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미국 대선 토론
미국 시각으로 6월 27일 저녁 조지아주에서 열린 미국 대선 1차 토론회가 미국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일단 아래 토론 영상을 20~30초 정도만 보면 어느 정도로 심각했는지 바로 알 수 있습니다.
토론을 시작한 지 10분도 안 된 상황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혼절했나 싶을 정도로 기진맥진한 모습을 보이며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발언 내용을 들어보면 더 황당합니다.
트럼프 후보가 감세를 주장하자 바이든 대통령이 민주당의 의료보험 정책인 메디케어를 옹호하는 발언을 한 것인데 중간에 말이 꼬이면서 횡설수설하더니 “우리가 마침내 메디케어를 무찌른다면…”이라고 말을 끝냈습니다.
트럼프 후보는 어이가 없는지 고개를 젓더니 “방금 마지막에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 아마 본인도 모를 것이다”라고 받아치고 “그의 말이 맞다. 그가 메디케어를 파괴했다”라면서 불법 이민자 때문에 메디케어 정책이 망가졌다고 주장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토론 내내 맨정신이 아닌 듯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말을 하다가 중얼거리거나 머뭇거리기 일쑤였고 ‘첫째’라고 말하고 다음에 ‘둘째’라고 해야 하는데 다시 ‘첫째’라고 하는 등 횡설수설하기도 했습니다.
대통령 후보 토론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막말과 비속어가 난무하기도 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 후보가 1차 세계대전 전사자를 ‘패배자(loser)’, ‘호구(sucker)’라고 불렀다면서 “내 아들은 이라크에 파병 갔다가 암 4기 판정을 받고 돌아왔다”라며 “내 아들이 패배자나 호구가 아니라, 당신이 호구이자 패배자”라고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그러자 트럼프 후보는 “그 말은 내가 한 게 아니다. 사과하라”라고 반박했고 바이든은 “내가 사과해야 한다는 생각을 사과하라”라고 맞받았습니다.
이에 트럼프 후보는 2021년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이 철수한 사실을 언급하며 “미국 역사상 가장 부끄러운 날이었다. 전 세계가 더 이상 미국을 존경하지 않고 제3세계로 취급하기 시작했다”라고 바이든 대통령을 공격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두고 트럼프 후보는 “젤렌스키가 미국에 올 때마다 600억 달러를 받아 간다. 그는 최고의 세일즈맨이다”라고 비꼬았습니다.
또 우크라이나 전쟁과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전쟁 때문에 “미국은 3차 세계대전의 수렁에 빠질 것”이라며 “내가 1월 20일 취임하기 전에 대통령 당선자 신분으로 푸틴과 젤렌스키 간에 전쟁을 끝내도록 하겠다”라고 공약했습니다.
이에 바이든 대통령은 “나토 동맹들도 우리만큼이나 우크라이나에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일본과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 50개 나라가 우크라이나를 지원한다”라고 반박했습니다.
그러나 트럼프 후보는 바이든 대통령을 가리켜 “호구, 패배자”라고 비웃었습니다.
중동 문제와 관련해 바이든 대통령이 “하마스를 제거해야 하지만 인구 밀집지역에서 무기 사용은 자제해야 한다”라고 하자 트럼프 후보는 “바이든은 팔레스타인 사람 같다”라며 “그런데 팔레스타인 사람도 바이든을 좋아하지 않는다. 몹시 나쁜 팔레스타인 사람이니까. 그는 나약한 사람이다”라고 조롱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 후보가 34개 혐의에 대해 유죄 평결을 받았다며 “무대 위에 있는 유일한 전과자가 바로 내가 지금 보고 있는 사람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트럼프는 공공장소에서 여성을 성추행했고, 아내가 임신한 날 포르노 배우와 동침하는 등 다양한 일을 했다. 도덕성이 길고양이 수준”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에 트럼프 후보는 “나는 포르노 배우와 동침하지 않았다. 유죄 판결을 얘기하는데 바이든의 아들은 매우 높은 수준의 중범죄자다. 바이든도 퇴임하자마자 중범죄자가 될 수 있다”라고 대응했습니다.
대선 토론회에서 19금 수준의 말들이 오간 것입니다.
한편 실제로 바이든 대통령의 아들 헌터 바이든은 지난 6월 11일 불법 무기 소지 혐의로 유죄 평결을 받았습니다.
두 후보 모두 고령(81세, 78세)이라서 이 문제도 하나의 쟁점이었는데 서로 자기 체력이 좋다고 자랑하면서 나온 말입니다.
트럼프 후보는 “나는 두 번이나 골프 클럽 챔피언십에서 승리했다. 그건 고령자 대상이 아니었다. 바이든은 골프공을 50야드(46미터)도 못 친다”라며 자기 골프 실력을 자랑했습니다.
그러자 바이든 대통령은 “누가 공을 더 멀리 보내는지 대결해 보자. 부통령 때 내 핸디캡은 6이었다”라며 “당신이 골프 가방을 직접 들고 다닌다면 당신과 골프를 치겠다. 할 수 있을 것 같나?”라고 쏘아붙였습니다.
골프에서 핸디캡은 규정 타수보다 얼마나 더 많이 치는지를 나타내는 말로 작을수록 실력이 좋습니다.
한국인을 기준으로 핸디캡 6이면 상위 10% 이내에 드는 상당한 실력입니다.
트럼프 후보는 “당신이 골프채를 휘두르는 걸 봤는데 핸디캡 6은 완전한 거짓말”이라고 했고 바이든 대통령은 “한때 핸디캡 8이었다”라고 대꾸했습니다.
그러자 트럼프 후보는 “애들처럼 행동하지 말자”라고 핀잔을 주었고 바이든 대통령은 “당신이 어린아이”라고 맞받았습니다.
대통령 후보의 토론이 아니라 초등학생 말싸움을 보는 듯합니다.
또 바이든 대통령이 “트럼프는 나보다 3살 어리고 능력이 훨씬 떨어진다”라고 공격하자 트럼프 후보는 “나는 두 번의 인지검사를 받았는데 완벽하게 통과했다. 바이든은 아무 검사도 안 받았다. 단 한 번이라도, 정말 쉬운 것이라도 받는 모습을 보고 싶다”라고 바이든 대통령을 조롱했습니다.
트럼프 후보는 불리한 질문이 나오면 그의 특기인 동문서답으로 대응했습니다.
2021년 의회 폭동 사건에 관해서는 계속 말을 돌리는 바람에 사회자가 “예, 아니오로 답해달라”라고 요청하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끝내 분명한 답변을 하지 않았습니다.
트럼프 후보는 “나는 누구에게도 폭동을 일으키라고 말하지 않았으며 시위를 평화적, 애국적으로 하라고 말했을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바이든 대통령이 “(트럼프 임기 중) 실업률이 15%까지 올라갔다”라고 주장하자 트럼프 후보는 “바이든이 만든 유일한 일자리는 불법 이민자를 위한 것”이라고 맞받아쳤습니다.
실제로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가 지난 4월 11일 보고서에서 “이민이 일자리와 경제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라고 할 정도로 미국 연구기관에서는 미국의 일자리 증가가 ‘이민자 효과’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토론회 내내 바이든 대통령은 기침을 하고, 가래침을 삼키고, 쉰 목소리를 내고, 고개를 숙이고 있어 고질적인 문제인 체력 문제, 나이 문제를 더 부각했습니다.
후진국 미국
요즘은 초등학교 반장 선거를 할 때도 저런 식으로 발언하는 학생은 없습니다.
말꼬투리 잡으며 말싸움하고, 동문서답하고, 횡설수설하고, 토론 중간에 조는 건지 딴생각하는 건지 정말 처참합니다.
벨기에 총리였던 기 베르호프스타트 유럽의회 의원은 토론회를 본 후 “미국의 민주주의는 노인 지배에 의해 우리 눈앞에서 죽었다”라고 엑스(X)에 적었습니다.
프랑스 언론 리베라시옹은 “현대 미국 정치사에 전례가 없는 재앙”이라고 하였습니다.
미국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바이든 지지자의 말을 빌어 “트럼프의 거짓말에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정도”로 바이든이 “역사상 최악의 토론”을 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민주당 내에서는 지금이라도 후보를 교체해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칩니다.
그런데 이게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후보 개인의 문제일까요?
아닙니다.
이번 토론회 참사는 미국 정치가 얼마나 후진적인지를 보여주는 단면일 뿐입니다.
정치뿐 아니라 미국 체제 전반이 이렇습니다.
지금 미국 내부를 들여다보면 난기류를 만나 추락하는 비행기의 내부를 보는 듯합니다.
걷잡을 수 없이 완전히 아수라장, 뒤죽박죽이 된 미국의 더 큰 문제는 대안도 없다는 것입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봅니다.
#1.
세계 경제가 어렵다는데 미국 경제만 좋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작 미국인의 삶을 보면 전혀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지독한 빈부격차 때문입니다.
미국 인베스팅닷컴의 5월 1일 자 기사 「미국의 빈부격차 악화시킨 연준의 정책」에 따르면 미국의 양적완화가 빈부격차를 더욱 악화시켰다고 합니다.
또 대부분의 미국인은 물가 상승에 대처할 수 없는 수준의 임금을 받으며 고통받고 있다고 합니다.
결국 미국의 경제지표가 좋다고 한들 재벌, 부자의 경제만 좋고 중산층은 무너졌습니다.
서민은 힘들고 정규직은 비정규직이 되며 비정규직은 실업자, 노숙자가 됩니다.
그런데 또 고용률은 증가합니다.
알고 보니 이민자 때문입니다.
2023년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자 수가 330만 명이고 이 가운데 240만 명이 불법 이민자로 추정됩니다.
기업이 미국인 노동자를 쫓아내고 저임금 외국인 노동자로 빈자리를 채우고 있는 셈입니다.
#2.
미국의 도시마다 노숙자가 넘쳐나지만 미국 정부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원하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지난 4월 23일 미국 상원은 608억 달러(약 84조 원) 규모의 우크라이나 지원 법안을 승인했습니다.
공화당의 반대로 7개월 가까이 지체된 끝에 겨우 통과된 것입니다.
이렇게 통과한 예산은 대부분 미국 군수업체에 들어갑니다.
정부가 군수업체에 돈을 주고 무기를 사서 우크라이나에 주는 식입니다.
이걸로도 부족했는지 지난 6월 13일 바이든 대통령은 젤렌스키 대통령을 만나 향후 10년 동안 훈련, 무기 등 군사적 지원과 정보 공유를 해주겠다는 내용을 담은 새 안보 협정을 체결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미국이 열심히 지원하지만 정작 우크라이나가 전쟁에서 이길 것으로 여기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입니다.
#3.
미국은 경제 영역에서 자국을 맹렬히 추격하는 중국을 주저앉히기 위해 몇 년 동안 중국 고립봉쇄 정책에 온 힘을 기울였습니다.
하지만 중국은 이미 세계의 공장이자 세계 최대 시장이 되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나라가 자국 경제를 위해 중국 고립봉쇄 정책에 소극적으로 임했습니다.
심지어 미국 기업조차 정부 정책에 저항할 지경이 되었습니다.
#4.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전쟁도 미국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미국 처지에서 이스라엘은 중동에 배치한 불침항모(가라앉지 않는 항공모함)이기에 절대 포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무기도 계속 공급하고 유엔을 비롯한 국제무대에서 철저히 이스라엘 편을 들었습니다.
이번 토론회에서도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 무기 지원을 보류했다는 주장을 두고 “우리는 이스라엘이 필요로 하는 모든 무기를 제공했고, 그들이 필요한 시점에 이를 지원했다”라고 반박하였습니다.
트럼프 후보는 친팔레스타인 시위자를 추방하고 팔레스타인 난민 입국을 금지하겠다며 극우 정책을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전쟁은 이길 기미가 보이지 않은 데다 이스라엘의 전쟁 범죄가 점점 부각되면서 비난의 화살이 미국에까지 날아가고 있습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국제사회에서 완전히 고립되고 있습니다.
#5.
북한이 끊임없이 신무기를 선보이며 미국을 위협하지만 미국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친미세력은 북한이 ‘도발’하지 못하게 미국이 확실한 군사력을 시위해 주기를 바라지만 정작 미국은 오히려 “조건 없는 대화”만 찾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북한이 초대형 탄두를 장착한 신형 미사일을 발사했지만 미국 국방부 대변인은 “우리는 북한이 대화에 복귀할 것을 계속 촉구한다. 이번 북한 미사일 발사가 미국이나 역내 동맹국 또는 협력국에 위협을 가했다는 평가는 없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심각하게 받아들일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동맹국인 한국이 위협을 느꼈다는데 미국은 ‘북한이 위협한 거 아니야’라며 모른 척합니다.
미국의 위신이 땅바닥에 떨어진 지 오래입니다.
스스로 대안을 무너뜨린 미국
이처럼 미국의 처지가 매우 암담합니다.
그러니 바이든, 트럼프 누가 대통령이 되든 미국은 미래가 없습니다.
추락하는 비행기에서 출구를 찾아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토론회가 끝나고 트럼프 후보의 지지율이 올라갔다지만 그건 트럼프 후보를 지지하는 게 아니라 바이든 대통령에게 실망해서 심판하는 것입니다.
트럼프 후보는 토론회에서 자기 임기 때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경제를 갖고 있었다”라고 자랑했지만 거짓말입니다.
물론 당시 미국 경제지표를 보면 전반적으로 상당히 좋아 보입니다.
그런데 그건 트럼프 정부가 세금을 깎아주고 정부 지출을 늘리는 기형적인 정책을 펼쳤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미국 정부 부채는 역대급으로 증가했습니다.
그리고 이마저도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실업률이 14.7%까지 치솟고 물류대란이 발생하는 등 심각한 상황이 됐습니다.
미국 대통령이 누가 되든 출로가 없다면 미국에는 정녕 대안이 없는 것일까요?
민주당, 공화당 어디에도 미래를 맡길 수 없다면 대안 정당에 힘을 실어주면 되는 것 아닐까요?
실제로 과거에 진보적 정치인이 대선에 도전한 적이 있습니다.
바로 사회운동가 출신으로 민주사회주의자를 표방하는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무소속)입니다.
샌더스 의원은 2016년, 2020년 대선 당시 민주당 대선 경선에 참여했습니다.
미국의 정치 제도는 민주당, 공화당 후보가 아니면 사실상 출마 자체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2016년 경선 당시 샌더스 의원은 돌풍을 일으켰습니다.
그러자 경선 중립을 지켜야 하는 민주당 전국위원회가 샌더스 의원 낙선을 위해 조직적으로 움직였습니다.
전당대회 직전 전국위원회 핵심 인물 7명이 주고받은 이메일 약 2만 건이 공개됐는데 여기에 샌더스 후보를 비방하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파문이 커지자 전국위원회 의장이 전당대회 후 의장직에서 물러나겠다는 성명을 발표해 사태를 무마했습니다.
2020년 경선에서도 부정 선거 논란이 있었습니다.
첫 경선지인 아이오와주 여론조사에서 압도적으로 앞서고 있던 샌더스 후보가 경선 결과 피트 부티지지 후보에게 패하는 이변이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투표 앱 시스템에 오류가 발생했고 개표 결과도 오류투성이였습니다.
이 문제로 트로이 프라이스 아이오와 민주당 위원장이 사퇴하였고 민주당은 자체 감사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감사 결과에는 투표 앱이 오작동한 사실이 없다는 황당한 결론이 담겼고 전국위원회 대변인은 ‘평가는 나중에 하고 선거에 집중하자’며 사건을 무마했습니다.
첫 경선에서 석연치 않은 이유로 밀렸지만 샌더스 의원은 곧바로 1위를 탈환했습니다.
그러자 초반 경선 돌풍을 일으켰던 부티지지 후보가 바이든 지지를 선언하고 중도 사퇴해 버렸고 결국 바이든 후보의 승리로 경선이 끝났습니다.
과거 미국은 진보 정치인을 암살해서 제거했지만 지금은 이런 식으로 낙마시킵니다.
이런 현상은 일시적으로 우연히 발생하는 게 아닙니다.
미국 사회의 주류세력이 자기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기 위해 똘똘 뭉쳐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며 그래서 더 심각합니다.
미국은 스스로 대안을 무너뜨린 나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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