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서)
3) 수준
이번 열병식은 형식 면에서도 높은 수준을 보여주었다는 평가가 많다.
초반에 등장한 군악대가 이리저리 움직이며 다양한 글자와 모양을 만드는 모습, 의장대가 장총을 이리저리 돌리며 부리는 묘기, 공수부대가 공중에서 대형을 바꿔가며 진행하는 낙하, 정확한 시간을 맞춰 불꽃을 내뿜으며 광장 상공을 통과하는 비행기, 병사와 무기들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줄을 맞춘 행진 등은 다른 나라에서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완벽성을 갖추고 있다.
또한 여러 각도에서 촬영한 영상을 편집하고 사전에 촬영한 병사들 훈련 모습을 적절히 삽입하는 등 영상 연출 수준도 진화하였다. 8일 밤 10시 넘어서 끝난 행사 영상을 다음 날 오후 6시에 방영했는데 단순한 중계가 아니라 한 편의 영화처럼 편집한 영상임을 감안하면 영상 편집 속도도 매우 빠른 편이다.
연합뉴스는 “수많은 불꽃놀이와 축포, 할리우드식 연출을 가미한 식전 행사는 그 어느 때보다 화려했다”라면서 “붉은 석양을 배경으로 항공육전병들이 등장하는 장면은 영화 ‘탑건’”을 연상케 한다고 하였다. (「北 야간열병식 할리우드식 연출로 볼거리…키워드는 ‘백두혈통’」, 2023.2.9.) KBS 뉴스도 10일 자 보도에서 “역동적인 편집과 화면 분할로 마치 할리우드 영화를 연상케 했다”라고 하였다.
할리우드 영화는 한국에서 최고의 영화로 꼽힌다. 따라서 할리우드 영화 같다는 말은 영화나 영상에 관한 최고의 찬사라 할 수 있다. 북한 열병식과 할리우드 영화를 비교하자면 할리우드 영화는 컴퓨터 그래픽스(CG)가 잔뜩 들어가지만 북한 열병식은 그런 것 없이 사람이 직접 출연해 모든 것을 다 한다는 점에서 더 우월하다고 할 수 있다.
3. 특징
1) ‘존경하는 자제분’
북한 언론은 전날 기념연회에 이어 열병식에도 ‘존경하는 자제분’이 참석했다고 보도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행사장에 도착해 사열할 때 중간부터 자제의 손을 잡고 함께 걸었으며, 주석단에 입장할 때도 자제와 함께 걸어갔다. 자제는 주석단 뒤에 마련된 귀빈석에 리설주 여사, 당 조직비서인 조용원, 당 비서인 리일환·김재룡·전현철과 함께 앉았다.
또 열병 행진 선두에 선 명예기병 종대가 지나갈 때 방송 해설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백두산 등정을 할 때 탔던 말이 선두에 섰고 자제가 제일 사랑하는 ‘충마’가 그 뒤를 따랐다고 한다.
열병식 행진을 시작하기 전 전체 군인들은 ‘김정은 결사옹위 / 백두혈통 결사보위 / 조국 통일 / 만세’라고 구호를 외쳤다. 또 열병 종대가 주석단 앞을 지날 때마다 반복해서 이 구호를 외쳤다. 여기서 ‘백두혈통 결사보위’는 자제를 목숨 걸고 지키겠다는 뜻이다. 이를 통해 자제가 북한 최고 수뇌부의 핵심 일원임이 입증되었다. 전날 기념연회 사진의 구도를 보아도 자제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리설주 여사 사이에 앉아 중심에 자리 잡았으며 그 뒤에 인민군 지휘 성원들이 서서 ‘백두혈통 결사보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인 정성장 박사는 1월 11일 인터넷 신문 ‘피렌체의 식탁’에 실린 자신의 칼럼을 통해 “북한의 후계자론에 의하면 후계자의 조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수령에 대한 충실성’과 자질”이라고 하였다. 또 정 박사는 2월 13일 BBC 코리아 인터뷰에서 “아들이 아닌 ‘딸’이라는 점에만 주목해 그 자질을 의도적으로 무시해서는 안 된다”라고 하기도 하였다.
정 박사의 말처럼 북한에서 최고 수뇌부의 핵심 일원으로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징표가 ‘수령에 대한 충실성’과 ‘자질’이라면 이 기준으로 모든 것을 판단해야 한다. 아마 ‘수령에 대한 충실성’은 외부에 드러나지 않더라도 북한에서 충분히 판단하였을 것이다.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자질’이다. 여기에 초점을 맞춰서 연구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자제가 처음 언론에 공개된 지난해 11월 18일 화성포-17형 발사 장면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당시 공개된 사진들 가운데는 매우 인상적인 사진도 있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다른 일꾼들이 모두 화성포-17형이 올라가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데 자제만 홀로 반대쪽을 보고 있는 사진이다. 오른손에는 초시계로 짐작되는 장치를 들고 진지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주시하고 있다. 아마도 화성포-17형의 궤적을 추적하는 화면이 아니었을까 싶다. 자제는 화성포-17형 발사와 관련한 상황을 모두 장악하고 있는 듯 매우 침착하고 시종 진지하였다. 또 지금까지 자제가 북한 언론에 공개된 것이 다섯 번인데 모두 군사와 관련 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연이은 자제의 등장에 세계는 또다시 술렁였다. 국내외 언론은 앞다투어 관련 보도를 하였으며 열병식 보도도 자제의 모습에 초점을 맞췄다. 자제가 아직 구체적으로 보여준 것은 없지만 등장만으로 이미 세계에 파문을 던진 셈이다.
언론에 등장한 자제는 북한 최고 수뇌부의 핵심 일원으로서 기품을 보였다. 만약 빈틈이 있었다면 북한 비방에 능숙한 언론이 가만있지 않았을 것이다.
북한 붕괴를 기다리는 한미 당국은 좌절감을 맛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들은 전쟁 위협도 먹히지 않고, 경제 봉쇄도 먹히지 않는 가운데 최고 수뇌부에 ‘급변사태’가 일어날지 모른다는 것에 그나마 희망을 걸고 있었다. 그런데 최고 수뇌부의 핵심 일원으로 자제가 등장하면서 그 희망도 깨졌으니 아마 망연자실하지 않았을까 싶다.
2) 대량으로 등장한 화성포-17형
이번 열병식에 예상대로 화성포-17형이 등장했다. 그런데 한두 개가 아니라 10개가 넘게 나타났다. 영상에 전체가 나오지 않아 정확하지는 않지만 전문가들은 대체로 10개에서 최대 12개까지로 추산한다. 영상에서 가장 오랜 시간 비춘 무기가 바로 화성포-17형이었다.
열병식에 등장한 게 10개라면 그보다 더 많은 수가 창고에 보관되어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대량생산을 시작했다면 전체 화성포-17형이 20개일지 100개일지 아니면 더 많을지 외부에서는 알 수가 없다.
북한이 미사일을 이렇게 많이 공개한 의도가 있을 것이다. 군사 전문가인 김동엽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그만큼 완성도가 높고 이제 양산되어 실전배치에 이르렀다는 것이고 최소 10개 이상의 핵탄두를 지금이라도 미국 본토를 향해 쏠 수 있다는 메시지”로 추정하였다.
지난해 12월 20일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부부장이 대륙간 탄도미사일 실제 각도 발사를 “곧 해보면 될 일”이라고 하여 조만간 화성포-17형 실제 각도 발사를 할 것처럼 이야기했다. 그렇게 되면 미사일이 미국 본토까지 날아간다. 물론 미국 본토를 맞추면 곧바로 전면전이 되므로 본토 주변 공해상에 떨어뜨릴 것이다.
한미 공군은 2월 들어 두 차례 서해 상공에서 전략폭격기를 동원한 연합훈련을 실시했다. 서해라면 북한에서 500킬로미터 안쪽일 것이다. 한미는 이 훈련이 북한을 겨냥한 훈련이라고 밝혔다. 아직 북한은 이에 대응한 공개적인 군사 행동을 하지 않았다. 만약 북한이 대응 행동을 한다면 ‘비례 원칙’에 따라 북한도 미국 본토에서 500킬로미터 안쪽의 공해상에서 어떤 군사행동을 해야 한다. 그런데 북한에는 미국 본토 인근까지 날아갈 장거리 군용기가 없다. 군함이 가기에는 너무 긴 시간이 걸린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화성포-17형을 정상 각도로 발사해 본토에서 500킬로미터 안쪽의 태평양 혹은 대서양 공해상에 떨어뜨리는 것이다.
북한이 10개의 화성포-17형을 공개한 만큼 한미가 연합훈련을 할 때마다 한 발씩 미국을 향해 화성포-17형을 발사한다면 최소 10번은 쏠 수 있다. 물론 미사일을 계속 생산할 것이므로 이후에도 더 날아갈 수 있다. 그리고 그때마다 미국은 실제 공격인지 아닌지 알 수 없어 본토 전역에 비상사태를 선포해야 할 것이다. 그것을 어떻게 감당할지는 미국의 몫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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