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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미 무기 열전 46] 핵무기를 실으면 안 되는 비운의 전략폭격기 B-1B

문경환 기자 | 기사입력 2024/05/23 [21:33]

[남·북·미 무기 열전 46] 핵무기를 실으면 안 되는 비운의 전략폭격기 B-1B

문경환 기자 | 입력 : 2024/05/23 [21:33]

한반도에 긴장이 고조되면 B-52H와 함께 단골처럼 날아오는 전략폭격기가 바로 B-1B 랜서다. 

 

▲ B-1B 랜서. [출처: 미 공군]


언론은 B-1B를 ‘죽음의 백조’라 부르며 초음속으로 날아가 수십 발의 핵폭탄을 투하해 순식간에 북한을 초토화할 것처럼 묘사한다. 

 

그러나 이 묘사는 현실과 거리가 멀다. 

 

일단 ‘죽음의 백조’라는 별명은 한국 언론만 쓰며 정식 이름은 ‘랜서(창기병)’이고 미군은 흔히 ‘뼈(Bone: B-one에서 유래)’라고 부른다. 

 

또 B-1B는 핵폭탄을 탑재할 수 없고 목표물 상공을 저공비행 할 때는 초음속으로 날지도 못한다. 

 

사실 B-1B는 기대와 달리 용도가 모호한 비운의 전략폭격기라 할 수 있다. 

 

이는 B-1B 개발사를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베트남전에서 B-52는 막강한 화력을 과시했지만 31대나 파괴되는 수모를 겪었다. 

 

미군은 B-52를 대체할 새로운 전략폭격기를 개발하기로 했고 격추를 피하고자 초음속 저공비행 능력을 요구했다. 

 

오랜 연구 끝에 B-1A가 탄생했는데 고고도에서 마하 2.2, 저고도에서 마하 0.85로 장거리 비행을 할 수 있었다. 

 

▲ B-1A 4호기. [퍼블릭 도메인]


즉, 고고도에서 빠르게 장거리 이동을 한 후 마지막에 저고도로 내려가 레이더에 최대한 늦게 포착되면서 목표물에 접근하는 방식을 고안한 것이다. 

 

다만 저고도에서도 초음속을 유지하기에는 기술이 부족했다. 

 

그런데 B-1A는 1973~1974년에 4대만 생산하고 생산을 중단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하나는 AGM-86 ALCM(공중 발사 순항미사일)이 등장하면서 B-52H를 계속 활용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스텔스 전략폭격기 개발을 시작하면서 B-1A를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은 소련 방공망을 연구한 결과 B-1A가 저공비행을 해도 B-52보다 생존율이 높지 않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런 이유로 1976년 대선에서 지미 카터 후보는 B-1 개발을 세금 낭비라고 비난하며 당선됐다. 

 

프랑스 고등국방연구소 소장 조지 부스는 1977년 7월 11일 자 타임지에서 “B-1 1대의 가격으로 순항미사일 200개를 만들 수 있다”라며 B-1을 깎아내렸다. 

 

카터 대통령은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공중 발사 순항미사일(ALCM)을 장착한 B-52를 기본 핵공격 수단으로 채택하면서 B-1A 추가 생산을 취소하였다. 

 

카터 대통령은 극비리에 진행 중인 스텔스 전략폭격기 개발 사업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B-1A가 필요 없을 것으로 예상했다. 

 

B-1A 생산이 중단되자 이번엔 공화당이 들고 일어났다. 

 

1980년 대선에서 로널드 레이건 후보는 B-1A 생산 취소를 예로 들어 카터 대통령이 국방에 취약하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해럴드 브라운 국방부장관이 스텔스 전략폭격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사실을 공개하며 B-1A 생산 취소를 정당화하려 하였다. 

 

결국 대선에서 승리한 레이건 대통령은 B-1A를 개량한 B-1B를 생산하기로 하였다. 

 

당시 미국은 소련과의 전쟁을 대비하고 있었는데 B-52는 한계를 드러냈고 스텔스 전략폭격기 개발은 늦어져서 전력 공백이 생기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B-1B는 저고도에서 속도를 높이는 데 개량의 초점을 맞춘 결과 속도를 마하 0.85에서 0.92로 높일 수 있었다. 

 

반면 고고도에서는 속도가 마하 2.2에서 1.25로 줄어들었다. 

 

이래서는 B-52보다 더 나은 게 뭐냐는 지적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2001년 8월 1일 자 뉴욕타임스는 “1988년 마지막 B-1이 생산되기 전에도 공군은 이 비행기가 소련의 방공망에 취약하다고 판단”했으며 “걸프전 때는 투입이 승인됐지만 엔진 결함으로 투입할 수 없었”고, “1999년 국방부는 낡은 B-52 등이 제공권을 확보할 때까지 유고슬라비아 상공에서 B-1 비행을 연기”했다고 하면서 “B-1은 국방부조차 싫어했던 전략폭격기”였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1985년에 실전배치하고도 첫 전투 임무를 1998년에 수행했으니 무려 13년 동안 실전투입을 안 한 셈이다. 

 

다만 B-1B 생산 하청 계약이 여러 지역에 분산되어 있었기에 지역 유권자의 눈치를 봐야 하는 의원들에게는 인기가 있었고 그 덕에 100대를 생산할 수 있었다. 

 

미국은 골칫덩어리 B-1B를 엉뚱한 곳에 활용했다.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 체결한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에 B-1B를 제물로 바친 것이다. 

 

미국은 이 협정에서 B-1B를 핵폭격이 아닌 재래식 폭격용으로만 사용하기로 합의했다. 

 

미국은 러시아가 의회에서 협정을 비준 동의하기도 전인 1994년에 서둘러 B-1B의 핵무장을 해제해 버렸다. 

 

그리고 2011년까지 핵무기 탑재 장치들을 모두 제거해서 이제는 핵무장을 다시 탑재할 수도 없다. 

 

▲ B-1B 내부 무장창. 회전식 발사대가 보인다.  © Cap’n Refsmmat


게다가 러시아 무기 사찰단이 매년 B-1B 기지를 방문해 이를 확인한다. 

 

B-52를 대체하기 위해 태어났으나 성능을 크게 뛰어넘지 못하고, 후속기인 B-2가 태어날 때까지 임시로 자리를 지킬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게 B-1B인 셈이다. 

 

물론 성능을 따지면 B-1B가 B-52H보다 확실히 낫다. 

 

▲ B-52H와 B-1B 성능 비교.  © 문경환 기자


하지만 최신 대공무기에 취약하기는 도긴개긴이기 때문에 미군 처지에서 작전상 B-52H가 아닌 B-1B여야만 하는 이유가 크지 않다. 

 

그런데 B-2가 기대를 충족하지 못하면서 B-1B는 조기 폐기를 면했다. 

 

이 이야기는 다음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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