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도 사계절이 있다. 영토가 넓어 지역마다 기후와 기온이 다르긴 하지만 봄, 여름, 가을, 겨울로 구분하고 있다. 물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지역들 대부분 겨울이 길다.
그래서인지 러시아에서만 볼 수 있는 이색적인 모습들이 종종 우리나라 언론에 보도되기도 한다.
이번 글에서는 러시아의 겨울에서만 볼 수 있는 이색적인 것들을 소개한다.
러시아의 성탄절은 1월 7일
우리에게 성탄절(크리스마스)은 12월 25일이다. 하지만 러시아의 성탄절은 1월 7일이다.
러시아에서 성탄절을 1월 7일에 기념하는 것은 러시아 국교 격인 러시아 정교회가 율리우스력을 사용하는 것에서 비롯한다. 보통 가톨릭과 개신교는 16세기 교황 그레고리 13세가 만든 그레고리력을 사용한다. 하지만 동로마 제국(비잔티움 제국)의 국교였던 정교회를 계승한 러시아 정교회는 정통성을 지키기 위해 오늘날까지 율리우스 카이사르 로마 황제가 도입한 율리우스력을 사용하고 있다.
쉽게 말하자면 율리우스력과 그레고리력 모두 양력이지만,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것은 그레고리력이다. 소련 시대부터 러시아도 그레고리력을 쓰고 있지만 러시아 정교회 차원에선 율리우스력을 사용하고 있다.
이 두 달력의 차이는 날짜다. 1900년 3월 1일부터 2100년 2월 28일까지는 그레고리력과 율리우스력 간의 날짜 차이가 13일 정도 난다고 한다. 그래서 1917년 2월 혁명은 당시 사용하던 율리우스력으로는 2월 23일이지만 현재 사용하는 그레고리력으로는 3월 8일에 발생한 일이다. 볼셰비키가 정권을 장악한 10월 혁명도 율리우스력으로는 10월 25일이지만 러시아와 우리가 사용하는 그레고리력으로는 11월 7일에 발발한 사변이다. 그러한 이유로 러시아에서 성탄절 역시 러시아 정교회가 사용하는 율리우스력으로는 12월 25일이지만 러시아가 사용하는 그레고리력 상으로는 1월 7일이다.
두 날짜를 구별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부터 나오는 날짜는 모두 우리가 사용하는 날짜에 따른 것이니 큰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사실 러시아는 성탄절보다는 신년을 더욱 크게 기념한다. 러시아인들은 12월 25일부터 1월 6일까지 스뱌트키(거룩한 축일들, Святки)라 불리는 새해맞이 축일을 즐기는데, 그 정점은 당연히 1월 1일 신년이다.
12월 31일 밤이 되면 러시아인들은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새해 맞음을 축하한다. 자정에 신년을 알리는 불꽃놀이가 시작되면 서로 “스 노브임 고돔!(새해를 축하합니다, С новым годом)”이라 외치며 샴페인을 마시고 그 잔을 떨어뜨려 깨뜨린다. 잔을 깨는 행위는 행운을 빌거나 악운을 몰아내는 의미다.
어린이들이 선물을 기대하면서 밤잠을 설치는 것도 성탄절이 아니라 신년 즉 1월 1일이다.
러시아는 예로부터 자체적인 산타클로스를 가지고 있다. 러시아 옛날이야기에 등장하는 ‘서리 할아버지’(제드 마로스, Дед Мороз)가 바로 그런 인물이다. 파란 망토를 두르고 하얀 턱수염을 기른 서리 할아버지는 건드리기만 하면 무엇이든 얼려버리는 지팡이를 가지고 다닌다. 서리 할아버지는 1월 1일 새해에 지팡이를 가지고 다니며 착한 이들에겐 선물을 주지만 못된 이들은 얼려버린다고 한다.
서리 할아버지는 ‘눈 소녀’(스네구로치카, Снегурочка)와 함께 세 마리의 흰색 말이 끄는 썰매를 타고 다닌다. 이 두 인물의 조합은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엘사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종교적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역시 겨울 및 신년 축하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얼음물에 들어가는 러시아 사람들
“영하 40도 이상은 추위도 아니고 알코올 40도 이하는 술도 아니다.”
러시아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이다. 러시아 사람들은 산책하고 운동하거나 사우나를 한 뒤 눈밭에서 뒹굴거나 호수나 강의 얼음을 깨고 수영하는 등 갖가지 방식으로 겨울을 극복한다. 물론 겨울 수영은 러시아 사람들의 대중적 취미는 아니고 극한 운동(소위 익스트림 스포츠)이다.
러시아에서는 겨울 수영 애호가들을 ‘바다코끼리’라고 부른다. ‘러시아 바다코끼리’들은 겨울이 지속되는 4~6개월간 내내 수영한다. 하지만 보통 가장 추운 1~2월을 최적으로 꼽는다. 그중 가장 중요한 날은 1월 19일이다.
1월 19일은 러시아 정교회에서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가 물에 들어가 세례받은 날이다. 러시아 정교회는 이날 예수가 요단강에서 요한으로부터 물로 세례를 받고 하느님의 아들임을 처음 드러냈다고 말한다.
해마다 이날 자정 무렵이면 성직자들이 강과 호수에 십자가 모양의 구멍을 뚫는 순간을 기다렸다가 물속에 뛰어드는 이들이 많다. 종교를 갖고 있든 아니든 많은 러시아 사람들이 수영복만 입은 채 주변의 강이나 호수 속으로 뛰어든다. 전통적으로 이날 강과 호수의 물이 신성해져 물속에 몸을 세 번 담그면 지은 죄가 말끔히 씻겨나간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러한 행사에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구급 의료대원이 항상 대기한다.
러시아에선 겨울 수영을 만성피로와 우울증에서 벗어나는 기분전환 수단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생각과 달리 겨울 수영 때문에 감기에 걸리거나 병이 나지는 않는다고 한다. 다음과 같은 규칙을 지키기 때문이다.
첫째, 수영 전후 반드시 가벼운 준비운동을 해야 한다. 둘째, 팔다리를 물속에 천천히 담그려 하지 말고 단번에 뛰어들어야 한다. 셋째, 수영은 1분~1분 30초 정도만 하고 머리를 물속에 담그지도 말아야 한다. 넷째, 수영 직후 건조하고 따뜻한 옷을 입어야 한다. 또한 얼음 구멍으로 가기 전에 반드시 의사와 상담해야 한다. 어떤 만성 질병이 있으면 바다코끼리 수영을 해선 안 되기 때문이다.
한 번 얼음 구멍에 들어가 본 사람은 반드시 다시 들어가고 싶어 한다고 한다. 최초의 두려움을 이겨내기만 하면 그다음에는 만족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음 밑 수온이 약 영상 4도 수준이어서 추운 날에도 들어가면 오히려 대기 중보다 훨씬 더 따뜻하다.
이와 같은 ‘바다코끼리’ 겨울 수영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철저히 준비하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의 체력을 너무 과대평가한 나머지 물에 들어가다 폐렴에 걸리거나 더 나쁜 일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러시아인 모두가 ‘바다코끼리’ 수영을 자신의 취미로 생각하진 않을지라도 이 특이한 운동은 얼음낚시, 스키 도보, 사우나와 함께 러시아 전통의 겨울 오락, 겨울나기 방식으로 간주되고 있다. 매년 관련 대회들이 열리는 것만 보아도 많은 이들의 관심 속에서 이뤄지는 운동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제설작업과 고드름 제거
러시아는 눈이 아무리 내려도 도로가 빙판이 되는 법이 거의 없다. 제설작업을 워낙 신속하게 하기 때문이다.
겨울 동안 수시로 제설작업을 진행하기 위해 미리 제설작업 준비를 해놓다가 눈이 내리면 곧장 출동해 제설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제설작업에는 소형 제설기와 불도저는 기본이고 염화칼슘 살포 차량부터 로봇 팔 모양의 두 손으로 눈을 쓸어 담는 특수 차량 ‘황금손(золотые ручки)’까지 다양한 차들이 동원된다. 철로에선 쇄빙선 앞모습처럼 뾰족한 머리를 단 열차가 곳곳을 누비며 눈을 제거한다.
눈이 내리는 날이면 볼 수 있는 광경이지만 우리에겐 신기한 모습이다. 눈이 오면 가장 먼저 불도저들이 사선을 이뤄 도로의 눈을 옆으로 치우며 지나간다. 그다음 빗자루가 달린 트럭들이 도로를 따라가며 눈을 쓸어낸다. 이어 마지막으로 ‘황금손’ 제설차가 도로 가장자리에 쌓인 눈을 제거한다. 제설차가 쓸어 담은 눈은 컨베이어 벨트를 통해 자동으로 옮겨져 뒤따라오는 트럭에 실린다.
러시아에서 수집된 눈들은 산업폐기물로 취급되어 지정된 처리장소로 보내진다. 눈 처리장에선 눈덩이를 잘게 부숴서 하수구로 흘려보내는데 이 과정에서 화학적 처리를 거쳐 오염물을 정화한다고 한다.
지난해 기준으로 수도 모스크바 주변에 있는 56개의 눈 처리장에서 하루 처리한 양만 해도 55만 세제곱미터에 달했다고 한다. 이는 세계 3대 폭포라 불리는 빅토리아 폭포가 우기(비가 많이 오는 계절)에 1분간 쏟아내는 물을 담은 양과 맞먹는다.
아파트와 건물 옥상에서는 사람들이 동원되어 눈을 치운다. 러시아에선 종종 건물이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붕괴하거나 녹은 눈이 거대한 고드름이 되어 인명사고로 이어지는 일이 발생한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눈이나 고드름을 제거하는 작업을 진행한다. 그리고 높은 건물과 고가도로 교량에 매달려 있는 고드름을 제거하기 위해 총을 쏴 고드름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러시아 사람들은 이러한 이유로 겨울날 외출할 때 단단한 복장은 물론이고 신발과 모자에 신경을 쓴다.
특히 모자는 머리가 얼지 않게 하기 위한 수단임과 동시에 생명 보호의 수단이다. 모자를 쓰지 않고서 거리를 걷다가 자칫 봉변당할 수 있다.
매년 의외의 상황에서 고드름을 맞아 중상을 입고 목숨을 잃는 사람이 나오고 있다. 눈과 고드름을 수시로 제거하더라도 영하의 기온 탓에 다시 고드름이 생겨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겨울 동안 모자를 쓰는 것은 이런 위험을 막는 훌륭한 자기 보호 수단이다.
***
점점 더 추워지는 혹한의 날씨 속에서 우리는 시베리아 벌판과 겨울왕국이 떠오르며 러시아의 겨울을 종종 상상한다. 그런 의미에서 러시아에선 겨울을 어떻게 보낼지 알아보는 재미가 제법 있지 않을까?
끝으로 러시아어로 성탄 기념 인사와 새해 인사를 함께 보낸다.
С Рождеством!(메리 크리스마스, 즐거운 성탄절 보내세요!) С новым годом!(새해를 축하합니다!) <저작권자 ⓒ 자주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많이 본 기사
러시아는 지금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