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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준63] 미국과 유럽, 힘으로 안 되면 새로운 길 찾아야

문경환 기자 | 기사입력 2024/05/14 [18:20]

[정조준63] 미국과 유럽, 힘으로 안 되면 새로운 길 찾아야

문경환 기자 | 입력 : 2024/05/14 [18:20]

내로남불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사무총장이 4월 25일 북한, 중국, 러시아, 이란의 군사 협력 강화에 우려를 표시했습니다.

 

▲ 2023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한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오른쪽에서 두 번째).  © 영국 수상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은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북한 공장들은 러시아를 위한 군수품 생산을 위해 전면 가동되고 있다”, “최근 6개월 사이에만 1만 개가 넘는 컨테이너가 (북한에서 러시아로) 인도됐고, 이건 포탄 100만 발이 훌쩍 넘는 양일 가능성이 크다. 이란 역시 치명적인 샤헤드 드론 수천 기를 비롯해 러시아에 상당한 지원을 하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그는 중국과 러시아의 협력도 크게 우려했습니다. 그는 “(중국이)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 기술 제품과 여타 이중용도 물품을 공유함으로써 러시아의 전시경제를 떠받치고 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중용도 물품이란 민간용이지만 군사용으로 전용될 수 있는 물품을 말합니다. 

 

그의 북·중·러·이란 군사 협력 비판은 처음이 아닙니다. 그는 4월 3일 벨기에 브뤼셀 나토 본부에서 열린 나토 외무부장관 회의에서도 북·중·이란의 러시아 군사 지원이 심각한 국제 안보 문제를 초래했다고 주장했습니다. 5월 13일에도 ‘2024 청년 정상회담’에서 “아시아에 있는 러시아의 우방인 이란, 북한, 중국은 유럽의 우방이자 나토의 이웃인 우크라이나에 대항해 싸울 수 있는 러시아의 역량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의 발언은 뭔가 궁색합니다. 그는 북한, 중국, 이란이 러시아를 지원한 것은 잘못이다, 나쁘다, 부도덕하다고 가치 평가를 합니다. 그런데 나토가 북·중·러·이란의 군사 협력 강화를 도덕적 잣대로 비판할 수 있을까요?

 

미국과 유럽은 우크라이나 전쟁 전부터 우크라이나군을 무장시키고 훈련도 시켰습니다. 그리고 2022년 2월 24일 전쟁이 발발하자마자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기 위한 ‘우크라이나 국방연락그룹(UDCG)’을 창설했습니다. 여기에는 나토 회원국 32개국과 한국을 포함한 기타 24개국이 가입했는데 2022년 4월 26일 첫 회의가 열렸습니다. 미국과 유럽 등은 이 그룹을 통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독일의 킬(Kiel) 세계경제연구소에 따르면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지원한 군사 원조는 전쟁이 처음 발발한 2022년 2월부터 2024년 1월까지 456억 달러(약 64조 8천억 원)에 달합니다. 여기에 최근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608억 달러(약 84조 원)를 지원하는 법안을 통과시켜 추가로 우크라이나를 지원할 계획입니다. 이 법안이 통과되자 미국은 당장 우크라이나에 60억 달러(약 8조 2천억 원) 규모의 무기를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그러고도 부족했다고 여겼는지 미국 정부 당국자는 10일 4억 달러(약 5,500억 원)를 추가로 제공할 방침이라고 밝혔습니다. 

 

심지어 미국은 탱크 배치 같은 소소한 문제까지 우크라이나와 협의하고 있습니다. 최근 미국 합참부의장 크리스토퍼 그레이디 제독은 기자들에게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에이브럼스 M1A1 탱크를 당분간 최전선에서 빼고 우크라이나 측과 재배치 전술을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유는 한 대에 1천만 달러나 하는 이 탱크가 500달러에 불과한 러시아의 무인기 공격에 기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벌써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31대의 에이브럼스 탱크 중 5대가 파괴되었고 그중 1대는 러시아가 노획해 현재 모스크바에 전시하고 있습니다. 

 

▲ 모스크바에 전시된 에이브럼스 탱크.  © sputnik


아무튼 미국·유럽은 우크라이나와 군사 협력을 해도 되고 북·중·이란은 러시아와 군사 협력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은 이중기준입니다.

 

양다리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은 “중국은 서방과 좋은 관계를 원한다면서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벌어진 최대 규모 무력 분쟁을 계속 부채질하고 있으며 이 두 가지는 동시에 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중국이 러시아와 서방 사이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고 비판한 것입니다. 그런데 중국만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걸까요?

 

세계 대부분의 나라는 국익을 기준으로 여러 나라와 복잡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는 미국·유럽과 중국·러시아 양쪽에 모두 다리를 걸친 경우도 많습니다. 

 

인도는 미국과 쿼드라는 안보 동맹을 맺고 있으며 중국과는 국경 분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해 중립을 지키며 대러시아 제재를 거부하고 오히려 러시아와 경제 협력을 늘리고 있습니다. 인도는 러시아 천연가스를 싸게 수입해 다른 나라에 비싸게 파는 식으로 많은 이익을 남기고 있다고 합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국익의 관점으로 대한 것입니다. 사실 인도는 전부터 러시아와 전략무기를 공동 개발하거나 임대하는 등 군사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어 왔습니다. 

 

튀르키예도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줄타기하며 양다리를 걸치고 있습니다. 튀르키예는 나토 회원국이면서도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러시아를 적대하지 않으며 오히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서 중재자를 자처하였습니다. 또 러시아에서 주요 무기를 구입하면서 동시에 미국에서도 무기를 구입하는 등 국익에 맞게 사안별로 다른 결정을 하며 독자 행보를 하고 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도 최근 전통 친미 국가에서 벗어나 외교의 폭을 넓히고 있습니다. 2018년 사우디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암살 사건을 계기로 미국이 사우디 인권 문제를 거론하고, 2019년에는 후티 반군의 석유 시설 공격을 미국이 제대로 막지 못하자 사우디는 미국 일변도의 대외 정책에서 탈피하였습니다. 중국의 중재로 이란과 관계 정상화를 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2019년 중국과 합동 해군 훈련을 하는 등 사우디는 중국과 매우 가깝게 지내고 있습니다. 또 대러 제재에 불참하고 러시아와 관계를 개선해 석유 공조를 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군사·외교 분야에서 철저히 미국의 요구를 따르며 미국을 대변합니다. 시라이 사토시 세이카대 교수는 2018년 펴낸 『속국 민주주의론』에서 “2차 대전 후 미국이 일본의 천황이 되어 버렸다”라고 주장하며 일본은 미국의 속국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 정도로 일본은 철저히 미국 편입니다. 그런 일본도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자 대러 제재에 불참하고 러시아산 천연가스 수입을 늘렸습니다. 

 

심지어 미국과 유럽도 중국과 완전히 단절하지는 못합니다. 유럽-중국 교역량은 2020년대 들어 줄어들고 있지만 그 정도가 완만해 본격적으로 축소되고 있다고 말할 수준이 아닙니다. 미국-중국 교역량은 오히려 늘어났습니다. 다른 나라들에는 중국 고립봉쇄 정책에 동참하라고 강요하면서 정작 자기는 중국과 교역을 늘리는 이중적 태도를 보였습니다. 

 

이처럼 모든 나라가 국익을 위해 양다리를 걸칩니다.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이 이것을 비판하는 것은 매우 궁색합니다.

 

새로운 길

 

한편으로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이 러시아 군사력의 핵심을 북·중·이란의 지원으로 꼽는 것은 전혀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밀리는 이유가 북·중·이란의 러시아 지원 때문이라는 핑계를 대고 싶어서 이런 주장을 하는 듯합니다. 이는 미국과 유럽이 우크라이나를 더 지원하면 우크라이나가 이길 수 있다는 논리로 이어지고, 결국은 나토 회원국이 우크라이나를 더 많이 지원하라는 요구로 이어집니다. 

 

실제로 그는 “나토 동맹국들이 우리가 약속했던 지원을 제공하지 않았다는 게 최근 몇 달간의 현실”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나토가 지원한다고 뜻대로 우크라이나가 이길 것 같지도 않습니다. 미국과 유럽이 러시아에 힘으로 밀리기 때문입니다. 

 

중앙일보는 4월 22일 자 보도 「적도 웃을 유럽 해군...미군 쏠 뻔하고, 잇단 미사일 고장」에서 유럽 군대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소개했습니다. 기사에 따르면 유럽 일부 국가의 해군 함정에서 연초부터 고장이나 병력 부족 문제가 불거졌다고 합니다. 

 

2월 26일 홍해에서 후티 반군의 공격을 저지하는 작전에 참가 중인 독일 해군 호위함 헤센(F221)이 인근을 비행하던 미 공군 MQ-9 무인기를 발견하고 미 해군에 문의했다가 자기 무인기가 아니라는 응답을 받았습니다. 공군 무인기를 해군에 물어보니 당연한 대답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헤센함이 미국 무인기를 적기로 판단하여 SM-2 함대공 미사일 두 발을 발사했습니다. 그런데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미사일이 모두 오작동으로 불발했습니다.

 

4월 4일 발트해 인근에서 훈련 중이던 덴마크 해군의 호위함 닐스쥬엘에서 함대함 미사일 하푼의 발사대가 오작동을 일으키는 사고도 있었습니다. 훈련 해역은 하루 수만 척 이상의 선박이 지나가는 해협인데 덴마크 정부는 미사일 오작동 후 인근 선박들에 이 해협을 지나지 말라고 경고했다고 합니다.

 

이 밖에도 여러 문제가 이 기사에 등장합니다. 

 

독일 싱크탱크인 대외관계위원회 크리스타인 묄링 부회장은 이런 유럽 군대를 “분재 군대”라고 표현하며 수십 년간 예쁜 묘목을 가꾸듯 군대를 만들어 ‘식물 군대’로 전락했다고 비판했습니다. 

 

반면 러시아 국방력은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에는 러시아가 엄청난 양의 무기를 생산하고 있다는 내용이 나왔습니다.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독일 국방부장관은 4월 25일 독일 공영방송 아에르데(ARD) 인터뷰에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서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무기를 생산하고 있다”라면서 “제조된 제품 대부분을 (우크라이나) 최전선으로 보내지 않고 창고로 보낸다”라고 했습니다.

 

우크라이나는 미국과 유럽의 무기 지원을 받으면서도 무기 부족을 호소하는데 러시아는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무기를 만들어 창고에 비축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미국과 유럽이 기가 막혀 할 일입니다. 

 

미국·유럽이 러시아를 힘에서 압도하였다면 이런 문제에 봉착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힘으로 안 되면 새로운 길을 찾아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입니다. 새로운 길은 공존의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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