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이래경 다른백년 이사장이 시민언론 ‘민들레’에 쓴 칼럼으로, 저자의 동의 아래 전재합니다.
한반도 시계 제로의 전쟁 위기 상황
윤석열 정권이 들어서면서 북한을 주적으로 설정하고 험한 말들이 오가는 동시에 문재인 정권 당시 중단하였던 한미 군사훈련이 대규모로 재개되고 일본 자위대까지 들썩이면서 소위 전략자산의 전개가 펼쳐지자, 북한은 이에 강 대 강으로 맞서 맞춤형의 수많은 미사일을 쏘아대는 등 한반도는 그야말로 시계 제로의 전쟁 위기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80년 해직기자 모임의 대표를 지냈고 한반도 문제를 깊이 연구해온 고승우 박사는 이러한 상황에 대하여 “하늘이 열린 단군 이래 민족의 멸종이라는 상황에 이르렀다”라고 한탄합니다.
이런 지경에 이른 배경은 모두가 알다시피 해방과정에서의 분단과 한국전쟁 이후 이를 종전과 평화협정으로 정리하지 못하고 단지 휴전을 의미하는 정전협정만을 맺은 채 70년이란 기나긴 세월을 방치한 탓입니다. 한마디로 강대국의 논리와 이해로 인해 인류의 근현대사에서 유례가 없는 장기간의 유사 또는 저강도의 전쟁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런 와중에도 귀를 번쩍 뜨게 하는 반가운 이야기가 들려옵니다. 104년 전 기미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천도교 산하의 동학민족통일회가 주도하고 여러 시민단체가 함께하여 오는 3.1절 오후에 임진각의 평화동산과 통일대교를 잇는 ‘DMZ 너머 비단길 내기’라는 규모 있는 행사를 추진한다는 소식입니다.
민족의 비극과 굴종·수모의 상징 DMZ
기실 DMZ는 분단상황 지속이라는 민족의 비극뿐만 아니라, 굴종과 수모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굴종이라는 표현을 쓰는 까닭은 DMZ의 관할을 한국의 군대가 아니라 미국의 지휘를 받는 유엔군사령부에서 맡고 있기 때문이고, 구태여 수모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유엔사가 대한민국의 주권과 통치권 위에 군림하고 있는 현 상황을 새기자는 뜻입니다. 나라의 주권자인 한국 시민들이 뽑은 정치인들조차 DMZ 관할지역에 접근하려면 유엔사의 허락을 받아야만 하고 (아마도 대통령조차 형식적이나마 절차를 밟아야만 할 것입니다), 남북 간의 화해와 협력을 위하여 진행하는 모든 통행과 물자교환 역시 일일이 유엔사의 감시와 통제를 받아야만 하는 것이 작금의 현실입니다.
오늘의 유엔사라는 자의적 조직 역시 깊이 들여다보면 판단해야 할 내용이 참으로 많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유엔안보리의 결정으로 16개국이 참전하게 되고 이들 여러 국가의 군대를 총괄 지휘해야 할 필요성이 생기자 미군 지휘부에 그 권한을 부여하면서 유엔군사령부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됩니다. 이는 항시적인 것이 아니라 전쟁상황을 효과적으로 대응하려는 잠정적 조직으로서 전쟁 종식과 더불어 당연히 해체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습니다. 그러나 임진왜란 시절의 선조만큼이나 무능하고 무책임한 독재자 이승만이 적법한 절차도 없이 한국군의 통솔권까지 미군에게 넘겨주면서 휴전 이후에도 일방적으로 유엔군이 남한 전역에 미치는 군사 지휘권을 행사하게 됩니다.
이러한 불합리함을 해소하고자, 1970년대 중반에 한국과 소련은 공히 내용과 조건은 달리하지만 유엔사라는 이름을 부여한 유엔의 총회에 이 조직의 해체를 상정하여 제각각 개별 건으로 통과됩니다. 이에 따라 당시 미국의 카터 대통령은 공식 서한을 유엔 사무총장에게 보내 해체를 약속합니다만, 곧이어 미국 합참본부를 포함한 미 군부와 네오콘 집단의 거센 저항에 직면하게 됩니다. 결국 미국은 편법을 동원하여 엄연하게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살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추가로 한미연합사를 창설하여 일상적인 군의 지휘권을 이에 위임하고 유엔사는 DMZ의 관할에 집중하면서 휴전상황의 대한민국 특히 DMZ에 대하여 가히 총독부와 같은 지위와 통제권을 지니게 됩니다.
한·미·일 연합, 대중 군사 대응 강화 불길
더욱 불길한 것은 최근 들어 미국 측이 동북아에 배치된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들먹이면서 유엔사의 기능과 역할을 제고하여 단순히 DMZ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국제군의 지휘부라는 상징성을 부여하면서 한·미·일 연합으로 중국에 대한 군사 대응을 강화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한반도뿐만 아니라 동북아의 유사시에 대한민국이 곧바로 전장의 한복판으로 휘말릴 우려가 대단히 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편, 1997년에서 2002년까지 유엔사무국 책임을 맡은 국제법의 전문가인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 사무총장이 판문점을 방문한 당시에 유엔사의 사무실에 유엔기가 날리고 있는 것을 보고 “유엔이 조직을 해체하기로 결정한 마당에 당장 저 깃발을 내리라”라고 호통을 쳤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유엔총회의 결정에 따라 DMZ 관할권을 포함한 한국 내 유엔사의 권한과 지위는 국가주권의 회복과 민족의 긍지라는 관점에서 적정한 과정과 절차를 걸쳐 필수불가결한 군사 사항으로 국한하여 제한하여야 하고, 종전 합의와 더불어 궁극적으로 해체되어야만 합니다.
남북 간 대화와 통행 반드시 이뤄져야
‘비단길 내기’ 행사를 추진하는 분들의 전언에 따르면, 20일부터 평화공원의 언덕 위에 천막을 치고 역사의 복원을 염원하는 민족의 정기를 온누리에 알릴 예정이라고 합니다. 병서의 가르침처럼 전쟁 중인 상대방과도 반드시 대화와 교섭의 창구는 열어야 하듯이, 눈 앞에 펼쳐지는 전쟁 참화의 위기를 막으려면 남북 간에 대화와 통행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에 간절한 심정으로 이번 행사가 잊혔던 민족과 역사라는 의미를 되살리는 커다란 계기가 되길 기대해 봅니다. 우리 모두 뜻을 모아 함께 참여했으면 좋겠습니다.
연변의 조선 민족이 즐겨 불렀다는 ‘반가워’라는 노래 가사를 소개하면서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사람이 사노라면, 만날 날이 있다더니, 이제야 만났구나. 다녀야 서로 알고 만나야 정이 들지, 산천은 변했어도 말씨만은 변함없구나.”
# 참고로 ‘비단길 내기’라는 표현은 동학의 2대 교주였던 최시형 선사가 “조선 땅에서 만국의 군대가 철수하는 때가 개벽 세상이 열린 시기로 온 백성을 위한 비단길을 내야 한다”라는 가르침에서 나왔다 합니다. <저작권자 ⓒ 자주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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