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잠함에 승선한 인민군 최고사령관
2012년 3월 9일 북측 언론매체들은 김정은 인민군 최고사령관이 해군 제123군부대를 시찰한 소식을 전하였다. 김정은 최고사령관의 시찰에는 리영호 총참모장과 김영춘 인민무력부장, 인민군 대장 3명과 인민군 상장(한국군에서는 중장) 2명이 동행하였고,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박도춘 당중앙위원회 비서, 리재일 당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황병서 당중앙위원회 부부장도 동행하였다. 동행자 명단만 보더라도 그 날의 시찰이 중요한 시찰이었음을 직감할 수 있다.
정명도 인민군 해군사령관이 김정은 최고사령관을 영접한 것을 보면, 해군 제123군부대가 서해함대사령부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서해함대사령부는 서해와 평양을 연결해주는 관문인 남포항에 있다.
김정은 최고사령관은 그 날 남포 앞바다에서 실시된 서해함대훈련을 현장에서 직접 지도하였는데, 보도기사에 따르면, 김정은 최고사령관은 동행한 간부들과 함께 구잠함 202호를 타고 서해함대훈련이 벌어진 남포 앞바다에 나갔다.
여기서 독자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구잠함이라는 함선이름이 나오는데, 구잠함(sub chaser)이란 적국 잠수함을 탐지하여 공격하는 함선을 말한다. 다른 나라 해군은 적국 잠수함을 탐지하여 공격하는 작전에 대잠초계기나 대잠헬기를 동원하는 경우가 일반적이고, 또한 구축함이나 초계함에도 대잠작전장비가 갖춰져 있어서 구잠함을 별도로 보유하지 않는데 비해, 북측은 구잠함을 중시한다. 이를테면, 서해함대사령부 예하 6개 전대(戰隊) 가운데 대잠작전을 전담하는 구잠함전대가 1개 편성되었다.
그런데 김정은 최고사령관은 군항에 계류 중인 여러 함선들 가운데서 왜 하필이면 구잠함을 타고 바다로 나갔을까? 그 사연은 아래와 같이 설명된다.
첫째, 보도기사에 “해병들은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동지께 그 어떤 해상 및 수중작전도 성과적으로 진행할 수 있게 평시에 련마해온 자기들의 싸움준비상태를 보여드리였다”고 씌여있는 것을 보면, 그 날 서해함대훈련에 수상전투함은 물론 잠수함도 훈련에 동원된 것이 확실해보인다. 인민군 잠수함들이 수중작전을 어떻게 훈련하는지를 알려면, 구잠함에 설치된 수중탐지장비를 통하지 않고서는 알 길이 없다. 김정은 최고사령관의 제123군부대 시찰소식을 전한 <조선중앙통신> 2012년 3월 9일 보도기사에 실린 보도사진 8장 가운데 구잠함 202호 함내에서 컴퓨터 단말기처럼 생긴 장비를 유심히 살펴보는 김정은 최고사령관의 모습을 촬영한 사진이 한 장 있는데, 바로 그 사진이 그 구잠함호에 설치된 잠수함 탐지장비를 살펴보는 장면(아래 사진)이다.
▲ 김정은 북 인민군 최고사령관이 구잠함 202호 함내에서 관측장비를 보고 있다. [자료사진= 인터넷 검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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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보도기사에 따르면, 그 날 김정은 최고사령관은 아침시간에 구잠함 202호를 타고 남포 앞바다로 나가 오랫동안 해상에 머물며 서해함대훈련을 지도한 다음, 다시 남포항으로 돌아가서 서해함대사령부와 산하 부대시설과 군항을 시찰하였고, 남포항에서 구잠함 202호를 다시 타고 황해남도 과일군 앞바다에 있는 초도 해군기지로 떠났다. 남포항에서 초도 해군기지까지 항해거리는 약 70km이므로, 구잠함 202호는 왕복거리 약 140km를 항해한 셈이다.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서해 상공 높은 곳에서는 ‘두 눈에 쌍심지를 켠’ 미국군 정찰위성이 인민군 움직임을 감시하고 있고, 서해 바다밑에서는 미국군 잠수함이 언제 어디서 조용히 나타날지 아무도 예측하기 힘들다. 서해의 북측 연안 바다밑도 안전한 공간이 아니다. 최고사령관의 신변안전을 자기들의 목숨을 걸고 지키는 인민군이 그런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서해 해상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머물러야 하는 최고사령관의 시찰길에 구잠함을 배치한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구잠함 202호는 지휘함이다
위의 인용문에는 김정은 최고사령관이 “구잠함의 지휘소에서 함장의 지휘모습도 보아주셨다”고 씌여있다. 이것은 구잠한 202호가 대잠작전을 수행하는 다른 구잠함들과 달리 해군작전을 지휘하는 지휘함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구잠함 202호는 서해함대사령부 지휘함인 것이다.
다른 나라 해군 지휘함들이 대형함선인 것처럼, 인민군 서해함대사령부 지휘함인 구잠함 202호도 북측 함선들 가운데서는 규모가 꽤 큰 함선임을 직감할 수 있다. 김정은 최고사령관의 제123군부대 시찰소식을 전한 <조선중앙통신> 2012년 3월 9일 보도에 실린 보도사진 8장 가운데, 김정은 최고사령관이 초도 해군기지를 시찰하기 위해 구잠함 202호를 타고 남포항을 떠날 때 부두에서 열렬히 환송하는 해군장병들을 향해 손을 흔드는 장면을 촬영한 보도사진이 한 장 있는데, 그 보도사진에 구잠한 202호 전경에 찍힌 것은 아니지만 함선규모가 크다는 점은 충분히 알 수 있다.
서방세계 군사전문가들의 정보에 따르면, 북측 해군은 400t급 구잠함 6척을 보유하였지만, 북측 해군에 400t급 구잠함이 6척밖에 없다는 것은 착오다. 서방세계 군사전문가들은 북측이 1970년대 후반에 중국으로부터 하이난급 구잠함 6척을 도입한 것만 보고 그렇게 추정한 것인데, 그들의 추정과 달리 북측은 400t급 구잠함을 자체로 생산하였다. 다른 나라에서 도입한 구잠함 6척만 가지고서는 서해함대와 동해함대 예하에 구잠함전대를 각각 1개씩 편성하지 못한다.
이런 사정을 생각하면, 구잠함 202호는 400t급 함선이어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보도사진에 나온 구잠함 202호는 400t급 소형함선보다 훨씬 큰 대형함선이다. 그 날 김정은 최고사령관이 승선해 시찰현장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구잠한 202호 승조원 해군병사들은 400t급 소형함선에는 모두 탈 수 없는 120명이었다. 상식적으로 판단해도, 400t급 소형함선을 지휘함으로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떻게 된 일일까?
북측 해군이 보유한 구잠함들 가운데는 2,700t급 구잠함이 1척 있다. 이 구잠함은 길이가 84m, 폭이 14.1m이고, 승조원 120명 이상 탄다. 이런 사실을 생각하면, 김정은 최고사령관이 승선하였던 서해함대사령부 지휘함은 2,700t급 구잠함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 2,700t급 구잠함은 원래 원산항에 있는 동해함대사령부 소속이었다. 동해 바다밑에서 미국군 잠수함을 찾던 구잠함이 왜 서해로 옮겨갔을까? 그 구잠함이 동해에서 서해로 옮겨간 때는 2003년이었으니, 그 무렵에 한반도 군사상황에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한반도 군사정세 변화는 북미관계에서 일어나는 것인데, 2003년에 북미군사관계에서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미국군 잠수함전력은 2003년을 기점으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는데, 그것은 수중배수량이 7,800t이 되는 버지니아급 공격용 핵추진 잠수함을 바로 그 해 8월 16일에 처음으로 진수한 것이다. 버지니아급 공격용 핵추진 잠수함은, 미국군이 쓰는 표현을 빌리면, ‘지역분쟁’에 개입하기 위해 개발한 최신형 잠수함이다. 그들이 말하는 ‘지역분쟁 개입’이란, 서해와 같이 수심이 얕은 바다속을 휘젓고 다니다가 정밀타격기능을 갖춘 순항미사일로 지상의 타격목표물을 파괴하고 특수군 병력을 수중에서 해안으로 침투시키는 무력침공을 뜻한다. 버지니아급 공격형 잠수함이 그런 형태의 기습적인 무력침공을 가할 첫째가는 대상이 북측이라는 사실은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다.
2003년부터 현재까지 미국군은 버지니아급 공격형 잠수함을 8척이나 작전배치하였는데, 그 잠수함에는 지상의 타격목표물을 파괴할 순항미사일을 발사하는 수직발사관이 12개, 533m 어뢰를 발사하는 어뢰발사관이 4개가 장착되었다. 그 잠수함에서 발사하는 대지공격 미사일에는 전술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다. 만일 이런 기습작전능력을 가진 버지니아급 공격형 잠수함이 평양의 관문인 남포 앞바다까지 수중침투한다면, 북측에게는 심각한 위협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도발적인 잠수함 무력증강에 대처하여 북측은 2003년에 구잠함을 동해에서 서해로 이동배치하고 서해함대의 대잠작전능력을 크게 증강한 것으로 보인다.
더 깊은 사연이 깃들어있다
김정은 최고사령관이 서해함대훈련을 지도하고 초도 해군기지를 시찰하기 위해 구잠함 202호에 승선하였던 것에는, 위에서 설명한 군사상황에 대한 인식만으로는 모두 설명되지 않는다. 거기에는 군사문제로는 설명할 수 없는 더 깊은 사연이 깃들어있다.
첫째, 보도기사에서 눈길을 사로잡은 대목이 있다. “아침식사도 번지시고 바람 세찬 구잠함의 지휘소에서 함장의 지휘모습도 보아주시고 속도를 더 내라고 고무도 해주시는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동지를 우러러 지휘관들과 해병들은 뜨거운 것을 삼키었다.” 문장은 비록 짤막하였으나, 그 문장에는 많은 사연이 담겨있다. 김정은 최고사령관의 제123군부대 시찰소식을 전한 <조선중앙통신> 2012년 3월 9일 보도는, 어쩌면 그 문장에 담긴 깊은 사연을 전해주기 위해 작성된 것인지도 모른다.
이 땅의 모든 근로자들과 학생들이 어머니와 아내들이 준비한 따스한 아침밥을 먹고 출근길에 오른 그 시각, 김정은 최고사령관은 구잠함 202호를 타고 찬바람 부는 서해 바다에 나가 있었다. 그 대목을 읽는 북측 인민들은 전선시찰길에 내리는 세월의 눈비를 맞으며 줴기밥(남측에서는 주먹밥)으로 끼니를 때운 것으로 북쪽 언론에 알려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모습을 연상하였을 것이다.
다른 나라 국가수반들의 군부대 시찰은 임기 중 매우 특별한 때에 한 두 차례 의례적으로 하는 것이 전부다. 국가수반이 아침식사도 하지 않은 채 함선을 타고 바다에 나가 함대훈련을 지도하는 것은 다른 나라에서는 상상하지 못한다. 다른 나라 국가수반들과는 전혀 다른 북측 최고영도자의 모습, 그처럼 헌신적으로 복무하는 것으로 그려지는 언론보도 등을 보며 감동하는 인민군 군인들과 북측 인민들 마음에서 최고영도자에 대한 충정이 우러나오는 것으로 보인다. 북측 인민들이 ‘사회주의대가정’이라는 말로 최고영도자와 자기들의 관계를 표현하는 것은 그래서 과장으로 보이지 않는다.
둘째, 깊은 사연은 <조선중앙텔레비죤>이 2011년 1월 8일에 방영한 ‘기록영화 위대한 령장을 모시여 26’에 나온다. 영화제목이 말해주는 것처럼, 그 기록영화는 생전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남다른 충정을 바치며 사회주의건설을 위해 분투하다가 세상을 떠난 북측의 군사지휘관들, 당간부들, 예술인들, 과학자들의 위훈을 전해주는 ‘영웅열전’이다.
그런데 바로 그 ‘영웅열전’에 구잠함전대장이었던 리송무라는 군사지휘관의 이야기가 나온다. 기록영화가 전해준 바에 따르면, 리송무 구잠함전대장은 “18년 동안 2,700여 건의 각종 해상정황처리를 수행”하였는데, “적 해안정찰정 863호와의 해상전투에서 그 해안정찰정을 격침하는 전공”을 세워 ‘공화국 영웅’이 되었다. 리송무 구잠함전대장이 지휘한 해상전투에서 격침된 해안정찰정 863호의 정체는 무엇일까? 기록영화에 나오는 표현을 옮기면, “박정희 괴뢰도당의 해군함선을 격침하고 도발자 수명을 사로잡았다”는 것이다. 이 해설을 읽어보면, 1970년대 어느 날 해상전투가 있었는데, 그 해상전투에서 남측 해안정찰정 863호가 리송무 전대장이 지휘한 구잠함의 공격을 받고 격침되었고, 생존자 몇 사람이 포로로 사로잡혔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난다.
1967년 1월 19일 남측 해군의 900t급 당포호가 동해 해상군사분계선 부근에서 북측 인민군 해안포에 맞아 격침되고 승무원 79명 가운데 39명이 사망한 사건은 역사기록에 남아있는데, 해안정찰정 863호가 격침되고 생존자들이 포로로 잡힌 사건은 금시초문이다. 북측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당시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이 그 사건을 은폐하고 넘어간 것으로 보인다.
그 기록영화는 해안정찰정 863호를 격침한 무공을 세워 ‘공화국 영웅’ 칭호를 받고 구잠함전대장으로 복무해오던 리송무 전대장의 마지막 순간을 시청자들에게 전해준다. 그는 불치의 병으로 숨을 거두는 임종의 시각에 병상을 지키던 가족들에게 종이와 펜을 가져다 달라고 하였다. 그가 육필로 쓴 유언이 기록영화 화면에 나타나는데, 임종의 시각에 혼신의 힘을 다하여 한 글자 한 글자 써내려간 흔적이 역력하다. “마지막 부탁은 우리 최고사령관 동지와 우리의 김정은 대장동지를 잘 받들어 모셔 영원히 충성하여 주”...그의 문장은 여기서 끝난다. 마지막 몇 글자를 더 쓰지 못하고 임종한 것이다. ‘공화국 영웅’ 칭호를 받은 구잠함전대장은 그렇게 최후 순간을 맞았다.
기록영화에는 리송무 전대장이 별세한 날짜가 나오지 않지만, 그가 남긴 유언을 읽어보면 그가 세상을 떠난 시기가 지금으로부터 불과 몇 해 전 인민군 지휘관들이 김정은 대장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로 옹립하던 기간 중이었음을 알 수 있다. 자기 최고사령관과 후계자에게 끝까지 충직하였던 전대장의 넋이 깃든 구잠함 202호에 김정은 최고사령관이 승선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2012년 3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