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LL vs 통항질서
또다시 NLL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북한이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남북관계를 ‘국가와 국가의 관계’로 규정함에 따라 해상 경계선 역시 국경에 걸맞게 재조정할 것을 예고했습니다. “남쪽 국경선이 명백히 그어진 이상 불법, 무법의 북방한계선을 비롯한 그 어떤 경계선도 허용될 수 없으며 대한민국이 우리의 영토, 영공, 영해를 0.001mm라도 침범한다면 그것은 곧 전쟁 도발로 간주될 것”이라고 밝힌 것입니다.
사실 NLL은 말 그대로 ‘북방한계선’입니다. 남쪽에서 ‘그 이상 북진해선 안 된다고 설정한 선’이므로, 그 선 북쪽에 있는 군대에 ‘남방한계선’이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일방의 임의적 경계였습니다.
북한이 우리를 ‘통일의 대상인 같은 민족’이 아니라 ‘교전 중인 적대국’으로 본다면, 더더욱 국제법상 12해리·등거리 원칙이 적용되지 않은 현재의 NLL을 존중할 이유는 없습니다.
1975년 헨리 키신저 국무부장관조차 주한 미국 대사관과 주한미군 사령부, 유엔군 사령부에 보낸 외교 전문에서 ‘북방정찰한계선(Northern Patrol Limit line)은 국제법적 지위를 갖고 있지 않다’며 ‘일방적으로 국제수역을 분리한 것이기 때문에, 명백히 국제법과 미국 정부의 해양법에 반하는 것이다’고 언급할 정도로 NLL은 국경선과 전혀 다른 선입니다.
문제는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북한의 영해가, 한국이 마치 합법적 해상 경계인 양 주장해 온 NLL 아래쪽까지 포함한다는 것입니다.
북한이 국제법에 따라 영토 수호에 나선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NLL을 사수하겠다’는 한국과 충돌이 불가피합니다.
그간에는 서로 주장하는 경계가 달라도 우리 민족이니 어로 활동 등을 양해하고 눈감아주곤 했지만, 앞으로는 불가능해진 것입니다.
동족 개념이 사라진 상태에서 북한은 그간 주권을 행사하지 않았던 영해와 국경선을 확보해야 합니다. 그것을 그냥 두면 자기 영해를 빼앗기고도, 주권 행사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일본에 눈 뜨고 독도를 빼앗기는 것 같은 상황인데, 이는 북한의 지도부는 물론이고 그곳의 주민들 입장에서도 용납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동족 개념이 사라진 상태’, ‘교전 중인 적대국’ 사이의 관계라는 선언을 유심히 보고,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예컨대, 북한 해군사령부는 2000년에 ‘5개 섬 통항질서’라는 것을 발표하고, 서해 5도 출입은 지정된 수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공포한 바 있습니다. 이는 국제법적 영해를 존중하면서도, 섬들이 북한 영토에 가까우나 정전협정에 의해 한국이 관리하게 되어있는 현실과 5도민의 실질적 삶을 인정하는 선에서 고안된 대책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대화 협력이 가능했을 시절에 남북이 합의한 대로 ‘공동어로구역을 만들어 함께 관리’했다면, 오늘 이런 지경까지 오지는 않았겠지만, 합의를 하고도 뭐 하나 실행하지 못한 후과가 오늘 동포애적 성의조차 기대하기 어려운 상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한 관계’로서 서해 5도를 둘러싸고 서로의 원칙만을 고수하지 않고 나름대로 융통성 있게 상황을 관리할 수 있었다면, 이제는 그런 융통성은 절대 기대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 모범답안
조만간 북한이 ‘서해 5도의 통항질서를 준수하라, 지키지 않으면 제재하겠다’고 선언하면 윤석열 정권은 어떤 선택을 할까요?
가령 4월 10일 총선 직전, 4월 7일 0시부터 통항질서를 지키기 위해 실력행사를 선언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윤석열, 신원식이 대응한다면 전쟁이 될 것입니다. 그것도 서해교전 정도가 아니라 전면전이 되고, 총선은 치를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을 것입니다.
어쩌면 윤석열은 총선에 대패하느니 전쟁을 택하겠다고 들지도 모릅니다. 능력 없이 전쟁을 택하는 많은 무모한 지도자들이 전쟁이 일어나 전 국민이 죽어도 자신의 살길만은 보장되어 있다고 믿고 일을 칩니다.
그렇다고 대응하지 않는다면? 안보위기를 불러놓고 속수무책인 윤석열 정권의 위기는 더욱 깊어질 것입니다.
과연 위기를 타개할 선택지가 있을까요? <저작권자 ⓒ 자주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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