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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3.15 마산항쟁과 윤석열의 민생토론회

한찬욱 사월혁명회 사무처장 | 기사입력 2024/03/15 [23:14]

[기고] 3.15 마산항쟁과 윤석열의 민생토론회

한찬욱 사월혁명회 사무처장 | 입력 : 2024/03/15 [23:14]

오늘은 3.15 마산항쟁 64주년이다.

 

60여 년 전 선거는 오늘날과 달랐다. 

 

농촌은 라디오는커녕 신문도 제대로 볼 수 있는 집들이 없었다. 그러나 대부분 한두 세 집 건너 이야기하면, 후보가 일제 강점하에서, 해방공간에서, 6.25전쟁 시기에 어떤 일을 하였는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적어도 후보의 가문과 조부 이력, 특히 친일 반민족 전력이나 부정·비리 등 후보의 면면을 파악하기 쉬웠다.

 

자유당은 3월 15일, 제4대 대통령·제5대 부통령 선거에 무조건 이기기 위해 온갖 범죄 행위를 저질렀다. 대통령이, 장관이, 공무원이 직접 선거에 나서서 관권 불법 부정선거 그리고 공갈 협박 등 기상천외한 방법을 동원했다. 

 

물론 관권 불법 부정선거의 원흉은 이승만 대통령이다.

 

이승만의 탐욕(貪慾)과 여촌야도(與村野都)의 수수께끼

 

1960년, 이승만은 85세의 고령이었다.

 

오는 11월 미국 대선에서 재출마하는 바이든의 나이가 81세이다. ‘너무 늙었다’라고 미 대선의 최대 리스크로 부각 되고 있다. 

 

오늘날과 같은 의료 위생 환경 상태가 아닌 64년 전 당시로 생각하면, 85세인 이승만이 대통령에 출마한다는 것은 노인의 권력 탐욕으로 보기에는 너무도 황당무계(荒唐無稽)했다. 조선 이씨 왕조의 부활이자 이승만 자신을 우상화(偶像化)하려는 행위로 민중은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일제 강점과 해방공간 그리고 6.25전쟁을 겪은 민중은 숨을 죽였다. 너무나 큰 홍역을 앓았기 때문이다.

 

“한국의 농민들이 미군정으로부터 한국전쟁이 끝나는 분단국가의 형성 과정에서 격렬한 정치투쟁을 겪으며 가지게 된 정치적 패배의 상처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그래서 한국의 농민들은 ‘우리가 나선다고 뭐가 되는 일이 있나’라는 식으로 자신들의 정치적 효능(efficacy)에 회의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 (김태일, 「농촌사회의 구조변화와 농민정치」, 『한국현대정치론 1』, 한배호 편, 오름, 2000.) 

 

농민은 그동안 치른 홍역 속에서, 국가의 정책 결정 과정에 접근할 수 있는 통로는 차단당하고, 조직화는 아예 엄두를 못 냈다. 농민은 정치에서 아예 배제당했다.

 

농민 자신이 피해 대중임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당한 처절한 탄압과 희생으로 인해 ‘더 이상의 피해나 당하지 말자’는, 정치 불신과 무관심이 농촌을 지배했다. 

 

이것이 당시 선거에서 나타난 농촌 여당 승리, 도시 야당 승리라는 여촌야도(與村野都) 현상의 수수께끼였다.

 

함석헌은 『사상계』 58년 4월호에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 6.25 싸움이 주는 역사적 교훈」이라는 글을 썼다.

 

“우리가 일본에서는 해방이 됐다 할 수 있으나 참 해방은 조금도 된 것 없다. 도리어 전보다 참혹한 것은 전에 상전이 하나였던 대신 지금은 둘 셋이다. 남한은 북한을 쏘련 중공의 꼭두각시라 하고 북한은 남한을 미국의 꼭두각시라 하니 있는 것은 꼭두각시뿐이지 나라가 아니다. 우리는 나라가 없는 백성이다. (중략) 민중의 시대에 민중이 살았어야 할 터인데 민중이 죽었으니 남의 꼭두각시밖에 될 것 없지 않은가. (중략) 선거를 한다면 노골적으로 내놓고 사고팔고 억지로 하고 내세우는 것은 북진통일의 구호뿐이요. 내 비위에 거슬리면 빨갱이니, 통일하는 것은 칼밖에 모르냐?”

 

기상천외한 3.15 부정선거 

 

이승만은 직접 1959년 3월 ‘최후에 써먹을 총알’이라는 43세의 최인규를, 선거 진두지휘하는 내무부장관에 지명한다. 

 

이미 윤석열과 한동훈 조합의 원조로, 64년 전에 등장한다.

 

최인규는 지방자치단체장을 불러 놓고 “어떠한 비합법적인 비상수단을 사용하여서라도 이승만 박사와 이기붕 선생이 꼭 당선되도록 하라. 세계 역사상 대통령 선거에 소송이 제기된 일이 있느냐? 법은 나중이니 우선 당선시켜 놓고 보아야 한다. 콩밥을 먹어도 내가 먹고 징역을 가도 내가 간다”라고 공무원 부정선거 개입을 직접 지시했다. 

 

이것이 바로 1960년 3월 15일 대통령·부통령 선거에 대하는 자유당의 선거운동이었다.

 

선거운동으로 4할 사전 투표, 3인조·5인조 공개 투표, 유권자 명부 조작, 완장 부대를 동원한 위협, 야당 참관인 축출, 투표함 바꿔치기, 개표 수 조작 등 온갖 기상천외한 선거 불법 부정 방법이 동원되었다. 또한 농촌에서는 막걸리 고무신 선심 선거가 판을 쳤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야당 선거 판세는 너무도 암울했다. 조봉암은 사형을 당했고, 민주당 대통령 후보 조병옥도 신병 치료차 미국으로 출국했다가 운명했다.(1960년 2월 15일)

 

이런 호조건(?)에서 당선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상상을 초월한 불법 부정선거로 몰락의 길을 간 것은, 이승만의 고집과 추종자들의 권력욕 때문이었다. 

 

물론 뒤에는 세계의 냉전 반공 교두보로 이승만을 이용하려는 미국이 있었다.

 

그러나 학생들은 이 참담한 불의를 두 눈 뜨고 볼 수 없었다. 마침내 끓어오르는 분노가 대구에서 폭발했다.

 

독재 권력은 야당인 민주당의 강연회가 있을 예정인 대구에서 시내 고등학생들을 일요일에도 불구하고 강제 등교시켰다. 학생들의 강연회 참여를 원천 봉쇄하고자 한 야비한 술책에 학생들은 격분했다.

 

3.15 마산항쟁의 방아쇠, 2.28 대구 학생의거 

 

1960년 2월 28일, 일요일인 28일 “학원을 정치 도구화하지 말라”라는 구호를 외치며 경북고 학생들이 먼저 시위에 나섰다. 불어난 시위대는 민주당의 강연회장에 가지 않고 시내 중심가로 진출했다. 학생들은 민주당에 대한 지지보다 이승만 독재 권력에 저항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2.28 대구 학생의거이다.

 

그들은 일제 지배하에 신음하던 식민지 조국에서 태어났다. 

 

1945년 일제 패망 후의 해방공간에서는, 일제 식민지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사람만 바뀐 미 제국주의에 의한 제2의 신식민지임을 알았다. 

 

1948년 이승만과 반민족 세력에 의해 친일 청산을 하지 못하고, 남쪽만 단독 정부가 수립되는 것을 목격하였다. 

 

6.25전쟁을 전후하여 백만 민간인 학살을 보고 형언할 수 없는 고통과 분노를 느끼며, 우리 앞 세대가 무엇을 위하여 어떻게 싸우고 어떻게 죽어 가는가를 보며 소년·소녀시기를 보낸 학생들이었다.

 

사실 정부 수립 이후 최초의 반정부 데모였다. 

 

1990년대까지 이어진 학생운동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최초의 유혈 사태는 3월 15일 마산에서 발생했다. 선거 무효와 부정선거를 폭로하며 시위를 벌이던 민중에게 경찰이 발포했다. 이날 8명이 희생됐고, 80여 명이 다쳤으며, 200여 명이 연행되었다.

 

그런데 4월 11일 아침, 3월 15일 시위 때 눈에 최루탄을 맞고 죽은, 김주열 시체가 마산 앞바다에서 참혹한 모습으로 떠올라 2차 “마산항쟁”이 시작된다. 마산 민중 2만여 명은 “이승만 정권 물러가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마산 경찰서와 시청에 난입하고 파출소를 습격했다. 이날 밤 경찰 발포로 2명이 또 희생된다.

 

다급해진 이승만은 “이 난동에는 뒤에 공산당이 있다는 혐의도 있어서 지금 조사 중”이라는 특별 담화를 발표했다. 이어 15일에도 공산당 선전에 속아서 “마산 폭동”이 일어났다는 특별 담화를 또 낸다.

 

민중봉기가 전국적으로 확산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이승만이 직접 나서, “마산항쟁”을 빨갱이가 조정한 것으로 몰고 간다. 한술 더 떠 부통령 후보였던 이기붕은 “총은 쏘라고 준 것이지 가지고 놀라고 준 것은 아니다”라는 망언을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3.15 마산항쟁으로 곪을 대로 곪은 자유당 정권의 환부가 드디어 폭발하고, 4.19혁명의 도화선이 된다.

 

단독 정부 수립으로 조국을 분단시킨 원흉인 이승만은, 마침내 1960년 4.19혁명으로 민중으로부터 단죄받아 쫓겨난다.

 

이승만의 죄과(罪過)

 

이승만이 일제 강점하에서 하였다는 독립운동은 독단적 행동으로 항일운동 세력의 분열만 일으켰다. 그는 분열주의자였다. 

 

또한 해방공간에서 이승만은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를 해산시키고, 친일파들을 대거 등용한 친일파의 아버지이었다. 

 

특히 이승만의 미국에 대한 충성심은 1948년 9월 1일 한국에 대한 미국의 착취를 제도화해 주는 ‘한미 재정 및 재산 이양에 관한 협정’ 체결을 위한 발언에서 잘 드러나 있듯이, 이승만은 사대 숭미(崇米)주의자였다. 

 

“미국 측 제안대로 전부 동의하라. 미국의 힘으로 정부가 세워졌고 앞으로도 미국의 힘에 의하여 유지될 우리 정부가 미국 사람들의 비위를 거슬러 가면서 그들의 그만한 요구를 거부할 수 있겠는가.” (한동혁 엮음, 「안재홍 유고집」, 『지배와 항거』, 힘, 1988.) 

 

그뿐만 아니라 이승만은 단독 정부 수립 이후 서북청년회 등 정치 깡패를 이용한 정적 탄압, 제주 4.3사건, 보도연맹 학살과 같은 민간인 학살 사건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민중을 죽인 학살 책임자였다. 

 

이승만은 1949년 제헌국회 내의 일부 소장파 국회의원들이 외국군 철수와 평화통일을 주장한다고 남조선노동당의 국회 내 프락치로 몰아 대거 구속하고, 무엇보다 민족통일 세력에 대한 영원한 전쟁을 선포한 국가보안법을 제정한 반인권·반민주 범죄자였다. 

 

이승만은 북진통일을 주장하여 6.25전쟁을 유발하게 하였으며, 전쟁 전후 군경을 동원해 민간인 백만여 명을 학살한 범죄 집단 우두머리였다. 특히 한강 인도교 폭파, 국민방위군 사건, 거창양민학살사건, 부산정치파동 등 전쟁 중에도 책임회피만 한 보신주의자였다.

 

이후에도 민주주의와 인권을 짓밟은 이승만의 독재 범죄 행위는 사사오입 개헌, 진보당 사건과 당수 조봉암 사법 살인, 3.15부정선거, 4.19혁명 당시 115명의 사망과 수천 명의 부상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윤석열의 기괴한 민생토론회를 빙자한 선거운동(?)

 

어제 14일, 4.10총선 25일을 앞두고 윤석열 대통령은 전라남도를 방문해 “영암에서 광주까지 47㎞ 구간에 약 2조 6천억 원을 투입해 독일의 아우토반과 같은 초고속도로 건설을 추진하겠다”라고 말했다.

 

윤석열은 지금까지 스무 번째 ‘민생토론회’를 1월부터 평균 ‘주 2회’ 꼴로 계속하고 있다. 실제 토론회는 이루어지지 않고, 대통령 혼자 발언하는 기괴한 토론회(?)이다. 

 

그간 민생토론회란 구실로 윤석열은 경기도 8회, 영남 4회, 서울 3회, 충청 2회, 인천 1회, 강원도 1회, 전라도 1회를 열었다. 하나같이 4월 총선의 전략 지역으로, 실질적 선대 위원장(?) 노릇을 하며 정책 공약도 남발하고 있다. 

 

주요 정책 공약에는 ‘군사시설보호구역 해제’(2월 26일, 충남), ‘신공항 광역급행철도 건설’(3월 4일, 대구),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비(B) 노선 착공 기념식, 경인고속도로·경인철도 지하화’(3월 7일, 인천), ‘강원도 산악관광 활성화 계획’(3월 11일, 강원) 등이 있다. 

 

한겨레 15일자 사설의 일부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장 노릇을 하고 있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강행하고 있는 전국 순회 민생토론회가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총사업비가 약 900조 원에 이르는 개발 공약을 쏟아내면서 재원 마련 방안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거나 두루뭉술하게 넘어가고, 이미 착수한 사업을 포장만 달리해 우려먹는 등 총선용 공수표를 무책임하게 남발하고 있다.”

 

현재 세수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대규모 적자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민생토론회라고 하면서, 서민 생활에 직결되는 진짜 민생 문제인 장바구니 물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달걀만한 귤 하나가 1,000원이고 사과 하나가 5,000원이다. 2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해 같은 달에 견줘 3.1% 올랐지만, 신선 과일은 무려 41.2%, 신선 채소는 12.3% 치솟았다. 

 

민주당은 윤석열의 민생토론회에 대해서 “불법 관권 선거”라며 공무원이 직무 또는 직위를 이용해 선거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고 규정한 공직선거법 제85조 1항을 위반한 혐의로 윤석열을 지난 7일 경찰에 고발했다. 사실상 ‘선거 개입’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민심의 총선 전망은 밝다

 

전망이 어두우면 현재 유리하더라도 경거망동하지 말고, 전망이 밝으면 지금 어렵더라도 싸우라 하였다.

 

이번 4.10 22대 총선은 대통령과 언론 그리고 공안 세력들이 총력으로 덤벼들고 있지만, 민심의 총선 전망은 밝다.

 

윤석열 정권의 폭주가 치닫고 있지만 이제 끝이 보인다.

 

현재 윤석열의 선거 패악이 절정을 이루고 있다.

 

‘채상병 순직 사건 수사 외압’ 당사자인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도피극, 비판 언론에 ‘회칼 테러’ 언급하는 대통령실, 제재 남발하는 선거방송심의위원회의 언론 ‘입틀막’ 등 거짓말을 밥 먹듯 하고, 악행을 숨 쉬듯 하면서 부끄러움을 모르는 윤석열과 졸개들이다.

 

총선 패배는 곧 식물 대통령이라는 것을 윤석열도 잘 알고 있다. 

 

윤석열은 민생토론회를 구실로 총선 전략 지역을 돌면서, 포퓰리즘 정책 남발 등 사실상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또한 국정원·검찰·경찰 등 휘하 공안 기관들을 총동원하고 거부권을 남발하고 있다. 

 

우리는 결코 윤석열 집권 2년의 저성장, 소득과 부의 양극화, 물가·금융 불안정 등 기존 ‘삼중고’에 더해 고금리, 전쟁 위기로 점철된 절망의 시대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민중은 단 하루도 윤석열 정권과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다. 

 

민중은 나라가 망하고 있다고 이구동성(異口同聲)이다.

 

역주행 반역의 시대, 분열 공작과 탄압을 반드시 민중의 힘으로 뚫어야 한다.

 

일제 말의 엄혹한 상황에서 해방을 내다보고 민족의 단결을 강조한 몽양 여운형 선생의 친필 신년 휘호이다.

 

分卽倒合必立(분즉도합필립)

분열하면 곧 쓰러지고 단결하면 반드시 일어난다.

 

역사는 저절로 전진하지 않는다! 

 

민중의 힘을 믿고, 4.10 22대 총선에서 반드시 승리하여 윤석열을 끌어내리자!

 

반제·자주·민주·평화애호 세력은 총단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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