사람에게 궁금한 것이 많이 생기고 정도 가고 그랬고, 좀 더 지나서야 그 옆에 앉은 사람에게도 눈길이 갔습니다.

같은 공간을 쓰는 사람들에게도 관심과 정을 주는 데 수개월이 걸렸다는 것이 새삼 저를 돌아보게 합니다. 마음을 담은 편지를 써본 지는 얼마가 되었는지, 사람에 관한 생각으로 잠을 설쳐본 지도 언제인지 싶습니다. 최근 몇 년의 신기한 경험이 제가 사람에 대한 사랑에 기울이는 정성이 없는 기간에 왜 사랑이 보이지 않는가 하고 남을 탓하는 마음이 올라오는 경험이었습니다. 선배님, 만인에 대한 사랑을 품으실 때는 어떤 기분이셨습니까? 자신이 거인처럼 커지고 마음이 한없이 충만해지는 그런 기분이었을까요? 선배님의 시에서처럼 사랑을 받는 것은 즐거움이고 행복이지만 사랑을 주는 것은 존재의 의미라는 뜻이 와 닿습니다. 따뜻한 사랑에 정성을 기울일 줄 아는 일꾼이 되려고 노력하겠습니다.

 

항상 20대의 모습 그대로였던 선배님을 따라 배우겠습니다.

선배님은 부인에게 항상 스무 살 때 봤던 청년의 모습 그대로의 이창기였다는 평가를 받으셨지요. 20대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무엇일까요? 저는 스무 살에 분노했습니다. 행동하고 싶었습니다. 세상을 바꾸고 싶었습니다. 조국이라는 큰 단어를 말하는 선배들이 좋았고 정말 조국의 품 안에서 제 삶이 빛나는 것 같았습니다. 지금의 저는 운동의 길을 가고 있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조국의 존재, 조국의 의미, 만인에 대한 사랑에 근간한 활동이 아니라 나 지금 운동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에 초점이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이 정도 하면 된다고 자족적 활동이 이어질 때 고이고 썩게 되겠지요? 대중들이 노쇠한 일꾼에게는 평가를 할 테니까 대중 속에 들어가면 정체되어 있을 수 없는 것 같습니다. 평화이음 회원 속으로 좀 더 들어가서 활동하겠습니다.

추모집에 있는 주한미군 철수는 당장 이루어야 할 민족적 과제라는 글이 선명하고 시원해서 좋았습니다. 처음 운동을 시작할 때 저를 분노하게 했던 주 대상은 미국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그 분노가 익숙한 분노가 돼버리지 않았나 돌아봅니다. 20대의 마음처럼 미군이 한반도에서 저지른 만행이 가슴 밑바닥부터 피가 끓는 분노로 각인 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외국 군대의 역사가 끝나야지만 살길이 나온다는 선배님의 이야기를 잊지 않겠습니다.

 

선배님

사실 요즘 저는 재미납니다. 평화이음이 통일일세대라는 공모사업을 했습니다. 김진향 교수님, 진천규 기자님, 김련희 선생님 관련 책을 읽고 감상을 써내는 사업입니다. 초등학교 6학년부터 중학생, 고등학생까지 다양한 청소년과 대학생이 글을 냈는데 글을 읽어보면 내가 이 정도로 북에 대해 무지하고 오해를 가지고 있었다니 충격적이라는 내용이 일관되게 있습니다. 그리고 북에 대해 더 알고 싶고 하루 빨리 새로운 평화와 통일의 시대를 염원하는 내용으로 가득합니다. 통일에 대한 민족의 염원이 어떠한지 새삼 느끼게 됩니다. 북한을 있는 그대로 접하고 알게 될수록 와르르 무너져 버릴 분단의 벽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이 좋은 민족과 함께 만들어갈 새로운 한반도는 정말 멋지겠지요? 하루빨리 아이들에게 새로운 한반도를 구상하고 만드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하고 싶습니다.

민족의 힘이 높은 경지에 오른 이런 시대에 통일운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복 받은 일인가 싶습니다. 이 좋은 시절을 선배님께서 더 많이 함께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신심과 낙관 열정의 화신으로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묵묵히 조국에 기여되는 일을 해가는 일꾼으로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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