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드러낸 ‘선진국’의 치부들

백남주 | 기사입력 2020/06/11 [14:13]

코로나19가 드러낸 ‘선진국’의 치부들

백남주 | 입력 : 2020/06/11 [14:13]

<평화이음>이 월간 '민족과 통일' 6월호를 발간했다.

우리사회와 한반도 정세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소개한다. (편집자 주)

 

 

코로나19가 드러낸 ‘선진국’의 치부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전 세계가 숨 가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코로나19 확산 국면은 당장의 확산 방지 대응을 넘어서 우리 사회의, 우리 인류의 미래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던지고 있다. 

 

특히 그동안 소위 ‘선진국’이라 자부해오던 국가들이 코로나19에 극도로 취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고, 그 국가들이 추구해 온 가치가 오히려 코로나19 대응 실패의 원인으로 작용하면서 코로나19 이후 사회에 대한 모색은 전 인류의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무너져 내리는 ‘미국의 가치’ 

 

5월 19일(9시) 기준 미국의 코로나19 누적 확진자수는 150만6,840명이며, 사망자는 9만309명을 기록 중이다. 전 세계 확진자(473만5,607명)의 31.8%, 사망자(31만7,323명)의 28.5%가 미국에서 나왔다. ‘세계 1등 국가’라고 자부해 오던 미국이 코로나19 대응에 가장 취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전 세계는 ‘세계 1등 국가’를 자임해 오던 미국이 코로나19 앞에 맥을 못 추는 모습을 보며 충격을 받았다. 그로인해 ‘미국의 가치가 곧 세계적 가치’라던 미국식 글로벌 스탠다드 역시 무너져 내리고 있다.  

 

첫째, 미국이 추구해온 ‘미국식 자유주의’는 공동체적 협력이 필요한 국가적 위기 앞에 맥없이 무너졌다. ‘자유’라는 겉 포장지 속에는 ‘극단적 개인주의’가 들어 있었고, 이는 ‘각자도생’의 다른 이름에 불과했다. 모든 것이 ‘각자도생’에 맡겨져 있다 보니 극심한 불평등이 뒤따르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코로나19 확산 국면에서 세계인들에게 충격을 준 장면 중 하나는 미국에서 총기를 구매하기 위해 사람들이 줄을 늘어서 있는 모습이었다. 코로나 위기가 불러올 수 있는 소요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개인적 방어무기를 구입하기 위해 줄을 선 것이다. 이 같은 국가적 위기 상황 속에서 국가(공권력)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을 넘어 주변 이웃들 역시 한 순간에 적이 될 수 있다는 심리가 표출된 것이다.  

 

‘각자도생’의 원리는 단순히 개인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프레시안’의 연재글 「김광기의 ‘인사이드 아메리카’」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부족한 인공호흡기 조달을 위해 50개 주가 서로 경쟁하는 매우 ‘기괴한 상황’이 발생했다고 한다. 사람의 생명과 직결된, 하루가 급하게 필요한 의료기기를 경쟁 입찰 방식으로 각각의 주가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즉, 돈을 많이 부른 주가 인공호흡기를 가져가는 것이다. 더군다나 경쟁입찰에는 연방정부 기관인 미국연방재난관리청(FEMA)까지 가세해 인공호흡기 가격을 올리고 있다.

 

코로나19를 통해 미국 내 ‘불평등’의 극명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 인종문제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3월 한 달 동안 14개주를 대상으로 표본 조사한 바에 따르면 미국의 인종별 인구분포는 백인 59%, 흑인 18%, 히스패닉/라틴계 14%인데, 입원한 코로나19 환자의 45%가 백인, 33%가 흑인, 8%가 라틴계로 나타났다. 미국에서 가장 큰 피해가 발생한 뉴욕주의 경우, 가장 가난한 동네의 코로나19 사망률이 가장 부유한 동네의 사망률에 비해 15배 높게 나타났다. 

 

둘째, 코로나19는 미국이 유포해 오던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파산선고를 내리고 있다. 나아가 신자유주의는 코로나19 앞에서 전 세계 인류의 생명을 위협하는 이데올로기로까지 작동하는 모습이다. 

 

많은 사람들이 미국에서 마스크, 방호복, 인공호흡기 등이 부족해 허덕이는 모습을 보며 의아해 했다. 미국이 이런 기본적인 의료장비를 생산할 수 없다니. 

 

미국은 그동안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 속에서 주력산업을 금융화하고 저임금 국가에 제조업 공장을 이전해 이윤을 획득해 왔다. 하지만 위기가 닥치자 아무것도 생산하지 못하는 국가가 되어 버렸다. 세계적으로 얽힌 생산시스템은 한 쪽에서 부품공급이 차질이 생기자 다른 쪽 공장이 문을 닫아야 하는 등 코로나19에 극도로 취약한 결과를 초래했다. 신자유주의에 기반한 국제분업이 각 국가의 안전을 보장해 주지 못한 것이다. 

 

특히 신자유주의 폐단은 미국의 보건의료 체계에서 극명히 드러났다. 열악한 미국식 의료보험 제도의 문제점은 이미 널리 알려진 바 있다. 의료행위가 돈벌이로, 거대 보험회사에 좌지우지 되는 상황에서 돈 없는 미국인들은 코로나19에 감염되어도 제대로 치료조차 받을 수 없었다. 1월 CNBC의 보도에 따르면 미국 성인의 약 70%는 저축액이 1000달러(약 121만 원) 미만이며, 45%는 긴급 상황을 대비한 자금이 전혀 없는 현황(머니투데이, 2020.4.30.)이라하니, 제대로 된 검사와 치료가 될 리 없다. 

 

나아가 미국은 병원 자체가 이미 소수만을 위해 존재해 왔다. 앞의 프레시안 연재글에 따르면 미국의 병원은 대량 환자의 발생 자체를 상정한 적이 없다고 한다. 병원을 찾을 ‘고객’은 단지 소수, 의료보험을 가진 돈 많은 이들이기 때문이다. 소수만을 위해 존재하는 병원이 대량의 의료 자재를 구비해 놓을 필요도 없다. 게다가 거주자들이 병원을 드나들기 힘들 정도로 가난한 지역은 대형병원이 존재하지 않는 곳도 수두룩하다. 

 

셋째, 그동안 미국은 자신들의 패권적 지위를 이용해 각종 사안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여타 국가들을 이끌어 왔다. 하지만 미국의 ‘국제적 리더쉽’도 실종된 지 오래다. 

 

미국은 현재 전 세계가 힘을 모아도 모자를 판에 세계보건기구(WHO)를 열심히 공격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WHO를 ‘중국의 꼭두각시’라고 비난하며, 미국의 WHO 분담금도 현재의 10분의 1 수준인 4000만 달러로 낮추겠다고 경고하고 있다. 

 

세계 40개국이 코로나19 백신 및 치료제 개발을 위해 자금(75억 유로, 약 10조551억 원)을 모으기로 했지만 미국은 여기에도 불참했다(한국정부는 5000만 달러 지원을 약속). 심지어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은 지금까지의 백신 역사에서 앞서 왔다. 우리보다 먼저 개발하는 국가가 있다면 모자를 벗어 경의를 표하겠다”며 백신개발에 힘을 모으기 보다는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먼저라는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백신개발은 곧 경제적 이익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미국은 심지어 ‘해적질’까지 자행해 전 세계적 지탄을 받고 있다. 일례로 미국 정부는 국방물자생산법(DPA)을 발동해 다국적 기업 3M이 중국 현지에서 생산한 마스크에 대한 징발을 명령했다. 이는 결국 독일 베를린시가 3M으로부터 구매한 마스크 20만 장을 미국이 태국에서 강탈하는 ‘마스크 해적질’로 번졌다. 프랑스도 중국에서 수입하려던 마스크 수백 만 장을 상하이 공항에서 3배의 가격을 제시한 미국 업자들에게 빼앗긴 바 있다. 

 

각자도생의 길을 걷는 유럽

 

유럽은 그동안 무한경쟁을 추구하는 미국 시스템과는 일정 거리를 두면서 자유와 복지를 추구하며 주목받아 왔다. 사람들은 유럽에 대해 뭔가 자유로우면서도 복지제도가 발달한 선진국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유럽 역시 미국과 상황이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의료선진국으로 알려져 왔던 영국은 심각한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에게만 코로나19 검사를 한다. 유럽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고 있는 스페인과 이탈리아는 국가 의료시스템 자체가 붕괴해 버렸다. 의료장비와 병상이 부족해 고령의 중증환자들은 치료를 포기할 정도다. ‘살 가능성이 높은 사람’만 살리는 것이냐는 세계적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복지국가의 전형적 모델 중 하나로 평가 받아온 스웨덴 역시 코로나19 대응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스웨덴은 1000명당 병상수가 유럽 꼴찌일 정도로 의료 자원이 부족한 상황이다. 

 

의료자원이 부족한 스웨덴은 한국과는 반대되는, 확산방지보다 확산속도를 늦추는 데 초점을 맞춘 ‘집단면역’ 전략을 선택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제대로 된 성과를 보고 있진 못하다. 특히 스웨덴 코로나19 사망자 대부분이 70세 이상의 노인들이다. 결국 스웨덴의 전략이 노인들을 포기한 전략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렇게 유럽의 보건의료가 추락한 것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받아들여 긴축재정으로 공공의료에 대한 정부 지출이 크게 줄어든 결과다.

 

‘유럽의 자유로움’ 역시 그 이면에는 극단적 개인주의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일례로 프랑스 정부가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모든 상점과 술집에 대해 휴업령을 내렸다. 그러자 이날 저녁 ‘마지막 밤을 즐기자’며 파리 시내 번화가들에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그리고 프랑스 시민들은 공원과 강가 곳곳에서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어울려 지냈다. 결국 프랑스 정부는 강제 외출금지령을 내리기도 했다. 

 

프랑스뿐만 아니라 독일, 스위스, 스웨덴 등 유럽 곳곳에서 봉쇄조치에 항의하는 시위들이 이어졌다. 

 

그들의 논리는 정부의 이 같은 조취가 자신들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것이었다. 공동체보다는 나의 즐거움이 우선된다는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자기중심적 개인주의라 할 수 있다. 이런 모습들은 주변에 피해를 줄까봐 마스크를 챙기고, 외출을 자제한 한국의 시민들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공동체’를 지향해온 유럽 국가들의 지향과 이상도 국가적 위기 앞에 무너져 내렸다. 

 

유럽의 쌍두마차로 불리는 프랑스와 독일은 (이후 완화되긴 했지만) 마스크와 같은 의료장비의 수출을 금지해 EU 내에 장벽을 쌓았다. 코로나19의 극심한 피해를 입은 이탈리아가 지난 3월 초 국제 사회에 지원을 요청했으나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은 응하지 않았다. 현재 유럽 각국들은 경제회복을 위해 자국산 농산물 사용을 권장하는 등 ‘자국 먼저 살리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또한 EU 27개 회원국 정상들은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30일간 외국인의 EU 입국을 막는 여행 금지 조치 도입에 합의하기도 했다. EU 회원국 간 장벽을 없앤 ‘솅겐조약’의 정신이 사실상 25년 만에 무력화된 것이란 평가가 곳곳에서 나왔다. 

 

*** 

 

이제 전 세계 인류는 코로나19 이전의 사회로 돌아갈 수 없다. 특히 그동안 전 세계를 정치, 경제적으로 주도해온 소위 ‘선진국’들이 주장해 온 가치들이 더 이상 인류의 미래가 될 수 없음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선진국’이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전 세계 인류가 손잡고 새로운 가치와 사회 시스템을 찾고, 보다 평화롭고 평등한 국제 질서를 만들어 나갈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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