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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면초가·분열에 빠진 이스라엘, 미국

박명훈 기자 | 기사입력 2024/06/11 [15:42]

사면초가·분열에 빠진 이스라엘, 미국

박명훈 기자 | 입력 : 2024/06/11 [15:42]

사면초가로 몰린 이스라엘, 미국

 

가자지구에서 집단학살을 계속하는 이스라엘과 이를 용인하는 미국이 갈수록 고립되고 있다. 한목소리를 내는 국제사회가 이스라엘과 미국을 사면초가로 몰아넣는 국면이다.

 

지난 5월 10일(이하 현지 시각)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서 유엔 총회 특별회의가 열렸다. 유엔 정회원국 143개국은 팔레스타인을 정회원국으로 인정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에 동의했다. 기권은 25개국, 반대는 미국·이스라엘 등 9개국에 그쳤다.

 

표결에 따라 팔레스타인은 유엔 정회원국에 준하는 활동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얻었다. 다만 팔레스타인이 유엔 정회원국으로 인정받고, 유엔 정회원국의 고유 권한인 총회 투표권까지 확보하려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표결까지 거쳐야 한다. (☞ 「팔레스타인 유엔 정회원국에 ‘한 발짝’…거부당한 이스라엘·미국」)

 

팔레스타인을 유엔 정회원국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유럽 국가들도 이스라엘과 미국에 등을 돌리고 있다.

 

5월 28일 스페인, 아일랜드, 노르웨이 삼국 정부는 합동 성명서를 통해 팔레스타인을 주권국가로 인정한다고 밝혔다. 

 

6월 4일 슬로베니아 정부도 팔레스타인을 주권국가로 인정했다. 로베르트 골로프 슬로베니아 총리는 의회에서 팔레스타인을 주권국가로 인정하는 동의안 표결을 마친 뒤 자신의 엑스(옛 트위터)에서 “오늘 팔레스타인을 독립된 주권국가로 인정한 것은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에 있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 희망을 준다”라고 강조했다.

 

지중해에 있는 섬나라 몰타도 앞으로 팔레스타인을 주권국가로 인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위 유럽 국가 가운데 노르웨이를 빼면 모두 유럽연합(EU) 소속이다. 노르웨이는 EU 소속은 아니지만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으로 미국과 안보 분야 등에서 정책을 협력하고 있다.

 

6월 6일 영국 가디언 등에 따르면 영국의 차기 총리로 유력한 키어 스타머 노동당 대표는 팔레스타인을 주권국가로 인정하는 공약을 6월 13일 발표할 예정이다. 영국 노동당은 오는 7월 13일 치러질 총선에서 압승해 정권을 잡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유럽 각국의 움직임은 미국의 지도력이 서방에서 더 이상 통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6월 6일, 유엔 소속 인권 전문가들은 전 세계 모든 나라를 향해 ▲팔레스타인을 정식 국가로 인정할 것 ▲즉각적인 가자지구 휴전을 위해 정치적·외교적 영향력을 총동원할 것을 촉구했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에 따르면 해당 전문가들은 프란체스카 알바네제 유엔 팔레스타인 인권 특별보고관 등 30여 명이다.

 

또 전문가들은 팔레스타인이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고 자유롭게 발전할 수 있는 능력을 포함해 완전한 자결권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은 지난 6월 8일 인질 구출 작전을 구실로 가자지구 중부 누세라이트 난민촌에 무차별 공격을 퍼부었다. 미국 정보기관이 인질 관련 정보를 이스라엘에 넘기는 등 작전 전반에 개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자지구 보건부는 6월 9일 “8일 누세라이트 수용소에서 일어난 이스라엘 점령군의 공격으로 총 274명이 사망했으며 부상자 698명이 발생했다”라며 “이로써 지난해 10월 7일 이후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총 3만 7,084명이 사망했다”라고 밝혔다. 공식 집계에 포함되지 않은 인원을 더하면 실제 사망자는 더욱 많을 것이라는 관측이 높다. 

 

국제사회는 누세라이트 집단학살을 저지른 이스라엘을 압박하고 나섰다.

 

이집트와 요르단 정부는 “국제법과 국제 인도법의 모든 조항과 인도주의의 모든 가치를 노골적으로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주제프 보렐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도 “가자지구에서 민간인 학살이 발생했다는 보도는 충격적”이라며 “우리는 가장 강력한 표현으로 대학살을 규탄한다. 유혈사태는 즉각 중단돼야 한다”라고 밝혔다.

 

이 밖에 다른 나라에서도 팔레스타인에 힘을 싣는 목소리가 높다. 이스라엘과 미국은 갈수록 사면초가에 빠지게 될 듯하다.

 

이스라엘과 미국의 분열

 

5월 12일 토니 블링컨 미 국무부장관은 CBS, NBC 방송과 한 대담에서 “전쟁 이후의 계획이 없다면 이스라엘은 지속적인 저항을 만나게 될 것”이라며 “라파에서 (이스라엘이) 무엇을 하든 많은 무장한 하마스 대원들이 남아 있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처럼 미국 안팎에서는 베냐민 네타냐후 정권이 목표로 삼았던 ‘하마스 섬멸’은 진작 물 건너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스라엘과 미국이 전쟁의 명분을 잃고 궁지에 몰렸다는 평가가 적잖다.

 

네타냐후 정권 내에서도 붕괴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현재 이스라엘 곳곳에서는 네타냐후 총리의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집회가 빗발치고 있다. 이스라엘 국민 사이에서는 네타냐후 총리의 정책이 인질들의 목숨과 평화를 위협한다는 여론이 높다.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이 누세라이트를 공격한 다음 날(9일) 야당 소속인 베니 간츠 국민통합당 대표가 연립정부(연정) 이탈을 선언했다. 

 

본래 간츠 대표는 네타냐후 총리의 정적이었다. 하지만 팔-이 전쟁이 발발한 뒤 여야를 아우르는 ‘전시 내각’에 합류해달라는 네타냐후 총리의 제안을 받아들인 바 있다. 특히 간츠 대표는 전시 내각의 의결권을 가진 3인방(네타냐후 총리, 간츠 대표, 요아브 갈란트 국방부장관) 중 한 명이었다.

 

간츠 대표는 사퇴하면서 네타냐후 총리에게 즉각 휴전과 올가을 조기 총선을 실시할 것을 요구했다. 또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통치를 반대한다’라며 네타냐후 총리에게 공개 반발한 갈란트 국방부장관을 향해 “행동하라”라고 촉구했다. 갈란트 장관은 네타냐후 총리와 같은 당 소속인데, 팔레스타인 정책을 둘러싸고 네타냐후 총리와 관계가 틀어졌다.

 

현재 네타냐후 정권은 여러 야당과 연정을 통해 과반 의석을 유지하고 있다. 간츠 대표의 연정 이탈로 네타냐후 정권이 무너지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네타냐후 정권의 몰락이 가속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앞서 5월 31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영구적 휴전에 초점을 둔 ‘가자지구 3단계 휴전안’을 발표한 바 있다. 미국은 이스라엘이 먼저 휴전안을 제안했다고 주장했지만 네타냐후 총리는 “이스라엘 입장과 간극이 있다”, “불완전한 발표”라고 반발했다.

 

3단계 휴전안은 ①6주간의 완전한 휴전과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내 인구 밀집 지역 철수 및 일부 인질 교환 → ②모든 생존 인질 교환과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철수 등 영구적 적대행위 중단 → ③가자지구 재건 시작과 사망한 인질 시신 송환 등의 내용으로 구성됐다. 

 

그동안 하마스를 섬멸할 때까지 전쟁을 끝내지 않겠다고 한 이스라엘의 방침과는 결이 다르다. 이는 국제사회의 압박에 몰린 미국이 가자지구에서 발을 빼려는 움직임일 수 있다. 

 

그런데 네타냐후 정권 내부에서 반발이 터져 나왔다. 극우 성향 베잘렐 스모트리히 재무부장관과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가안보부장관이 하마스를 섬멸할 때까지 전쟁을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네타냐후 총리가 휴전안을 받아들이면 연정에서 빠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두 장관이 연정에서 발을 빼면 네타냐후 정권은 의회 과반 의석에 못 미쳐 무너지게 된다.

 

이 때문에 네타냐후 총리는 가자지구 3단계 휴전안에 관해 “불완전한 발표”라고 모호한 답을 한 것으로 보인다. 뾰족한 대책이 없는 네타냐후 총리의 고민이 깊어질 듯하다.

 

미국으로서는 네타냐후 총리야 어떻게 되든 국제사회 대다수가 반대하는 전쟁에서 빠져나오려 휴전안을 공개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스라엘과 미국은 각자 살길을 찾아 분열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안보리서 3단계 휴전안 통과

 

▲ 6월 10일 뉴욕 유엔 본부에서 열린 안보리 회의. 안보리 이사국 대표들이 3단계 휴전안에 찬성하며 손을 들고 있다.  © 유엔 안보리

 

6월 10일 열린 안보리 회의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3단계 휴전안이 통과됐다. 그동안 휴전을 거부해 온 미국이 결의안 통과를 주도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안보리에서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휴전,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철수와 영구적 적대행위 중단을 촉구하는 결의안이 통과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결의안이 채택된 뒤 “우리는 오늘 평화에 투표했다”라며 “이스라엘은 이미 휴전안에 찬성했고, 하마스도 찬성한다면 싸움은 지금이라도 멈출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반응은 엇갈렸다.

 

하마스는 성명에서 “안보리 결의에 포함된 내용을 환영한다”라고 했다. 다만 휴전을 받아들일지에 관해서는 명확히 언급하지 않았다.

 

유엔 주재 이스라엘 대표부의 레우트 샤피르 벤-나프탈리 조정관은 “이스라엘은 인질을 데려오고 하마스의 군사 및 통치 능력을 파괴하며 향후 가자지구가 이스라엘에 위협이 되지 않도록 하는 목표에 전념하고 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시간을 끌기 위한 무의미한 협상에는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유엔 헌장 제25조는 “유엔 회원국은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정을 이 헌장에 따라 수락하고 이행할 것을 동의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제사회는 네타냐후 정권이 결의안 이행을 거부하면 구속력 있는 대응에 나설 수 있다. 

 

중동 각국을 순방 중이던 블링컨 미 국무부장관은 결의안이 채택된 뒤 예루살렘에서 네타냐후 총리와 갈란트 국방부장관을 만났다.

 

미 국무부에 따르면 이 자리에서 블링컨 미 국무부장관은 “미국과 세계 다른 나라 지도자들은 가자지구에서의 즉각적인 휴전, 모든 인질의 석방, 가자지구로 가는 지속적이며 상당한 인도적 지원의 증가로 이어질 바이든 대통령의 포괄적 제안을 지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으로 팔-이 전쟁 중단에 힘을 싣는 국제사회의 움직임에도 불이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예를 들면 스페인, 노르웨이, 아일랜드, 슬로베니아뿐만 아니라 더욱 많은 나라가 팔레스타인을 주권국가로 인정할 가능성이 있다. 팔레스타인의 권리를 일관되게 인정해 온 북·중·러의 움직임에도 더욱 힘이 실릴 수 있다.

 

다만 이스라엘을 일방적으로 옹호해 온 미국이 팔레스타인에 힘을 실어줄 지는 두고 봐야 한다는 시선이 적잖다. 이와 관련해 러시아의 반응을 눈여겨 볼만하다.

 

3단계 휴전안에 관한 안보리 표결에는 상임이사국·비상임이사국을 포함한 15개국 가운데 14개국이 찬성한 가운데 러시아만 기권했다. 

 

이에 관해 바실리 네벤쟈 유엔 주재 러시아 대사는 “러시아가 기권표를 던진 것은 3단계 휴전안의 세부 사항이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이며 우리는 많은 의문을 가지고 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하마스는 이른바 이 합의를 받아들이도록 요구받았지만, 이스라엘의 공식 합의에 대해서는 여전히 명확하지 않다”라며 “하마스가 완전히 패배할 때까지 전쟁을 연장해야 한다는 이스라엘의 많은 발언을 고려할 때 이스라엘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합의했는가”라고 되물었다.

 

러시아의 이러한 반응은 그동안 이스라엘을 옹호해 온 미국이 ‘휴전 찬성’으로 돌아선 의도를 지켜보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만약 미국이 자신이 주도한 결의안을 뒤집고 이스라엘을 편든다면 후폭풍이 상당히 거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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