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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미 무기 열전 47] 세계에서 가장 비싼 비행기 B-2 스피릿

문경환 기자 | 기사입력 2024/06/27 [12:35]

[남·북·미 무기 열전 47] 세계에서 가장 비싼 비행기 B-2 스피릿

문경환 기자 | 입력 : 2024/06/27 [12:35]

만약 당신에게 5조 원이 넘는 차가 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너무 비싸서 사고가 나도 보험처리가 안 된다면?

 

아마 무서워서 덜덜 떨며 운전할 생각을 못 하고 차고에 고이 모셔둘 것이다. 

 

그런데 차고에 보관만 해도 월 30억 원이 넘는 유지비를 내야 한다면?

 

팔아 치울 수도 없다면?

 

정말 난감한 상황일 것이다. 

 

여기 미국에 그런 비행기가 있다. 

 

개발, 제작, 조달 비용으로 대당 5조 3천억 원가량(2023년 기준)이 들어갔고 격납고에 가만히 두기만 해도 월 38억 원가량의 유지비가 들어가는 이 비행기의 이름은 B-2 스피릿이다. 

 

스피릿(정신)이라는 이름 그대로 정신이 나갈 것 같은 가격을 자랑하는데 현재 세계에서 가장 비싼 비행기라고 한다. 

 

제작 당시에는 똑같은 무게의 금보다 더 비쌌는데 지금은 금값이 많이 올라 금보다는 싸다. 

 

▲ 1989년 첫 공개 비행에 나선 B-2. [출처: 미 공군]


가만히 두기만 해도 유지비가 어마어마하게 들어가는 이유는 52미터에 이르는 날개를 가진 B-2가 들어가는 전용 격납고 전체에 에어컨을 켜서 스텔스 코팅을 보호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1시간 비행 당 유지·보수에 119시간이 들어가는 심각한 문제도 있었다. (1997년 기준)

 

B-2A라고도 하는데 어차피 B-2의 다른 파생형이 없기 때문에 B-2나 B-2A나 똑같다. 

 

B-2 스피릿 제원

 

  © 문경환 기자

 

▲ B-2 투영도. [출처: Stahlkocher]


B-2의 최대 특징은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스텔스 기능이다. 

 

레이더로 관측하면 매우 작게 잡히는데 정확히 얼마나 작게 잡히는지는 기밀 정보라서 공개되지 않았다. 

 

B-2는 스텔스 기능을 위해 매우 특이한 형태로 개발되었다. 

 

흔히 가오리 모양이라고 하는데 뒷부분은 2개의 W 모양이며 수직 날개가 없다. 

 

동체와 날개의 구분이 불분명해 사실상 비행기 전체가 날개인 셈인데 이런 비행기를 전익기(全翼機)라 한다. 

 

또 열 감지를 피하고자 엔진 노즐도 동체 위에 배치했다. 

 

가오리 모양이라고 해서 매우 납작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옆에서 보면 의외로 뚱뚱하다. 

 

그래서 무기를 대량 실을 수 있다. 

 

▲ 1994년 캘리포니아에서 실시한 폭격 훈련. 230킬로그램 마크-82 폭탄 47개를 투하했다. 옆에서 본 B-2는 의외로 뚱뚱하다. [출처: 미 공군]


B-2는 현재 유일하게 핵폭탄을 투하할 수 있는 전략폭격기다. 

 

곡절 많은 개발사

 

B-2도 B-1만큼이나 곡절 많은 개발사를 가지고 있다. 

 

원래 미국은 소련과 전면전을 대비해 B-2를 개발했다. 

 

소련의 강력한 방공망에 걸리지 않고 광활한 영토에 핵폭탄을 쏟아붓는 게 B-2의 용도였다. 

 

공군이 스텔스 전략폭격기 개발자를 모집하자 록히드(당시)와 노스롭이 경쟁을 벌였다. 

 

록히드는 이미 스텔스기 개발 경험이 있기 때문에 경쟁에서 앞서갔지만 결국 노스롭이 공군의 선택을 받았다. 

 

공군이 스텔스기 기술 독점을 막기 위해 일부러 노스롭을 선택했다는 주장도 있다. 

 

성능은 약간 떨어지지만 가격이 매우 저렴한 모델을 제시했던 록히드 대신 노스롭을 선택하면서 B-2 개발·제작비는 천문학적으로 치솟는다. 

 

원래 새로운 비행기를 설계할 때는 기존 부품을 최대한 활용해 제작비를 아끼는 게 기본이다. 

 

그런데 B-2는 스텔스 기능을 위해 워낙 기형적인 형태로 먼저 설계하고 여기에 맞는 부품을 찾다 보니 대부분의 부품을 새로 설계해서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여기에 더해 소련이 해체되면서 의회에서 B-2 예산을 대폭 삭감해 버렸다. 

 

원래 공군은 B-2를 132대 주문했지만 나중에 75대로 줄이고 시간이 지나 20대로 줄였다. 

 

생산량을 줄이니 대당 가격은 4배 이상 뛰었다. 

 

다만 1996년 클린턴 정부가 시험기 1대를 양산기로 개조해 총 21대의 B-2가 탄생했다. 

 

실전 능력

 

미국은 소련과의 전면전을 상정하고 B-2를 만들었지만 그렇다고 창고에 보관만 해두기에는 너무 아까웠을 것이다. 

 

B-2는 1999년 코소보 전쟁에 처음 투입되었고 이후 아프간 전쟁, 이라크 전쟁, 리비아 내전에도 투입되었다. 

 

뛰어난 스텔스 기능 덕인지 한 번도 미사일 공격을 받은 적이 없고 전투기의 요격도 당한 적이 없다. 

 

다만 전장의 제공권을 충분히 확보한 뒤에 투입한 것이라서 당연하다고도 볼 수 있다. 

 

아프간 전쟁 때는 미국 본토에서 출격해 최장 44시간 비행을 한 적도 있다. 

 

물론 중간에 여러 차례 공중급유를 했다. 

 

B-2는 이런 장시간 비행을 대비해 조종사들이 비행기 안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화장실, 침실, 조리시설 등을 갖춰놓았다고 한다. 

 

이라크 전쟁이나 아프간 전쟁 당시 미국 본토에서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가 폭격하고 돌아오는 비효율적 운용을 할 수밖에 없었던 사연이 있다. 

 

일단 해당 나라 근처에는 B-2를 보관할 격납고가 없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B-2는 에어컨 시설이 갖춰진 전용 격납고에 보관해야 하므로 일반 공군기지를 이용할 수 없다. 

 

또 B-2는 워낙 미군이 극비 운용을 하므로 괜히 여러 나라에 착륙시켜 구경하도록 놔두지 않는 게 좋다.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예를 들어 이라크 주변 중동 국가에서 미군 비행기가 뜨면 이라크 첩보요원들이 파악해서 본국에 알려주기 때문에 대비를 할 수 있다. 

 

미국 본토에서 이륙해 곧바로 이라크로 가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해 여러 나라가 이라크 전쟁을 반대하며 자국 공항 이용이나 영공 통과를 불허하는 바람에 장거리 폭격기 운용은 더욱 절실해졌다. 

 

그래서 미국은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아예 속 편하게 본토에서 출발하는 방식을 선택하였다. 

 

현재 운용하는 19대의 B-2 가운데 18대가 미주리주 화이트먼 공군기지에 있고 1대는 캘리포니아주 에드워드 공군기지에 있다. 

 

그리고 가끔 괌 앤더슨 기지나 인도양의 디에고 가르시아에 있는 공군기지에 간다. 

 

따라서 만약 전쟁이 발발하면 상대국은 가능한 가장 먼저 위의 기지들에 핵미사일을 퍼부을 것이다. 

 

몇 대 없고 아무 데나 보관할 수 없다는 게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다. 

 

B-2는 강력한 스텔스 기능 덕에 은밀한 작전이 가능하지만 대신 스텔스 기능을 위해 기동성을 포기했기 때문에 만에 하나 적에게 발각되면 살아남기 힘들다. 

 

그래서 종종 F-15나 F-18 같은 전투기의 호위를 받는다. 

 

문제는 이들 비행기에 스텔스 기능이 없어서 적의 레이더에 포착된다는 점이다. 

 

제대로 된 B-2 호위를 위해서는 같은 스텔스기인 F-22나 F-35가 나서야 하는 단점이 있다. 

 

추락

 

2008년 2월 23일 B-2 1대가 괌 앤더슨 공군기지에서 이륙하자마자 활주로에 추락해 완파되었다. 

 

순식간에 5조 원이 사라진 셈이다. 

 

조사 결과 습기 때문에 일부 장치가 오작동을 일으키는 바람에 비행 제어 컴퓨터가 비행 상태를 잘못 판단하고 이륙 직후 비행기를 급상승시킨 게 원인이었다. 

 

원래 이륙 직후 비행기는 충분히 속도가 붙지 않은 상태인데 이때 급상승시키면 속도가 떨어져서 양력을 잃고 추락해버린다. 

 

▲ 처참한 잔해만 남긴 5조 원. [출처: 미연방항공국]


2010년 2월에는 괌 앤더슨 공군기지에서 B-2에 시동을 걸다 불이 나서 18개월이나 수리를 하고 2013년 12월에야 다시 운용하는 일도 있었다. 

 

2022년 12월 10일에는 미국 미주리주의 화이트먼 공군기지에서 B-2가 기내 오작동으로 비상 착륙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미군은 자세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고 2024년 5월 수리하기에 비경제적이라서 매각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차세대 스텔스 전략폭격기 B-21 레이더를 개발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린 결정으로 보인다. 

 

따라서 현재 미군이 운용하는 B-2는 19대다. 

 

그런데 이 가운데도 3대는 정기 정비를 위해 항상 정비창에 들어가 있고 2대는 비정기적으로 실험용으로 쓰고 있어 안정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것은 14대뿐이다. 

 

다른 전략폭격기인 B-52H나 B-1B에 비해 운용비용이 훨씬 많이 들지만 갈수록 B-2의 수요는 늘어나고 있다. 

 

러시아의 S-300과 같은 고성능 대공미사일 보급이 늘어나면서 스텔스 기능이 없는 전략폭격기들은 목표물에 다가가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 전략폭격기는 매우 멀리 떨어진 곳에서 장거리 공대지 순항미사일을 쏘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B-21이 양산되려면 아직 몇 년 더 걸릴 것으로 보이므로 그동안에는 B-2가 계속 바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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