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풀려 낮에는 덥다는 느낌마저 드는 3월 중순, 서울 시내에는 많은 시민들이 주말을 즐기고 있었다.
‘윤석열 퇴진! 김건희 특검! 81차 촛불대행진’에 한 시간 정도 일찍 도착해 서울시청 인근 카페를 찾았다.
카페에는 대여섯 명의 대학생들이 모여 토론하고 있었다.
옆에서 들어보니 윤석열 정부의 문제점을 발표하고 토론하는 자리였다.
모 지역 윤석열퇴진대학생운동본부(윤퇴본)인데 전국 집중 촛불대행진을 할 때마다 미리 모여서 한 달 동안 있었던 시사 뉴스를 발표하고 토론한다고 한다.
중간에 대학생들이 한 명 한 명 도착해서 수가 점점 늘었다.
자기 학교에 붙은 윤퇴본 대자보를 보고 처음 촛불대행진에 참여한 학생도 있었다.
집회가 끝난 뒤 이 학생은 “박근혜 탄핵 촛불 이후로 처음 나온 건데 감회가 새로웠다. 당시는 촛불집회를 보면서 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서 참여했다. 오늘 함께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축제 분위기로 신나고 재밌게 참여했다. 앞으로도 참여가 가능하다면 최대한 자주 참여하도록 하겠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집회장 중간에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바로 앞에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 단위 참가자들이 많았다.
아예 돗자리를 깔고 예닐곱 명의 유아들이 모여 있으니 마치 소풍 나온 아이들 같았다.
아이들은 촛불집회에 익숙한지 울거나 떼를 쓰지 않고 간식을 먹으며 잘 놀았다.
집회 마지막 순서로 백금렬 밴드의 「뱃노래」가 나오자 부모들이 분주해졌다.
행진을 하기에 아이들이 너무 어려서인지 유모차와 캠핑 수레를 펴고 아이들을 태우기 시작했다.
아이를 안거나 업고 행진을 하는 부모들도 있었다.
이렇게 남들보다 더 힘든데도 아이를 데리고 나오는 부모들이 대단해 보였다.
한 아이어머니는 “어린아이를 데리고 나오려면 준비물도 챙겨야 하고 이것저것 신경 쓸 것이 많다. 하지만 내 아이가 살아갈 대한민국은 좀 더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나라여야 한다는 생각에 촛불집회에 나오게 되었다. 처음에는 큰 소리에 사람들도 많아 아이가 낯설어하기도 하는데, 촛불대행진에 참석하시는 분들이 아이들을 따뜻하게 챙겨 주시기도 하고 또 아기가 흥겨운 음악을 좋아해서 곧 신나 하더라”라고 하였다.
다른 아이의 어머니는 “둘째가 폐렴에 걸려서 망설였는데 다행히 아침에 열이 떨어졌다. 오늘 총선 전 마지막 전국 집중 촛불집회여서 어렵지만 나왔다. 아이와 함께 나오면 촛불국민들이 다들 예뻐해 주시고, 간식도 많이 주셔서 크게 힘들어하진 않는다. 또 같이 있을 또래가 있으면 더 신나 한다”라고 하였다.
또 다른 아이어머니는 “연세 많은 어르신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나오는데 아이들이 동행한다고 힘들지는 않다. 아이들과 세상살이 이야기를 하다 보면 아이들도 지금 세상 돌아가는 것이 뭔가 잘못됐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럴 때 실망하고 주저앉고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사람들과 힘을 모아 길을 함께 찾는 것이 삶을 살아가는 올바른 방식임을 직접 배우고 느끼게 하고 싶었다”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물론 힘들어한다. 하지만 힘들어도 학교를 가야 하는 곳으로 인식하듯이 전국 집중 집회는 학교처럼 가야 하는 곳으로 인식하게 했고 아이들도 그렇게 받아들인다. 그리고 아이들이 덜 힘들어할 여건을 최선을 다해 만들어 준다. 추위와 더위에 대비하고 간식도 준비하고 함께할 친구들도 미리 알아보고, 끝나면 달콤한 뒤풀이까지 준비한다. 그런데 무엇보다 아이들은 함께 하는 참가자들의 관심, 격려, 응원, 칭찬, 선물 덕에 집회를 아주 즐거워한다. 아이들도 행복한 공동체가 촛불대행진이다”라고 했다.
지난해 노동절(5월 1일)에 분신한 양회동 열사가 세상을 떠난 지 어느덧 10개월이 넘었지만 김선희 씨는 주말마다 강원도에서 촛불대행진에 함께하고 있다고 한다.
행진을 하면서 강원촛불행동 쪽으로 가서 김 씨를 만나보았다.
김 씨는 “촛불집회 나갈 때마다 마음이 항상 무겁다. 남편이 전에 같이 가자 몇 번 이야기했는데 같이 못 갔던 생각이 나서 항상 무거운 마음이 있다”라고 하면서 촛불시민들을 향해 “나라 걱정에 참여하는 모습이 항상 대단하시다, 존경스럽다, 많이 배워야겠다고 생각한다. 저는 남편 일을 계기로 참가하는데 그전에 너무 무심했고 너무 안일했다고 생각한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또 정치권을 향해서는 “정당이나 계파 따지지 말고 정말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해 주는 정치권으로 바뀌었으면 한다”라고 하였다.
1년 가까이 고통의 시간을 보냈을 김 씨는 “안타까운 일들이 이제는 그만 일어났으면 한다. 힘든 일을 겪으신 분들은 참 외롭고 힘드실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행진을 마치고 집회장에 돌아왔는데 다들 활기에 넘쳤다.
한 참가자는 “따뜻한 봄날에 촛불집회에 참석하니 좋다. 행진을 할수록 행진 대오에 사람이 느는 것과 길가에 서서 응원해 주시는 시민들을 보며 윤석열이 곧 끌려 내려오겠구나 싶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옆에 있던 다른 참가자는 “오늘 집회에선 높은 기세가 더 많이 느껴졌다. 탄핵국회를 만들자는 높은 의지가 모였기에 그런 것 같다. 참가자들의 환하고 즐거운 모습에서 승리가 보였다”라고 하였다.
또 다른 참가자는 “오늘 촛불은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와서 좋았는데 발언은 안 해서 아쉬웠다”라고 하였고 그 옆에 있던 참가자는 “여러 정당에서 나와서 보기 좋았는데 정치인들이 윤석열 탄핵 의지를 좀 더 밝혀줬으면 했는데 그건 아쉬웠다. 양회동 열사 부인 발언이 기억에 남는다”라고 하였다.
집회가 끝나고 지역별로 버스 시간에 맞춰 분주히 이동하면서도 흥에 넘치는 모습을 보면서 희망과 굳은 의지가 다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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