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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혁신해야 할 게 많습니다”.. 문예 일꾼으로 복귀한 김복기 편집국장

제4회 이창기 바보과대표 상 수상자 인터뷰

김민준 기자 | 기사입력 2022/06/24 [11:27]

“아직 혁신해야 할 게 많습니다”.. 문예 일꾼으로 복귀한 김복기 편집국장

제4회 이창기 바보과대표 상 수상자 인터뷰

김민준 기자 | 입력 : 2022/06/24 [11:27]

지난 1월 22일 열린 제4회 이창기 상 시상식에서 이창기 바보과대표 상을 받은 김복기(45) 민들레 편집국장을 만났다. 

 

김 국장은 몇 해 전부터 진보적 예술인 모임 ‘민들레’ 회원이 되었으며 지금은 민들레 소식지 편집국장을 맡고 있다. 

 

기자: 이창기 바보과대표 상을 왜 받았는지 알고 있나요?

 

김복기(아래 김): 추천사를 봤는데 제 모습보다 더 좋게 평가를 해줬더라고요. 실천이나 생활에서 사람들 많이 챙기고 사무실 청소도 하고, 단체에 무슨 요청이 오면 제가 좀 적극적으로 했다는 거죠. 그런데 다른 회원들은 다 현업에 종사하거나 자기 맡은 일이 뚜렷한데 저는 민들레 소속이긴 하지만 구체적인 역할이 뚜렷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노래를 하거나 춤을 추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하는 게 아니라서요. 그러다 보니 제가 좀 여유가 있고 그래서 그런 일들을 좀 적극적으로 할 수 있었을 뿐입니다. 

 

기자: 그래도 다른 사람에 비해 더 열심히 했던 이유가 있을 텐데요.

 

김: 제가 원래 서울주권연대 간부를 하다가 여러 고민이 있어서 몇 년 전에 그만두고 나왔습니다. 한 반년 정도 쉬기도 했고 먹고살아야 하니까 온라인 쇼핑몰 운영도 했습니다. 

 

기자: 고민이라는 게 어떤 거였죠?

 

김: 그때는 제 생각과 단체의 판단이 다른 부분이 좀 있었습니다. 뭐 단체의 노선은 큰 부분에서 옳은데 구체적인 방법론으로 들어가면 단체의 구상보다는 제 의견이 옳다고 여기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제 의견대로 안 하다가 잘 안돼서 결국 제 의견대로 한 것도 있었고요. 그래서 제가 좀 우쭐거리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거 봐라. 내 말이 맞지 않냐’ 이런 생각이죠. 이런 게 쌓이니까 계속 ‘내가 맞다’고 주장하게 되고 의견 충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더는 간부를 못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자: 그러면 다시 복귀하게 된 계기가 따로 있나요?

 

김: 제가 단체의 노선이나 정책, 방향에 이견이 있었던 건 아니었기 때문에 간부는 그만뒀어도 단체 후원이나 지원은 할 생각이 있었고 그래서 단체 사람들도 계속 만났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또 자신을 돌아보기도 하니까 결국 내가 잘못했다는 걸 느꼈습니다. 다른 사람을 존중하지 않고 나를 앞세웠던 거죠. 

 

기자: 그런데 왜 민들레로 복귀했나요?

 

김: 대학생 때 문화국 활동을 했던 경험 때문인지 민들레 제안을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한 달에 한 번만 모이면 된다고 해서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생각하고 나갔습니다. 간부가 아닌, 그냥 평범한 회원으로요. 그런데 총선이 닥치면서 일주일에 한 번씩 모이는 거예요. 선거 시기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죠. 

 

기자: 총선 끝나고 다시 월 1회로 돌아갔나요?

 

김: 아니죠. 총선 때 매주 모이니까 성과가 좋다, 계속 모이자, 시사토론모임도 있는데 하자, 지금 민들레 소식지 편집을 맡을 사람이 필요한데 맡아 달라, 이러다 보니 모임이 점점 늘어나고 결국 일주일에 한 네 번은 모이는 것 같네요. 

 

이혜진 민들레 대표는 김 국장이 민들레에 합류하던 때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처음에는 자기가 ‘모 아니면 도’라고 하는 거예요. 할 거면 잘하고, 안 할 거면 아예 안 한다, 뭐 그런 말이래요. 그러더니 처음에는 아예 아무것도 안 하겠다고 했어요. ‘나는 일꾼 안 할 거야. 나는 활동할 생각 없어’ 이랬어요. 그러더니 어느 순간 열심히 하겠다고 결심하니까 그 뒤로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자기에 대한 요구를 계속 높였습니다. 사람들 비판도 어렵지만 받아들여 혁신 노력도 하고요.”

 

김 국장은 진보통일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오래전에 구속도 되고 집행유예를 받기도 했다. 구속 경험이 있는 사람은 단순한 집회 참석도 쉽지 않다. 이 대표의 말이다. 

 

“김 국장에게는 실천 투쟁 나가는 것이 마지막 난관이었습니다. 자기가 집행유예 기간이라서 또 연행될까 봐 두렵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어느 순간 마음을 먹더니 지금은 매번 안 빠지고 집회에 참석합니다. 민들레 회원 중에 아무도 못 나가서 김 국장이 혼자 나가야 할 때도 있었는데 사람들이 미안해하니까 ‘그런 거 걱정할 나이는 지나지 않았나? 나도 혼자 갈 수 있어’라며 혼자 갔어요.” 

 

기자: 사무실에 다시 나가면서 청소를 열심히 했다고 하던데, 이유가 있나요?

 

김: 다시 활동을 시작하니까 더 잘해야 하지 않을까 고민했습니다. 또 전에는 간부였는데 이제는 평회원이거든요. 그래서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맡기는 게 없으면 그냥 사무실 청소같이 그동안 배워왔고 해왔던 것들을 조금씩 한 겁니다. 

 

사무실 청소에 대해 이 대표에게 물어보았다. 이 대표는 “사람들이 없을 때 사무실 청소를 여러 번 했어요. 화장실 청소도 하고. 그걸 우연히 누가 보고 사람들에게 알려줘서 모두 알게 되었죠. 그래서 나중에는 사무실이 깨끗해져 있으면 사람들이 ‘김복기 동지가 또 청소했나 보다’라고 자연스레 이야기할 정도였어요”라고 답했다. 

 

김 국장과 가까운 민들레 회원 전세훈 씨는 “요즘은 복기 형 때문인지 다들 조금씩 바뀌고 있어요. 우리가 다른 단체 사무실을 사용하곤 하는데 전과 달리 요즘은 우리 사무실처럼 정리·정돈하려고 노력하는 분위기가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이 대표는 사무실 청소뿐 아니라 민들레에서 일상적으로 하는 여러 사업들을 김 국장이 도맡아 한다고 하였다. 심지어 자기가 맡은 일이 아니어도 담당자가 깜빡 잊어버리고 있으면 아무 말 없이 자기가 해놓는 일이 자주 있다고 한다. 또 자기 일을 빨리 끝내고 다른 사람이 힘들어하는 게 있는지 알아보고 대신 떠맡는 경우도 있고, 민들레에 긴급히 제안된 사업이 있으면 항상 자기가 하겠다고 솔선하여 나선다고 한다. 

 

전 씨는 “민들레 대표가 미처 소화하지 못하는 부분들을 거의 복기 형이 처리합니다. 대표 보좌 역할을 하는 거죠. 다들 어려워하는 일은 거의 복기 형이 맡아서 합니다. 작년에 민들레에서 중요한 영상을 제작하기로 해서 제가 작업을 하다가 중간에 상황이 생겨서 할 수 없게 되니까 그걸 복기 형이 받아서 마무리했어요. 그 모습을 보면서 정말 헌신적이구나,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라고 하였다. 

 

기자: 소식지 만들 때도 열심히 했다던데요.

 

김: 민들레가 한 달에 한 번 소식지를 발행하는데 원래 신혜원 동지가 맡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암투병하면서 소식지 발행이 중단됐어요. 그걸 제가 맡아서 했는데 다행히 회원들이 좋은 평가를 해주셨습니다. 

 

이 대표는 “김 국장은 사람들이 소식지를 잘 안 읽으면 왜 그런지 이유를 물어보며 연구합니다. 어떻게든 회원들에게 도움이 되는 소식지를 만들어야 한다, 아무도 안 읽는 소식지가 되면 안 된다는 자세를 갖고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기자: 활동하면서 힘든 점은 없나요?

 

김: 힘들다기보다는 요즘 제 문제를 돌아보며 혁신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기자: 어떤 문제가 있나요?

 

김: 동지와 집단을 귀하게 여기고 세워주는 게 아니라 자기중심으로 생각하고 자기를 우월하게 여기는 문제입니다. 원래부터 있던 문제라서 저 자신도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최근에 사람들의 비판을 받으면서 ‘내 문제를 정말 겉핥기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었구나’ 하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좀 더 근본적인 문제로 돌아봐야 하는데 이게 참 어렵습니다. 

 

기자: 자기 문제의 근본을 찾는 게 쉬운 일이 아니죠. 

 

김: 어떤 사람은 저랑 얘기하면 무슨 간부랑 얘기하는 느낌이라는 거예요. 제가 상대를 가르치려 든 거죠. 내가 맞고 너는 틀렸다, 나는 알고 너는 모른다, 이런 생각이 제 안에 있었습니다. 또 그렇다 보니 상대의 감정을 헤아리지 못하는 일도 있고. 그러다 한 회원에게 상처를 준 일도 있었습니다. 나중에 사과했는데 정작 상대는 사과로 느껴지지 않았다고 해서 또 고민하게 됐습니다. 사과하면서도 상대를 중심에 두지 않고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사과했다는 걸 알게 됐죠. 

 

기자: 어찌 보면 주변 사람들을 위해 열심히 살았다고 바보과대표 상을 받은 건데 그런데도 사람들을 대하는 데서 여전히 부족함이 있고 이를 혁신하려 한다... 참 인상적입니다. 

 

김: 예전 같으면 그냥 그럴 수도 있지, 내가 이 정도 했으면 됐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이제는 더 나은 일꾼이 되자, 더 성숙해지자, 이렇게 주변에서도 힘을 주고 도와주니까 힘들어도 나아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회원 만남과 관련해 이 대표는 “원래는 김 국장이 워낙 회원들 만나는 걸 어려워했습니다. 이걸 이겨내겠다고 결심하더니 회원 한 사람 한 사람한테 문자 보내기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더니 회원을 만나고 나면 헤어진 후에 오늘 만나서 어땠는지, 앞으로 뭘 하면 좋겠다는 제안이나 지금 잘하고 있다는 응원, 이런 걸 문자로 보냈습니다. 여기에 감동한 회원들이 많았습니다”라고 하였다. 

 

전 씨도 “회원들 생일을 챙기거나 선물을 주는 건 기본이고 보기와 달리 사람들을 은근히 세심하게 신경 쓴다는 걸 느낍니다”라고 하였다. 

 

이 대표는 김 국장이 민들레의 한 회원을 정성들여 도와주고 있는 사연을 소개했다. 

 

민들레에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매우 힘든 시기를 보내며 모임에도 나오지 않는 회원이 한 명 있다. 김 국장이 이 회원을 만나고 와서는 “생활이 잘 안되는 것 같다. 매일 찾아가서 같이 식사를 해줘야 한다”라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다른 할 일도 많은데...’라고 생각했는데 김 국장은 다른 사람들이 힘들면 자기라도 하겠다며 종종 연락하며 자주 집을 찾아갔다고 한다. 이 대표는 김 국장이 형식적으로 도와주는 게 아니라 정말 진심으로 헌신하는 게 느껴져서 감동했다고 한다. 

 

김 국장과 함께 이 회원을 찾아다녔던 전 씨는 “원래 저랑 복기 형, 그리고 그 회원 세 명이 시사토론모임을 했는데 그 회원이 안 나와서 자꾸 모임이 깨지는 거예요. 그러면 복기 형이 직접 찾아가서 혼자라도 만나더라고요”라고 하였다. 

 

전 씨는 “한번은 복기 형이랑 그 회원 집에 찾아갔는데 집이 엉망인 거예요. 그래서 같이 청소했죠. 저는 뭐라 말을 해줘야 할지 잘 몰랐는데 복기 형이 원칙적으로 이야기를 잘 해줬어요”라고 이야기했다. 

 

전 씨는 공연예술창작터 ‘수다’가 창단될 때부터 함께한 단원이다. 전 씨는 “원래 있던 가극단에서 떨어져 나와 ‘수다’를 처음 만들었을 때 기존 가극단과 가까운 사람들은 저희 ‘수다’에 관심이 적었습니다. 공연 보러 오는 사람도 없었어요. 그런데 복기 형은 꼬박꼬박 공연을 보러 왔어요. 와서 사람들과 이야기도 나누면서 연계가 끊어지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저도 신경 쓰지 못하는 일을 복기 형이 했던 거죠”라고 하였다. 

 

기자: 나이가 이제 40대 중반인데 활동하면서 느낀 점이랄까? 그런 게 궁금합니다. 

 

김: 저는 20~30대 때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40~50대 때는 그 위치에 맞는 진보통일운동의 형태가 또 있다고 생각됩니다. 흔히 말하는 후원, 이런 얘기를 하는 게 아니라 지역사업 같은 걸 예로 들 수 있겠네요. 자기 위치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또 나이를 먹으니 뚝배기처럼 진득하게 할 수 있는 부분도 생기고 쉽게 흔들리지도 않고요. 

 

이 대표는 김 국장이 간혹 혼자서 마석 모란공원의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간다고 하였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다짐하는 과정인 듯하다. 

 

기자: 요즘 생활은 어떻게 꾸려나가나요?

 

김: 온라인 쇼핑몰은 사실 돈이 안 됩니다. 촬영 보조 같은 알바를 하면서 생활비를 마련합니다. 

 

이 대표는 대학생 후원에서도 김 국장이 모범이었다고 말했다. 생활비를 위해 알바를 해서 모은 돈 50만 원을 대학생 단체인 한국대학생진보연합(대진연)에 후원했는데 주변에서 너무 많이 하는 것 아니냐, 생활비도 부족할 텐데 괜찮냐며 말렸지만 끝내 전액 후원했다고 한다. 

 

최근 김 국장은 상근활동가 자녀를 모아 공부를 도와주는 일도 맡아서 하고 있다. 수학 보조교사 역할인데 본인도 공부한 지 오래돼서 기억이 안 난다며 열심히 수학 공부를 한다고 한다. 이 대표는 “보조교사라서 사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할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도 쉬는 시간에 보면 열심히 수학 문제를 풀고 있어요. 사명감이겠죠”라고 하였다. 

 

김 국장은 수학에 뒤처진 학생을 따로 만나서 개별 지도까지 하는 열성을 보인다. 

 

기자: 앞으로도 민들레 활동을 계속할 계획인가요?

 

김: 민들레는 정말 좋은 단체입니다. 제일 아쉬운 건 뒤풀이를 잘 안 한다는 건데, 하지만 정말 정이 넘치고 제가 도움을 많이 받습니다. 민들레 이혜진 대표는 정말 본받을 게 많은 사람입니다. 어렵고 힘든 점이 있어도 묵묵히 일하고, 대단히 원칙적이면서 또 사람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운영진 회의를 하다 보면 저랑 집행위원장이랑 이게 맞네, 저게 맞네 토론하면 이 대표는 ‘그냥 이렇게 하면 되잖아’ 이러면서 전체를 모아가는 것도 잘합니다. 또 자신이 앞장서니까 믿고 따라갈 수 있습니다. 대표뿐만 아니라 다른 회원들도 정이 많고, 유쾌합니다. 저는 함께 한다는 재미와 맛을 민들레에 와서 더욱 느끼고 있습니다. 

 

남이 보든 말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김복기 국장. 주변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면서도 마땅히 할 일을 했다고 여기는 그를 보면 또 한 명의 ‘바보 과대표’를 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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