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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준54] 삼성전자가 받는 미국 보조금 9조 원, 마냥 기뻐할 일일까?

문경환 기자 | 기사입력 2024/04/24 [13:43]

[정조준54] 삼성전자가 받는 미국 보조금 9조 원, 마냥 기뻐할 일일까?

문경환 기자 | 입력 : 2024/04/24 [13:43]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부장관이 삼성전자 텍사스 반도체 공장에 64억 달러(약 8조 9천억 원)의 보조금을 지급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이 보조금은 미국의 반도체법에 따른 것으로 미국의 인텔(85억 달러), 대만의 TSMC(66억 달러)에 이어 세 번째로 큰 규모입니다. 

 

2021년 대통령에 취임한 조 바이든 대통령은 제조업 부활을 위해 ‘미국에 투자하라(인베스트 인 아메리카)’ 정책을 내걸었으며 특히 ‘반도체 자립’을 선포하며 중국과 반도체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반도체 분야에서 중국을 완전히 배제하고 설계부터 생산, 이용까지 모든 공정을 미국 내에 구축하겠다는 것입니다. 또, 2030년까지 미국 내 반도체 생산량을 늘려 전 세계 점유율을 20%까지 끌어올릴 계획입니다. 

 

이를 위해 미국은 2022년 반도체 보조금 390억 달러와 연구개발 지원금 132억 달러 등 5년간 총 527억 달러를 지원하는 내용의 반도체법을 제정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삼성전자가 보조금을 받게 된 것입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15일 성명을 통해 “이번 (보조금 지급) 발표를 통해 삼성이 40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삼성전자는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170억 달러를 투자해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고 있었는데 보조금 결정에 맞춰 투자액을 2030년까지 총 450억 달러로 2.6배 이상 늘렸습니다. 

 

▲ 텍사스주 테일러시의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 삼성전자



미국의 전략 변화

 

그런데 미국의 이런 조치는 이전과 다른 양상으로 보입니다. 미국은 과거 다른 나라 경제와 기업을 희생시켜서 미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전략을 주로 사용했습니다.

 

예를 들어 1985년 플라자 합의 때는 일본의 엔화 가치를 강제로 상승시켜서 일본 기업의 미국 수출을 막았습니다. 일본의 많은 기업들이 수출 경쟁력을 잃고 몰락하였고 그 틈에 미국 기업은 다시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또 1980년대 들어 반도체 분야에서 일본이 미국을 추월하자 1986년 미일 반도체 협정을 강제로 체결해 일본 반도체 기업을 무너뜨렸습니다. 

 

그러니 예전 같으면 미국이 자국 기업인 인텔을 살리기 위해서 삼성전자를 희생시키는 방법을 사용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미국은 인텔을 살리면서도 삼성전자를 미국에 유치합니다. 양상이 달라졌습니다.

 

왜 미국은 전략을 변경하였을까요?

 

삼성전자가 공시한 지분 구조를 보면 2023년 4분기 말 기준 외국인 지분율이 55%에 이릅니다. 이들의 국적을 따져보면 미국이 가장 높습니다. 특히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미국의 블랙록이 5% 이상 지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삼성전자는 경영진이 한국인이고 본사가 한국에 있는 한국 기업이기는 하지만 실소유주를 따져보면 이미 국제 자본이 지배하는 기업입니다. 

 

미국은 이런 지분 구조를 보고 삼성전자를 희생시키기보다 미국 내에서 키우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작정 삼성전자를 희생시키면 한국 내 반발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재용 회장의 삼성전자 지배 구조를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겉으로는 한국 기업의 이미지가 있기 때문에 한국과 삼성전자의 반발을 줄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삼성전자를 미국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미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이기 때문입니다.

 

미국 경제 위기는 제조업의 몰락에서 시작됐습니다. 미국의 경제 구조는 현재 금융 자본이 중심입니다. 세계가 미국 중심의 일극 체제로 되면서 미국은 부를 더 많이 축적하기 위해서 제조업을 중국 등 해외로 이전하고 금융 자본 중심으로 경제를 성장시켰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미국의 일극 체제가 막을 내렸습니다. 금융 자본만으로 미국이 세계 경제를 통제하기 어렵게 된 것입니다. 특히 중국의 급성장은 미국 경제 패권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2018년부터 미중 경제 전쟁에 돌입합니다. 중국의 값싼 물건에 높은 관세를 붙여서 수입을 제한하고 동맹국들에도 중국과 경제 협력을 줄일 것을 강요했습니다. 중국과 경제 분리를 시도한 것입니다.

 

그런데 중국과 경제를 분리하면 할수록 물가 상승으로 오히려 미국이 피해를 보는 현상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제조업을 등한시하여 미국 자체로 값싼 물건을 생산할 수 없게 된 것이 원인입니다. 거기다 값싸게 들어오던 중국산 제품에 높은 관세가 붙는 것도 미국의 물가 인상에 한몫했습니다. 

 

미국은 향후 중국과 경제 전쟁을 이어가기 위해 어떻게든 제조업을 살려야 합니다. 그래서 다시 제조업을 부활시키려고 하지만 인건비, 임대료, 건설비, 공과금 등이 너무 비싸고 기술력이 떨어져 쉽지 않아 보이긴 합니다. 

 

이런 배경이 삼성전자를 몰락시키기보다는 미국 내에 유치하기로 한 결정적 이유로 보입니다.

 

미국의 이득

 

삼성전자를 미국 본토에 유치하였을 경우 미국은 다양한 경제 이득을 챙길 수 있습니다. 

 

우선 삼성전자의 최첨단 반도체 기술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반도체 기술 보안이 심하다고 하지만 일단 미국 내에 공장이 존재하게 되면 그 기술을 습득하기가 쉬워집니다. 

 

또, 미국의 일자리를 늘릴 수 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15일 성명에서 “최소 2만 1,500개의 일자리를 창출하며, 최대 4천만 달러의 반도체 보조금을 활용해 지역 인력을 훈련해 텍사스 중부는 첨단 반도체 생태계로서의 역할을 공고히 할 것이다”라고 자랑했습니다. 미국 정부 고위 당국자도 “이번 투자로 최소 1만 7천 개의 건설 일자리가 생기고, 공급망을 포함할 경우 수만 개의 일자리 창출이 이뤄질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값싼 반도체를 빠르게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그동안 미국은 아시아에서 생산한 반도체를 주로 수입했습니다. 2021년 기준 시스템반도체 대미 수출국 1위는 말레이시아로 무려 점유율 61.1%를 차지합니다. 메모리반도체 대미 수출국 1·2위는 대만과 한국으로 각각 49.6%, 24.4%의 점유율을 기록했습니다. 요즘은 베트남·태국·인도도 점유율을 높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시아에서 반도체를 수입하려면 운송비도 많이 들고 시간도 오래 걸립니다. 미국 내에서 직접 반도체를 생산하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손해

 

물론 이런 것들이 미국 경제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한국 경제에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벌써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반도체법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법입니다. 반도체 보조금을 받은 기업은 향후 10년간 중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거나 설비를 늘리는 데서 제한에 걸리며 적발 시 보조금을 반환해야 합니다.

 

그런데 미국반도체산업협회(SIA)와 보스턴컨설팅그룹이 지난 2021년 작성한 「불확실한 시대에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강화」에 따르면 미국·한국·대만·중국에 첨단 반도체 공장을 짓고 10년간 운영했을 때 드는 비용이 미국을 100이라고 했을 때 한국·대만은 78, 중국은 63으로 나왔습니다. 그러니 중국이 아닌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것 자체가 손해보는 일입니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중국에서 값싼 인건비와 원자재를 이용하여 저렴한 반도체를 대량 생산해 왔습니다. 앞으로 중국에서 전기차나 인공지능 같은 첨단 산업이 발전하면 반도체 수요가 늘어날 것이므로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중국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하는데 반도체법에 막혀서 모든 기회를 날려버릴 수 있습니다. 

 

또, 중국이 보복할 수도 있습니다. 그간 한국 경제를 지탱해 온 것은 전체 수출의 20% 이상을 차지해 온 반도체 수출이었고 그 가운데서도 대중국 수출이 무려 49.9%(2023년 기준)나 됩니다. 그런데 한국이 미국의 반도체 전쟁에 편승해 철저히 미국 편을 들면서 중국 투자를 멈추면 중국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한국의 대중국 반도체 수출이 막히면 그야말로 한국 경제에 지옥문이 열립니다. 

 

반도체법에 따른 보조금을 받으려면 미 국방부 등 국가 안보 기관의 반도체 생산 시설 접근을 허용해야 하고 미 상무부에 상세 회계자료를 제출해야 하므로 기술 및 영업 비밀이 유출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나라 주력 수출 분야인 반도체 산업을 미국에 빼앗기게 됩니다.

 

게다가 삼성전자가 초과 이익을 내면 보조금의 최대 75%를 미국 정부와 공유해야 합니다. 지금 당장은 보조금을 주지만 나중에는 이것을 회수해 갈 수도 있습니다.

 

삼성전자가 미국 투자를 늘리면 한국 투자는 그만큼 줄어들 것이고 오히려 한국 공장을 축소하고 근로자를 해고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인텔, TSMC, 삼성전자 등 반도체 기업들의 대규모 미국 공장 건설이 비슷한 시기에 몰리면서 공장이 가동될 즈음에는 공급 과잉 현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공급에 비해 수요가 많을 때는 2등, 3등 기업도 돈을 벌 수 있지만 반대로 수요에 비해 공급이 넘치면 경쟁에서 밀린 기업은 결국 도태되고 맙니다. 미국 기업인 인텔, 파운드리 분야 1위인 TSMC에 비해 삼성전자는 미국에서 매우 불리한 위치에 서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에게 불합리하고 불리한 점들이 너무 많지만 반도체 기업의 미국 투자는 울며 겨자 먹기로 추진되고 있습니다. ‘미국이냐 중국이냐 결정하라’는 미국의 압박에 한국 기업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미국만 따라가다 한국이 망하게 생겼습니다. 이 문제는 삼성전자 같은 개별 기업이 해결할 수 없습니다. 정부가 나서서 외교로 풀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걸 기대할 수 없다는 게 우리 국민의 비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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