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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소녀들」

황선 | 기사입력 2023/03/18 [13:40]

시 「소녀들」

황선 | 입력 : 2023/03/18 [13:40]

소녀들

 

-황선

 

소학교도 졸업하기 전이었다.

 

비옥한 땅 풍년이 흔해도 

40년 가까이 남의 나라 땅 

종이 된 우리는 모두 가난했다. 

봄이면 영산강 유채꽃 향기 흐드러져도

우리는 배가 고팠다. 

강가의 손톱만한 게를 한 함지박 끓여먹으면

똥구멍이 막혔다. 

똥구멍이 찢어지도록 가난하다는 것이 어떤 것인 줄

어린 내내 

배고파 울고 똥을 누며 울고

식민지 백성 우리는 

가난을 살았다. 

 

마을엔 신작로가 깔리고

삼천리에 기적을 울리며 기차가 달려도

그것은 우리의 근대화가 아니었다

공사판에 끌려가 박힌 돌을 파내고 다지고

그 위로 석회를 부어도

그 길은 우리의 길이 아니었다. 

 

그 길로 우리는 팔려갔다. 

아니다, 돈을 받지 못했으니 팔려간 것도 아니다. 

끌려갔다.

그 길은 대일본제국을 위한 전쟁터로 가는 길

그 길은 대일본제국을 위한 총알을 빚으러 가는 길

그 길은 대일본제국의 영광을 위해 피땀을 짜내는 길

그 길은 황천길이었다. 

 

영산강 울부짖는 강처럼 늘 배고팠던

소학교 어린이 나는

먹을 것도 주고 돈도 주고 

단발머리 흰 에리 여학교에도 보내준다던

일본인 교장선생님과 일본인 담임선생님에게 속아

신작로 타고 낯설고 모진 땅에 실려 갔다. 

 

망했다던 일본은 조선 땅에서 일어난 전쟁으로 

다시 일어섰다는데

내 어린 노동은 아직도 착취중이다

그 때 나를 꾀어내던 교장이 오늘 대통령이 되어

내 도둑맞은 어린날을 또 다시 빼앗고

보란듯이 이 악물고 견뎌온 내 인생을 비웃는다. 

 

보자. 

우리는 아직 그 날 그 시간의 원통 잊지 않았다. 

해방된 조국에서 원없이 만세 불러보지 못 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직 싸우고 있다. 

열 몇 살 싸울 날이 하세월인 소녀들이다, 소년이다. 

나 죽을 날 기다리지 말거라. 

원한 깊은 총 한자루씩 품고 영원히 산다. 

우리 흰옷 입은 사람들.

 

(*나주소학교 학생 시절 일본으로 강제강용 당하셨던 양금덕 할머니 사연을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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