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 종식 방안을 협의하기 위한 ‘세계평화정상회의’(이른바 ‘우크라이나 평화회의’)가 참석한 93개국, 8개 기구 중 78개국, 4개 기구만 공동성명에 합의한 채 끝났다.
회의는 우크라이나의 제안으로 지난 15~16일 스위스에서 진행됐다. 스위스가 ‘중립국’을 표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 44개국, 아시아 19개국, 아프리카 12개국, 오세아니아 4개국, 북미 3개국, 중미 3개국, 남미 8개국 등 93개국과 유엔, 유럽의회, 유럽평의회, 유럽이사회, 유럽위원회, 유럽안보협력기구, 미주기구,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청 등 8개 기구에서 참석했다. 그중 정상이 온 국가는 57개국, 장관급 대표가 온 국가는 30개국, 사절이 온 국가는 5개국이고 브라질, 바티칸시국, 유엔, 총대주교청은 참관 자격(옵서버)으로 참여했다.
공동성명에는 ▲국제적으로 인정된 국경 내에서 우크라이나 등 모든 국가의 주권, 독립, 영토보전에 대한 위협, 무력 사용 자제 약속 재확인 ▲우크라이나의 완전한 주권적 통제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원칙·감독에 따라 자포로제 원전 등 우크라이나 원전 시설 안전 운영 ▲핵무기 위협과 사용 반대 ▲전쟁포로의 완전한 교환·석방 ▲우크라이나 아동·민간인 억류자 송환 촉구 등이 담겼다.
하지만 이번 회의가 우크라이나와 서방이 원하는 대로 이뤄졌다고 보긴 어렵다.
먼저 회의 시작 전부터 우크라이나 상황의 당사자인 러시아가 초대받지 못한 점과 관련해 당사자 없이 이뤄지는 회의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런 이유로 중국, 쿠바, 아제르바이잔, 벨로루시, 베네수엘라, 이집트, 이란 등은 초대받았으나 불참했다.
튀르키예 대표로 참석한 하칸 피단 튀르키예 외무부장관은 회의 시작에 앞서 “우크라이나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협상이 러시아 없이는 어렵다는 것을 밝힐 계획”이라고 말했다.
비올라 암헤르트 스위스 대통령은 개회사에서 “우리는 러시아 없이는 평화 구축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지속할 수 있는 해결책에는 양 당사국 모두가 참여해야 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공동성명에도 말미에 “우리는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 모든 당사국의 참여와 대화가 필요하다고 믿는다”라는 내용이 담겼다.
두 번째로, 15개국(아르메니아, 바레인, 브라질, 콜롬비아, 바티칸시국, 인도, 인도네시아, 이라크, 요르단, 리비아, 멕시코, 사우디아라비아, 남아프리카공화국, 태국, 아랍에미리트), 4개 기구(유엔, 총대주교청, 유럽안보협력기구, 미주기구)가 공동성명에 합의하지 않았다.
교황청이 있는 바티칸시국, 유엔도 공동성명에 동참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결국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국가들만의 탁상공론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세 번째로, 참가국 대표들이 나치식 구호를 외쳤다는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참가국 대표들은 15일 단체 사진을 찍었다. 그때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우크라이나에 영광을!(Glory to Ukraine!)”라고 선창하자 일부 대표들이 “영웅들에게 영광을!(Glory to the Heroes!)”라고 외쳤다.
해당 구호는 1941년 우크라이나 나치주의자들의 경례 구호로 사용된 후 오늘날까지 우크라이나 신나치주의자들이 주로 나치식 경례와 함께 제창해왔다.
그리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정권이 들어선 후 2018년 우크라이나 최고 라다(의회)는 해당 구호를 군인과 경찰이 사용하는 경례로 제정했다.
이러한 이유로 해당 구호를 외침으로써 참가국 대표들이 우크라이나 나치식 경례에 동조했다는 논란이 불거졌다.
스위스 외무부는 16일 이와 관련해 스위스 대표들은 동참하지 않았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피에르-알랭 엘칭거 외무부 대변인은 “회의 공식 사진 촬영 때 구호를 선창하는 게 들렸다. 그러나 암헤르트 대통령과 이그나치오 카시스 외무부장관은 이에 응답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네 번째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중재하겠다고 모여서 어느 한쪽 국가를 다 같이 응원하는 것 자체가 이미 중립성을 포기한 것이라는 문제도 있다.
다섯 번째로, ‘러시아’라는 표현만 쓰지 않았을 뿐 공동성명에는 러시아를 향해 요구하는 내용들로 가득했다. 하지만 러시아가 이를 모두 받아들이진 않을 것은 분명하다.
우크라이나 영토였던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루간스크 인민공화국, 헤르손주, 자포로제주, 크림반도 등은 자발적으로 러시아와 합병했다. 그리고 현재 자포로제 원전은 러시아의 관할하에 국제원자력기구의 감독이 이뤄지고 있다. 오히려 우크라이나가 원전을 공격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서방은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 전에 다음 회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때는 러시아를 초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드미트리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부장관은 16일 “다음 회의에선 전쟁을 종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협상장에 상대방(러시아)이 필요하다.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는 양측이 모두 필요하다는 것은 분명하다”라며 조만간 러시아와 대화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했다.
쿨레바 장관의 말은 러시아와의 평화 협상 결렬 후 우크라이나가 보여온 태도를 더는 고수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을 시사한다.
앞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2022년 2월 28일 1차 평화 협상을 시작으로 5차례에 걸쳐 협상을 진행했다. 그리고 3월 29일 튀르키예의 중재로 이스탄불에서 열린 5차 협상에서 양국 간 쟁점이 좁혀지는 듯했다.
하지만 부차 사건(이른바 ‘부차 학살’)을 이유로 우크라이나가 협상 자체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부차 사건이 우크라이나와 서방의 자작극으로 드러나면서 우크라이나가 협상을 거부할 명분이 없어졌다.
그러자 젤렌스키 대통령은 그해 10월 4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는 어떤 협상도 불가능하다고 선언하는 대통령령에 서명함으로써 지금까지 협상을 거부해왔다.
즉 러시아는 평화 협상을 할 용의가 있다고 누누이 밝혔으나 우크라이나가 거부했던 것이다. 국제사회도 더 이상 이를 모르지 않기에 이번 회의에서 러시아가 참석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우크라이나와 서방이 실제 러시아와 평화 협상에 나설지 주목된다. <저작권자 ⓒ 자주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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