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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지금] 러시아와 ‘나치즘 미화 방지 결의안’

이인선 객원기자 | 기사입력 2022/11/11 [22:59]

[러시아는 지금] 러시아와 ‘나치즘 미화 방지 결의안’

이인선 객원기자 | 입력 : 2022/11/11 [22:59]

지난 4일(현지 시각) 사회적, 인도적, 문화적 문제를 다루는 유엔총회 3위원회에서 「나치즘, 신나치즘(네오나치즘)을 찬양하고 현대적 형태의 인종주의, 인종차별, 외국인 혐오와 편협을 조장하는 온갖 현상들과의 투쟁」이라는 제목의 결의안(이른바 ‘나치즘 미화 방지 결의안’) 초안이 통과됐다.

 

이와 같은 결의안은 위원회 투표를 거친 후 통상 12월에 진행하는 유엔총회 투표를 통해 최종 결정된다. 사실 ‘나치즘 미화 방지 결의안’은 2000년 무렵부터 러시아가 발제해 매년 유엔총회에서 채택되는 결의안이다.

 

그런데 해당 결의안을 모든 나라가 찬성하진 않는다.

 

미국은 항상 반대해왔고 올해의 경우 우크라이나, 일본, 유럽연합 국가들, 오세아니아 국가들 등도 반대했다. 그리고 한국은 기권했다.

 

이번 글에서는 ‘나치즘 미화 방지 결의안’의 내용을 살펴보며 미국과 친서방국가들이 반대하는 이유를 이야기한다.

 

▲ 지난 4일(현지 시각) 유엔총회 3위원회에서 진행한 ‘나치즘 미화 방지 결의안’ 채택 투표 결과

 

나치즘 미화 방지 결의안

 

결의안의 내용은 제목 그대로 나치를 찬양하고 미화하는 것을 넘어서 오늘날 인종차별, 외국인 혐오 등 인권 문제를 미화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결의안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지켜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 특정 인종이나 한 피부색 또는 민족 출신의 사람들이 우월하다는 생각이나 이론에 기초하거나 어떤 형태로든 인종적 증오와 차별을 정당화하거나 조장하려고 시도하는 모든 선전 및 모든 조직을 범죄로 규정한다.

 

- 인종적 우월성이나 증오심에 근거한 사상의 유포는 모두 법으로 처벌되는 범죄임을 선언한다.

 

- 인종차별을 조장하고 선동하는 불법 조직 및 금지 조직 및 기타 모든 선전 활동을 불법으로 선언하고 그러한 조직 또는 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법으로 처벌할 수 있는 범죄로 인정해야 한다.

 

결의안은 인종과 국적, 종교 또는 신념에 근거한 인종주의, 인종차별, 증오 및 폭력을 조장하는 자료와 표현을 교육과정에서 사용하는 사례도 있다며 이를 강력히 규탄했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결의안은 유엔 회원국들이 “2차 세계대전의 역사와 결과의 수정과 2차 세계대전 때 자행된 반인도적 범죄 및 전쟁범죄의 부정을 방지하기 위해 인권 분야의 국제적 의무에 따라 입법 및 교육 차원에서 적절하고 구체적인 조치를 취할 것”과 “교육 시스템에 정확한 역사적 설명을 제공하기 위한 필수 콘텐츠를 개발하고 관용 및 기타 국제 인권 원칙을 증진할 수 있도록 적극적 조치를 취할 것”을 권장했다.

 

결의안은 또한 나치즘 미화 및 선전과 관련된 사건, 특히 2차 세계대전 희생자 기념비 등에 친나치를 상징하는 낙서, 그림을 그리는 것을 강력히 규탄하며 상황이 필요한 경우 입법을 포함한 모든 적절한 수단을 통해 모든 형태의 인종차별을 철폐할 것을 회원국에 촉구했다.

 

해당 결의안의 취지는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유엔이 만들어진 목적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도 결의안이 제기된 이유는 오늘날 일본이 욱일기를 쓰는 것을 비호하는 세력들처럼 나치를 미화하려는 세력들이 되살아나고 있고 이들이 극우 집단이 되어 인종 우월의식과 인종차별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대로 매년 해당 결의안이 채택되었으나 러시아 외무부가 2022년 8월 30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오늘날 40개 이상의 나라에서 이들의 행위를 묵인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로 올해도 결의안이 상정되었고, 러시아, 북한, 아제르바이잔, 벨로루시, 베네수엘라, 베트남, 캄보디아, 쿠바, 라오스, 말리, 니카라과, 파키스탄, 시리아, 수단,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남아프리카공화국, 적도기니 등 16개국이 결의안을 공동 작성했다.

 

그리고 3위원회 투표 결과 찬성 105표, 반대 52표, 기권 15표로 올해도 유엔총회에 상정될 예정이다.

 

그렇다면 왜 미국과 친서방국가들은 이 결의안을 반대하는 것일까?

 

러시아 악마화와 자유 침해 논리

 

이번에 결의안 채택을 반대한 나라들은 다음과 같다.

 

북아메리카 : 미국, 캐나다 (2개국)

아시아 : 일본 (1개국)

오세아니아 : 호주, 뉴질랜드, 키리바시, 마셜 군도, 미크로네시아 연방, 파푸아뉴기니 (6개국)

서아프리카 : 말리, 라이베리아 (2개국)

유럽 : 영국, 독일, 우크라이나, 프랑스, 벨기에, 불가리아, 헝가리, 그리스, 덴마크, 아일랜드, 아이슬란드, 스페인, 이탈리아, 키프로스,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룩셈부르크, 몰타, 네덜란드, 노르웨이, 폴란드, 포르투갈,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핀란드, 크로아티아, 체코, 스웨덴, 에스토니아, 안도라, 산마리노, 북마케도니아, 몰도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리히텐슈타인, 몬테네그로, 모나코, 오스트리아, 조지아, 알바니아 (41개국)

 

이전에는 3위원회 투표와 총회 투표 모두 위의 나라 중에서 미국과 세 나라 정도만 반대했고 나머지는 기권했다.

 

2021년만 해도 유엔 회원국 193개 중 130개국이 찬성했고 미국, 우크라이나만 반대했으며 모든 유럽 국가들이 기권했다.

 

하지만 올해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명분으로 미국,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2차 세계대전 전범국인 일본, 독일, 이탈리아도 반대에 나섰고 유럽연합 결정에 따라 유럽 국가들도 일제히 반대표를 행사했다.

 

미국과 이들은 결의안 채택이 “나치 미화 중단이라는 냉소적인 모습으로 이웃 국가를 더럽히는 러시아의 오랜 거짓 정보를 정당화하려는 은밀한 시도”임과 동시에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를 침해”하기에 반대한다고 주장해왔다.

 

이들이 이러한 주장을 하는 건 먼저 러시아의 전신인 소련을 나치와 더불어 2차 세계대전의 전범으로, 자유 침탈 국가로 매도함과 동시에 러시아를 악마화해 러시아가 언제 침략해올지 모른다는 러시아 공포증(루소포비아)을 유럽 국가에 극대화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번 유엔 3위원회 회의록에 따르면 미국과 유럽연합 국가 대표들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해 나치의 잔학행위를 이용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이 결의안에 반대를 표했다.

 

호주, 일본, 라이베리아, 북마케도니아는 러시아의 결의안 초안에 ‘러시아가 신나치즘을 제거한다는 명분으로 우크라이나 침략을 정당화하려고 시도함을 경고한다’라는 문구가 추가된 수정안을 제안했다. 이 수정안은 표결에서 찬성 63표, 반대 23표, 기권 65표로 통과됐다.

 

이 모든 일은 미국의 주도 아래 일사불란하게 이뤄졌다.

 

▲ 3위원회 투표 직전 이른바 ‘미국의 동맹국’ 대표들의 참석을 꼼꼼히 확인하는 미국 대표단 성원의 모습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11월 6일 텔레그램 채널을 통해 3위원회 투표 직전 이른바 ‘미국의 동맹국’ 대표들의 참석을 꼼꼼히 확인하는 미국 대표단 성원의 모습이 담긴 영상을 공개했다.

 

즉 미국이 동맹국들을 향해 ‘이번 결의안에 찬성하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정부를 신나치 정권으로 규정하는 데 동조하는 것으로 규정하겠다’라고 압박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유럽 국가들과 일본, 한국 등은 반대 또는 기권을 선택했던 것이다.

 

더구나 미국은 결의안 반대 이유와 관련해 언론, 출판, 집회 등을 통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해선 안 된다는 근거도 들었다. 나치 옹호도, 인종차별 옹호도 모두 자유로운 표현이라는 것이다.

 

미국이 이처럼 표현의 자유를 운운하는 건 해당 세력을 자신들의 편으로 끌어들여 이용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미국이 1, 2차 세계대전 이후 전범국의 성장을 도와주었고 우크라이나 전쟁을 부추겼다는 점에서도 확인해 볼 수 있다.

 

1918년 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승전국들은 패전국 독일에 어마어마한 배상금을 물렸다. 베르사유 조약대로라면 독일은 다시 석기시대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미국과 영국이 나서서 독일이 많은 배상금을 낼 수 없다며 감액해줬고 독일 재건에 지원해주기도 했다.

 

포드, 제네럴 모터스(GM), IBM, ITT(국제전신전화회사), 스탠더드 오일 등 오늘날 미국의 대기업들은 1933년 히틀러 집권 이후 독일에서 기업 활동을 벌였고 전쟁 기간에도 탱크와 전투기, 석유, 정보 통신 기술 등 전쟁 수행에 필요한 핵심 전략물자들을 나치 정부에 공급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기에 접어들자, 소련을 포위하기 위해 서독을 키운 것도 미국이었고 탈냉전 시기 우크라이나에 잔류한 나치 군대를 육성한 것도 미군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였다. 그 결과 우크라이나에 ‘아조프 대대’와 같은 신나치주의 군대가 판칠 수 있었고 우크라이나 정부 주도의 친러 성향 주민 학살도 문제없이 저지를 수 있었다.

 

또한 미국은 전범국 일본 대신 그들의 식민지였던 한반도와 베트남을 반으로 갈라 일본 군국주의의 살길을 열어주기도 했다. 미국은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 때에도 일본을 병참기지로 삼고 일본 군국주의에 힘을 실어줘 일본의 성장을 도왔다. 그리고 최근엔 북·중·러를 포위하기 위해 일본 군국주의의 부활을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다.

 

즉 미국이 의도하는 것은 너무나 명확하다. 미국은 패권을 잃지 않기 위해 나치주의든, 군국주의든, 인종주의든 용인하고 있다.

 

결의안이 시사하는 점

 

105 대 52로 ‘나치즘 미화 방지 결의안’이 통과된 것은 갖가지 이유를 붙이며 러시아를 일방적으로 비판하는 서방의 시각과 달리, 나치주의, 신나치주의, 인종주의 등에 대한 척결을 명분으로 한 러시아의 주장이 세계 여러 국가에 상당히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분석된다.

 

결의안에 찬성한 싱가포르 대표는 “이렇게 중요한 문제를 정치화하거나 도구화해서는 안 된다”라며 “국제법과 유엔 헌장의 원칙의 문제로 봐야 한다”라고 밝혔다.

 

이스라엘 대표도 “신나치즘은 과거 나치의 행위를 미화하는 것 이상”이라며 “인종 불평등과 반유대주의를 표방하는 현대적 현상”이라고 결의안 찬성 이유를 말했다.

 

말레이시아 대표는 “극단주의 이념이 번성하도록 허용해서는 안 된다”라며 찬성표를 던졌다.

 

인도네시아 대표도 “인종차별 철폐에 대한 인도네시아의 약속은 국민의 다양한 신념과 배경 때문에 기본적인 것”이라며 결의안에 찬성했다고 밝혔다.

 

‘나치 미화 방지 결의안’에 찬성하는 것은 유엔 헌장을 지키려는 나라라면 당연한 일이다. 이런 결의안에 반대하거나 기권하라고 압박하는 미국과 서방국들은 진정으로 나치 문제와 인종주의 문제를 해소할 생각이 없고 어떻게든 소련과 러시아를 악마화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이에 한국도 동참한 것이다. 특히 한국이 최근 일본 해상자위대 관함식에 참가해 욱일기에 경례하고 폴란드를 통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한 데 이어 이번 결의안에도 기권한 것은 명백한 오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는 러시아가 왜 ‘나치 미화 방지 결의안’을 발의하는지 의미를 조금 더 이해할 필요가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네덜란드·벨기에·프랑스 등이 있던 서유럽을 불과 한 달여 만에 점령하고 승승장구하던 나치군에게 결정적 타격을 입히고 4년간의 끈질긴 싸움 끝에 나치를 굴복시킨 주역이 바로 러시아의 전신인 소련이었다.

 

소련 국민은 하나가 되어 900일간의 레닌그라드 봉쇄전(1941~44년), 스탈린그라드 전투(1942~43년), 쿠르스크 전투(1943년) 등의 대규모 전투를 치렀고 수많은 희생을 치르면서도 차례로 승리로 이끌면서 나치군을 서서히 패망의 길로 몰고 갔다.

 

영국 총리였던 윈스턴 처칠은 “소련군이 파시스트 독일의 배를 갈랐다”라고 소련의 공을 인정했다. 그리고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백악관 전 국가안보 보좌관도 자신의 책 『미국의 마지막 기회 : 세 대통령이 초래한 제국의 위기를 넘어서』에서 “역설적이게도 나치 독일의 패배는 미국이 나치즘에 대한 군사적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는 않았지만 미국의 국제적 지위를 높였다. 이 승리를 달성한 공로를 히틀러의 지독한 상대인 스탈린과 소련에 돌려야 한다”라고 밝혔다.

 

이러한 이유로 유럽 국가들은 나치로부터 자신들의 지역을 해방한 소련군을 기념하는 상징물을 세우고 기려왔다.

 

그러나 냉전이 시작되자 미국 등 서방에서는 소련을 악마화하는 데에서 나아가 나치 독일에서 복무했던 이들을 포섭하고 그들의 행위를 미화했다.

 

실례로 나치 독일 육군 참모총장이었던 프란츠 할더는 서독 주둔 미 육군 전사연구부에서 일하며 미군에 소련과의 전투 경험을 전수하며 나치 독일 국방군은 히틀러 세력과는 달리 깨끗하다는 주장도 퍼트렸다. 그렇게 할더는 미국 정부의 인정을 받아 1961년 미국 명예시민까지 되었다.

 

소련 해체 이후 미국의 패권이 강해지면서 이러한 신나치주의 세력은 힘을 더 키울 수 있게 되었고 이들에 의해 현재까지 많은 소련군 관련 기념물이 훼손·철거되고 있다.

 

러시아는 역사를 왜곡하고 나치를 미화하는 상황들이 인종차별로까지 이어지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러시아가 ‘나치 미화 방지 결의안’을 발의한 것도 서방이 표현의 자유라는 변명을 대며 되살려주고 있는 나치주의자들과 인종주의자들을 저지하기 위함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특별 군사작전 목표 중 하나로 전 세계에서 금지된 신나치주의 추종 세력이 우크라이나에서 부활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을 채택한 이유도 그러한 취지다.

 

이런 의미를 잘 살펴보고 유엔총회에서도 ‘나치즘 미화 방지 결의안’이 통과될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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