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사회를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북한 사회 구조와 작동 원리를 알아야 한다. 이를 위한 가장 좋은 교재는 북한 헌법이다. 헌법을 분석하다보면 북한 사회의 기본 이념과 국가 정체성, 사회 구조와 작동 원리, 국가 정책과 노선을 잘 알 수 있다. 이에 주권연구소는 북한 헌법을 하나하나 파헤쳐보는 연재를 기획하였다. 분석할 북한 헌법은 현재 한국에서 입수할 수 있는 가장 최신판인 2019년 8월 29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2차 회의에서 수정보충한 헌법을 기준으로 한다. 또한 표기법은 한국의 맞춤법을 따르되 불가피한 경우 북한 표기를 그대로 두었다. 북한 헌법은 통일부, 법무부, 법제처가 공동 운영하는 통일법제 데이터베이스(https://unilaw.go.kr)에서 누구나 열람할 수 있다.
‘인민생활 향상의 합법칙성’
북한은 자본주의와 달리 사회주의 사회에서 국민 생활이 지속적으로, 균형적으로 발전한다고 주장한다.
자본주의 경제는 호황-후퇴-불황-회복을 반복하며 특정 부문이 비대해지고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발생하는 등 불균형 발전을 한다.
반면 북한은 사회주의 사회에서 경제가 지속해서 빠르게 발전하며 그 성과가 모두 국민에게 돌아가기 때문에 국민의 생활수준이 끊임없이 발전한다고 주장한다.
구체적으로 1인당 소비가 늘어나며 생계비가 낮아지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북한에서 생계비란 의식주 비용, 문화생활 비용, 의료비, 교통·우편 비용 등인데 낮은 가격으로 식량을 공급하고 주택사용료도 낮으며 무료교육, 무상치료제 등의 시책으로 생계비 규모가 크지 않다고 한다.
또 식량, 주택사용료, 의료비의 비중이 작아지고 의류비, 문화생활 비용이 상대적으로 커지는 등 엥겔지수가 줄어드는 방향으로 발전한다고 한다.
북한은 근로자의 생활 수준이 점차 비슷해져 국민 생활이 균형적으로 발전한다고 주장한다.
사회주의 사회라고 해도 생산수단이 국가 소유와 협동 소유의 형태로 나뉘고, 공업과 농업, 중공업과 경공업,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차이가 남아있어 생활 수준에도 차이가 발생한다.
하지만 생산수단의 소유 형태가 국가 소유로 통일되고 기술 발전으로 노동 조건의 차이도 사라지면서 모든 국민의 생활에 균형이 잡힌다는 게 북한의 주장이다.
북한은 국민 생활을 지속적, 균형적으로 발전시키려면 세 가지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첫째 원칙은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국민 생활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북한은 세계 혁명이 승리할 때까지는 제국주의 국가가 사회주의 국가를 침략하지 못하도록 국방력을 먼저 갖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둘째 원칙은 국가 경제를 먼저 발전시키고 그것에 맞게 국민 생활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이는 앞선 글에서 살펴본 축적과 소비의 균형을 맞추는 것과 같은 내용이다.
셋째 원칙은 노동자와 농민, 정신노동자와 육체노동자의 생활을 골고루 발전시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노동자보다 농민의 생활 수준이 뒤처지기 때문에 국가는 농촌의 주거·문화·복지·교통 등의 시설을 개선해야 한다.
농업은 자연조건이 중요하기 때문에 지역마다 차이가 클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지역의 자연조건을 효율적으로 이용해 지역 자체 소득을 높이면서 동시에 열악한 지역을 국가가 직접 지원해야 한다.
‘계획의 일원화, 세부화’
사회주의 경제는 계획경제다.
정부가 수요와 공급을 예측하고 계획을 세워야 한다.
북한 이론에 따르면 경제 계획을 세울 때 일원화와 세부화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한다.
먼저 계획의 일원화란 국가의 통일적인 지도 밑에 모든 부문, 모든 단위의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즉, 기업별, 지역별, 부문별로 따로 계획을 세우는 게 아니라 국가가 단일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
이를 위해 북한은 1964년 국가계획위원회의 하부 기관으로 각 도에 지구계획위원회를 신설하고 시·군 계획과, 기관·기업소의 계획과도 신설해 일원화 계획 체계를 만들었다.
각 기관·기업소의 계획과는 국가계획위원회와 시·군 계획과의 지휘와 통제를 받는다.
북한은 일원화 계획 체계를 통해 지방과 기관·기업소가 자기 단위의 처지와 이익을 앞세우는 현상을 없애고 국가의 결정을 관철할 수 있게 할 수 있다고 한다.
또 국가가 비현실적인 계획을 세우지 않고 단위의 구체적인 처지를 반영해 현실적이고 과학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게 하는 효과도 있다고 한다.
다음으로 계획의 세부화란 경제의 모든 부문, 단위들의 경제활동이 세부에 이르기까지 다 정확히 맞물리도록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계획을 세운다는 것이다.
즉, 큰 경제지표는 물론 세부적인 지표까지도 다 정확히 맞도록 계획을 세워야 한다.
계획을 세부적으로 세우지 않으면 ‘도의적 계획’을 세우게 되어 경제 집행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된다.
‘도의적 계획’이란 해주고 싶으면 해주고 해주기 싫으면 안 해도 상관없는 계획을 말한다.
북한은 경제 계획을 지키지 않는 것을 불법으로, 처벌 대상으로 규정해 ‘도의적 계획’을 없앴다.
북한은 계획의 세부화를 통해 자원을 남김없이 최대로 활용할 수 있어 효율성이 올라간다고 본다.
북한은 1999년 계획의 일원화, 세부화를 구현한 인민경제계획법을 제정했다.
북한의 인민경제계획법(2021년 개정)에 따르면 경제 계획을 작성할 때는 다음 9가지 요구 사항을 지켜야 한다고 한다.
1. 경제사업의 객관적 조건과 생산 가능성, 잠재력에 대한 과학적인 타산에 기초하여 세워야 한다. 2. 인민경제 부문별, 기업소별, 지표별 생산능력을 장악, 평가하고 해당 단위의 실태와 경제 발전의 요구를 반영하여 담보성 있고 집행력 있게 세워야 한다. 3. 내부 예비를 최대한 효과 있게 이용할 수 있게 동원적으로 세워야 한다. 4. 경제 부문별 사이, 기업체들 사이에 생산적 연계와 협동을 강화하고 경제 발전의 중심고리에 힘을 집중하는 원칙에서 선·후차를 명백히 갈라 혁신적으로 세워야 한다. 5. 수요와 공급 간의 균형을 현물 양적으로만이 아니라 가치적으로 정확히 담보할 수 있게 세워야 한다. 6. 과학기술 성과를 적극 받아들여 과학기술과 생산의 일체화를 실현할 수 있게 세워야 한다. 7. 경제적 효과성을 높이고 실리를 보장할 수 있게 세워야 한다. 8. 현존 생산능력을 정비, 보강하고 원료, 자재의 국산화와 재자원화를 적극 추동할 수 있게 세워야 한다. 9. 국가가 보장할 몫과 기업소가 자체로 해결할 몫을 밝혀 세워야 한다.
경제 계획을 작성할 때는 예비숫자, 통제숫자, 계획 초안, 확정의 단계를 밟는다.
예비숫자는 각 단위에서 종업원들의 뜻을 모아 책정한 다음 해 생산 목표다.
국가계획위원회는 예비숫자를 검토하고 국가 상황과 목표에 맞게 조정한 통제숫자를 만들어 단위에 내려보낸다.
각 단위는 통제숫자를 어떻게 이행할지 군중 토론을 진행하며 그에 따라 경제 계획 초안을 작성해 국가계획위원회에 제출한다.
그러면 국가계획위원회는 계획 초안을 검토하여 최종 조절을 하고 내각에 제출, 최고인민회의와 지방인민회의에서 최종 승인을 한다.
승인된 경제 계획에 따라 각 단위는 정부로부터 노동력, 설비, 자재, 자금을 받는다. <저작권자 ⓒ 자주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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