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미차] 건재가 확인된 북 노력영웅 백설희
중국시민
기사입력: 2019/10/21 [10:30]  최종편집: ⓒ 자주시보

 

♨ 2011년 초에 튀니스에서 이른바 “재스민 혁명”이 일어나고 여러 나라에 전파되면서 “아랍의 봄”으로 여러 나라 정부들이 뒤집어질 때, 서방 사람들과 서방 추종자들은 다음 “혁명”의 장소로 중국을 점찍었다. 하지만 8년이 지난 오늘날 “아랍의 봄”은 중국 학자 장웨이웨이의 예언대로 “아랍의 겨울”로 된 지 오래고, 중국 정권은 전보다도 오히려 더 강해졌다. 올해 6월에 홍콩에서 법률조례 수정을 이유로 시위가 시작되고 규모가 커질 때, 중국 대륙인들이 “진실”을 알게 되면 정부를 반대하리라 전망하는 “전문가”들이 있었고 한국 언론들만 본다면 중국의 민심이 항상 흉흉하여 정부가 민심 수습에 애쓰는 것 같지만, 4개월이 지난 오늘날 홍콩식 시위가 중국 대륙으로 확산되기는 고사하고 스페인 카탈루냐로 퍼졌다. 21일 현재 홍콩 시위대가 카탈루냐 깃발을 들고 “프리 홍콩, 프리 카날루냐”를 외치는데 카탈루냐 독립은 서방국가들이 반대하는 터라 홍콩 시위대의 언행도 서방 언론들이 전처럼 “폭정  반대, 중국 반대” 명분으로 미화할 수 없게 됐다. 단 골라서 보여주기의 능수들이라 카탈루냐 지지 내용을 지우고 보도할 수는 있겠다. 

 

♨ 한때 홍콩 시위의 평화성을 부각하던 한국 언론들이 시위의 폭력성이 늘어나니 정부와 경찰의 탄압에 분노한 시민들의 과격행위라고 명분을 쌓아준다. 그런데 웃기는 건 경찰이 폭력진압을 일삼았다는 주장이 무색하게 죽은 사람이 하나도 없다. 하여 시위대는 자살자들도 경찰 때문에 죽었다고 우기거나 경찰들에 의해 숱한 사람이 죽었다는 낭설을 고집하고 심지어 무당까지 나서서 죽은 자의 귀신을 보았다고 떠드는 판이다. 확실하게 사람을 죽였고 홍콩 시위의 시발점이 되었던 천퉁카이(陈同佳, 중국 표준어발음은 천퉁쟈)는 타이완(대만)에서 살인하고 홍콩으로 도주하였다가 법률의 속지주의 덕분에 타이완에 보내지지 않고 홍콩에서 가벼운 죄목으로 복역하다가 이제 23일 출옥하게 된다. 이 자가 타이완으로 가서 자수하겠노라고 하니 홍콩 정부는 환영하고, 타이완 당국은 자수로 칠 수 없고 받아들일 수도 없으니 홍콩에서 계속 처벌하라고 미리 밀어버린다. 타이완 당국의 기이한 처사는 내년에 이뤄질 “총통”선거 때문이다. 민진당 정부가 그 살인자에게 어떤 벌을 주든지 정적들의 공격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살인자가 타이완으로 가지 않는다면 홍콩에 머무르거나 다른 고장으로 가겠는데 외국에서 그를 환영할 리 없거니와 홍콩 시위대가 그를 영웅시할 리도 없다. 이 자가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든지 뜨거운 감자로 된다. 

 

♨ 영국에서 여러 해 동안 뜨거운 감자는 브렉시트였다. 국민투표로 결정한 다음 여러 해 지나도록 확정되지 않았고 내각이 바뀐 다음 신임 수상 죤슨이 강력추진하지만 최근에도 무산되었다. 그와 비슷한 경우로 한국에서는 바른미래당의 내홍을 들 수 있다. 당권파니 비당권파니 지겹도록 다투면서도 확실하게 분당은 하지 않는다. 조국 사태에서 조국 동생의 “위장이혼” 여부가 한동안 논란거리로 되었는데, 영국의 브렉시트나 바른미래당의 입씨름이야말로 위장이혼으로 의심하기에 충분하지 않겠는가.  

 

♨ 10월 18일 밤 제7차 세계 군인 대회가 중국 우한시에서 개막되었다. 중국의 첨단기술들을 결합하여 불가사의하다는 평가를 받은 개막식 공연이 엄청난 인기를 끌었는데, 필자는 100여 개 대표단의 입장식에 주목했다. 선수단의 규모가 크든 작든 미녀의 푯말 선도와 아나운서의 대표단 소개는 꼭 같았으나 수만 명 관중의 태도는 달랐다. 다수 국가 대표단의 입장에는 예절을 지키는 정도의 반향이 나왔는데, 파키스탄, 조선(북한), 러시아, 시리아 등 몇몇 대표단의 입장은 환호를 불러왔다. 의미심장하다. 

 

♨ 20일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위원장이 지식인들에게 생일상을 보내주었다고 보도했다. 백 살 장수자들이나 공로자들에게 생일상을 보내는 건 조선에서 김일성 시대부터 정해져서 심심찮게 보도되지만, 이번에 생일상을 받은 두 사람 중에 “여든 번째 생일을 맞이한 김일성훈장수훈자이며 로력영웅, 교수, 박사인 농업연구원 소장 백설희”가 있어서 조금 특별했다. 필자는 어린 시절 《로동신문》 1면에서 김일성 주석이 백설희를 접견하는 사진을 보았고, 그녀를 주인공으로 삼은 예술영화 《열네 번 째 겨울》을 영화관에서 보았다. 20일 보도에서는 “해방전 품팔이군의 딸로 태여난 백설희는 *** ** 김일성동지께서 나라를 찾아주신 후에야 참된 삶을 누릴 수 있었다.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한 그는 새 품종의 기름작물 연구에 청춘도 가정의 행복도 다 바치였다”라고 그녀를 소개했다. 몇 해 전에 거짓말이 들통나서 신용불량자 신세가 된 탈북자 신동혁 씨가 잘나가던 시절 한국에 거주하는 탈북자들이 앞다투어 “정치범수용소” 경력을 자랑했는데, 백설희를 정치범수용소에서 보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었다. 정치범 수용소 존재 자체가 쟁론 거리인데 그 사람이 있었다는 데가 정치범 수용소던지 일반적인 교화시설이던지 백설희가 그런 곳에 가 있었든지 없었든지를 막론하고, 백설희가 지금 조선 최고지도자의 관심을 받으면서 농업연구원 원장 직무까지 가진 공로자임은 조선중앙통신의 보도로 확인되었다. 들어가면 살아나오지 못한다는 “정치범 수용소” 신화가 또 한 번 깨진 셈이다. 백설희를 만났다고 주장하던 탈북자는 어디서 어떻게 보내는지 문득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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