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의 미 의회 영어 연설이 화제다.
한 편에선 도를 넘는 고무찬양이 이어지고 있고, 한쪽에선 그 연설로 인해 국민적 자존감이 더 훼손됐다는 평가다.
한국 대통령이 방미 중 공식 연설을 영어로 한 것이 처음 있는 일도 아니고, 영어 사용이 더 이상 특별한 능력이 아닌 것이 된 시절에 영어연설이라는 형식을 두고 일부에서 도를 넘는 찬양을 이어가는 것은 의아한 일이다.
한일정상회담 직후 회담이 ‘5점 만점에 5점’이라며 설레발을 치던 태영호 의원의 경우 윤석열 대통령의 영어 실력이 ‘토익으로 치면 960점대’에 이를 것이라며 ‘특히 억양과 필요한 부분에서 강약 조절 등 기술적 측면은 만점에 가까웠다’라고 극찬했다.
워낙 국익에 부합하는 성과가 없는 외교였다는 가혹한 평가가 잇따르는 상황 때문에 이런 낯 뜨거운 찬양을 하는 것이라 이해했는데, 최근 뉴스를 보니 다음 총선 공천을 염두에 둔 충성경쟁의 일환이기도 한 모양이다. 충성경쟁을 하려고 해도 이렇게 소재 자체가 경박하다.
그나마도 대중의 윤석열 연설에 대한 평가는 완전히 다르다.
우선은 ‘왜 꼭 영어로 하는가?’이다.
모국어가 없다거나, 동시통역이 없다거나, 연설원문과 번역이 공유되지 않았다면 모를까, 소통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뿐 아니라 더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는 언어를 두고 굳이 이국의 말을 쓰느라 사서 고생할 필요가 있냐는 것이다.
일부의 귀에는 그의 영어가 유창하게 들렸을지 모르나, 영어가 일상어인 사람들이 듣기에는 지나치게 느려서 지루하고 시간 낭비로 느껴지기 십상이다.
국민들은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윤석열이 두문불출한 이유가 국익을 위한 정책 학습 때문이 아니라, 저 연설과 만찬장에서 부를 노래 연습 때문이었다는 생각에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그거야말로 아무 실익도 없는 시간 낭비, 혈세 낭비이기 때문이다.
윤석열의 연설이 원어민답게 유창했다고 해도 혹독한 평가는 달라지지 않는다. 연설의 중요성은 내용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도자의 덕목으로 능숙한 외국어 능력을 꼽지 않는다. 외교 관료에게 필요한 능력일 수는 있으나, 한 나라의 대통령에게 반드시 필요한 능력은 아니다.
연설은, 영어든, 한국어이든, 수어든, 심지어 침묵 속 공감에 이르기까지, 가장 중요한 것은 말의 국적이 아니라 바로 ‘중심 주제 - 메시지’이다.
이번 윤석열 대통령의 연설은 대부분이 ‘미국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그 은혜가 얼마나 하해와 같은지’를 반복해서 역설한 것이다. 전 세계 소위 친미 국가에서 ‘우리에게 미국은 무엇인가?’라는 회의적 질문이 늘어가고 이른바 ‘탈미’ 행렬이 잇따르는 분위기를 의식했음인지, 미국의 한 언론인이 표현했듯, ‘친미 국가’로 남아야 하는 이유를 강변하기 위해 연사로 동원된 ‘꼭두각시’ 같았다.
대부분을 미국 찬양에 할애하고 남은 부분은 통일의 대상인 동포사회와 미국의 경쟁 국가를 비하하는 것에 썼다.
우리 국민이 현재 가장 우려하는 안보 위기와 민생경제 위기는 연설을 통해 더 극대화되었다. 말로 천 냥 빚을 갚는다고 했는데, 연설 몇 마디로 실로 헤아릴 수 없는 위기의 복판으로 온 국민을 밀어 넣고, 주변국을 우려와 분노 속에 밀어 넣은 것이다.
윤석열이 더 유창한 영어 연설을 했다거나, 한국어로 당당하게 연설했더라도, 그의 연설이 역사상 최악으로 비굴한 연설, 듣는 국민으로 하여금 비참한 생각이 들게 한 연설로 남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내용적으로 유해한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순종하는 수하로 소임을 다하면서도 나름 화려한 화보를 내놓고 싶었던 윤석열과 그 일행은 문화사업자나 박물관 등에서 나름의 연출을 했지만, 연설이 시대착오적이었던 만큼이나 최근의 경향에서 벗어나 있었다.
대중은 어떤 것에 환호하는가?
‘미나리’라는 영화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윤여정 배우에게 보내는 세계인의 박수를 보자. 영화 ‘미나리’가 한국인 이주자가 아니면 이해할 수 있을까 싶었던 감정선을 담았다는 것도, 배우 윤여정 씨의 담담하고 당당한 인터뷰도 모두 화제가 되었고 ‘멋지다’라는 찬사를 받았다. 특히 기자들이 “브래드 피트를 만났느냐? 그의 냄새가 어땠는가?”라는 질문을 하자 “나는 개가 아니다”라고 답한 것이나 “브래드 피트가 너무 존경한다고도 했는데, 나는 미국 사람 말은 안 믿는다”라고 웃으며 대답하는 모습은 그간 어떤 정치인들에게서도 찾아보지 못한 여유를 느끼게 했다.
최근 미국 ‘스타워즈’ 시리즈에 합류한 배우 이정재 씨의 인터뷰도 시선을 끌었다. 그는 여유 있는 태도로 인터뷰를 이어갔다. 한국어 답변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고, ‘스타워즈’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모국의 팬 모두를 만족시키는 답변을 내놓았다.
“내 모국어는 영어가 아니다. ‘애콜라이트’가 스타워즈 시리즈가 아니었다면 거절했을 것이다. 그러나 ‘스타워즈’를 누가 거절할 수 있겠나.”
한미정상회담과 비슷한 시기에 미국 최대 음악 축제에 초청돼 공연한 ‘블랙핑크’의 공연 면면도 화제가 되고 있다. 블랙핑크는 이 공연에서 한옥 등 우리의 전통 문양을 활용한 무대 배경, 자개로 장식한 한복 의상, 부채춤 동작을 활용한 퍼포먼스 등을 통해 나름의 방식으로 정체성을 각인시켰다. 특히 무대 마지막 인사 때, 한국어 인사를 한 것이 현지의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고, 한국의 팬들에게는 자긍심을 남겼다는 평가다.
문화영역에서 보여지는 ‘자기 문화에 대한 자긍심 위에 타문화를 존중하는’ 태도는 비단 문화영역뿐 아니라 정치, 경제, 군사 등 모든 분야에서 우리가 견지해야 할 태도이자, 상대방에게 요구해야 하는 태도이다.
이런 경향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일방적이고 교조적인 태도, 특히 사대매국적 정책과 주장을 강변한다면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없을 뿐 아니라, 그것을 보는 미국인들에게도 업신여김을 받게 마련이다.
미 의회 연설의 거듭된 기립박수나 만찬장의 열창에 환호하는 미국인들의 태도에서 윤석열에 대한 진심 어린 존경과 감사를 읽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누구를 기쁘게 해야 하는지’, ‘누가 좋아할 일을 해야 하는지’를 모르는 정치인에게 돌아올 것은 세계적인 경멸과 조롱뿐이다. 세계적 차원에서 경멸받는 지도자, 제 국민 알기를 우습게 알고 미국이나 일본의 환심을 사려고 환장한 지도자, 탐욕에 눈이 먼 지도자를 우리 국민들은 반드시 심판해 왔다는 것을 미국도 윤석열도 명심하고 블랙코미디 같던 만찬장의 여운에서 깨어나 현실을 직시하기를 바란다. <저작권자 ⓒ 자주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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