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미차] 홍콩 이미지, 평양 이미지
중국시민
기사입력: 2019/08/21 [10:28]  최종편집: ⓒ 자주시보

 

♨ 녹음기 시대에는 테이프에 들어 있는 10여 곡의 노래를 듣는 게 고작이었으나, 전자 플레이어가 발달한 이후에는 플레이어나 휴대폰에 수백 수, 수천 수를 저장하여 들을 수 있음으로 강가에서 산책하거나 산에 오를 때에 전혀 생각지 못한 노래를 듣곤 한다. 최근에 제목을 모르나 가사는 익숙한 노래를 우연히 들었다. “별들이 소곤대는 홍콩의 밤거리, 나는야 꿈을 꾸며 꽃 파는 아가씨, 이 꽃을 사가시면...” 1980년대 KBS 방송이 곧잘 틀어줬기에 중국 조선족 사회에서 비교적 일찍 퍼진 한국 노래 중의 한 곡이었다. 까맣게 잊었던 노래를 들으니 홍콩의 이미지는 어떠했느냐를 생각하게 되었다. 

 

♨ 위의 노래는 사회 밑바닥에 사는 사람을 주인공으로 삼았으나 모종 희망과 동경이 담겼다. 한국의 군사정권이 집권하면서 통제가 심하던 시절, 자유항 홍콩에서는 한국인들이 상상하기 어려운 물품들이 드나들었고 전 세계의 첨단제품, 유행 물품들을 다 접할 수 있었다. 남녀 관계에서 황홀경에 이르는 것을 홍콩에 간다, 홍콩에 보낸다고 한 표현도 단순한 한국- 홍콩 사이 거리만 아니라, 홍콩이란 고장의 생활상에 대한 동경도 숨겨지지 않았겠나 생각된다. 

 

♨ 문화산업도 홍콩이 앞섰었다. 1990년대 초반 한국에서 광고료 1억 원 돌파라는 기록을 세운 사람이 홍콩 배우 주윤발(저우룬파)이라는 것은 당시 홍콩 영화의 위상을 말해준다. 솔직히 그 시절 한국 영화는 완성도가 낮거니와 재미도 덜했고 외국영화 상영을 반대하여 영화관에 뱀을 푸는 수단에 매달릴 정도였다. 뒷날 한국 문화산업이 성장하여 국제적으로 한류가 형성됨과 때를 같이 하여 홍콩 영화는 내리막길을 걸었고 근년에는 한국인들에게 새로 알려진 홍콩 스타가 없다. ‘말죽거리 잔혹사’ 같은 영화나 드라마들에서 이소룡과 성룡의 모방 따위로 홍콩 영화요소들이 등장하긴 하지만, 이제 십 년쯤 더 지나면 주해나 설명 없이는 홍콩 영화도 홍콩 스타들도 모르는 한국인들이 많겠다. 물건이나 영화나 한국산이 뜨면 홍콩의 영향이 줄어드는 판이다. 

 

♨ 홍콩 관광이 어느 때부터인가 먹거리가 주요포인트로 변한 건 의미심장하다. 한국인들이 홍콩을 쳐다보다가 “아시아의 네 마리 작은 용” 성원들로서 평등하게 대하다가 이제 와서는 “민주국가”의 국민으로서 홍콩인들이 “민주화 실현”을 위해 분투한다고 믿는 건 정신적, 심리적, 물질적으로 홍콩을 굽어봄을 설명한다. 

 

♨ 시대의 변화와 함께 어느 나라, 어느 지역의 이미지가 변하는 건 당연하다. 올해 여름 홍콩 사태를 놓고 어느 중국 네티즌은 이렇게 말했다. 한국인들이 홍콩 사태를 물어보기에 “평양 사람들이 서울 사람보다 더 잘 산다면”이라고 반문하니 다 알아듣더라. 20년 전만 해도 홍콩인들의 수입이 대륙인들의 10배 이상이었는데, 이제 와서는 홍콩에 간 대륙인들이 싹쓸이를 한다는 비난을 받을 지경이 됐다. 우월감을 느끼던 홍콩인들이 대륙인들의 구매력, 생활품질의 향상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건 공론이다. 하지만 감정이야 어떠하든지 대륙의 굴기는 막을 수 없는 추세이고 홍콩인들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한편 1960~70년대 판잣집들이 다닥다닥하던 서울보다는 평양에서 사람들이 더 잘 살았고 이후에 또 더 잘 살 가능성도 다분하다. 그때 가서 서울 사람들이 한국인들이 평양과 평양 사람들을 어떻게 현명하게 대하느냐가 중요하다. 평양은 거대한 영화세트장이라고 믿는 한국인들이야 어떻게 생각하고 말하든지 상관없다만, 정상적인 한국인들이라면 “북한”을 굽어보던 데로부터 쳐다볼 수도 있다는 데 대해 미리 준비해두는 게 심리 건강에 이롭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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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민통 19/08/21 [19:52]
재밌군요. 잘 읽었습니다.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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