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8일(현지 시각) 미국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의에서 세 나라 정상은 경제 분야에서도 합의를 도출했다.
그 핵심 내용은 ‘공급망 연대 구축’과 ‘미래 핵심 기술 협력’으로 미국이 주도하는 중국과의 탈동조화 전략의 확장판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동안 미국은 대중국 포위망 형성에 공을 들였고, 윤석열 정권은 이에 적극 호응해 왔다는 점에서 내용상 별다른 것은 없지만 한·미·일 3자 간 조기 경보시스템 구축 등 실천적 과제에 대해 합의하며 경제동맹을 더욱 진척시켰다.
1. 국가별로 서로 다른 대중국 전선 편입의 후과
한·미·일 3국이 공급망과 첨단기술 분야에서 밀착 행보를 보이면서 중국과의 갈등은 더욱 격화될 전망이다.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계열의 글로벌타임스는 8월 21일 논평에서 “한일이 미국의 대중국 봉쇄용 견인차가 돼 더 강하게 결속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발신함에 따라 지역 내 경제·무역 협력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밖에 없게 됐다”라고 주장했다.
실제 중국은 최근 전력반도체 주요 광물인 갈륨과 발광다이오드(LED)에 쓰이는 게르마늄에 대한 수출을 제한하는 조치를 취했다. 서울신문 보도에 따르면, 한국은 갈륨 수입 물량의 75%, 게르마늄 수입액의 54%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중국이 광물 수출 규제를 확대하거나 다른 제재를 내놓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중국과의 갈등으로 인한 경제적 충격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대중 교역 비중이 세 나라 중 가장 큰 한국이 제일 심각할 것이란 점이다. 중국 세관당국(해관총서) 자료를 보면, 올 상반기 중국 수입이 지난해보다 6.7% 감소했는데, 한국의 대중 수출 감소율은 ‘주요 국가·지역’ 23곳 중 가장 높은 24.9%였다. 미국의 상반기 대중 수출 감소율은 5.1%에 불과했다. 미국은 대중국 압박을 지속하면서도 큰 타격을 입지 않은 반면 한국은 큰 손실을 보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 역시 한국과는 처지가 다르다. 한국무역협회는 8월 23일 「주요국의 공급망 재편 전략과 중국의 대응」 보고서에서 현재 미국 중심 공급망 재편의 핵심은 반도체 부분인데, 미국은 지정학적 리스크를 고려해 대만과 한국에 집중된 반도체 제조시설을 분산하고자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그 대안으로 일본을 선택해 협력을 확대하고 있으며, 일본은 반도체 제조 공급망 재편을 반도체 산업 부흥을 위한 기회로 삼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렇게 본다면 그동안 반도체 생산과 공급에서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던 한국은 중국으로의 투자 및 판매가 막히면서 큰 피해가 예상되는 반면 미국과 일본은 반사이익을 기대할 수 있다.
반도체와 더불어 공급망 재편의 핵심 부분 중 하나인 배터리의 경우, 한국 기업들은 리튬·니켈·코발트·흑연 등 리튬이온 배터리 제조에 필수적인 핵심 광물에 대한 중국 의존도가 상당히 높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한국은 배터리 제조에 필요한 산화리튬·수산화리튬(81.2%), 산화코발트·수산화코발트(83.3%), 황산코발트·황산망간(77.6%)의 중국 의존도가 경쟁국보다 높은 상황이다.
2. ‘자국 우선주의’로 동맹국 약탈하는 미국
물론 대중 무역에서 본 손해를 대미 수출로 메꿀 수 있다면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최근 수출증감률을 보면 대중 수출이 지속해서 감소하는 동안 대미 수출 역시 반짝 급등하다가 뒷걸음질 치고 있다. 최근에는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 중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자국 중심주의 정책이라고 할 수 있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법이 시행된 지 1년이 지났다.
미국 정부는 IRA에 따라 북미 지역에서 최종 조립된 차량에만 세액공제 형태의 보조금을 지급한다. 현재 미국 내 전기차 생산 공장이 없는 현대기아차는 보조금을 받을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또한 IRA는 배터리 핵심 광물을 중국·러시아·이란·북한 등과 관련된 ‘해외우려기관(FEOC)’에서 조달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시행 1년이 되도록 미 정부가 구체적인 FEOC 지침을 내놓지 않고 있어 국내 업체들의 불확실성이 극도로 높아진 상태다.
중국과의 관계를 일순간에 단절하기란 불가능한 국내 기업들은 구체적으로 중국의 어떤 기업과 거래가 가능한지, 어느 정도 수준에서 거래를 할 수 있는지를 확인해야 하는데 이를 정확히 알 수 없는 것이다. 일례로 LG화학은 중국 화유코발트와 전북 새만금에 전구체 공장을 짓기로 했는데, 이런 사업이 한순간에 뒤집힐 수 있다.
반도체법 역시 마찬가지다. 미국 정부는 자국에 반도체 공장건설을 압박하면서 반도체 투자 보조금을 지급 조건으로 반도체 원재료와 수율(생산품 중 합격품의 비율), 가격 정보, 인건비, 연구개발비용 등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통상 수율은 반도체 제조 분야에서 영업 기밀로 분류된다. 제공된 기업의 극비 경영정보가 인텔과 마이크론 등 미국 내 경쟁사에 흘러 들어갈 우려도 크다.
한편 미국은 동맹국으로부터 막대한 투자를 유치하고 있다. 이는 반대로 국내 자본이 유출된다는 것이다. 특히 IRA와 반도체법이 시행된 후 1년간 기업들의 대규모 대미 투자 계획을 발표한 건수가 가장 많은 나라가 한국으로 조사되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작년 8월 이후 현재까지 발표된 외국기업의 대미 투자 계획 중 1억 달러(약 1,340억 원) 이상 규모를 집계한 결과, 한국 기업이 내놓은 프로젝트가 20건으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국내 기업들은 미국의 제재를 피해가기 위해 막대한 로비자금도 쏟아붓고 있기도 하다. 미국의 비영리 정치자금 추적 단체 ‘오픈시크릿’의 미국 내 로비 자금 지출 내역을 분석한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삼성(삼성전자 미국 법인, 삼성전자 반도체, 삼성SDI 미국 법인)의 올 2분기 로비 지출 총액은 157만 5,000달러로 1분기(167만 5,000달러)에 이어 2개 분기 연속 150만 달러를 넘어섰다. 상반기에 지출한 로비 자금은 총 325만 달러로 지난해 상반기 259만 달러보다 25.5%나 증가하며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런 추세는 SK하이닉스나 현대차도 마찬가지다.
3. 자동차는 잘 나간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갈 부분은 자동차 산업인데, 미국 IRA에 적절히 대응한 사례로 현대자동차 사례가 거론되곤 한다.
IRA 시행 1년이 지났지만 현대차·기아의 전기차 대미 판매량은 증가 추세다. 1~7월 현대차·기아의 미국 전기차 판매량은 전년 동기보다 23.7% 증가한 4만 8,842대를 기록했다. 지난해 전체 판매량의 84%를 7개월 만에 채운 것이다.
미국 정부는 IRA에 따라 북미 지역에서 최종 조립된 차량에만 보조금을 지급하는데, 법인을 상대로 판매하는 상업용 차량에 한해 예외 조항을 적용했다. 이에 따라 모든 전기차를 한국에서 생산하는 현대차는 지난해 12월부터 상업용 차량 비중을 확대하며 대응해 왔다. 당시 약 5%에 불과했지만 현재는 상업용 차량 비중이 30%대로 증가했다.
하지만 상업용 차량 판매를 늘리면 수익성이 떨어지는 것이 문제다. 상업용 차량은 렌터카·카셰어링(공유차) 등으로 법인에 대량 판매하는 형태를 취하는데, 할인이 많이 적용돼 일반 소비자 판매보다 수익성이 좋지 않다.
현대차그룹은 이전부터 수익성 회복을 위해 미국에서 상업용 차량 판매량을 줄여왔다. 2016년에는 그 비중이 26%였지만 2021년 6%, 2022년에는 2.2%로 감소한 상태였다.
결국 수익성 하락을 감수하며 차량을 판매하며 버티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자동차 산업이 겉으로는 선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 손실을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4. 대중국 포위망 동참 압박하며 뒤로는 실속 챙기는 미국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윤석열 정부가 한·미·일 동맹만을 외치며 태평양 건너편만을 바라보는 사이 미국과 일본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움직일 것이란 점이다.
이번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부 장관의 중국 방문을 앞두고 미 상무부는 중국 기업 및 단체 27곳에 대해 잠정적 수출통제 대상 명단(미검증 명단 : Unverified list·수출통제 우려 대상)’에서 제외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렇게 미국은 자국의 상황에 따라 중국과의 관계를 재설정하려는 시도를 계속 해 나갈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우고 있는 미국이 한·미·일 동맹을 강화한다고 해서 한국의 입장을 고려해 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실제 한국 기업들은 미국의 강압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정작 미국 기업들은 본인들의 실익을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 최대 반도체 기업 인텔은 4월 중국 하이난에 ‘집적회로 사무소’를 개소하는 등 중국 사업을 확대해 가고 있다.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 역시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가 수차례 중국을 방문해 고위 인사를 만나며 중국 사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 스타벅스 역시 중국에 2025년까지 9,000개의 매장을 열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미국이 한편으로는 한·미·일 동맹이라는 이름으로 자국에 투자를 강요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과의 협상을 이어나가는 사이 한·미·일 동맹의 틀에만 갇혀 있다면 한국은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감내해야 할 것이다. 이는 현재와 같은 국제질서 재편기에 한국 경제를 파국으로 내모는 길이다. <저작권자 ⓒ 자주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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