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6일(미국 현지 시각) 한미정상회담에서 채택된 한미동맹 70주년 공동성명(아래 한미 공동성명)과 워싱턴 선언에서는 한국이 미국을 좇아 북한을 적대하는 표현이 두드러졌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에 얼마나 해가 되는지, 문제점은 무엇인지 들여다보자.
북한 겨눈 핵협의그룹 신설
“(한미) 양 정상은 확장억제를 강화하고, 핵 및 전략 기획을 토의하며, 비확산체제에 대한 북한의 위협을 관리하기 위해 새로운 핵협의그룹(NCG) 설립을 선언하였다.”
위에서 보듯 워싱턴 선언의 핵심은 북한을 겨눠 확장억제를 강화하는 핵협의그룹 신설이다. 확장억제란 미국이 한국에 제공하는 핵우산, 재래식 우산을 뜻한다. 한미 양국은 핵협의그룹을 통해 북한을 이전보다 더욱 강하게 자극하면서 한반도의 위기를 높이려 할 것으로 예상된다.
워싱턴 선언은 “유사시 미국 핵 작전에 대한 한국 재래식 지원의 공동 실행 및 기획이 가능하도록 협력하고 한반도에서의 핵억제 적용에 관한 연합 교육 및 훈련 활동을 강화해 나갈 것”이라며 북한을 겨눈 핵무기 관련 공동 대응 수위도 끌어올렸다.
또 “한미동맹은 유사시 핵 기획에 대한 공동의 접근을 강화하기 위한 양국 간 새로운 범정부 도상 시뮬레이션을 도입하였다”라고도 했다. 도상 시뮬레이션은 정부의 주요 관련 기관이 지도 등을 보면서 실제 전쟁 상황을 대비하는 가상훈련이다. 전쟁 상황을 가정한 ‘새로운 범정부 도상 시뮬레이션’은 한국 정부 차원에서 미국을 도와 북한과의 핵전쟁을 대비하려는 훈련으로 보인다.
워싱턴 선언에는 “미국은 미국 핵태세보고서의 선언적 정책에 따라 한반도에 대한 모든 가능한 핵무기 사용의 경우 한국과 이를 협의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다할 것임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 국방부는 지난 2022년 10월 핵무기 전략과 정책을 담은 핵태세검토보고서를 공개했다. 보고서에서는 북한·중국·러시아 등을 미국과 동맹을 핵으로 위협하는 세력으로 강조하고 이들 국가를 억제하기 위한 미국의 핵전략, 핵역량 강화 등이 소개됐다.
이와 관련해 미국은 워싱턴 선언을 통해 한반도에서 핵무기를 사용할 때 “한국과 이를 협의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을 약속”한다고도 했다. 한미 양국은 이런 협의를 신설된 핵협의그룹에서 다루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한미 양국 간 협의에서는 미국이 북한과 관련해 핵무기 운용을 한국에 통보한다는 얘기조차 나온 적이 없다. 이런 점에서 핵협의그룹 신설은 미국이 한국에 일정 부분 핵무기 운용에 관여하게 허용해 준 것으로 볼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한국이 미국의 핵무기 사용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의결권을 준 건 아니다. 미국이 핵무기를 사용할 최종 결정권은 미국 대통령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핵협의그룹 신설을 두고 “미국의 확장억제 공약을 완전히 신뢰”한다면서 “미국 핵억제에 대한 지속적 의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동안 자체 핵무기 개발, 미국 전술핵 무기의 한반도 배치를 강조해온 윤석열 대통령이 한발 물러선 셈이다.
그런데 대통령실이 워싱턴 선언과 관련해 이른바 나토식 핵공유와 비교하며 ‘한국형 핵공유’, ‘사실상의 핵공유’라고 하자 미국의 반응은 달랐다.
지난 4월 27일(미국 현지 시각) 에드 케이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동아시아·오세아니아 담당 선임국장은 “이 선언을 사실상의 핵공유라고 보지는 않는다”라고 부정했다. 미국은 나토 소속 국가에 전술핵폭탄을 배치했지만 한국에는 미국이 배치한 전술핵폭탄이 없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그 뒤 지난 2일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워싱턴 선언은 한미 정상 간 확장억제의 추진방안을 적시한 것으로 ‘한국형 확장억제’의 실행계획을 담고 있다”라면서 “한미 간 고위급 상설협의체로 신설된 핵협의그룹은 한미 간에 일대일 관계로 더 자주 만나 더 깊게 논의한다는 점에서 나토의 핵기획그룹(NPG)보다 더 실효적”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은 어떤 의도로 핵협의그룹을 만들었을까?
미국은 북한의 강경 대응을 두려워하고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워싱턴 선언 마지막에 “북한과의 전제조건 없는 대화와 외교를 확고히 추구하고 있다”라는 말을 넣지 않았을 것이다. 앞에서는 실컷 북한을 자극해놓고 슬쩍 발을 빼려 한 셈이다.
미국은 핵협의그룹 신설을 통해 자체 핵무기 개발을 강조해온 윤 대통령을 달래는 한편 북한을 자극하는 돌격대·선봉대 역할을 맡기려 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미국이 직접 나서는 대신 윤석열 정권을 앞세워 북한의 시선을 돌리게 하려는 의도도 깔려 있을 수 있다.
미국은 윤석열 정권을 통해 한반도의 전쟁 위기를 높이면서 그 책임을 윤석열 정권에 떠넘기려 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윤 대통령은 미국이 핵협의그룹에 관해 한국과 핵공유를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 뒤에도 워싱턴 선언이 ‘한국형 확장억제’의 실행계획을 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를 보면 윤석열 정권이 미련을 버리지 않고 미국의 핵무기를 한국이 운용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것 아니냐는 추정도 가능하다.
북한 겨눠 한·미·일 협력 강조한 한미 공동성명
양국은 한미 공동성명 ‘글로벌 포괄적 전략 동맹’ 항에서 “북한 내 인권을 증진하고 납북자, 억류자, 미송환 국군포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력을 강화할 것”이라면서 북한의 인권 상황을 비난했다.
한미 공동성명에서는 북한 내 인권 증진에 더해 그동안 일본이 강조해온 이른바 ‘납북자’ 문제도 강조됐다. 하나 같이 북한의 강한 반발을 부르는 표현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양국은 한미 공동성명의 ‘인도·태평양 전역에서의 협력 확대’ 항에서는 북한 미사일에 대응하는 한·미·일 삼국의 미사일 경보 정보의 실시간 공유, 대잠수함 해상미사일 방어 훈련 정례화 등을 명시했다.
그러면서 북한의 “고도화되는 핵·미사일 위협을 보다 효과적으로 억제하고 대응하기 위한 대잠전 및 해상미사일 방어 훈련이 정례화되었음을 확인”했다며 한·미·일 삼국이 북한을 상대로 군사 대응을 확대할 것을 강조했다.
한·미·일 삼국은 지난 2022년 9월 30일과 10월 6일, 독도 인근 동해상에서 북한을 겨눠 연합 대잠수함 훈련과 미사일 방어 훈련을 진행했다. 이어 같은 해 11월에는 프놈펜 성명에서 북한 관련 미사일 경보 정보를 삼국이 공유하고 확장억제를 강화하겠다고 합의한 바 있다.
이번 한미 공동성명에서 한국은 일본에 미사일 관련 정보를 쥐여주는 한편, 대잠수함 훈련을 근거로 일본 해상자위대가 한반도 근처로 들어올 가능성을 높였다. 오는 5월 7일~8일 한국에서 열릴 한일정상회담에서 이와 관련한 구체적인 논의가 오갈 가능성이 있다.
한미 공동성명은 한·미·일 삼국 협력에 이어 “양 정상은 해양차단훈련 및 대해적훈련을 재개하고 재난대응 및 인도지원 관련 추가적 형태의 삼국 간 훈련을 식별하기 위한 계획을 논의”했다고 명시했다. 이 역시 한·미·일 군사 협력을 통해 북한을 적대하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북한을 겨눈 이번 한미정상회담의 결과 한반도의 긴장이 더 높아졌다. <저작권자 ⓒ 자주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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