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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가 발전하면 진보운동도 발전한다

박명훈 주권연구소 연구원 | 기사입력 2020/07/09 [16:07]

남북관계가 발전하면 진보운동도 발전한다

박명훈 주권연구소 연구원 | 입력 : 2020/07/09 [16:07]

남북관계 차단한 색깔론 : 진보운동 탄압시대

 

“끼이익 철커덕, 쿵!!!"

 

1948년 8월 15일, 미군정이 점지한 친일·친미 이승만이 대한민국의 권력을 틀어쥐면서 민족이 갈라지고 남북관계의 대문도 굳게 닫혔다. 해방 직후부터 70여년 분단세월 동안 기득권을 잡은 분단적폐세력들은 남북관계를 닫고 ‘색깔론’으로 민주주의와 진보운동을 대대적으로 탄압해왔다.

 

“11만 8,621명 검거·입건, 132개 정당·사회단체 해산.”

 

위 통계는 1949년, 이승만 정권에 의해 국가보안법 혐의로 탄압받은 시민들과 단체의 숫자를 가리킨다. 이승만 정권은 자신의 독재를 비판하는 국민을 싸잡아 국가보안법 혐의를 적용시켰다. 그 숫자가 하도 많다보니 검거하기에도 벅차 나중엔 공안당국이 진보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향해 ‘전향’과 ‘회유’에 나섰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그렇다면 진보운동이 무엇이기에 이승만 정권이 저토록 악독하게 대응했을까? 진보(進步)를 뜻풀이하면 ‘앞으로 나아가는 걸음’으로, 진보운동이란 세상을 더 낫게 더 살기 좋게 바꾸기 위한 민중의 실천과 행동을 이른다. 해방 직후부터 외세 개입 없는 자주, 국민이 나라의 주인 되는 민주, 한반도의 평화, 민족의 통일을 바라는 국민의 열망도 드높았다. 하지만 이승만 정권은 남북관계를 닫고 국가보안법의 이름으로 국민의 목소리에 재갈을 물리려 들었다.

 

일단 공안당국이 ‘당신은 북한과 친하다’며 “빨갱이” “종북” “간첩” 꼬리표를 붙이고 나면 그 사람은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앞서 살폈듯이 1949년 한 해에만 12만 명 가까운 국민이 간첩으로 몰렸고 진보운동의 입지는 좁아져만 갔다. 분단을 조장하고 친일파를 앞장세워 권력을 잡은 저들이 정반대에 서있는 이 땅의 자주, 민주, 평화, 통일을 외친 국민을 탄압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정권이 남북관계를 닫고 색깔론을 맹렬히 부추기는 이런 조건에서 민주주의와 진보운동은 대단히 심각하게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분단적폐세력에 의해 어느 날 갑자기 감옥으로 잡혀 들어간 이들이 숱하게 많아서 사례 하나 하나를 열거할 수 없다. 지금부터는 진보운동에 대한 분단적폐세력의 대표적인 탄압·조작사건을 시기별로 꼽아 소개드리려 한다.

 

1958년, 조봉암 진보당 대표는 별안간 국가보안법 위반, 간첩죄로 체포당한다. 조봉암 대표는 사회민주주의와 평화통일론을 강조하며 뚜렷한 진보적 색채를 드러냈는데 이게 빌미가 됐다. 간첩죄와 국가보안법에 따르자면 평화통일론은 간첩짓이고 국시에 어긋난다는 게 이승만 정권의 설명이었다. 아무런 죄가 없으니 거리낌이 없었던 조봉암 진보당 대표는 자진해서 경찰서에 갔지만 돌아온 건 사형 선고였다. 한국 정치사상 처음으로 사법살인을 당한 조봉암 대표와 함께 진보운동의 기세도 산산이 조각나게 된다.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도 남북관계를 차단하고 간첩 조작과 ‘빨갱이 사냥’에 나섰다. 박정희 정권 당시 1964년 1차, 1974년 2차 인혁당 사건을 조작해 진보운동 인사들을 간첩으로 몰아 살해했다. 지지율이 떨어질 때마다 주기적으로 대대적인 공안바람을 일으켜 사람들의 입을 다물게 만든 것이다. 심지어 박정희 정권은 서울로 유학 온 재일동포 대학생들을 ‘북한과 가까운 간첩’으로 조작해 간첩으로 엮는 악랄한 수를 썼다.

 

전두환 정권 출범 직후인 1981년 3월을 배경으로 한 영화 <변호인>에 나오는 ‘부림사건’도 조작사건이었다. 정권과 공안당국은 부산에서 국가보안법의 ‘이적 표현물 학습’과 ‘반국가단체 찬양 및 고무’를 들어 22명을 구속했다. 여기에는 진보운동과 전혀 관련이 없는 회사원, 학생들도 포함되어 충격을 줬다. 한마디로 ‘찍소리도 하지 말아라. 정권을 비판하면 누구라도 북한과 엮어 끝장 낼 수 있다’는 정권의 경고였다.

 

금강산관광을 닫은 이명박 정권 들어서도 악랄한 조작사건이 터졌다. 이명박 정권은 색깔론을 무기 삼아 정권 초기부터 ‘미국산 광우병 소고기 수입 파동’으로 봇물 터진 촛불집회를 제압했다. 경찰, 국정원 등 공안당국은 실천연대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가했다. 그리고는 ‘이적단체들이 북한의 사주를 받아 촛불을 배후조종하고 있다’는 얼토당토 않는 결과를 내놓았다. 광우병 파동 때 촛불시위에 참가한 시민 모두를 종북 세력으로 매도하며 재갈을 물린 것이다.

 

이명박 정권에서 박근혜 정권으로 넘어가기 직전인 2013년 1월에는 유우성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이 터졌다. 이어 박근혜 정권인 2014년 12월 19일, 통합진보당이 강제로 해산되며 색깔론 공포정치는 정점을 찍었다. 박근혜 정권 당시 자칫하면 종북·빨갱이로 몰릴 수 있다며 움츠려들었던 날들을 많은 분들이 기억할 것이다.

 

앞서 소개한 사례들은 남북관계가 나쁘면 나쁠수록 진보운동을 겨눈 색깔론과 탄압이 손쉬워진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남북관계 열리자 색깔론은 먹통 : 진보운동의 부활

 

 

이승만을 국부(나라의 아버지)로 모신 분단적폐세력은 적대적 남북관계와 색깔론으로 권력을 틀어쥐어왔다. 색깔론의 화살이 사방팔방으로 날아가면서 사회는 공포 분위기에 빠졌고 민주주의와 진보운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이를 완전히 정반대로 뒤집어보면 어떨까? 남북관계가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색깔론은 고개를 들지 못하고 진보운동의 활기가 살아나게 된다는 얘기다.

 

실제로 남북관계가 열린 자리에는 색깔론이 갈 곳을 잃고 진보운동의 무수한 너울이 밀려들었다. 남북관계 개선을 앞장세운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고 2000년 평양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나 6.15공동선언을 합의하면서 민주주의와 진보운동의 상황이 급변한다.

 

마침내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 남북관계가 본격 해금되자 탄압과 색깔론은 순식간에 먹통이 된다. 진보운동 전반에는 지금껏 볼 수 없던 새로운 지평이 열렸다. 예컨대 농민, 노동자들이 전국 곳곳에서 갖가지 구호를 들고 아스팔트 바닥에서 신명나게 제 목소리를 냈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사상 처음으로 지자체와 국회에 진출한 진보정당의 약진도 놀라운 수준이었다. 2000년에 창당한 민주노동당은 2002년 지방자치선거, 2004년 16대 총선에서 큰 성과를 거뒀다. ‘국회에 입성한 첫 진보정당, 민주노동당’이 배출한 노동자, 농민 출신 국회의원들의 활동은 여론의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비록 민주노동당의 의석수는 10석이었지만, 지지도는 10%를 훌쩍 넘나들었고 한국 사회의 진보를 바라는 국민의 기대와 성원이 끊이질 않았다.

 

그러다 이명박근혜 정권을 지나 문재인 정부에서 남북관계가 열리면서 진보운동은 다시 기지개를 편다. 결정적으로 남북정상회담이 3차례나 열린 2018년,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솔직하고 거침없는 말과 행동들이 전해지면서 분단적폐세력의 무기였던 색깔론은 무력화된다. 남북관계 발전으로 북한 사람이 ‘뿔 달린 악마’가 아니라는 진실을 마주하게 되면서, 국민 사이에서 색깔론이 단숨에 허물어진 것이다.

 

적대적 남북관계로 상징되는 박근혜 정권의 몰락·남북관계 개선과 함께 민주노총 회원이 100만 명을 돌파한 것도 공고했던 색깔론이 갈 곳을 잃었다는 분명한 징조다. 민주노총에 그동안 분단적폐세력이 붙여온 ‘좌파 종북세력’ 같은 딱지가 대중들 사이에서 해제됐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대규모 노조 중심이었던 민주노총에 각 지역사회의 소규모 노조들이 대거 함께 하게 되면서 민주주의와 진보운동의 역량은 더 발전했다.

 

지난해 7월, 판문점 남북미 3자 정상회동이 끝나자마자 시작된 일본 정부의 경제공격에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전 국민 사이에서 들불처럼 번졌다. 당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을 폐기해야 한다는 여론이 과반을 훌쩍 넘었고, 한반도에 일본 자위대를 끌어들여 북한과의 대결을 부추기는 미국을 정확히 겨눈 ‘민족 자주’의 목소리도 드높아졌다. 만약 박근혜 정권 때였다면 이런 일은 상상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번에는 또 다른 사례를 들어보자.

 

2019년 8월 문재인 대통령이 조국 민정수석을 법무장관으로 지명했을 때, 과거 조국 후보자가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사노맹 경력’은 별다른 꼬투리를 잡히지 않았다. 이 점은 올해 들어 이른바 ‘윤미향 사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윤미향 의원의 남편인 김삼석 씨가 과거 국가보안법 혐의인 ‘남매간첩단 사건’에 연루됐다는 말이 나왔지만 소리 소문 없이 묻혔다.

 

조국과 윤미향, 두 사람의 사례는 색깔론이 전혀 먹히지 않게 된 정치지형을 잘 보여준다. 분단적폐세력이 부정의혹으로 우회해 두 사람을 공격해야 할 만큼 예전 같은 색깔론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된 것이다.

 

국민이 색깔론 끝장낸 21대 총선 : 진보운동의 전망

 

남북관계 발전으로 ‘북한 악마화’가 해제되면서 분단적폐세력은 잔뜩 힘이 빠졌다. 색깔론이 먹히지 않은 건 지난 4.15총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색깔론과 북풍을 무기로 휘둘러오던 미래통합당이 총선에서 역사적 참패를 당한 건 이를 아주 잘 드러내는 명장면이다.

 

총선 결과를 돌이켜보면 판문점선언 이후 남북관계가 지지부진했음에도 색깔론은 전혀 가동되지 못했다. 2018년, 국민이 직접 생중계를 통해 북한의 면면을 직접 목격한 경험이 단숨에 색깔론 공포를 무너뜨렸기에 가능한 쾌거였다.

 

선거 직전 수상쩍은 북풍이 휘몰아쳐 선거 결과가 뒤집힌 예전과는 달랐다. 미래통합당과 조선일보로 대표되는 분단적폐 카르텔이 총선 직전까지 북풍을 붙잡고 반격을 도모하려 했지만 전혀 통하지 않았다. 국민이 단결해 나선 결과 진보민주진영은 역대 최고성적으로 승리했고 미래통합당은 국회 상임위를 다 내줘야 했다. 21대 총선은 국민이 색깔론에 전혀 흔들리지 않고 주권을 행사해 나라를 바로세운, 그 자체로 진보운동의 엄청난 역사다.

 

반면 분단적폐세력은 청산 직전의 대위기로 내몰렸다. 그동안 분단적폐세력의 ‘절대무기’였던 색깔론이 꺾이면서 한국 사회의 정치지형 자체가 뿌리째 뒤집어졌다. 비유하자면 분단적폐세력의 색깔론 천하가 막바지에 이르렀다고 표현할 수 있다. 정반대로 국민이 주도하는 진보운동 천하가 바야흐로 본격 첫 발을 뗐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제 국가보안법 철폐를 비롯해 검찰개혁, 주한미군 철수, 차별금지법 제정, 기본소득, 전국민고용보험 등의 온갖 진보적 의제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한마디로 분단논리가 먹히지 않는 세상에서 온 국민이 진보운동의 주역으로 우뚝 올라선 것이다.

 

남북관계가 발전할수록 진보운동이 발전한다는 점은 자명하다. 국민이 앞장서 너나 할 것 없이 자주, 민주, 통일을 촉구할 앞으로의 날들이 사뭇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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