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대보름인 지난 24일, ‘윤석열 퇴진! 김건희 특검! 78차 촛불대행진’이 열린 서울시청 광장은 윤석열 탄핵을 염원하는 촛불시민의 축제판이었다.
현장에 도착하니 정월대보름을 맞아 촛불풍물단 정월대보름 지신밟기(석열명신밟기) 행사 준비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만복이 깃들게 우리 신나게 모여 굿을 한번 쳐봅시다잉”이라며 구수한 호남 사투리가 들려왔다.
지신밟기가 진행될 거란 공지는 미리 봤지만, 어떤 방식일지는 잘 예상이 되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명신(김건희) 씨의 사진이 담긴 뭔가를 사정없이 진짜로 밟는 것인가 싶었는데, 진짜로 그랬다. 도로 한복판에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씨의 얼굴 사진에 X 표시를 한 대형 사진이 있었다. 시민들은 마치 광주 망월동 묘역에 있는 전두환 표지석을 밟듯, 사진을 꽉꽉 눌러 밟았다. 분노에 찬 소리를 지르며 달려와 사진을 있는 힘껏 발로 내리찍는 시민도 있었다.
한편으로, 지신밟기에는 새해를 맞아 나쁜 기운을 몰아내는 액막이(닥쳐올 액(厄)을 막으려는 행위)의 뜻도 담겼다. 올해 안에 윤석열 탄핵을 이뤄 안보·경제·정치 등 안팎으로 큰 위기에 빠진 대한민국을 구하자는 것이다.
촛불풍물단이 꽹과리, 징, 장구, 북을 두들기자 신명 나는 가락이 울려 퍼졌다. 촛불풍물단 단원들이 근처에 있던 시민들의 손을 잡았다. 가락과 춤사위가 어우러지면서 행사는 순식간에 대동놀이판이 됐다. 시민들의 표정이 환하게 빛났다.
축시를 읊고, 축시가 적힌 종이를 불사르는 의식도 거행됐다. “용산에 있는 아주 흉악한 악을 후쿠시마 앞바다에 던지자”, “석열이 밟는다고 생각하고 밟아!”, “밟자! 밟자! 꽉꽉 밟자!” 등의 외침이 들렸다.
반면 촛불풍물단은 ‘촛불 동지들’을 향해서는 만복이 깃들기를 기원했다. 촛불풍물단이 서울의소리, 대진연, 촛불자원봉사단, 부천촛불행동 등을 언급할 때마다 환호성이 커졌다.
근처 시민에게 오늘 행사가 어땠는지 의견을 물었다.
“오늘 같은 정월대보름에 사람들이 이렇게 나온다는 게 (기세가 좋다)”, “(윤석열과 김건희의 얼굴을) 밟아서 좋았다”, “(즐겁긴 했지만) 공간이 좁아서 사람들이 다칠까 봐 걱정이 됐다” 등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악귀 퇴치’를 주제로 다룬 드라마 「악귀」 마지막화에는 풍등을 띄워 영혼을 저세상으로 떠나보내는 장면이 나온다. 드라마는 주인공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판단을 시청자에게 맡기는 열린 결말로 끝났다. 그런데 촛불광장의 시민들은 지금 바로 이 순간, 윤석열 정권을 탄핵해 떠나보내는 촛불 드라마를 쓰고 있었다. 이미 윤석열 정권을 끝장내겠다며 판단을 마친 것이다. 촛불의 힘으로 매주 새로운 역사가 만들어지고 있음이 실감 났다. ‘아, 이거야말로 진짜 드라마가 아닌가?’ 싶었다.
지신밟기 행사가 끝나고 부천촛불행동과 합류했다.
자리 잡고 앉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옆자리에서 손과 손을 통해 사탕, 초콜릿, 과자를 계속 받았다. 얼떨떨한 기분으로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했다. ‘이게 말로만 듣던 촛불 동지애구나’ 싶었다.
집회가 본격 시작됐다. 집회를 주최하는 촛불행동은 집회 기조를 매주 바꾼다. 이번 주 기조는 ‘국민과 전쟁, 북한과 전쟁, 전쟁광 윤석열을 탄핵하자’였다.
북한을 적대하며 전쟁 위기를 높이는 윤석열을 탄핵해야 한다는 기조 발언과, 10.29이태원참사 희생자 유가족의 발언에서 ‘윤석열 탄핵으로 반드시 새 세상을 만들자’는 절절한 마음이 확 느껴졌다. 힘이 솟기도 하고, 눈물도 났다.
처음에는 다소 어색했던 구호 외치기도 차츰 익숙해졌다. 본대회를 마치고 행진을 시작하자 “윤석열 탄핵”을 더욱 힘차게 외치게 됐다. 행진 중간 종각역 근처를 지날 때 전세 사기 피해자들의 집회 행렬이 지나갔다. 행렬이 서로를 마주 보며 응원했다. ‘같은 집회가 아니라도 윤석열 퇴진 아래 우리는 하나’라는 느낌이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날씨가 흐렸다. 행진을 마칠 무렵엔 빗줄기가 제법 거세졌다. 하지만 큰 방해는 되지 않았다. 시민들은 다시 본무대로 돌아와 강강술래 대동놀이를 함께하며 하나가 됐다. 빛나는 보름달은 볼 수 없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서로를 위하며 환하게 빛나는 촛불시민이라는 보름달이 바로 곁에 있었으니까. <저작권자 ⓒ 자주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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