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전철마저 잠든 밤』 1화

김수형 | 기사입력 2020/12/15 [13:52]

단편소설 『전철마저 잠든 밤』 1화

김수형 | 입력 : 2020/12/15 [13:52]

9월 8일부터 11월 28일까지 대진연이 벌였던 미군장갑차추돌사망사건 진상규명 투쟁이야기를 담은 단편소설입니다. 이 소설은 김수형 대진연 상임대표가 쓴 작품입니다. (편집자 주)


  

미군장갑차추돌사망사건 진상규명투쟁 단편소설

전철마저 잠든 밤 1화

글쓴이 김수형

 

  © 하인철 통신원



 빼앗긴 삶의 슬픔을 아는 사람이 있다면.

 갈취당한 일상의 적막을 아는 사람이 있다면. 

 믿었으나 배신당해야 하는 원망을 아는 사람이 있다면. 

 누구에게도 목격한 진실을 이야기할 수 없는, 그야말로 억장이 무너지는 처참함을 아는 이가 있다면. 

 남은 생의 자락을 기어이 붙잡는 설움의 쓸쓸함을 아는 사람이 있다면. 

차디찬 육신이 외로이 잠들어야 하는 허망함의 무게를 아는 사람이 있다면. 부디 한 번만 두 손을 잡아 주기를.

 

10월 30일, 오후 1시 경

 

 정말 평소 살면서 1호선 끝자락까지 찾아올 일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는 보산역. 교통비만 해도 강북구에서부터 편도로 2800원이 나오는 곳이다. 초등학교 때 사고로 터졌던 허리디스크가 재발할 기미를 보이는 상황이라, 제발 앉아서만 갈 수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 그런데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의정부 즈음 지나고 나면 북적였던 열차는 순식간에 가벼워진다. 

 

 처음에는 이 대장정을 어떻게 매일매일 치루나 싶었지만, 인간은 역시 적응의 존재여서인지, 집념의 존재여서인지 하루 외울 발언문을 지하철 좌석에 앉아 정신없이 쓰다 보면 서로가 ‘벌써 도착했냐’며 깜짝 놀라곤 하는 요즘이다. 어느새 빠른 환승은 몇 번인지뿐만 아니라 배차간격이 30분에 달하는 소요산행의 열차의 평일 배차 시간대를 다 외워버렸다. 우리 투쟁은 어느 순간부터 그야말로 일상이 되어버렸다.

 

 오늘도 1번 출구로 나서자마자 불어닥친 차디찬 시월 바람에 콧등이 아린다. 불꺼진 네온사인으로 도색된 미국풍의 거리는 변함이 없다. 처음 봤을 때부터 을씨년스럽다고 느꼈던 빛바랜 벽화들도 여전하다. 마치 기지촌 여성을 상징하려고 한듯한, 소복을 입은 여성이 다소곳이 누워있는 거대한 벽화가 이름 모를 클럽 위에 떡하니 그려져 있으니, 적어도 근현대사를 아는 이라면 차오르는 불쾌함을 감출 수 없다. 

 

 보산역 1번 출구를 지나 기자회견 장소인 미2사단 정문 앞으로 가다보면 ‘한미우호의 광장’이라는 이름의 공간이 펼쳐져 있다. 미군기지가 위치한 곳에 충분히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름이겠거니 하고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섬뜩한 사실은 광장 옆 후미진 골목으로 들어가면 미2사단 소속 미군 장교 케네스 마클에게 잔인하게 살해당한 곳, 윤금이씨가 일하던 ‘크라운 클럽’이 굳게 철문을 걸어 잠근 채로 버젓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윤금이씨가 살해당했던 주택은 공간 용도만 바뀐 채로 이 곳에 그대로 남아있다. 어디선가 불어온 얼어붙은 바람에 윤금이씨가 마지막으로 내뱉은 차가운 숨이 섞여 우리의 볼을 훑고 지나가는 것만 같다.

 

 검은 웃옷을 단체로 입은 우리를 멍하니 지켜보는 상인들의 모습도 여전하다. 상인들의 눈빛이 오늘따라 유난히 날이 서 있다. 20대 초반 대학생으로 보이는 아르바이트생이 홀로 가게를 지키고 있는 패스트푸드점은 아마 이곳에서 장사가 가장 잘되는 가게일 것이다. 밤낮없이 몰려드는 한국인, 외국인 손님들로 오죽하면 아르바이트생이 쓰러지진 않을까 걱정되는, 이곳의 유일하게 복작스런 풍경이다.

 

 보산역을 지나 미2사단으로 가는 평화로 거리에는 주한미군으로부터 공식 승인을 받았다는 문구를 서로 경쟁하듯 자랑스럽게 내걸은 부동산 업체들이 즐비하다. 흔한 미국 래퍼들을 연상시키는, 짧은 커트에 스크래치를 낸 아프리카계 흑인 사진이 대문짝하게 붙여져 있는 바버샵들은 오늘도 손님이라곤 날라 다니는 먼지뿐이다. 목적을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가게도 문을 닫은 채 수도 없이 잠들어있는 이곳, 동두천 미2사단 정문 앞. 낮에는 보통 아무도 지나다니지 않고 가뭄에 콩 나듯 자전거를 탄 주한미군들만이 인상을 쓰며 어슬렁어슬렁 거리를 배회할 뿐이다. 

 

 온갖 다양한 표정과 외형의 주한미군이 하루 보행자의 절반을 이루는 캠프 케이시 주변을 처음 방문한 사람이라면, 이곳이 과연 미국인지 한국인지 단번에 분간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 미군들로 둘러싸인 만큼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에 늦은 밤 시간대에는 항상 누군가와 동행하는 것이 좋다. 실제 외출한 미군들이 술에 취해 자신들을 제압하려는 대한민국 경찰들을 심하게 폭행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질 정도로, 야만과 폭력이 넘쳐 들끓는 거리가 바로 이곳 캠프 케이시 주변이기 때문이다. 언제 내가 그 피해자가 될지 아무도 예상할 수 없다는 점에서 항상 긴장에 휩싸여 있는 곳이기도 하다. 

 

 ‘경기의 소금강’이라고 불리는 소요산 기슭에 위치한 동두천은 예로부터 수려한 자연환경과 빼어난 산세로 유명했다고 한다. 한번 들으면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 동두천이라는 지명은 동쪽에 머리를 두고 흐르는 내(川)에서 유래됐다. 해방 이후 미군기지 주변으로 형성된 기지촌 문화가 존재한다고만 알고 있던 낯선 지역을 직접 찾아와보니, 생각보다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았다. 세월이 흐르며 궂은 바람에 다소 옅어지긴 했으나, 고구려부터 이어져 왔다는 유구한 동두천의 역사가 비석에 자랑스런 필체로 새겨져 있다. 3.1운동 당시에 동두천시장 중심으로 독립만세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는 내용은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 독립운동의 요충지이자 선조들의 피와 얼이 서려있는 깊은 역사를 가진 고장이란 설명에서는 동두천에서 오래 살아온 듯한 석공의 자부심마저 강하게 느껴진다. 비석을 지나 동두천 미2사단 캠프 케이시 정문으로 향하는 길, 유난히 거센 바람에 성조기가 펄럭펄럭 휘날리고 있다.

 

 “미군장갑차 추돌사망사건 진상을 규명하라!” 

누군가의 외침이 크게 메아리치자, 더 큰 함성들이 곧바로 따라붙는다. 면담요청서라고 적힌 A4용지가 붙어있는 서류봉투를 머리 위로 높이 든다. 이미 동두천 경찰서 경찰들에 의해 찢기고 구겨진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너덜너덜한 종이 한 장일 뿐이지만, 이 곳 안에 있는 미2사단 미군들이 제일 무서워하고 벌벌떠는 존재일 것이다. 오늘도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정문을 황급히 굳게 걸어 잠그는 경찰들은 정신이 없어 보인다. 미군기지 안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차량들이 계속 몰려 들어오자 ‘죄송하지만 저쪽 뒤편 3번 게이트로 가셔야 한다’며 양해를 구하는 경찰들의 난감한 표정이 우리 투쟁의 열기를 한껏 북돋아 주기도 한다. 은근슬쩍, 그 차량에 탑승한 미군 장교가 있기를 바라며 다시금 다 쉬어가는 목소리로 ‘진상규명, 책임자처벌’을 외쳐본다.

 

 스크럼을 짠 채 무표정으로 일관하려 애를 쓰는 경찰들의 초점은 늘상 허공을 향해 있다. 온전한 자기의 신념으로가 아닌, 누군가의 상명하달식 지시에 의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이들의 움직임은 제국주의의 폭력성을 그대로 닮아있다. 눈앞에 어떤 사건이 벌어져도 아무런 감정의 동요없이 내려진 일만 수행해야 하는 이들. 아무리 앞에 서있는 이가 목이 찢어져라 외치고 눈물을 쏟아내도, 아무것도 보지 못한 것처럼, 그저 심장이 멈춰선 기계처럼 가만히 막아서야만 하는 이들은 우리를 보며 무엇을 느낄까. 

 

 대한민국 국민이 사망한 이 사건에 대해 그들은 어떤 마음일까. 그래도 우리처럼 속상해하며 당장 목소리 내고픈 경찰들도 있지 않을까. 마음속으로는 눈물을 함께 흘리고 있지는 않을까. 아니 차라리 그저 시키니까 어쩔 수 없이 우리를 막아 나서는 것일 뿐이고 그 이상 그 이하의 사념도 없기를 바라며 우리는 계속해서 경찰들과 부딪히고 구호를 외친다.

 

 “미군장갑차 추돌사망사건, 진상을 규명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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