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자제
1)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자제는 후계자
11월 21일 밤 북한이 정찰위성 ‘만리경-1호’를 발사한 뒤 연일 관련 보도가 나오고 있다. 북한은 정찰위성 보유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하는 듯하다.
그런데 정찰위성 관련 행사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자제가 또다시 등장하여 눈길을 끌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자제는 작년 11월 18일 대륙간 탄도미사일 화성포-17형 발사장에 처음 등장한 뒤 지금까지 15회나 언론에 나왔다. 북한 언론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자제를 보도한 사례는 다음과 같다. (날짜에 괄호를 친 경우는 북한 언론에 보도된 날짜임. 나머지는 실제 일정을 진행한 날짜임.)
2022년 11월 18일 대륙간 탄도미사일 화성포-17형 발사
2023년 (1월 1일) 지하 핵미사일 보관소 시찰
북한 언론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자제를 소개하면서 “존경하는 자제분”, “존귀하신 자제분”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또 국방과학원 미사일 부문 과학자, 기술자, 노동자, 일꾼들이 2022년 11월 21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올린 ‘충성의 결의 편지’에는 “자신(김정은 국무위원장)께서 제일로 사랑하시는 자제분과 함께 찾아오시어 우리들에게 남부러워할 특전을 안겨주시고…”라는 표현이 나오며 “남부러워할 특전을 최상 최대의 영광, 크나큰 긍지와 자부로 소중히 간직하고 앞으로도 변함없이 백두의 혈통만을 따르고 끝까지 충실할 것”이라는 다짐이 나온다.
2023년 2월 8일 조선인민군 창건 75돌 경축 열병식 장면도 인상적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열병식장에 도착해 인민군 명예 위병대를 사열하는데 옆에 자제의 손을 잡고 함께 걸어간 것이다. 리설주 여사는 한 걸음 뒤에서 따라갔다.
그리고 열병식이 진행될 때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자제는 귀빈석에 앉았다. 당시 녹화 영상에는 해설원이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들, 당중앙위원회 비서들이 존경하는 자제분을 모시고 귀빈석에 자리 잡았습니다”라고 하였다. 노동당 중앙위 정치국 상무위원회는 노동당의 최고 핵심 기구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상무위원이 “자제분을 모시고” 자리를 잡았다고 표현한 것이다.
또 열병식장에 도열한 인민군 장병들이 “김정은 결사옹위! 백두혈통 결사보위! 조국통일 만세!”라는 구호를 외쳤다. 여기서 ‘백두혈통’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자제를 의미한다는 것은 누가 봐도 분명하다.
열병식 전날 있었던 기념 연회 사진도 인상적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자제가 식탁 중앙에 앉고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리설주 여사가 양옆에 앉아있는 구도였다.
2) 후계자의 ‘업적’
북한에서 ‘수령의 후계자’가 되려면 ‘혁명 업적’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자제가 나온 북한의 보도를 종합하면 15회 가운데 14회가 국방 관련 내용이다. 특히 2022년 11월 18일 첫 등장이 신형 대륙간 탄도미사일 발사 때였으며 그 후로도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발사할 때 거의 매번 등장하였다.
처음 언론에 등장했을 당시 영상을 보면 대륙간 탄도미사일이 하늘로 날아 올라갈 때 모두가 고개를 들고 미사일을 쳐다보는데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자제만 오른손에 시계(초시계로 추정)를 들고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무언가 확인할 것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륙간 탄도미사일과 정찰위성 발사에서 업적을 쌓았다면 북한의 시각에서 후계자가 되기에 손색이 없다고 할 수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표현처럼 대륙간 탄도미사일은 ‘만 리를 때리는 주먹’이고 정찰위성은 ‘만 리를 보는 눈’이다. 북한에게는 자기를 위협하는 미국을 겨냥한 최적의 전략 무기들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업적을 쌓았다면 충분히 국가 지도자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할 만하다.
만약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자제가 10대로 추정되는 나이에 이 분야에서 업적을 쌓았다면 여기에는 엄청난 의미가 들어있다.
김일성 주석은 10대의 나이에 ‘배움의 천리길’을 걸었다고 한다. 김일성 주석은 12세였던 1923년 3월 16일 “조국의 현실을 알아야 한다”라는 부친의 뜻에 따라 중국 바다오거우(팔도구)에서 압록강을 건너 고향인 평양 만경대를 17일간 홀로 찾아갔다. 이를 북한은 ‘배움의 천리길’이라고 한다. 2년 뒤에는 “조선이 독립하지 않으면 다시 돌아오지 않겠다”라는 각오를 하고 만주로 되돌아갔는데 이를 ‘광복의 천리길’이라 한다. (「[한반도의 오늘] 김일성 ‘배움의 천리길’ 여정 100주년…“50년간 수십만명 답사”」, 연합뉴스, 2023.3.16.)
오늘날에도 10대 초반의 소년이 만주에서 평양까지 험산 준령을 혼자 걸어가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당시만 해도 깊은 산 속을 가다가 호랑이에게 물려 죽는 일도 많았고 산적도 많았기 때문에 어른들조차 시도하지 못할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은 김일성 주석이 10대의 나이에 이미 목숨을 걸고 천리길을 걸어갈 만큼 강한 독립 의지를 가지고 있었음을 강조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세인 1960년 10월 ‘신라에 의한 삼국통일과 그 역사적 의의’라는 제목의 학교 토론에서 기존의 ‘신라에 의한 삼국통일론’을 비판하고 새로운 역사 해석을 해서 당시 북한 역사학계에 충격을 주었다.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2세기 김부식의 삼국사기 이후 800년을 이어온 정설을 뒤집고 ‘신라는 삼국을 통일하지 못하였으며 대동강을 기준으로 신라와 발해가 공존했고 삼국통일은 고려가 하였다’고 논증하였다. 이후 토론문은 「삼국통일문제를 다시 검토할데 대하여」라는 논문으로 발표되었다고 한다.
논문 발표는 북한 역사학계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주장대로 역사관을 재정립하고 역사 연구에서 ‘주체적 입장을 견지’하는 원칙을 세우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이 밖에도 북한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학창 시절 교수들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여러 학설을 발표해 학계에 큰 변화를 불러왔다고 주장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10대 때 한반도의 ‘지정학적 숙명론’을 ‘전략적 요충지론’으로 재정립하였다고 한다. 2015년 10월 북한의 김혜영 해외동포사업국 간부는 노동당 창건 7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해외 동포를 대상으로 한 강연회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0대 시절에 벌써 사대주의적 관점에 물젖어 오랜 세월 숙명적인 것으로 전해 내려오던 지정학적 위치 문제를 바로잡아주셨다”라고 하면서 “우리나라가 지리적으로 큰 나라들과 이웃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 인민이 어버이 수령님과 위대한 김정일 장군님을 모시어 세상에서 가장 존엄 높은 인민으로 자랑 떨치는 오늘의 높이에서 보면 조선[북한]이 대국들을 다스릴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에 있다는 새롭고 독창적이며 주체적인 정식화를 내려주셨다”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김일성 주석부터 김정일 국방위원장, 김정은 국무위원장으로 이어지는 ‘백두혈통’ 가문은 대대로 10대의 나이에 독창성과 대범함을 보여주는 가풍이 있는 듯하다.
그런데 이번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자제가 대륙간 탄도미사일과 정찰위성 개발과 발사에서 업적을 쌓았다면 이는 ‘백두혈통’ 가문의 가풍에 비추어 보더라도 예사롭지 않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선대 지도자들은 10대 때의 활동과 사색의 대상이 한반도와 주변을 중심으로 하였는데,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자제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하면서도 그 범위가 전 지구적, 우주적으로 대단히 광대하다. 또 선대들이 10대에 보인, 세인을 놀라게 하는 파격들은 ‘혁명 활동’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인데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자제가 한 활동은 ‘혁명 실천’ 그 자체이기 때문에 실천적 의의가 더 엄청나다고 할 수 있다.
3) 후계자의 ‘배짱’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자제가 항공절에 즈음해 11월 30일 인민군 제1공군사단 비행연대를 방문한 사진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함께 서서 선글라스와 가죽 코트를 착용하고 시위 비행을 바라보는 사진인데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자제에게서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자신감이 느껴진다. 또 세계에서 가장 강한 힘을 손에 틀어쥐었다고 자부하는 절대적인 배짱 같은 것도 풍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후계자 시기 배짱이 두둑한 모습이 상당히 인상적이었지만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자제는 10대 초반의 여성인데 그에 못지 않은 모습이라서 대단히 주목된다.
만약 이런 자제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후계자로 되었다면 북한의 군인과 국민은 자기 앞에 세세 천년 ‘대통운’이 열렸다고 자축하는 분위기이지 않을까 싶다.
10대 초반의 여성이 국가 최고지도자의 후계자이며 이미 중요한 업적을 쌓았고 배짱도 강하다면, 이는 우리가 받아들이기 힘든 놀라운 모습이다. 북한을 상대해야 하는 우리로서는 이런 상상을 초월하는 놀라운 면모를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냉철한 이성으로, 정면으로 바라보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래야 북한을 정확히, 제대로 알 수 있다.
우리나라와 미국의 대북 정책 책임자들과 관변 전문가들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자제에 관해 나이가 어리고 여성이라서 후계자가 될 수 없다는 식의 분석을 한다. 처음에는 그럴지도 모른다고도 생각했지만 지난 1년 동안 자제의 활동을 돌아볼 때 그렇지 않다는 것이 점차 뚜렷해지고 있다. 이제는 후계자가 맞느냐 아니냐를 따지는 게 무의미한 수준이 되었다.
또한 관계자들, 전문가들은 북한의 후계 문제를 아직도 ‘세습’이라고 평가한다. ‘세습’이라면 실력이 없는데 단순히 같은 혈통이라고 하여 권력을 물려받았다는 정도의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후계자였던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상당한 실력가라는 점은 한국과 미국 그리고 세계 각국의 정치 지도자, 유명 인사들이 공히 인정하고 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전인 5월 25일 자 『한겨레21』(통권 309호)에 따르면 김대중 당시 대통령 지시로 정보기관과 민간 전문가 집단이 합동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재평가 작업을 진행했는데 그 결과 “지도자로서의 안목과 식견은 물론 합리성과 추진력을 동시에 갖춘 치밀한 인물이라는 평가”가 나왔다고 한다. 그것도 “이런 자질이 어느 날 갑자기 갖춰진 게 아니라, 아주 오래전부터 지도자로서의 경륜을 쌓아온 결과”라고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실제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직접 만난 이들은 “아주 머리가 좋다. 상당한 능력을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의 얘기를 잘 이해하고 그 말에 공감하면 바로 동조하여 결단을 내리는 경향이 있다”(고 김대중 대통령), “국정 상황을 꿰뚫어 보는 능력과 북한 체제에 대한 확고한 카리스마를 가진 지도자”(고 노무현 대통령), “두뇌가 명석하고 판단력이 빠르다는 느낌”(임동원 전 국가정보원장), “논리가 정연하고 활발하다”(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서방 국가들, 특히 한국의 여러 국내 문제를 알 정도로 박식했다. 한마디로 굉장히 스마트한 사람”(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 등의 여러 증언이 있다.
해외 인사들도 “국제정세와 외교정책들에 대해 자세히 파악하고 있었다”(올레그 셰닌 전 소련공산당 의장), “풍부한 지식과 정보를 가진 상식 있는 사람”(콘스탄틴 풀리코프스키 전 러시아 극동연방지구 대통령 전권대표), “두뇌 회전이 빨랐고, 사물에 대한 반응도 민첩”(탕자쉬안 전 중국 외교부장), “합리적인 대화자”(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국 국무부 장관)라고 하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관해서도 많은 이들이 실력을 인정하는 증언을 하였다. 특히 한미 두 나라 대통령이 직접 언급하였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상당히 유연성이 있고 결단력이 있는 인물”, “매우 솔직하고 의욕적이며 강한 결단력을 보여줬다”, “국제적인 감각도 있다”라고 하였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도 “매우 영리한 사람이자 위대한 협상가”, “아주 전략적인 사람”, “정말 현명하다”, “굉장히 재능이 있는 사람”, “위대한 인격에 매우 똑똑하다. 좋은 조합”이라고 하였다.
밥 우드워드 기자가 지난 10월 발간한 책 『트럼프 테이프』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CIA가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관해 평가한 것을 동의하지 않는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노련하고, 술수가 뛰어나며 매우 현명하다”라고 하였다.
이 밖에도 “자신감과 확신에 차서 지휘하고 있는 걸 봤다. 결단력 있는 모습을 잊을 수 없다”(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굉장히 진취적이었다. 시대에 맞는 사고를 하고 있다고 느꼈다”(박지원 당시 민주평화당 의원), “서방 지도자도 따라 하기 힘들 정도로 열려 있는 걸 봤다”(한완상 전 부총리), “동북아 정세에서 가장 중요한 운영자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다”(스인훙 중국 국무원 자문위원) 등 여러 인사들의 발언이 있었다.
최근에도 트럼프 전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관해 “터프(tough)한 남자이자 스마트(smart)한 남자였다”라고 했다. 이 평가를 알기 쉽게 간단히 표현한다면 ‘아놀드 슈워제네거와 아인슈타인’의 만남이라고도 할 수 있으니 미국에서는 이 이상의 칭송이 없다고 할 것이다.
이처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나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처음에는 외부에서 ‘실력이 없는데 세습으로 지도자가 되었다’는 식으로 주장했지만 정작 최고 지도자가 되어 실력을 발휘하자 그런 주장은 설득력을 잃어버렸고 오히려 매우 높은 평가가 이어졌다.
여기서 주장하고 싶은 것은 북한에 대해, 특히 북한의 지도자에 대해 객관적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하자는 것이다. 그래야 북한에 대한 대응책을 제대로 세울 수 있게 된다.
한국과 미국에서는 그동안의 대북 정책이 모두 실패했다는 평가들이 난무하고 있다. 이런 평가는 특히 미국 내에서 많이 나온다.
지난 10월 4일 미 상원 청문회에서 밋 롬니 의원(공화당)은 북한 문제와 관련해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가 한 일은 효과가 없었다”라고 말했다. 크리스 밴 홀런 의원(민주당)도 “(한반도 비핵화는) 매우 가치 있는 목표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달성할 수 없었다”라고 했다. 브라이언 샤츠 의원(민주당)도 “한반도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는 실현이 불가능하다고 본다”라면서 “우리는 이런 현실을 외면하고 있는 것 같다”라고 하였다.
지난해 10월 9일 파이낸셜타임스는 앙킷 판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 핵정책프로그램 선임연구원의 주장을 인용해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고집은 단순한 실패가 아니라 웃음거리(farce)로 전락했다”라면서 “북한은 이미 (비핵화 싸움에서) 이겼다. 쓰디쓴 현실이지만 어느 순간 우리는 그걸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하였다.
한미의 대북 정책이 실패한 요인 중 아주 중요한 하나가 북한에 대한 객관적 인식의 실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북한의 지도자가 단지 같은 혈통이어서 권력을 물려받았다고 본다면 앞으로 100년이 가도 북한에 대한 판단과 대응책은 모두 실패할 가능성이 있다.
북한의 ‘객관적 실태’에 대한 평가는 각자 자유고 주관적 기준에 따라 하는 것이지만, 현실에 대한 파악만은 객관적으로 해야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우리나라와 미국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점을 간곡히 찍어 강조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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