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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중 가세”..박선애·박순애·윤희보 선생 추모의 밤 열려

김영란 기자 | 기사입력 2022/12/13 [00:02]

“해마중 가세”..박선애·박순애·윤희보 선생 추모의 밤 열려

김영란 기자 | 입력 : 2022/12/13 [00:02]

“진정한 평화와 행복 가득히 싣고

두둥실 떠오르는 희망찬 새해

얼마나 기다렸나 우리 겨레들

온 겨레가 손잡고 해마중 가자.

 

금수강산 새해 새봄이 오면

온 인류의 환호성 울려 퍼지리

빛나는 푸른 역사 아로새기며

온 겨레가 손잡고 해마중 가자.”

 

▲ 12일 오후 7시 서울 성미산 마을극장에서 국민주권연대 주최로 ‘박순애 선생님 10주기 박선애, 박순애, 윤희보 선생님 추모의 밤이 열렸다.  © 김영란 기자

 

이는 비전향장기수로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 이후 북송된 고 윤희보 선생이 쓴  시 「해마중」의 일부이다. 여기에 노래패 ‘우리나라’의 김호 씨가 가락을 붙여 많은 사람이 널리 부르게 됐다. 

 

12일 오후 7시 서울 성미산 마을극장에서 국민주권연대 주최로 ‘박순애 선생님 10주기 박선애, 박순애, 윤희보 선생님 추모의 밤’(아래 추모의 밤)이 열렸다.

 

박선애, 박순애 선생은 자매 사이이며, 박선애, 윤희보 선생은 부부 사이이다. 

 

박선애, 박순애 선생은 해방 후 오빠의 영향으로 미국을 반대하는 운동, 여성들에게 글을 가르치며, 여성을 조직하기 위한 활동을 하면서 반미, 통일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어 한평생을 헌신했다. 한국전쟁 시기 체포된 후 고문을 받고 그 후유증으로 평생 고통을 겪었지만, 통일운동에 헌신해왔고 청년학생 운동을 지원하는 활동을 펼쳤다.

 

여성 유일의 비전향장기수인 박선애 선생은 2010년 9월 25일 별세했다. 동생인 박순애 선생은 2년 뒤인 2012년 12월 12일 별세했다. 

 

윤희보 선생은 일제강점기 빈농의 가정에서 태어나 노동운동, 사회운동에 눈을 뜬 뒤에 월북, 한국전쟁 시기 남쪽으로 왔다가 체포되었다. 25년을 감옥에서 보내면서도 언제나 신념을 잃지 않았으며 2000년 9월 2일 62명의 비전향장기수들과 함께 북한으로 송환된 뒤 조국통일상을 받았다. 

 

특히 윤희보 선생은 한총련 지원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쳐 ‘한총련 할아버지’로 유명하다. 북한으로 송환된 뒤에도 남쪽의 가족들, 통일일꾼들, 한총련 학생들을 많이 보고 싶어 했다고 한다.

 

윤희보 선생은 2015년 3월 18일, 97세의 나이로 별세하였으며, 평양의 신미리 애국열사릉에 안치되어 있다.

 

추모의 밤에서는 한국대학생진보연합(아래 대진연) 뮤지컬 동아리 ‘리라’ 회원들이 선생들의 삶을 다룬 낭독극 「승리」 공연을 했다. 

 

아래는 낭독극의 대사 일부이다. 대사를 통해 박선애, 박순애, 윤희보 선생이 언제나 미래를 낙관하며 투쟁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10년, 아니 100년 후에라도 분단을 막기 위해 애쓰다가 죽어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리려고 싸웁니다. 이것 외에 우리가 후대들에게 물려줄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앞을 보고 살아갑시다. 삶이 고달플지라도, 언제나 희망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나는 언제나 낙관 속에 살아왔고 또 그렇게 낙관 속에서 기다린다. 통일을 성취하고 겨레의 힘을 과시할 날이 꼭 올 것이다. 그때 너희들의 미래는 참으로 평화롭고 행복할 것이다. 틀림없이 그렇게 될 것이다.”

 

▲ 한국대학생진보연합 뮤지컬 동아리 ‘리라’ 회원들이 선생들의 삶을 다룬 낭독극 「승리」 공연을 했다.     ©김영란 기자

 

추모의 밤 참가자들은 숨죽이며 낭독극을 들었고, 선생들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많았다.

 

우리 민족의 아픈 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으며 한평생 투쟁해온 선생들의 삶을 낭독극에서는 아래와 같이 마무리했다. 

 

“남은 여성 비전향자는 박선애가 유일했다. 그 한 사람 때문에 감옥을 유지하는 것이 난감했다. 1979년, 결국 감옥 문이 열리고 말았다. 끝내 박선애가 승리했다.” 

 

“전향을 거부한 윤희보는 오랫동안 감옥에서 나오지 못했다. 그러나 1989년, 사회안전법이 폐지되어 감옥 문이 열렸다. 끝내 윤희보가 승리했다.”

 

“경찰은 16년 동안 숨어 살던 박순애를 찾아내어 체포했다. 그러나 공소기간 15년을 넘겼기 때문에 그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끝내 박순애가 승리했다.”

 

 © 서지연

 

낭독극이 끝난 후 1990년대 이후의 선생들의 삶을 회고하는 대담이 영상으로 상영됐다. 대담자는 황선 평화이음 이사장 직무대행, 김은희 국민주권연대 서울지역본부 서남지회장, 정종성 6.15청학본부 상임대표였다. 이들은 학생운동 시기부터 선생들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었다.

 

이들은 대담에서 선생들의 학습열, 겸손함, 승리에 대한 확신, 따뜻한 인간미를 강조했다. 

 

노래패 ‘우리나라’는 추모의 밤에서 선생들의 뜻을 이어 통일의 날까지 힘차게 투쟁하자는 의미로 노래 「님을 위한 노래」, 「이 나무와 함께」를 불렀다.

 

▲ 노래패 ‘우리나라’의 노래 공연.  © 김영란 기자


젊은 세대의 결심 발언이 추모의 밤 마지막을 장식했다.

 

남영아 국민주권연대 운영위원장은 “선생님들은 어두운 터널 속에서 터널 끝의 빛을 보셨다는 그 말이 가슴에 많이 남는다. 선생님들의 신념과 낙관을 따라 배우겠다”라면서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곳이 선생님들이 신념의 눈으로 내다보셨던 예견된 밝은 미래, 터널의 끝자락이라고 생각한다”라면서 국민과 함께 투쟁해나가자고 호소했다. 

 

김수형 대진연 상임대표는 “박선애, 박순애, 윤희보 선생님의 생애는 그 자체로 거대한 교훈이자 스승이다.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조국과 민족을 사랑해야 하는지, 얼마나 뜨거운 심장으로 통일을 안아오기 위해 실천해야 하는지, 치열하게 학습하며 후대들을 사랑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가슴으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선생님들이시다”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 우리 후대의 몫은 박선애, 박순애, 윤희보 선생님 세 분의 고결한 정신을 널리 계승해나가는 것이다. 진정한 평화와 행복이 넘실거리는 세상에서, 선생님들의 숙원이었던 조국통일이 실현된 세상에서 우리 민족이 휘황찬란한 내일을 맞이할 수 있도록 반드시 승리하는 이 길에서 끝까지 투쟁하겠다”라고 결심을 피력했다. 

 

▲ 결심을 발표하는 남영아 국민주권연대 운영위원장(왼쪽)과 김수형 대진연 상임대표(오른쪽).  ©서지연

  

추모의 밤을 마무리하면서 사회를 본 김나현 씨는 “추모의 밤 행사가 선생님들의 삶에 대해 조금이나마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길 바란다. 민족이, 나의 조직이 무엇을 원할 것인지 이것만을 중심에 놓고 선택해오신 선생님들을 생각하면서 우리도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을 찾아가자”라고 당부했다 

 

한편 국민주권연대는 2023년부터 윤희보 선생의 생일(10월 10일)에 즈음해 박선애·박순애·윤희보 선생 추모의 밤을 열 계획이다. 

 

  © 곽성준

 

  © 김영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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