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서)
3. 사회적 소통 (민주주의)
‘민주주의’로 상징되는 사회내부의 원활한 정보 공개와 소통은 방역 성공에 있어서 빠트릴 수 없는 요소이다. 이 부분은 방역상황에 대한 투명한 정보의 공개 여부, 그리고 그 결과로서 정부 방역정책에 대한 민중의 신뢰도 상승과 자발적 호응 정도를 주목해 보아야 한다.
먼저, 정보의 원활한 사회적 소통을 위한 중국 정부의 노력을 보기로 하자.
중국 정부는 외부에서 보도된 것과는 달리 방역 관련한 상황을 초기부터 전체 사회성원과 공유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을 곳곳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비록 우한의 지방 관원이 전염병 전파 소식을 숨기려는 시도가 있긴 하였지만, 이 같은 오류는 신속히 교정되었다. 이것은 지난 2003년 사스 대유행 때의 경험이 작용한 결과라 보여 진다. 그 당시 ‘사회불안’을 이유로 상당기간 지방정부들이 상황을 감추는 바람에 오히려 사회 전반의 공황을 유발하면서 피해를 더 키운 쓰라린 교훈이 있었다. 중국 당국은 SARS 사태가 일단락 된 후 당시의 교훈을 바탕 삼아 방역 관련한 법규와 체계를 정비하고 유사시 비슷한 상황의 발생에 대비하였다. 그 같은 준비는 이번에 코로나19 발생 초기부터 오류를 제때에 바로 잡고 규정(매뉴얼)에 입각한 조처를 신속하게 취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중국 우한의 초기 방역에는 확실히 지적해야 할 부분이 적지 않다. 우한시의 실책은 무엇보다도 발생 초기 바이러스의 파괴력을 과소평가함으로써 대중으로 하여금 그 위험성을 경시하게 만든 점에 있다. 중국 내 여론 역시 이에 대한 비난 여론이 비등하였다.
중국 정부는 이에 대해 주저 없이 우한 시와 후베이 성의 주요 당국자들과 위생 관리들을 해임 조처하였다. 이는 미국과 서유럽 선진국 등에서 지금까지 방역 부실을 이유로 단 한명도 문책 소식이 전해지지 않은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 같은 분명한 문책은 대중들이 정부의 방역에 임하는 각오를 이해하고 정책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데 도움이 되었다.
우한과 후베이성 관료들도 심기일전 하여 이후 정보 공개를 통해 사회와의 소통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특히 시와 성 정부 최고 지도자들이 직접 사회와 소통하는 방식을 중시하게 되었다. 예컨대 우한시에 대한 전면 봉쇄가 실시 된지 며칠 지나지 않아 전염병 상황이 가장 엄중했던 무렵인 1월 26일 왕샤오둥(王晓東) 후베이 성 성장(湖北省长)과 저우셴왕(周先旺) 우한 시장이 참석한 첫 기자회견이 열렸다.(저우센왕은 2020.1.24.자로 우한시 당 서기직에서는 해임되었지만, 우한 시장직은 유지하고 있었다. 우한 시장은 ‘정부직’이기 때문에 그 임명과 해임은 해당 지역의 최고기관인 인민대표자대회의 공식 절차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하지만 이 첫 기자회견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던 것으로 평가 된다. 왕샤오둥 성장은 후베이 성의 마스크 연간 생산능력 수치를 잘못 말해서 네티즌으로부터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후베이 성 간부들은 두려움에 위축되지 않고 1월 26일부터 29일까지 후베이 성장 및 우한 시장과 서기가 계속해서 차례로 기자회견을 가졌다.
성과 성 정부 소재지의 지도 간부가 이렇듯 언론과 소통하는 빈도가 높은 것은 중국에서는 매우 보기 드문 현상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방역 상황과 관련한 기자회견처럼 전문 지식을 요하고 소통 주제가 무거운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기자회견장에서 민감한 이슈가 다루어지면서 전국의 무수한 주목을 받게 되었으며, 그 중 많은 것은 비판적 시선의 검열을 받게 되었다. 아마도 이런 분위기는 언론 인터뷰에 익숙하지 않은 중국의 많은 지도 간부들로서는 난로 위에 올려 져 달궈지는 것과 같은 기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1월 27일과 그 이후 기자회견에서는 더 이상 1월 26일의 ‘폭뢰’ 같은 상황은 나타나지 않았으며 여론도 차츰 호의적인 방향으로 전환되었다. 기자회견의 발표자와 청중 간에 적응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기자회견을 이렇게 열어가는 것 자체가 대중에 대한 존중이라는 사실을 대중은 감지하기 시작했다.
물론 후베이 성 관료들의 기자회견도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한’ 측면이 있다. 왜냐하면 우한 시와 후베이 성도 전국적인 지원을 필요로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한 때에 지도급 간부들이 직접 나서지 않고 대변인이나 전문직 간부, 관영언론에만 기대서는 설득력이 약해진다.
이 같은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불과 며칠 사이에 후베이 성의 기자회견은 매우 어려운 환경 속에서 점점 나아졌으며, 후베이 성은 이런 기자회견과 각종 인터뷰를 통해 외부 세계에 자신들의 애로상황을 많이 알렸다. 그것이 후베이 성 업무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는 전반적으로 보면 부정적인 효과보다도 훨씬 컸다. 여론은 비록 이러한 소통 중의 구체적인 정황(앞서 통계수치를 잘못 파악하는 등 간부들의 답변 실수 등)을 구설수에 올렸지만, 그럼에도 이러한 소통이 대중과 후베이성 간부 간의 거리를 좁히고 사태를 처리함에 있어 이들 간부들 역시 ‘애로가 적지 않은’ 면이 있음을 느끼게 만들었다.
이 같은 장면은 중국 민중이 정부가 단순히 ‘인민전쟁’을 선포하고 동참을 호소한다고 해서 저절로 그 지시에 따른 것은 아님을 말해준다. 정부의 진솔한 노력과 고충이 전달되고 사회 전반의 여론이나 분위기가 충분히 조성이 되어야만, 전국의 자발적 지원이나 동원 역시 가능해진다. 실제로 정부의 이 같은 소통 노력은 이후 사태의 진행과정에서 보듯이 중국 인민의 적극적인 호응으로 나타났다.
지금까지는 지방정부 특히 진원지인 우한과 후베이 성의 소통을 위한 노력을 소개하였다. 전국적으로는 중국 정부가 1급 전염병 상황을 발표하고 전면봉쇄 조치에 들어간 2020.1.23. 부터 모든 TV와 라디오 등 관영매체는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24시간 코로나19 방역 관련한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실시간으로 전국의 환자 발생건수와 사망자수, 검사 진행 수, 완치자 수 등 관련 통계수치들이 시시각각 자막이나 뉴스를 통해 보도되었으며, 전문가들이 수시로 기자회견장에 나와 현재 진행되는 방역상황을 해설하고 시청자들이나 일반 시민과 소통하면서 궁금한 사항에 대해 당시까지 밝혀진 데이터에 기초한 답변을 주었다. 그 밖의 시간대에는 각지에서의 의료지원 상황, 의료진의 고충과 희생, 감동적인 사례들이 소개되었다.
이 같은 전국적인 비상 상황은 우한과 후베이성을 제외하고 다른 지역에서 더 이상 감염자가 나오지 않음에 따라 전면봉쇄를 해제한 4월 중순까지 거의 두 달 동안 지속되었다. 이러한 전 사회적인 일치된 분위기 속에서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방역에 집중할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되었다. 단속을 피하려고 특권을 행사하거나 사적 관계를 남용하는 자들, 법망을 피하거나 행패를 부리는 자들에 대해선 민중의 분노와 규탄이 집중되었다.
중국은 세계보건기구(WHO)와 해외 과학자들 간의 교류에 있어서도 적극적이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중국은 2020.1.8.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한 정식 분리에 성공하자 즉각 그 정보를 WHO에 보고하였으며, 그와 함께 샘플들을 세계 주요 연구기관에 보내 동시적인 백신 개발 연구가 진행될 수 있게 끔 하였다. 중국 전문가들은 국제 학술지에 우한 등지의 전염병 관련 상황에 대한 논문을 적시에 발표한 것을 포함해 수많은 과학적 데이터를 공개하였다. 영국, 독일, 미국 등 선진국에서 나중에 코로나 백신이 빠른 시일 내에 개발될 수 있었던 데는 이처럼 중국 측이 관련 샘플과 데이터들을 적시에 공유했던 것이 큰 몫을 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중국 정부의 발표는 얼마나 진솔했을까? 중국 정부가 발표한 코로나19 관련한 통계수치는 서구 언론과 한국에서 내내 의혹을 받았다. 특히 초기 전염병 사태의 한 가운데에 있던 우한시 통계당국이 2020년 4월 중순 위기를 한 고비 넘길 무렵에 통계 수치에 대한 ‘조정발표’는 얼마간의 논쟁을 일으켰다.
우한시 신종코로나바이러스 방역지휘부는 2020.4.17. 새로운 검증을 거쳐 정정된 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 수를 발표했는데, 우한시의 사망자 수는 기존에 보고되었던 2,579건보다 1,290건 증가하였다. 이에 따라 중국 본토의 사망자 수도 기존의 3,342명에서 4,632명으로 증가하게 되었다. 이에 대해 서구 언론은 중국이 그간 조직적으로 코로나19의 ‘적절한 사망숫자’를 “짜 맞췄다”는 것이 입증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중국 언론인 환구시보는 다음과 같이 해명하였다.
“우한은 감염이 폭발한 초기, 환자는 계속해서 늘고 의료체계는 부담을 이겨내지 못해 혼란 상태가 벌어져, 기층에서 보고 누락과 오보가 발생하기 쉬웠다. 당시에는 코로나 진단 능력과 치료능력이 부족하였으며, 또한 환자의 사망원인에 대한 정확한 확인과 이런 확인에 대한 엄격한 감독, 사망자 수에 대한 체계적 통계는 모두 점차적으로 구축된 것이다.”(환구시보, 2020.4.17자 사설)
사실 전염병이 폭발적으로 발생할 무렵에 대부분의 나라들이 정확한 통계수치를 작성하기 어려운 것은 이후 유럽과 미국 등에서도 확인되는 바이다. 많은 코로나19 환자들이 결국 합병증으로 사망하기 때문에 그들의 사인이 잘못될 수 있으며, 통계 방식에 얼마간 혼란한 상황이 존재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인도의 경우 전문가들은 심지어는 코로나19 환자가 정부 공식발표보다 ‘50배’에 이를 것으로 추측하였으며, 미국 역시도 10배는 많을 것이라는 지적이 미국 자국 내에서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중국과 같은 큰 나라에서 핵심 데이터를 날조할 수 있는 것은 생각만큼 간단하지가 않다. 8억이 넘는 인터넷 인구와 모바일이 보급되어 있고 특히 코로나19와 같이 전 국민이 높은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그리고 전염병 데이터를 날조하는 것은 중국 방역법상 ‘범죄’로 처벌받는다. 또한 그렇게 하려면 많은 부서와 수많은 사람들의 고도의 협력이 필요한데 중국처럼 큰 나라에서는 더욱 어렵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중국과 관련할 경우 이렇듯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그것이 정치화되고 있는 사실을 반증한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인 화춘잉은 서구 언론이 유독 중국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만 엄격한 잣대를 들이미는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날카로운 반격을 가한 적이 있다.
“1월 3일, 중국 측은 주동적으로 WHO와 미국을 포함한 각국에 실시간으로 정보를 통보하기 시작했으며, 1월 8일엔 발병 원인에 대해 잠정적인 확정을 했다. 1월 11일에는 중국질병센터에 5개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전체 게놈 서열을 올려 전 세계와 WHO에 이 데이터를 공유했다.……뉴욕타임스 3월 11일자 보도에 따르면, 미국의 한 여성 의사인 주 헬렌은 이미 1월에 미국 내 발병에 대해 경고하고 2월에는 검사보고 결과를 보고하였다. 미국의 감독기관은 왜 입을 다물도록 명령하였으며 검사를 중지시켰는가? 백악관은 왜 2월 말 미국의 관리와 보건당국, 전문가들에게 감염병에 대해 언급하기 전에 필히 펜스 부통령실의 사전 승인을 받도록 공개적으로 요구하였는가? 왜 3월 2일에 미국질병통제센터는 검사자 수와 사망자 수에 관한 수치의 발표를 중단했는가? 왜 3월 2일 미국 장로회 병원 의사인 매카시 씨가 CNBC 방송에 출연해, 심지어 보건부서에게 그가 있는 병원의 의심 가는 환자에 대해 검사를 해달라고 간청해야 했는가?” (환구시보, 2020.4.2.)
끝으로, 이상과 같은 중국 정부의 소통 노력이 인민 대중 사이에서 어떠한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정부 방역정책에 대한 신뢰가 일단 싹트자 인민 대중도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협력으로 호응하였다. 내부적으로는 한 때 중국 방역의 형세와 정부방침, 진행방식을 놓고 ‘팡팡일기’를 둘러싸고 네티즌 사이에 인터넷 선상에서 격렬한 논쟁이 전개되었다. 이를 통해 비관적이면서 관조적인 자세를 취하는 일부 지식인들에 대한 비판이 분명한 우세를 점하게 되었다.
정부와 인민이 혼연일체가 된 방역투쟁을 긍정하면서, 인민 각자의 적극적인 동참을 격려하는 방향으로 중국 방역에 대한 전국적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이후 중국방역이 실제 대성공을 거두고 이에 반해 미국 등 서구 선진국들이 방역 형세가 악화되면서, 중국 인민들의 자신감과 정부정책에 대한 신뢰감은 배가 되었다.
참고로, 필자가 민플러스에 번역 소개한 바 있는 글 하나를 추천한다. 이 글은 당시 중국 네티즌들 사이에서 상당한 반향을 일으킨 바 있는데, 한 여성작가의 섬세한 필치로 코로나19와의 전투가 한창인 현지의 모습을 진솔하게 담아내고 있다. 한국 독자들이 코로나19와의 인민전쟁에 임하는 중국 보통사람들의 정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신종 폐렴과 싸우는 중국 보통 사람들의 17가지 얘기”
4. 소결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중국 방역의 성공은 정부의 과학적 정책과 인민의 자발적 참여의 종합적 결과라 할 수 있다. 이를 한마디로 말한다면 그것은 ‘사회주의 방역’이라 부를 수 있으며,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닌다.
첫째, 인민을 위해 복무하고 인간 생명을 최우선시 하는 정책 기조를 보여준다, 그것은 사회주의 고유의 ‘인본주의’ 가치를 보여주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2020.1.20. 전문가들에 의해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인체 간의 감염을 일으키며, 그 잠복기가 최대 2주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이틀 후 ‘과학적 방역’ 원칙에 입각하여 주저 없이 1천만 거대도시 우한에 대한 전면봉쇄와 함께 전국에 이동제한 조치를 실시했다. 이처럼 일부 경제성장을 희생하더라도 철저하게 ‘과학적 방역’의 입장에 설 수 있었던 것은 다른 무엇보다 인민의 ‘생명’을 정책의 최우선에 놓았던 중국 정부의 가치지향성 때문에 가능하였다.
둘째, 중국방역이 갖는 사회주의적 특징은 ‘인민전쟁’ 형식을 취했다는 점에서도 잘 드러난다.
중국은 우한봉쇄를 실시한 후 본격적인 코로나방역에 들어감에 있어 이것은 특수한 형식의 ‘인민전쟁’이라고 선언했다. 인민전쟁은 두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다. 하나는 전쟁의 ‘정의성’이며, 다른 하나는 전쟁의 ‘군중성’이다. 많은 민중의 이익을 출발점으로 삼기에, 그 전쟁은 인민대중이 주체로 참여할 수 있게 된다.
중국 정부의 인민의 생명을 최우선시 하는 ‘인본주의’ 방역노선은 다른 잡음이 개입치 않는 철저한 과학적 방역 방침의 수행을 가능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코로나19와의 전면 전쟁에 있어 인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인민전쟁’ 형식을 가능케 하였다.
<끝> <저작권자 ⓒ 자주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중국, 코로나 관련기사목록
|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