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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정신’ 이어 통일을 당겨오자!”

신은섭 통신원 | 기사입력 2022/05/15 [13:22]

“‘오월정신’ 이어 통일을 당겨오자!”

신은섭 통신원 | 입력 : 2022/05/15 [13:22]

자주민주평화통일민족위원회(이하 민족위)가 5·18광주민중항쟁(이하 광주항쟁) 42주년을 맞아 14일 광주 순례를 다녀왔다.

 

17명의 일행을 태운 버스가 7시에 서울스퀘어 앞을 출발했다.

 

광주로 내려가는 버스 안에서 ‘나의 5·18 이야기’로 자기를 소개하는 시간, 광주항쟁에 관련한 노래를 배워보는 시간을 가졌다. 참가자는 10대부터 80대까지 나이대가 다양했는데, 광주항쟁을 기리고 통일을 그리는 마음이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짐을 느끼는 희한한 시간이었다. 

 

11시경 망월동 국립5·18민주묘지에 도착한 일행은 먼저 신 묘역 참배로 광주 일정을 시작하였다.

 

▲ 신 묘역 답사 중인 참가자들.     ©신은섭 통신원

 

일행은 열사들의 죽음에 얽힌 이야기를 소개하는 강사의 해설을 들으면서, 억울하게 죽어간 열사와 유가족이 느꼈을 통한이 얼마나 컸을지 생각하며 함께 가슴 아파했다. 

 

열사를 기리며 유가족이 남긴 말을 옮겨 새긴 묘비의 비문은 특히 참가자들의 가슴을 쳤다.

 

“19세의 젊음을 조국의 민주화에 바친 너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지금은 우리가 헤어져 있지만 좋은 세상, 통일된 조국에서 다시 만나리…”

“아들아! 서러워 마라. 새날이 올 때까지 싸우리라.” 엄마가.

“너의 용기 있는 죽음은 정녕 헛되지 않을 것이다.” 엄마가.

“참뜻을 펼치다 산화한 내 아들아! 편히 잠들 거라.”

 

▲ 참가자들의 가슴을 친 비문.     ©신은섭 통신원

 

▲ 신 묘역 참배를 마치고 찍은 기념사진.     ©신은섭 통신원 

 

신 묘역 참배를 마친 참가자들은 민족민주열사 묘역으로 이동해 김순 광주전남추모연대 집행위원장의 해설을 들으며 참배를 이어갔다.

 

강사는 참가자들의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열사의 삶과 죽음에 얽힌 자세한 사연을 소개했다. 1980년 당시 시신을 찾지 못해 가묘를 썼다가, 한참 후에야 시신을 찾아 새로 묘를 쓴 열사의 사연, 친구 사이인 두 열사가 묘 하나 건너 나란히 묻힌 사연, 아버지와 아들 사이인 두 열사가 앞뒤로 묻혀 있는 사연, 1987년 6월 항쟁 이후 이어진 노동자 대투쟁을 거쳐 노동조합을 만들고 노동자들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한 투쟁의 과정에 산화해 간 열사들의 사연 등에 참가자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 해설 중인 김 순 강사와 참가자들.     ©신은섭 통신원

 

한 참가자는 노동 열사 이야기를 들은 다음 “‘두발 자율화’, ‘사복 입고 출근’이 노동자들이 조합을 만들고 내건 첫 번째, 두 번째 요구였다는 사실에 놀랐다. 지금은 너무나 기본적인 권리에 속하는 것들을 쟁취하기 위해 목숨마저 내던질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 분노스러웠다. 이야기를 들으며 분노와 슬픔에 눈물 났다”라고 말했다. 

 

지면의 부족으로 다 소개할 수 없는 긴긴 사연들이 한으로 깃든 망월 묘역 참배를 마치며 참가자들은, 머지않아 반드시 이 한을 풀고 ‘자주, 민주, 평화통일’의 새 세상을 안아오리라는 각오를 다졌다.

 

참가자들은 시내로 이동해 전일빌딩, 옛 도청, 5·18민주화운동 기록관 등을 둘러보았다. 

 

참가자들은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라는 문구를 가슴에 새기며, “우리가 기억하고 행동하면 5·18의 진상도 반드시 규명될 것이고, 학살 배후 미국에도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이다. 5월에서 통일로 이어지는 우리 ‘민중’의 역사적 진군길에 민족위가 언제나 함께할 것이다”라고 다짐했다.

 

헬기 기총사격의 흔적이 남아 있는 전일빌딩에서 해설을 맡은 김순이 해설사는 자신이 도청에서 마지막으로 나온 생존자 중 한 사람이었다며 “그때 나를 데리고 함께 나온 대학생들이 있었는데, 나는 살고 그들은 죽었다. 아직도 1980년 당시를 생각하면 몸이 굳어지지만, 후대에 광주항쟁의 진실을 전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이 일을 한다”라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시내 사적지 탐방을 끝으로 광주에서의 일정을 모두 마치고 서울로 올라오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 김순이 해설사가 헬기 기총사격 흔적에 관해 해설하고 있다.     ©신은섭 통신원

 

하루 일정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참가자들은 어느새 오랜 시간을 사귄 듯 가까워졌고, 향후 통일을 당겨오기 위한 활동의 현장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했다.

 

87세의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젊은이들과 함께 온종일 힘차게 일정에 함께한 최종대 선생의 “반드시 통일될 때까지 살 것이다. 그게 나의 권리이자 의무이다”라는 말은 오래도록 참가자들의 가슴에 여운으로 남을 것이다.

 

▲ 민족위 광주 순례에 참가한 최종대 A.O.K 자문위원. 87세의 선생은 참가자 중 최고령이었다.     ©신은섭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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