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북한에 대한 대응책이라며 공동성명에 공개한 합의사항들을 살펴보자.
확장억제
“바이든 대통령은 핵, 재래식 및 미사일 방어능력을 포함하여 가용한 모든 범주의 방어역량을 사용한 미국의 한국에 대한 확장억제 공약을 확인하였다. 또한 양 정상은 가장 빠른 시일 내 고위급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를 재가동하기로 합의하였다.”
예상대로 확장억제 공약을 확인했다.
이를 두고 대통령실은 설명서에서 “처음으로 정상 차원에서 확장억제 제공에 대한 구체적 공약을 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시절에도 비슷한 내용은 반복되었다.
2017년 6월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는 “재래식과 핵 능력을 포함한 모든 범주의 군사적 능력을 활용해 대한민국에 확장억제를 제공한다는 미국의 공약을 재확인했다”라고 하였고, 2021년 5월 바이든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는 “미국이 가용한 모든 역량을 사용해 확장억제를 제공한다는 공약을 확인했다”라고 했다.
이처럼 확장억제의 구체 내역 중 ‘미사일 방어’가 이번에 추가로 언급되었을 뿐인데 언론은 한미 정상이 ‘핵’을 명시한 게 처음이라면서 가짜뉴스로 포장하고 있다.
그나마 변화라면 고위급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를 재가동한다는 것인데, 뒤에서도 설명하겠지만 이번 정상회담의 대북 대응책은 대체로 구체적인 대북압박 행동은 없고 회의를 열고 논의를 하겠다는 계획만 무성하다는 게 특징이다.
한미연합훈련
“북한의 진화하는 위협을 고려하여 양 정상은 한반도와 그 주변에서의 연합연습 및 훈련의 범위와 규모를 확대하기 위한 협의를 개시하기로 합의하였다.”
많은 이들이 이번 정상회담에서 한미연합훈련의 이름을 ‘정상적’으로 지어주고, 실기동훈련을 대규모로 강도 높게 진행하겠다는 내용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훈련의 범위와 규모를 ‘확대’하는 게 아니라 ‘확대하기 위한 협의를 개시’하는 것으로 그쳤다.
뭔가 강력한 대응을 할 것 같으면서도 김이 빠지게 하는 합의다.
게다가 훈련 확대를 위한 협의는 1~2년이나 걸릴 예정이다.
북한이 ‘핵공격’ 교리를 공개한 만큼 “북한의 진화하는 위협을 고려”하여 새로운 작전계획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작년 12월 2일 열린 안보협의회의(SCM)에서 한미 국방장관은 새 연합작전계획 수립을 합의하고 새 전략기획지침(SPG)을 승인하였으며 올해 3월 31일 한미 합참의장이 전략기획지시(SPD)에 서명하였다.
새 작전계획 작성에는 앞으로 1~2년 더 걸릴 예정이라서 한미연합훈련 적용도 그만큼 늦어진다.
그전에는 훈련을 확대하더라도 북한의 ‘핵공격’ 교리를 반영한 훈련이 아니라서 실효성 문제가 불가피하다.
전략자산 전개
“양 정상은 북한의 안정에 반하는 행위에 직면하여, 필요시 미군의 전략자산을 시의적절하고 조율된 방식으로 전개하는 데 대한 미국의 공약과, 이러한 조치들의 확대와 억제력 강화를 위한 새로운 또는 추가적 조치들을 식별해 나가기로 하는 공약을 함께 재확인하였다.”
이 역시 원론적인 언급일 뿐 구체적인 행동 공약은 아니다.
연합뉴스는 21일 기사에서 “구체적인 전략자산 실행 계획은 나오지 않았지만 조만간 한미 외교·국방(2+2) 장관회의, 외교 및 국방당국 간 고위급 협의, ESSCG 등 여러 채널에서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라며 수습하려 했다.
하지만 미국의 전략자산 운용은 한국과 협의 대상이 아니다.
미국이 자국 전략자산을 한국과 협의해서 운용한 전례도 없다.
‘필요 시’, ‘시의적절’이라는 말로 빠져나갈 구멍을 미리 만들어놓은 말잔치에 불과함을 알 수 있다.
국제공조
“양 정상은 다수의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를 포함하여 올해 들어 증가하고 있는 북한의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가 유엔 안보리 결의의 명백한 위반이라는 점에서 이를 규탄하고, 북한의 대량파괴무기와 탄도미사일 프로그램 포기를 촉구하기 위해 국제사회와 공조해 나간다는 공동의 의지를 재확인하였다. 양 정상은 모든 유엔 회원국이 모든 유엔 안보리 결의를 완전히 이행할 것을 촉구하고, 북한도 유엔 안보리 결의상의 의무 및 기존 약속과 합의를 준수할 것을 촉구하였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거의 유일하게 나온 대북 ‘규탄’ 표현이다.
그런데 ‘규탄’으로 그치고 ‘응징 행동’이 없다.
결국 중국, 러시아가 대북압박에 동조해야 한다는 의미의 ‘국제공조’를 꺼냈지만 아무 실효성 없다는 걸 바이든 대통령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지금 중국, 러시아는 미국에 동조하기는커녕 전쟁을 하느냐 마느냐 하는, 미국과 고도로 적대적인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기타
“윤석열 대통령은 비핵 번영의 한반도를 목표로 하는 담대한 계획을 통해 남북관계를 정상화한다는 구상을 설명하였고, 바이든 대통령은 남북협력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였다.”
윤 대통령의 “담대한 계획”은 이명박 정권이 내세운 비핵·개방·3000의 복사판이다.
물론 이 정책은 실행조차 하지 못하였다.
“양 정상은 북한의 도전에 대응하고, 공동 안보와 번영을 수호하며, 공동의 가치를 지지하고, 규범에 기반한 국제질서를 강화하기 위한 한미일 3국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한미일 3각 동맹을 추진하겠다는 공약 역시 문재인 정부를 비롯해 역대 정부에서 수도 없이 강조했던 것이다.
만약 윤석열 정권이 한미일 3각 동맹을 추진한다면 전 국민적 반일·반정부 항쟁으로 인해 심각한 정권 위기를 맞게 될 수 있다.
“양 정상은 또한 가장 취약한 북한 주민들에 대한 인도적 지원 제공을 촉진한다는 약속을 재확인하였다. 양 정상은 최근 북한의 코로나19 발생에 대해 우려를 표하였다. 한국과 미국은 북한이 코로나바이러스에 대처하는 데 필요한 지원을 제공하기 위해 국제사회와 협력할 것이다.”
북한에 대화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내용인데 역시 실효성은 없다.
한미 정상의 기대와 달리 북한의 코로나19 사태는 이미 안정기에 들어섰기 때문에 방역지원을 명분으로 한 대북압박도 맥이 빠진 상황이다.
* * *
이번 한미정상회담 공동성명에 나온 대북 대응책을 종합해보면 크게 세 가지 특징을 꼽을 수 있다.
첫째, 구체적인 대응 행동은 공개하지 못하고 논의해보겠다는 식의 힘 빠지는 내용이 많다.
둘째, 현실성도 없고 실효성도 없는 내용을 형식적으로 나열한 경우가 많다.
셋째, 이전 정부 때 이미 했던 말들을 무의미하게 반복하는 경우가 많다.
결론 내리자면 북한에 대한 적대적 입장, 강경한 입장은 유지해야하는데 그렇다고 북한을 자극해서 사태가 커지는 것은 막아야 하는 한미 정상의 곤혹스러운 처지가 반영된 공동성명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이 볼 때는 ‘강’이고 북한이 볼 때는 ‘약’인 그런 절충점을 찾느라 미국이 고심한 흔적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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