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군 당국은 지난 16일부터 을지 프리덤 실드(Ulchi Freedom Shield, UFS)를 본격 시행하기 전 위기관리연습을 하고 있다.
군 당국에 따르면 위기관리연습이란 한반도에서 전쟁과 같은 위기 상황이 조성되는 징후를 가정해 한미가 공동으로 이를 정치·외교적으로 해결하는 과정을 말한다고 한다.
그리고 위기관리연습 종료 후 22일부터는 UFS 본 연습인 1부(5일간)와 2부(4일간)가 진행된다. 이번 연습에는 북한으로의 진격 등 반격 훈련이 포함되어 있으며 연합공격헬기사격훈련, 연합해상초계작전훈련 등 11개의 공격적인 야외기동훈련도 진행할 계획이라고 한다.
윤석열 정부는 그동안 축소되어온 한미연합군사연습을 ‘정상화’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으나, 연습에 적용되는 ‘작전계획 5015’는 선제공격, 참수 작전 등 공격적이고 도발적인 내용이 대부분이다. 이를 육해공 병력과 정부, 지자체 등을 동원하여 실제 기동훈련을 통해 구현함으로써 사실상 북한을 점령할 능력을 과시하겠다는 것이다.
군사용어로 전군 단위에서 작전기획 및 전투가 수행되면 ‘연습’이라 하고, 개인 혹은 소규모 부대의 경우는 ‘훈련’이라 부르지만 한미연합군사연습은 실제 ‘연습’이 아니라 ‘북침’ 전쟁 연습이다.
또한 윤석열 정부가 말하는 ‘정상화’란 결국 북한과 주변국에 대한 실질 전쟁 연습으로, 과거 문재인 정부 시절 남북·북미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북한의 비핵화 노력을 뒷받침한다’라며 한미연합군사연습을 취소·연기 또는 축소·조정한 것을 파기하겠다는 것이다.
‘유지와 방어성격’의 초기 한미연합군사연습
한미는 한국전쟁 정전 이후 69년 동안 ‘포커스 렌즈(Focus Lens, 1954~1968), 포커스 레티나(Pocus Retina, 1969~1970), 프리덤 볼트(Freedom Volt, 1971~1975), 팀스피릿(Team Spirit, 1976~1993), 한미연합전시증원/독수리연습(Rsol/Foal Eagle, 1994~2007), 키리졸브/독수리연습(Key Resolve/Foal Eagle, 2008~2018) 그리고 한미을지훈련과 포커스 렌즈를 통합한 을지 포커스 렌즈((Ulchi Focus Lens, 1976~2008), 을지 프리덤 가디언(Ulchi-Freedom Guardian, 2008~ )’으로 명칭을 변경하면서 한미연합군사연습을 해 왔다.
한국과 미국의 연합이라 하지만 사실은 지휘와 기획은 미국이, 한국은 참가하는 역할을 맡았다.
한미연합군사연습의 실질적인 시작은 1969년 3월 열린 ‘포커스 레티나’이다.
국방일보에 따르면 “1968년의 1.21 청와대 기습사건, 미 해군 푸에블로호 납북 사건, 삼척·울진지구 무장 공비 침투사건 등 북한의 도발이 잇따라 한반도 위기가 고조되었던 1969년 3월, 최초의 대규모 한미연합연습인 ‘포커스 레티나 (Focus Retina 망막의 초점)’ 대공수 기동 작전이 유엔군사령부 주관으로 중부지역에서 전개되었다. 본래 1968년 11월에 할 계획했으나 푸에블로호 승조원 송환 교섭 때문에 연기된 이 훈련은 미국 본토에서 완전 무장한 병력이 31시간 안에 한반도도 와 훈련에 투입돼 사상 최장 최대의 공수작전”으로 기록하고 있다.
한미는 ‘포커스 레티나’에 병력 7,000여 명, 2,700여 대의 차량과 장비를 투입했으며 ‘북한이 남침 시 미국 증원전력을 최단 시간 안에 한반도로 전개’하겠다며 기동성을 크게 강조하였다.
이는 미국이 베트남전쟁에서의 막대한 군사비를 줄이고 주한미군 수를 줄이는 대신 신속 기동성을 강조하는 ‘포커스 레티나’로 한국을 안심시키려 한 것이었다.
이후 닉슨 미국 대통령은 1969년 7월 25일 자기방어를 위해 미국의 원조가 필요한 국가에 무기와 경제원조는 제공할 수 있지만 군대는 보내줄 수 없다고 닉슨 독트린을 발표했다. 이어 “아시아 국가들은 미국 의존도를 줄이고 그들의 안보 문제를 독자적으로 해결하기를 바란다”라면서 1971년 주한미군 7사단 2만 명을 철수해 베트남에 보냈다.
그리고 1971년 ‘프리덤 볼트’를 전개한다. 이는 주한미군 철수에 대한 한국 정부의 불만과 한국군 파월 병력을 유지하기 위해 한국과 미국 양쪽을 튼튼하게 연결한다는 의미에서 나사를 뜻하는 볼트(bolt)를 넣어 한국을 달랬다.
하지만 ‘프리덤 볼트’는 한국전쟁 재발 상황을 가정한 연습으로 현상 유지와 방어 성격이 강했다.
공격적 성격인 ‘전진방어’ 개념의 한미연합군사연습
1975년 베트남전쟁이 북베트남의 승리로 끝나고 미국이 철수하자, 한국의 안보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프리덤 볼트’를 확대한 ‘팀스피릿’이 1976년 6월 처음 시작됐다.
‘팀스피릿’ 이전까지의 연습은 북한의 남침을 격퇴하고 휴전선 이남 지역 원상회복이 목표였지만 1976년부터 전진방어 연습의 개념이 달라졌다.
북한이 공격하면 미 공군 B-52 폭격기가 24시간 폭격해 북한의 서울 북부 진입을 막고, 북한의 개성을 점령해 9일 만에 전쟁을 끝내는 것이었다.
물론 여기에는 당시 국제적 배경도 한몫하였다.
1975년 8월 미국과 소련, 유럽 등 35개국이 서명한 헬싱키 선언으로 주권 존중, 전쟁 방지, 인권 보호가 강조되었다. 이제 미국은 유럽에서 대규모의 군사연습이 힘들게 되었다. 그래서 대체 훈련지로 한국이 선택됐다.
그래서 ‘팀스피릿’은 20만 명이 넘는 병력이 참가하는 세계 최대 군사 기동훈련이 된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연합해상작전, 야전기동훈련, 연합상륙작전, 공수낙하훈련, 각종 지원작전훈련 등이 포함되고 핵 폭격 모의훈련도 할 수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한미연합군사연습은 공격적으로 바뀌었다.
특히 북핵 문제가 불거진 1992년에는 한반도 작전계획이 더 공격적으로 바뀌었다.
‘북침 연습’ 개념의 한미연합군사연습
1992년의 작계 5027-92에서는 유사시 미 해병 3사단, 한국 해병 1사단이 원산에 상륙한 뒤 서쪽으로 진격해 평양을 점령하도록 했다. 이와 동시에 한미 보병부대가 비무장지대를 넘어 북진해 이들을 지원하도록 했다.
또한 한미 연합군은 평양을 점령한 뒤 핵시설이 있는 영변까지 진출해 핵시설을 파괴하는 임무를 맡았다.
한반도를 작전구역으로 하는 작전계획 5027을 적용한 ‘팀스피릿’은 ‘북한군 남침 전 단계, 초기 침공 저지, 역공을 위한 재편, 대규모 북한 공격’ 등의 4단계로 진행됐다.
이때부터 북한은 한미연합군사연습을 ‘북침 연습’이라며 아주 강하게 항의하였다.
1992년 북한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잠시 중단되었던 ‘팀스피릿’은 1994년 RSOI로 부활했다.
이 연습은 한반도 유사시 미 본토에서 한반도로 파병될 미군 증원 병력과 전쟁 물자를 받아 전투지역에 신속하게 배치하고 이들에 대한 한국군의 지원 절차 등을 익히는 것이다.
이름은 바뀌었지만, 북한의 주요 시설을 점령하고 북한의 정권을 제거하는 한미연합군사연습의 목표는 그대로였다.
2008년부터는 이름이 키리졸브로 바뀌면서 선제타격과 북한 지휘부 제거 훈련, 미사일 요격 훈련 등 북한 점령 성격이 더욱 강해졌다.
북한은 한미연합군사연습을 ‘체제 전복’으로 간주하고 연습 중단을 더욱 강하게 요구했다.
그뿐만 아니라 1978년 한미연합사가 창설된 이후 1975년까지는 전시 대비 한미연합군사연습과 한국 정부 을지연습이 분리 운용해 오던 것을 1976년부터는 한미 연합 국가총력전 연습인 을지 포커스 렌즈로 통합해 군사연습 주관이 유엔사에서 한미연합사로 이관됐다.
전쟁연습 반대 투쟁은 영구 중단을 넘어, 미군 철수 투쟁으로 이어져야!
한미연합전쟁연습 반대 투쟁은 매년 8.15 대회를 정점으로 끝을 맺는다.
올해는 8월 13일, 숭례문 부근에서 개최된 ‘광복 77주년 8.15 자주평화통일대회’로 대미를 장식하였지만, 이번 대회는 그 어느 해보다 치열하였다.
쏟아지는 비속에도 굴하지 않고 대회 대오를 사수하였고 용산 대통령실 앞까지 힘차게 행진하였다.
주력 대오는 2022년 전국민중행동 통일선봉대였다.
그중에서도 주력인 민주노총 23기 중앙통일선봉대가 지난 11일 포항 북구 조사리에 있는 한미 연합해병대 상륙훈련장 지휘소를 기습 점거한 것은 노동자들의 전쟁 반대 실천 투쟁이었다.
굳이 제2 인터내셔널 중요 논쟁인 ‘반전 논쟁’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전쟁은 자본가계급의 이익을 위해 노동자계급의 생명을 빼앗아 가는 행위다.
기본적으로 노동자계급은 전쟁에 찬성할 수가 없고, 마르크스주의적 전제에서도 전쟁은 항상 부정적이고 반대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민주노총 23기 중앙통일선봉대의 투쟁은 의미 있었다.
또한 한국노총도 14기 민족자주 통일선봉대를 꾸려 동참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올해는 대학생들의 통일선봉대 실천 투쟁이 두드러졌다.
대학생 ‘겨레하나’ 통일대행진단, 서울·부산 청년진보당 통일선봉대, 진보대학생넷 자주통일실천단, 한국대학생진보연합(대진연) 통일대행진단 등으로 꾸려진 전국 대학생 통일대행진단은 우리의 보배이다.
그리고 지난 8일 부산 동구 초량동 일본영사관 앞에서 한·미·일 동맹 반대 시위로 긴급 체포되었지만 9일 석방된 부산 투쟁과 10일 군산 미군기지 투쟁에서 폭력적으로 연행되어 11일 전원 석방된 군산 투쟁은 대학생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결기였다.
역시 젊은 패기와 불의를 참지 못하는 조국 사랑, 애국정신이다.
4월혁명 공간의 최초의 양키 고 홈(Yankee, go home) 투쟁인 1961년 2.8 한미경제협정반대 투쟁도 대학생의 투쟁이 주력이었다.
오는 22일부터 시작되는 을지 프리덤 실드 반대가 남았다.
전쟁연습 반대 투쟁은 영구 중단을 넘어, 미군 철수 투쟁으로 이어져야 한다.
전쟁을 부르는 한미연합군사연습 즉각 중단하라! <저작권자 ⓒ 자주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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