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북 정책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상원 외교위원회가 지난 10월 4일, ‘한반도 안보’를 주제로 당파를 초월한 청문회를 개최했다. 의원 외에도 외부에서 초청된 전문가들 증언도 있었다.
밋 롬니 의원(공화당)은 “북한 문제와 관련해 일관된 전략이나 정책이 없었다”라면서 미국이 한 일은 효과가 없었다고 실토했다. 또 그는 한국의 독자 핵무장을 꺼내 들어 문제 해결보다 문제를 만드는 데 더 관심을 가진 듯했다.
밴 홀런 의원(민주당)은 “한반도의 비핵화는 매우 가치 있는 목표지만 달성할 수 없었다”라고 하면서 현실적 대북 전략 수립을 촉구했지만,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지 않았다.
브라이언 샤츠 의원(민주당)은 “북한의 무기 프로그램은 제약도 없이 계속 향상되고 있다”라면서 완전한 비핵화는 실현 불가능한 것 같다고 말했다. 샤츠 의원도 역시 대안을 제시하지 않았다.
극우보수 호전광으로 잘 알려진 우리 동포 빅터 차 전략국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날아가는 북한 미사일 선제 타격과 전술핵무기의 재배치를 주장했다. 그는 싸움을 붙이지 못해 환장하는 것 같았다. 차 씨가 소속된 연구소는 군산복합체 이익을 대변하는 미 최대 보수우익 연구소로 알려져 있다. 그의 호전적 발언은 태극기, 성조기, 욱일기를 휘날리며 서울 장안을 공포에 떨게 하는 극우보수 패거리들과 다를 게 하나도 없다.
‘한반도 안보’라는 청문회 주제 자체가 벌써 섬찟하고 불길한 냄새가 짙다. 세계 도처에 긴장, 위기, 전쟁을 조장해 떼돈을 버는 군산복합체(죽음의 상인들)의 기부금에 보답하려는 듯한 아첨 행사 같아서 입맛이 매우 쓰다. 미 상원 외교위원회가 겉으로는 한반도 평화에 마치 큰 관심이나 있는 듯이 예쁜 비단 보자기로 쌌지만, 그 보따리 속에는 공격 자세를 취하고 있는 독사가 숨어있는 꼴과 흡사하다고 하면 맞을 것 같다. 이들은 입을 모아 미 대북 정책 실패를 자인하면서도 바람직한 대안 제시는 없었다. 평화의 목소리는 아예 들리질 않았고 강력한 억제력에 손을 들어주려는 듯했다.
이들은 결과적으로 현 미국의 대북 정책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는 쪽으로 기울어진 것 같았다. 하나 마나 한 소리만 난무했다. 의원들은 북핵에 대한 오해, 즉 북맹이라는 데서 출발했기 때문에 올바른 대응책을 기대할 수 없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한미의 선전 선동에 묻히고 가려진 진짜 진실을 밝혀내고 알리는 게 절실하다고 생각된다. 주제에서 좀 빗나간 듯하지만, 북핵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돕는다는 취지에서 짧게라도 설명하려고 한다.
북핵이 불거진 배경은?
한 마디로 대북 적대 정책의 산물이 북핵이고, 이는 북한의 생존 수단이라고 봐야 맞다. 따라서 북핵 해결 방도로서 ‘하노이 북미정상회담’(2018.2.28.) 이전에는 적대 정책 폐기가 해답이었다. 그러나 회담 결렬 이후에 사정이 달라졌다. 이제는 세계 핵군축을 통한 핵 없는 세계 평화로 들어서는 길이 유일한 해결책이 됐다.
누가 왜 핵협상을 깼나?
매번 미국이 깨버렸다. ‘분단’의 혜택을 최고로 누리고 있는 미국은 핵 타결이 한반도 통일에 결정적 기여를 한다고 보기 때문에 이를 결사 저지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미군 철수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면서 ‘종전선언’ 소리만 들어도 기절하거나 경기를 일으킨다. 한반도의 분단, 긴장, 위기는 무기 장사꾼들의 기름진 배를 채워주는 이상적 조건인 것이다. 또한, 일본의 재무장, 삼각군사동맹 구축,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계 편입, 특히 북·중·러를 겨냥한 첨단무기 한반도 배치 합리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미국은 왜 북한이 핵폐기도, 보유도 못 하게 들들 볶을까?
대북 적대 정책은 해방 이후 지금까지 75년이나 계속되고 있다. 북핵이 없을 때도 미국의 적대 정책은 계속됐다. 따라서 북핵 때문에 적대 정책이 불가피하다는 건 새빨간 거짓이다. 북핵 타결 마지막 순간에 미국은 예외 없이 깨버리곤 헸다. 결국 북한을 악마화하고 불량국가로 취급하는 미국은 핵폐기도 핵보유도 해선 안 된다고 그저 못살게 들들 볶아서 재미를 봐도 된다는 못된 버릇이 있다. 북핵 시설이 80% 이상 집결한 영변 핵시설 영구 불능화 제안도 트럼프는 하노이 회담을 엎어버리고 쫓기듯이 귀국길에 올랐다.
비핵화를 먼저 해야 한다면서 남·북·미 실무진에 의해 완벽하게 준비된 공동선언문을 걷어찬 트럼프의 작태는 약속 위반일 뿐 아니라 손들고 항복하라는 도적놈 행세를 한 것이다. 트럼프는 북한을 ‘악의 축’으로 보고 모욕, 멸시, 저주해도 된다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그러고도 전혀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게 트럼프다. 지금 미국의 법망에 걸려 생사의 기로에 놓인 처량한 신세가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절로 난다.
미국이 정말 핵폐기를 원할까?
이것이 가장 궁금한 핵심 사항이다. 미국은 해결 능력이 있고 해결할 방도를 잘 알고 있다. 맘만 먹으면 언제고 타결할 수가 있다. 하나 분명한 것은 미국이 싫어서 약속을 깨버리곤 했던 것이다. 밖에서는 미국이 북핵 폐기를 외쳐대지만, 실제론 정반대다. 미국은 북핵을 한없이 즐기고 있다. 북핵을 빙자해 온갖 재미를 보는 데에 정신이 얼마나 팔렸으면 북핵 개발 성공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북한 주제에 핵개발까지는 아직 요원하다며 개무시하고 깔보고 있었다.
웬걸, 2017년 말 화성포-15형 대륙간 탄도미사일 발사에 성공하고 김정은 위원장이 ‘핵무력 완성, 힘의 균형’ 선언을 했다. 미국은 기절하고 까무러쳤다. 푸틴 대통령은 “북한이 이겼다! 게임은 끝났다!(N. Korea Won, Game is Over!)”라고 극찬했다. 혼쭐난 미국은 그제야 부리나케 평양에 특사를 급파하고 대화를 구걸했다.
그럼 어떤 모양으로 끝날까?
악마화된 북한의 악역이 미국의 대외 정책과 안보에 절대로 필요하기 때문에 핵을 가진 북한이 미국에 더 유리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은 핵 없는 북한은 별 이용 가치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이제는 세상이 많이 변해 미국 주도의 일극 체계는 사라지고 다극 체계의 시대가 도래했다. 세계 여론은 북핵에 대한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한다. 세계 도처에서뿐 아니라 미국 내부에서도 나오기 시작하고 있다.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을 걷어찬 순간에 북핵 폐기는 영원히 물 건너가 버렸다. 북한의 헌법에도 핵보유, 핵개발이 명시돼 있다.
최선희 외무상은 “미국이 존재하는 한 우리의 핵보유는 숙명”이라고 했다. 더는 미국에 농락당하지 않겠다는 비장한 각오와 결의가 엿보인다. 북한의 위상, 북한의 전략적 가치, 북한의 몸값이 지금 하늘을 찌르고 있다. 핵폐기가 불가능하다는 걸 잘 아는 미국이 핵폐기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핵폐기를 위한 게 아니고 다른 목적을 위한 고차적 선전·선동인 것이다. 분단 고수, 긴장과 위기 조성, 안보 장사, 무기 장사 등을 노린 것이다.
이제 미국은 두 개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순간에 와있다. 하나는 핵을 보유한 북한과 사이좋게 살아가는 데 익숙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세계 군축으로 북핵을 제거하는 일이다. “세계 평화는 세계 핵 군축부터”라는 구호가 전 지구촌에서 마구 터져 나오고 있다. 이게 바로 시대적 요구다. 지구상 핵을 가장 먼저 사용한, 세계에서 가장 많이 핵을 보유한 미국이 세계 핵군축에 앞장서는 게 마땅한 도리다.
북핵이 불거진 책임에서 한국은 자유로운가?
미 대북 적대 정책에 뛰어올라 때로는 한국이 미국보다 더 적개심을 가지고 적대적 대결 정책을 펼쳤던 게 사실이다. 미국과 무관하게 6.15남북공동선언을 충실히 고수 이행했다면 북핵이 불거질 이유도 없다. 공고한 남북 관계는 무서운 힘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에 미 대북 정책 수정에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백악관 사냥개에 불과한 보수우익 정권이야 주인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으니 기대할 수도 이유도 없지만, 명색이 진보 정권 간판을 내걸고도 미국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남북관계까지 후퇴시켰던 것은 실로 통탄할 노릇이다.
대북 제재와 무관한 개성공단 재개도 상전 눈치 보느라 ‘재개’라는 말의 ‘재’자 소리도 꺼내지 못했으니… 한미는 북핵이 불거지게 한 공범이다. 아니, 한국의 책임이 더 크다고 해야 맞다. 한미가 북한을 떠밀어 내고 왕따시키니 북한이 기댈 곳은 핵밖에 없었을 것이다. 자기 자신이 윽박질러 핵을 가지게 해놓고 되레 핵시비를 걸고 있으니 앞뒤가 맞질 않는다. 핵을 갖도록 한 원인 제공에 대한 이해와 반성이 먼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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