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경기 회복은 일시적 현상
지난 2일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서 열린 대한상공회의소 기자간담회에서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연임하게 된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최근 반도체 경기 회복을 두고 “지난해 너무 나빴기 때문에 올해 상대적으로 좋아지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이 존재한다”라며 “회복 흐름이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최근 언론은 연일 반도체 기업들의 실적이 좋다는 보도를 내놓고 있습니다. 덕분에 관련 기업 주식에 자금이 몰리고 있습니다. 언론이 투기를 조장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최 회장은 이런 상황이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고 했을까요? 아마 중국의 반도체 자립화가 빠르게 진행 중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흔히 반도체 산업을 이야기하면 초미세 공정을 도입한 고사양 반도체를 중심으로 이야기하면서 중국의 기술력이 뒤떨어진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함정이 있습니다.
물론 고사양 반도체도 중요하지만 여전히 반도체 시장의 대부분은 저사양 반도체가 차지합니다. 장난감에 들어가는 반도체부터 가전제품, 자동차, 비행기, 심지어 무기에 들어가는 반도체도 대부분 저사양입니다. 왜냐하면 저사양 반도체가 성능은 조금 떨어져도 가격이 싸고, 구조가 단순해서 오류가 적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무기는 험한 환경에서도 오류나 고장이 나지 않아야 하므로 군에서는 개발한 지 오래돼 충분히 검증한 구형 반도체를 선호합니다.
또한 갈수록 반도체 기술의 격차가 줄어드는 상황입니다. 보통 중국의 반도체 기술이 선두 기업과 2~5년 정도 격차가 난다고 합니다. 하지만 반도체 기술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기 때문에 몇 년 지나면 결국 기술력이 비슷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최 회장도 “반도체 미세화는 한계에 왔고, 이제 기술이 아니라 공급으로 경쟁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라고 하면서 “결국 대규모 자본 지출로 생산라인을 늘려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라고 했습니다. 비슷한 기술 수준을 가지고 생산량으로 경쟁한다면 당연히 중국이 유리합니다.
중국은 오래전부터 반도체에 엄청난 투자를 해왔습니다. 특히 미국이 반도체 분야에서 중국을 봉쇄하자 이를 악물고 반도체 자립을 추진했습니다. 중국 국무원 학위위원회, 교육부는 반도체 학과를 2급에서 1급으로 승급하면서 지원을 대폭 강화했습니다. 이에 2021년에만 14개 대학이 반도체대학원을 설립했습니다. 또 엄청난 혜택을 주면서 해외 인재를 영입하고 있습니다. 설비투자도 엄청나게 하고 있습니다. 정부 차원에서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기금을 모았는데 올해 벌써 3차 펀드를 모으고 있으며 역대 최대 규모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조선일보 2023년 11월 14일 자 칼럼 「중국 반도체의 오기가 무서운 이유」를 보면 기업의 기술력이 떨어지거나 생산비가 많이 드는 공정이라도 정부가 엄청나게 지원을 퍼부어서 기어이 목표를 달성한다고 합니다.
그 결과 중국의 반도체 자립도가 급격히 오르고 기술력도 선두 기업을 빠르게 따라잡고 있습니다. 지난해 중국 기업 화웨이는 모두가 못 할 거라 여겼던 7나노미터 공정 반도체가 들어간 스마트폰을 출시해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기술력이 부족해 반도체 제조 원가가 경쟁사의 5배 이상이지만 정부 지원과 풍부한 내수 시장이 있기에 문제가 없습니다. 이 스마트폰은 출시 후 두 달이 채 안 돼 중국 내에서 160만 대가 팔렸다고 합니다.
보조금을 줄 때는 이유가 있다
최 회장은 미국의 반도체 보조금에 관해 “솔직히 보조금을 많이 주는 것은 (해당 나라에) 시스템이 안 갖춰져 있거나, 인건비가 비싸다거나 하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라며 “한국은 다른 시스템은 아주 잘 갖춰져 있다”라고 했습니다.
즉, 미국이 반도체 보조금을 주는 이유는 그만큼 여건이 나쁘기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보조금을 받아 봐야 기반 시설을 갖추는 데 쓰거나 인건비로 다 나가게 되니 남는 게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미국은 자선 사업하는 나라가 아닙니다. 무언가 줄 때는 그보다 더 많은 것을 가져가기 위함이라고 봐야 합니다.
반면 한국은 기반 시설이 아주 잘 갖춰져 있기 때문에 보조금이 없어도 됩니다. 중국은 여건이 더 좋습니다. 미국반도체산업협회(SIA)와 보스턴컨설팅그룹이 지난 2021년 작성한 「불확실한 시대에 맞선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강화」에 따르면 미국·한국·대만·중국에 첨단 반도체 공장을 짓고 10년간 운영했을 때 드는 비용이 미국을 100이라고 했을 때 한국·대만은 78, 중국은 63으로 나왔습니다.
설사 미국에 공장을 짓고 돈을 번다고 해도 남는 건 별로 없을 것입니다. 보조금을 주는 조건으로 일정액 이상 초과 이익이 발생하면 미국 정부와 공유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익을 미국 정부와 공유한다는 건 미국 정부가 원하는 곳에 이익금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삼성전자 텍사스 공장 사진을 보면 옥수수밭 한가운데 공장 단지만 덩그러니 있습니다. 아마 미국 정부는 주변 기반 시설에 재투자하는 식으로 이익금을 다 토해내게 할 것입니다. 재주는 삼성전자가 부리고 돈은 미국 건설회사가 버는 꼴입니다.
한중관계가 매우 중요하다
최 회장은 미국과 갈등을 빚고 있는 중국에 관해 “경제적으로 안정된 모습을 되찾고 있다”라면서 “수출도 하고 경제협력을 해야 하는 한국 입장에서는 중국도 중요한 고객이고 판매처이자 협력처다. 경제를 고려하면 상당히 차가운 이성과 계산으로 합리적인 관계를 잘 구축해 나가야 한다”라고 밝혔습니다. 경제면에서 한중관계가 매우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SK하이닉스를 비롯한 한국의 반도체 기업들에 닥친 가장 큰 문제는 미국의 중국 투자 통제입니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는 중국에도 공장을 가지고 있는데 미국은 여기에 반도체 장비를 반입하지 못하게 통제하고 있습니다. 한국 반도체 기업이 미국과 거래를 하려면 이런 부당한 통제에 순응해야 합니다. 그래서 지난해 최 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미국에 가서 협상해 유예 조치를 받았습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메모리 반도체 세계 점유율은 58%에 달하는데 이 가운데 중국 공장에서 생산하는 양이 상당합니다. 그래서 두 기업의 중국 공장을 무작정 틀어막으면 공급망 혼란이 발생하기 때문에 미국도 일단 유예를 한 것으로 보입니다. 마치 미국 기업인 인텔과 퀄컴이 중국 기업 화웨이에 반도체 수출을 하지 못하게 막았다가 이들 기업이 반발하자 특별 허가를 해준 것과 비슷합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정부는 우리 기업을 위한 외교를 하는 게 아니라 반대로 미국을 위해 우리 기업을 희생시키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우리와 무관하지만 중국이 민감해하는 대만 문제, 남중국해 문제를 굳이 언급해 중국을 자극합니다. 어떻게 보면 중국의 경제 보복을 유도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안 그래도 미국 눈치 보느라 중국과의 거래에서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은 환장할 노릇입니다. 이 모든 것은 미국이 바라는 것들입니다.
이처럼 윤석열 정부의 미일 편향 외교, 북·중·러 적대 외교가 우리 기업의 발목을 잡고 큰 피해를 가져다줍니다.
세계는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냉전 시대의 유물인 미일 편향, 북·중·러 적대를 하는 것이 과연 세계 변화의 흐름에 맞고 국익 우선에 부합할까요? 최 회장은 단호하게 ‘그렇지 않다, 꿈 깨야 한다’고 얘기한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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