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색이 짙은 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지 1,000일에 다가가고 있습니다. 유럽의 최빈국 우크라이나와 거대한 핵강국 러시아의 전쟁이라 금방 끝날 줄 알았던 전쟁이 예상외의 장기전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전황을 보면 점점 전쟁은 막바지를 향해 가는 듯합니다. 그리고 전쟁의 결과는 우크라이나의 패배로 거의 확정되고 있습니다.
이 전쟁이 장기전으로 간 건 사실상 나토와 러시아의 대리전이었기 때문입니다. 미국과 유럽은 몇 년 전부터 우크라이나군을 무장시키고 훈련도 시켰습니다. 그리고 전쟁이 시작된 후로도 막대한 무기를 제공했고 정찰 정보도 전달하며 사실상 우크라이나군을 지휘했습니다. 나토군 장교들이 아예 우크라이나에 들어가 함께 전쟁을 지휘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러시아는 처음부터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저지, 탈나치화, 돈바스지역 주민 보호를 목표로 삼고 있었습니다. 초반에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포위하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항복을 받아 전쟁을 신속하게 끝낼 구상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가 버티면서 이 구상은 실패했습니다.
지난해 러시아가 인구 8만여 명의 작은 도시 바흐무트를 점령하는 데 10개월이나 걸린 것도 이 때문입니다. 당시 전투를 지휘한 바그너 그룹은 전투의 목표가 도시 점령이 아닌 “최대한 많은 우크라이나 군인을 제거”하는 것이었다고 밝혔습니다. 바그너 그룹은 이 전투에서 우크라이나군 5만여 명이 사망했고 5만~7만여 명이 부상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본토인 쿠르스크를 침공해도 격퇴를 서두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크라이나 정예부대를 포위 섬멸할 좋은 기회로 삼고 있습니다. 뒤늦게 우크라이나는 포위에 걸린 정예부대를 구하기 위해 새로운 국경 돌파를 시도하지만 가는 족족 격퇴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참모부의 한 인사는 쿠르스크에 투입한 정예부대들이 체계적으로 궤멸하고 있다며 “우리는 함정에 빠졌고 러시아는 우리의 이를 부러뜨리고 말 것”이라고 비관했습니다.
이대로 가면 전쟁은 대략 세 가지 결론 중 하나로 귀결될 것으로 보입니다.
첫째는 우크라이나가 항복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것입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6월 14일(현지 시각) 모스크바에서 열린 러시아 대사 회의에서 휴전 조건을 발표했습니다. 돈바스지역(도네츠크주, 루간스크주)과 헤르손주, 자포로지예(우크라이나명 자포리자)주에서 우크라이나군이 철수하고 나토 가입을 공식 포기하라는 것입니다.
우크라이나 붕괴
둘째는 협상을 거부하고 전쟁을 지속하다 결국 우크라이나가 완전히 몰락하는 것입니다.
현 상태로 보면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점령지를 되찾을 가능성은 0입니다. 우크라이나군은 나토를 비롯한 일부 친미국가들이 지원하는 무기 없이는 유지조차 어려운 처지입니다. 이런 무기 제공이 언제까지 가능할지도 알 수 없습니다. 이미 지난해부터 미국과 유럽에서는 무기 재고가 바닥나 우크라이나에 줄 수가 없다는 비명이 나오고 있습니다. 많은 나라들이 우크라이나에 약속한 무기를 제때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주는 것도 오래 되고 정비도 안 되어 제대로 쓸 수도 없는 재고품이 많다고 합니다. 한 우크라이나군 포병은 “(미군이 제공한 견인포인) M777이 수시로 고장 나는 데다, 일제 사격하면 포신이 폭발해 우크라이나군 병사들이 죽거나 다치는 경우가 많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미 국방부 감찰관은 “우크라이나로 보낸 일부 전투 장비 가운데 보관 상태가 불량해 정비가 필요한 것들이 있었다”라고 인정했습니다.
지난해 3월 13일(현지 시각) 우크라이나군 제46공수여단 대대장이었던 아나톨리 코젤 중령은 워싱턴포스트와 대담에서 “대대원 전원이 죽거나 다쳤다”라며 대부분의 대대 병사가 전투 경험이 없는 신병이었다고 토로했습니다. 코젤 중령은 총소리를 무서워하며 수류탄을 한 번도 던져본 적 없는 신병들을 지휘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급기야 우크라이나는 기존 27살에서 25살로 징집 연령을 낮췄고 18살 이상 남성의 자원입대도 허용하기 시작했습니다. 16살 이상 남성은 출국이 금지되었습니다. 여성 입대 허용 연령 상한선도 40살에서 60살로 대폭 늘렸습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내에서도 이렇게 군인 수를 늘려봐야 훈련도 제대로 안 된 신병들이 전선에서 죽어 나갈 뿐이라는 한탄이 나옵니다.
9월 27일 자 파이낸셜타임스 보도 「러시아 맹공격에 얼어붙은 우크라이나 신병(Ukraine’s new infantry recruits ‘freeze’ in face of Russian onslaught)」에 따르면 신병의 50~70%가 첫 근무를 시작하고 며칠 안에 사망하거나 부상을 당하며 우크라이나 병사 평균 연령이 45살이라고 합니다.
이러니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징집을 거부하며 징병관과 충돌하는 일도 늘고 있습니다. 징병관이 사람들에게 몰매를 맞고 도망가거나 심지어 징병관 집에 불을 지르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남자들은 징집을 피해 집 밖을 나가지 않고 은둔 생활을 하며 여장하고 다니기도 합니다. 대도시에서는 수만 명이 SNS를 통해 징병관들의 움직임을 공유합니다.
아무튼 젤렌스키는 정말 우크라이나인 최후의 1명이 남을 때까지 전쟁할 것 같습니다.
한편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동부, 남부의 4개 주를 장악하고 나면 전쟁을 멈출 것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체를 점령하는 건 애초에 목표도 아니었고 불필요합니다. 러시아 처지에서는 나토와 러시아 사이에 완충지대가 있는 게 유용합니다. 하지만 러시아가 전쟁을 멈춘다고 우크라이나도 따라 할 수는 없습니다. 우크라이나는 빼앗긴 땅을 되찾겠다며 계속 러시아를 공격할 것입니다. 승산 없는 싸움을 계속하며 국력을 소모하는 셈입니다.
우크라이나 정부 통계에 따르면 전쟁 직전 우크라이나 인구는 크림반도를 제외하고 약 4,110만 명이었습니다. 여기에 동부, 남부 4개 주의 인구 880만 명이 사라졌고, 2022년 말까지 전쟁 난민 780만 명이 국외로 도피했습니다. 이미 인구의 40%가 사라진 상황입니다. 여기에 전쟁으로 죽은 사람까지 따지면 인구는 더 줄어듭니다.
특히 우크라이나 청년층의 소멸은 당장 전쟁의 패배를 불러오는 것 말고도 심각한 문제를 일으킵니다. 어떻게든 전쟁이 끝나면 폐허가 된 국가를 재건해야 하는데 경제를 일으킬 사람이 없는 겁니다. 인구 소멸, 국가 붕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우크라이나가 몰락하면 새로운 변수도 생길 수 있습니다. 바로 폴란드입니다.
폴란드는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매우 큰 피해를 보았습니다. 1939년 9월 1일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자 17일 소련도 폴란드를 침공, 폴란드는 동서로 쪼개져 독일과 소련의 지배를 받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도 소련은 폴란드 영토를 돌려주지 않아 폴란드는 영토의 20% 가까이 잃어버렸습니다. 게다가 소련이 해체된 뒤에도 이 땅은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리투아니아 영토가 되었습니다. 지금 우크라이나의 서부 5개 주는 원래 폴란드 땅이었고 폴란드계 주민이 많이 살고 있습니다.
홍완석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장은 지난해 3월 6일 세계일보와 대담에서 러시아와 폴란드가 우크라이나를 동서로 갈라 병합하면서 우크라이나가 지도에서 사라질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는 폴란드가 우크라이나 난민을 가장 적극적으로 수용해 200만 명이 넘는 난민이 폴란드에 들어왔는데 이게 우크라이나인을 폴란드에 동화시키는 과정이라고 분석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젤렌스키는 자기 나라를 지도에서 지워버린 인물로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
쿠데타 가능성
셋째는 우크라이나가 완전히 몰락하기 전에 내부에서 젤렌스키를 축출하는 것입니다.
지금 봐서는 민중 봉기가 일어날 조짐은 보이지 않고 쿠데타가 그나마 가능성이 있습니다. 군대 붕괴를 목전에 둔 군부가 무리한 군사작전을 강요하는 젤렌스키에게 불만을 품고 쿠데타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전쟁하다 보면 지휘부 내 갈등은 흔히 발생합니다. 러시아도 용병부대인 바그너 그룹과 국방부가 갈등을 빚었습니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이 서열 정리를 하면서 크게 문제가 터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에서는 대통령과 총사령관이 대립했습니다. 잘루즈니 총사령관은 지난해 말부터 젤렌스키의 군사 정책에 대해 공개적으로 이견을 밝히며 갈등을 빚다 결국 올해 2월 해임됐습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에서는 잘루즈니가 키이우를 포위한 러시아군을 격퇴한 영웅으로 인기를 누리며 여론조사에서도 젤렌스키를 월등히 앞서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잘루즈니에게 권력을 뺏길까 우려한 젤렌스키가 잘루즈니를 내쫓았다고 여겼습니다. 스티븐 브라이언 미국 국방부 전 차관은 잘루즈니가 쿠데타를 일으킬 것을 우려했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젤렌스키의 무리한 군사 정책에 불만을 품은 이가 잘루즈니 한 명은 아닐 것입니다. 7월 13일 우크라이나 종군 기자 안나 칼류지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14, 24, 43, 65, 68, 79여단 사령관이 반격을 거부해 해임됐다고 폭로했습니다. 현장에서 명령 불복종이 횡행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젤렌스키의 권력욕 때문에 우크라이나군이 붕괴하고 있다고 여길 것입니다.
지금 전선에서는 매우 심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8월 2일 자 독일 공영 방송 ‘도이치 벨레’의 보도에 따르면 2024년 상반기에 탈영과 관련해 기소된 사건만 2만 9,800건에 달한다고 합니다. 전쟁이 발발한 후부터 따지면 6만 3,200건이나 됩니다. 그런데 이 수치는 군부대 지휘관의 보고를 집계한 것에 불과하며 수사관이 직접 조사한 게 아니라서 실제 탈영 사건은 3~4배 더 많을 거라고 합니다. 탈영을 실종으로 처리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또 전선의 군 장교들은 탈영병을 상부에 보고하지 않고 부대에 복귀하라고 설득하고 있다고 합니다. 정부는 아예 탈영 초범은 처벌하지 않도록 규정을 개정하기까지 했습니다.
이 정도면 정말 군대가 붕괴하는 수준입니다.
불만에 찬 군이 쿠데타를 일으키면 당장 전쟁을 끝낼 것입니다. 그리고 젤렌스키세력을 모두 축출하고 반정부 성향의 세력과 손을 잡을 것입니다. 우크라이나에는 원래 친러 정권이 있었는데 미국과 유럽의 사주를 받은 세력이 2013년 유로마이단 쿠데타를 일으켜 오늘의 친미·친유럽 정권이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다시 쿠데타를 일으켜 이 정권을 뒤집는다면 친러 정권이 들어설 수도 있습니다.
사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가까이 지내면서 많은 이득을 얻었습니다. 러시아에서 우크라이나를 거쳐 유럽으로 연결된 가스관 통관료로만 우크라이나가 연간 2조 원 가까이 벌었습니다. 이걸 포기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미국도 우크라이나를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 친미 정권을 세우기 위한 공작을 펼칠 것이며 이를 끊어내지 못하면 우크라이나에는 정치적 혼란이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북러협력과 우크라이나 전쟁
전쟁 패배가 거의 확정적인 상황에서 절망에 빠진 젤렌스키나 미국, 유럽은 점점 무리수를 둡니다. 그중 하나가 러시아 본토를 장거리 타격무기로 공격하는 것입니다. 모스크바를 때리면 러시아 국민들 속에 반전 여론이 들끓어 러시아가 전쟁을 멈추지 않겠냐는 망상에 가까운 희망입니다.
물론 전쟁 중에 적의 후방을 때리는 건 상당히 효과적인 전술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적을 자극해 더 거센 공격을 부르는 역효과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지금은 역효과 정도가 아니라 무기를 제공한 나라가 핵공격을 받으며 3차 세계대전으로 번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젤렌스키나 일부 유럽 나라들은 전쟁에서 지느니 차라리 확전이 낫다는 광적인 집착을 하며 미국의 동의를 요구했습니다. 미국도 유럽 안에서만 전쟁이 국한된다면 핵전쟁을 하든 뭘 하든 반대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래서 9월 13일 영국 총리가 미국에 날아가 이 문제를 결정하려 했습니다. 그러자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서기도 북한으로 찾아가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났습니다. 북한과 미국에서 진행된 두 만남이 어쩌면 우크라이나 전쟁의 운명을 갈랐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북한에서 진행된 회담에서 아마도 북한은 어떤 상황이 발생해도 철저히 러시아를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미국을 향한 중대 경고를 실물로 보여주었습니다. 대규모 핵물질 생산기지를 공개해 핵무기를 대량 생산하고 있음을 증명했고, 600밀리미터 초대형 방사포 시험 사격과 특수부대 훈련 모습으로 만일의 상황에서 주한미군을 핵으로 흔적도 없이 증발시켜 버리겠다는 의지를 드러냈습니다.
북한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현지지도 소식을 하루에 세 가지나 쏟아낸 건 매우 이례적입니다. 그만큼 미국을 향해 중대 경고를 한 것입니다.
북한의 경고를 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아마 기가 질렸을 듯합니다. 러시아 본토 공격을 승인할지 검토해 보겠다며 긍정적 반응을 보이던 태도를 180도 바꿔버렸습니다. 영국 총리는 실망하여 돌아가야 했습니다.
이렇게 우크라이나 전쟁의 확전 움직임에 제동이 걸렸습니다. 3차 세계대전 위기도 넘겼습니다. 매우 중요한 순간이었던 것입니다. 북한과 러시아가 협력하면 국제 정세에 중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이기도 합니다.
지금 미국과 유럽, 우크라이나는 북한이 러시아를 도와주는 바람에 전쟁에 지게 생겼다며 아우성칩니다.
지난 10월 4일에도 미국 언론은 북한이 매년 러시아에 약 300만 발의 포탄을 수출하는데 이게 러시아군이 사용하는 탄약의 절반에 해당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최근 러시아가 도네츠크 남서쪽의 요새 도시 부흘레다르(러시아명 우글레다르)를 점령할 때도 북한 무기가 도움이 되었다고 분석했습니다.
또 같은 날 우크라이나 언론은 도네츠크 인근 러시아 점령지역에서 우크라이나군의 미사일 공격으로 20여 명이 사망했는데 이 가운데 북한군 장교 6명이 포함됐다고 주장했습니다. 러시아 SNS에 따르면 북한군 장교가 러시아군 훈련 시범을 참관 중이었다고 합니다.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지만 북한군이 참전한 건 아닌지 매우 예의주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우크라이나 전쟁은 더 어찌해볼 수 있는 게 없어 보입니다. 미국도 골치 아픈 우크라이나보다는 이스라엘로 자연스레 눈길이 가나 봅니다. 이스라엘은 여기저기 계속 전선을 확대합니다. 하지만 조만간 이스라엘도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는 상황이 될 듯합니다.
앞으로 전쟁이 어떻게 정리될지 지켜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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