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의 장남 트럼프 주니어가 4월 초 방한했을 때 국내 시민단체와 대담을 했습니다. 여기서 그는 아버지의 경쟁자인 조 바이든 대통령에 관해 ‘북한의 육식(predation) 본능을 자극할 약한 상대’라는 아주 흥미로운 주장을 했습니다.
트럼프 주니어의 발언에서 미국의 약육강식 세계관을 볼 수 있습니다.
미국은 그동안 평화의 수호자, 정의의 심판자, 세계의 경찰국가처럼 행세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다릅니다. 그들에게 기준은 오직 돈, 이익입니다. 미국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법, 정의, 평화, 인권 등의 가치는 헌신짝처럼 버리고 힘으로 해결하는 것이 미국의 본질입니다.
우크라이나를 봅시다.
미국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했다면서 전 세계에 러시아를 제재하고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라고 요구합니다. 하지만 애초에 우크라이나 전쟁을 유발한 건 미국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불씨가 된 2013년 유로마이단 사태에 미국이 개입했음은 널리 알려진 일입니다.
유로마이단 사태란 우크라이나 내 친미·친유럽 세력이 폭동을 일으켜 친러 성향의 정부를 전복한 쿠데타입니다. 이 사태로 친러 성향이 강한 우크라이나 동부의 크림반도와 돈바스 지역이 쿠데타를 반대하며 분리독립을 선언했습니다.
경향신문 2014년 2월 7일 자 보도 「우크라이나 시위 뒤에 ‘미국의 공작’ 있었나?」를 보면 당시 빅토리아 눌런드 미 국무부 유럽·유라시아 담당 차관보와 제프리 파이어트 우크라이나 주재 미국 대사의 대화가 담긴 녹음파일이 2014년 2월 4일 유튜브에 공개되었고 미국이 이를 인정하면서 미국의 음모가 모두 드러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유로마이단 사태 이후 우크라이나 정부는 돈바스 지역 주민을 1만 명 이상 학살했지만 미국은 이를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평화, 생명, 인권 같은 가치는 미국의 기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서재정 일본 국제기독교대 교수는 2022년 3월 20일 자 한겨레 칼럼 「우크라이나, 미국의 꽃놀이패?」에서 미국 의회가 우크라이나의 신나치 세력에 대한 지원을 금지했지만 정부가 매년 군사원조를 해왔으며 우크라이나 쿠데타를 획책했던 눌런드는 국무부 부장관으로 영전했다고 밝혔습니다.
미국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유발하고 막대한 군사 지원을 하며 전쟁이 끝나지 않도록 만드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것이 미국에 이익이기 때문입니다. 천연가스만 놓고 봐도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유럽은 러시아산 천연가스 수입을 중단하고 대신 미국산 천연가스를 수입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미국의 셰일가스 업체와 군수업체는 때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사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팔레스타인인 사망자는 3만 명을 훌쩍 넘어 4만 명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민간인 학살은 엄연한 국제법 위반입니다. 국제형사재판소는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게 전쟁범죄 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며 일부 나라들은 벌써 이스라엘과 교역을 중단하거나 단교했습니다. 심지어 미국 내에서도 대학생들이 정부를 향해 이스라엘 지원을 중단하라며 대규모 시위를 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미국은 이스라엘을 전폭 지원하고 있습니다. 무기 지원은 물론이고 유엔 안보리에서 이스라엘에 불리한 결의안에 거듭 거부권을 행사하며 이스라엘을 외교적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법, 정의, 평화, 인권, 이런 것에 아무런 관심도 없습니다. 오로지 중동에서 자기 영향력을 유지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을 뿐입니다.
이처럼 미국은 도덕적 기준이 아니라 철저히 자국의 이익 관점에서 행동합니다.
웃기는 것은 그런 미국이 다른 나라에는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며 압박한다는 점입니다.
이번에 트럼프 주니어가 한 말을 보면 국제관계가 도덕적 가치로 포장되어 있지만 사실 국익을 위한 힘의 논리일 뿐이라는 관점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미국 정치인은 이런 약육강식 세계관을 가지고 있지만 대중에게는 이를 숨기고 포장합니다. 그런데 트럼프 주니어는 아버지를 닮아서인지 이것을 꾸미지 않고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트럼프 주니어는 북한에 관해서도 있는 그대로 말했습니다. 국제질서가 힘의 논리를 기반으로 움직이는데 북한은 그것을 잘 이해하고 힘을 기르는 데 매우 철저하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약육강식의 국제질서에서 북한이 현명하게 행동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는 여기서 옳고 그름의 도덕적 평가를 하지 않았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을 비롯한 많은 미국 정치인이 도덕적 평가를 한 것과는 다릅니다.
트럼프 주니어는 북한이 강하다는 것도 인정했습니다.
그는 현재 북미관계를 북한이 바이든 대통령을 공격하는 것으로 묘사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북한을 압박하고 있는 것처럼 서방 언론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과는 사뭇 다른 표현입니다.
트럼프 주니어는 자기가 보기에 바이든 대통령보다 북한이 더 강하고, 강한 북한이 약한 바이든 대통령을 공격하는 것은 약육강식 세계에서 당연하다고 평가했습니다. 만약 자기가 보기에 북한이 힘이 약하다면 바이든 대통령을 공격하는 것을 무모하다고 평가했을 것입니다.
또 트럼프 주니어는 “아버지는 재임 시절 북한을 잘 억제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도 이전부터 자신은 북한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사이좋게 지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약하기 때문에 북한에 포식당하지만 자기 아버지인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미국이 강해져서 북한을 이겨 북미 대결을 끝낼 수 있다고 주장을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냥 북한과는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트럼프 부자의 결론인 것 같습니다.
트럼프 부자는 윤석열 대통령처럼 압도적 힘으로 북한을 제압하겠다는 말을 2017년 이후에는 전혀 하지 않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하는 것처럼 북한 정권 붕괴 같은 말도 하지 않습니다.
이런 점들을 종합해 보면 바이든이 당선되든지 트럼프가 당선되든지 미국은 북한의 포식 대상이라는 것에 변함이 없다는 생각이 트럼프 부자의 말 속에 담겨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약육강식 세계에서 강한 상대와는 싸우는 것이 아니라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살아남는 방법입니다. 따라서 강한 북한과는 잘 지내는 것이 답이라고 생각한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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