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서)
한때 세계 유일 초강대국을 자처했던 미국의 힘이 빠지면서 국제질서가 변화하고 있다. 군사력은 국제질서의 변화를 이끄는 중요한 요인으로 꼽힌다. 미국과 서방 진영의 군사력은 급속히 약해지고 있지만 반미·반서방 진영의 군사력은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이를 살펴본다.
현재 미국과 유럽은 무기 부족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재래식 무기, 첨단 무기 가릴 것 없이 생산량과 비축량 전반이 달리는 상태다.
그동안 미국은 ‘전쟁 국가’로 불려 왔다. 건국 이후 막대한 돈을 퍼부어 무기를 만들고 그 힘으로 끊임없이 전쟁을 해왔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새 미국이 주도하는 서방 진영은 무기와 포탄이 부족해 전쟁도 제대로 벌이지 못할 지경이 됐다.
서방 진영의 생산량 부족
서방 진영의 무기가 부족한 원인은 두 가지 측면으로 바라볼 수 있다.
첫째로 냉전이 끝난 뒤 서방 진영이 무기 생산량을 줄였기 때문이다.
서방 진영은 소련이 해체하자 자신들이 승리했다고 여겼다. 미국의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1992년에 펴낸 책 『역사의 종말』에서 “20세기를 지배해 온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이데올로기 대결에서 자유민주주의가 최종적으로 승리했다”라고 했다.
서방 진영의 관점에서는 미국과 겨루던 공산주의 진영의 초강대국이 사라졌으니 더 이상 상대가 없다는 안도감이 컸다. 이런 분위기에서 무기 생산도 이전보다 등한시하게 됐다.
그 결과 미국 전역에서 함선을 만들던 조선소 대다수가 폐쇄됐다. 또 미국 최대 군수업체 록히드마틴은 전투기 생산량을 줄였다.
2022년 12월에 나온 미 의회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공장 6곳에 탄약 생산을 의존하고 있다. 운영을 시작한 지 평균 80년이 넘은 탄약 공장은 설비가 낡아 가동률이 떨어진다고 한다.
이러한 요인 등으로 미국의 무기 생산량 전반이 줄어들었으리라 짐작된다.
둘째는 서방 진영이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고 2년여 동안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대량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자 미국과 유럽의 주요 언론들은 무기 생산량이 부족한 러시아가 불리하다는 보도를 쏟아냈다. 그러나 보도와 달리 우크라이나 전쟁 전후 무기 생산량은 지금까지 일관되게 러시아가 앞섰다. 이는 하루당 포탄 사용량을 비교하면 알 수 있다.
나토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서방 진영의 지원을 받은 우크라이나는 돈바스지역에서 하루 기준 6,000~7,000발을 포격했다. 러시아는 4만~5만여 발을 포격했으니 우크라이나와 비교하면 7배나 많다. 미국의 포탄 생산량은 한 달 기준 1만 5,000발에 그친다. (「“2차 대전후 최대 소모전”…무기·탄약 생산에 골머리 앓는 서방」, SBS, 2022.11.27.)
미국 국방부는 올해 1월 11일(이하 현지 시각) 처음으로 방위산업전략을 발표했다. 미국은 탄약 부족 사태가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수십억 달러를 들여 생산 공장을 늘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당장 군수공장이 부족한 미국이 전쟁에 필요한 무기와 포탄을 하루아침에 찍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쓰이는 무기는 주로 155밀리미터 포탄 등 재래식 무기다.
냉전 이후 미국은 러시아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포탄 같은 재래식 무기보다 첨단 무기 제작에 집중해 왔다. 그런데 미국은 재래식 무기뿐만 아니라 첨단 무기 분야에서도 러시아에 뒤처지고 있다.
미 의회 연구원(CRS)은 2021년 7월 9일 발간한 연구보고서 「미국의 극초음속 무기 개발현황: 배경과 의회에 대한 이슈」에서 미국이 2000년대부터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을 시작했으나 러시아와 중국에 비교하면 뒤떨어졌다고 평가했다
특히 러시아는 ‘슈퍼 무기’로 불리는 ▲세계 최대 대륙간 탄도미사일 사르마트 ▲인류 역사상 가장 폭발력이 강한 무기 포세이돈 ▲극초음속 활공체 아방가르드를 제작해 실전 배치하고 있다.
미국이 러시아와 벌어진 ‘무기 생산 격차’를 당장 따라잡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 가운데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전쟁까지 발발했다. 미국이 이스라엘에도 무기를 지원하는 통에 미군의 무기고가 텅텅 비었다고 한다. 미국에 안보를 기대왔던 유럽 각국의 상황이야 말할 것도 없다.
미국의 싱크탱크인 헤리티지 재단은 4월 4일 보고서 「오커스는 좋은 첫발이지만 더 나아가야 한다(AUKUS Is a Good First Step, But It Needs to Go Further)」를 펴냈다. 보고서는 한국, 일본 등에 각종 첨단 미사일과 군수품을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이렇게 생산된 무기를 미국이 활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 역시 미국의 구상일 뿐, 동맹국이 미국의 입맛에 맞게 무기를 생산하기까지는 몇 년이 걸릴지 알 수 없다. 또한 미국의 패권이 급속히 몰락하는 가운데 동맹국 정부가 미국의 말을 고분고분 따르리라는 보장도 없다.
결국 미국은 급한 대로 후티 반군에게서 빼앗은 탄약과 무기를 우크라이나군에 지원하고 있다. 자국법 절차를 통해 미국의 소유로 만든 다음 우크라이나에 지원하는 편법이다. (「미국, 압수한 이란 무기 우크라에 지원···‘무기 부족’ 숨통 트일까」, 경향신문, 2023.10.5.)
미국은 첨단 무기인 스텔스 전투기의 생산량도 많지 않다. 생산 비용이 많이 들어 대량으로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원래 미국은 스텔스 전략폭격기 B-2 스피릿을 132대 생산하려 했지만, 대당 제작 비용이 22억 달러(약 3조 393억 원)나 해 21대를 생산하는 데 그쳤다. F-22 랩터도 비용 문제 때문에 750대를 생산하려다가 계획을 뒤집어 195대를 생산했다.
미 국방부는 F-35를 총 2,500대 구입하는 데 약 4,000억 달러(553조 6,000억 원)를 썼다. 그런데 운영·유지비가 무려 1조 2,700억 달러(약 1,758조 원)로 구입 비용의 3배나 된다. 생산 비용도 값비싼데 운용 비용이 훨씬 들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지경이다. 미국으로서는 첨단 무기를 생산해 운영하고 싶어도 함부로 할 수 없다.
이런 미국의 첨단 무기, 전투기를 두고 지난 5월 5일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별로 쓸 데가 없는 멋진 무기”, “번지르르한 무기”라고 비웃었다.
텅 빈 무기고와 비축량
‘글로벌이코노믹’이 보도한 2023년 10월 24일 자 기사 「러시아, 포탄 1년 이상 소모량 비축」은 “전쟁에서 포탄의 중요성은 매우 크다. 포탄은 적의 장비와 병력을 파괴하고, 적의 방어선을 돌파하고, 적의 작전을 방해하는 데 사용된다”라며 “포탄을 충분히 확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짚었다.
어떤 나라든 전쟁을 대비해 무기, 포탄 등의 비축량을 가지고 있다. 꼭 전쟁을 하지 않더라도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려면 적절한 무기 비축량을 확보해 둬야 한다.
이 때문에 각국은 무기, 포탄 등의 비축 물량은 전시 대비 물자로 관리하며 함부로 빼낼 수 없도록 법을 마련해 뒀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전쟁과 팔-이 전쟁을 거치며 서방 진영의 무기 비축 물량은 사정없이 털려 나가고 있다.
서방 진영의 무기 비축량 부족 문제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해부터 터져 나왔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고 9개월이 지난 2022년 11월 22일,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는 미국과 유럽의 무기 비축량이 매우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보도했다. 르몽드는 그 이유를 미국과 유럽이 우크라이나를 지원했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또 미국과 유럽이 앞으로 소진할 무기를 보충하기도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르몽드는 “서방이 러시아의 공습에 우크라이나인들이 저항할 수 있도록 무기고의 문을 활짝 열었다. 주로 미국이 군사 지원의 3분의 2를 제공했다”라고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서방 진영은 수천 대나 되는 대전차미사일 및 대공미사일 발사기, 드론 및 유도미사일 등을 우크라이나에 보냈다. 이 때문에 비축량이 심각한 수준으로 떨어졌다. 특히 미국은 자체 군사 계획과 훈련에 차질이 생길 만큼 비축량을 썼다고 한다.
최근 들어 서방 진영의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다.
헤리티지 재단이 펴낸 보고서는 미군의 군수품이 중동에서의 작전과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으로 턱없이 부족하다고 짚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미군의 탄약고가 거의 비었고 군대 전반에서 필수 무기 부족이 심각한 상태다. 특히 중국과의 전쟁을 가정한 ‘워게임’에서 미군의 요격 미사일은 몇 시간 내, 정밀 타격 수단은 며칠 내로 소진된다는 결과가 나왔다.
2023년 10월 22일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나토의 한 고위 관리는 “(우크라이나에 지원하는) 서방의 탄약 비축량이 이제 바닥에 가까워지고 있다”라고 토로했다.
미국은 유럽 각국과 무기 공동 생산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이렇게 생산된 무기 대부분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쓰이게 된다. 미국으로서는 우크라이나 지원만으로도 벅차 인도·태평양 등 다른 지역에는 도저히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미국은 한국, 일본 등과 방산 협력이 절실하다고 보고서는 진단했다. (「美 싱크탱크 “무기 부족한 미국, 한국·일본과 방산 협력 절실”」, 머니투데이, 2024.4.27.)
이처럼 미국은 자체 생산 여력이 없어 동맹국에 기대야 하는 신세다. 그런데 유럽의 상황도 미국보다 조금 나을 뿐 사정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당초 유럽연합(EU)은 올해 3월 말까지 우크라이나에 탄약 100만 발을 지원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계획과 다르게 재고가 부족해 절반가량만 전달했다.
유럽 각국이 자국의 안보 위기를 감수하면서까지 탄약을 우크라이나에 몰아주고 있지만 그래도 물량이 한참 부족한 것이다.
서방 진영에서는 비축 물량이 있는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포탄을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 가운데 윤석열 정권은 비축해 둔 155밀리미터 포탄 상당량을 우크라이나 전쟁에 지원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유출된 미 정부의 기밀 문건과 여러 보도를 종합하면, 미국은 한국 정부·방산업체와 한국산 155밀리미터 포탄 50만 발을 대여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美, ‘韓포탄 33만발 이송’ 유출이어...韓 155mm 포탄 50만발 대여」, 문화일보, 2023.4.12.)
그런데 이는 북·중·러를 겨눈 한·미·일 군사동맹을 추진하는 미국이 자신의 구상을 스스로 깨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의 포탄과 전쟁 물자를 박박 긁어 우크라이나 지원으로 돌려 동나게 하는 것이 과연 누구에게 유리할까.
미국도 ‘한국산 포탄 돌려막기’로 생길 후폭풍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다른 방법이 없으니 급한 대로 돌려막기라도 하자고 판단했으리라 짐작된다.
북·중·러의 무기 생산량, 비축량
반서방 진영을 대표하는 북·중·러의 무기 생산량, 비축량은 서방 진영과 비교하면 우위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무기 생산량과 비축량이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서방 진영은 이른바 ‘북러 무기 거래설’을 주장하며 북한이 러시아에 상당량의 미사일과 포탄 등을 보내고 있는 것이 아니냐며 의심한다. 서방 진영에서 이렇게까지 의심하는 것을 봐도 북한이 상당한 양의 무기를 가지고 있을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
미국은 중국을 향한 우려도 나타냈다. 올해 1월 23일 미국 싱크탱크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는 보고서 「전시 환경에서 텅 빈 무기고」를 발표했다.
CSIS는 보고서에서 “미국의 방위산업 기반은 현재의 국제 안보 환경에 적절하게 준비돼 있지 않다”라고 했다.
보고서는 중국이 탄약 생산에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으며, 미국과 비교해 최첨단 무기와 장비를 5~6배나 빠르게 확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 중국과 전쟁 준비 안 돼” 무기 조달 능력 부족」, 국민일보, 2023.1.24.)
2023년 10월 9일 독일 신문 ‘첼트’는 러시아가 예상보다 빠르게 무기 비축량을 보충하고 있는 동안 서방 진영에 균열이 생겼다고 전했다. 첼트는 러시아군의 “대전차 유도미사일, 첨단 드론, 포병용 레이저 유도발사체의 생산이 증가했다. 이제 러시아군은 생산량에만 의존하는 대신 정확성과 효율성을 우선시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서방 진영의 광범위한 제재를 받는 중에도 오히려 무기 생산을 크게 늘렸다.
2023년 9월 13일 뉴욕타임스가 인용한 서방 관리들에 따르면 러시아의 포탄 생산량은 연간 200만 발이다. 이는 서방 진영의 정보기관이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 생산량으로 추정한 100만 발의 2배나 된다. 쿠스티 삼 에스토니아 국방부 차관은 러시아의 탄약 생산량이 서방 진영보다 7배 많은 것으로 분석했다.
이뿐만 아니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까지 탱크를 연간 100대를 생산했지만, 지금은 연간 200대를 생산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뉴욕타임스는 “러시아 관리들은 국방 물자 생산에 초점을 맞추도록 경제를 재편했고, 군수 생산 규모는 (제재를 넘어) 회복했을 뿐만 아니라 급증했다”라면서 “러시아는 현재 미국, 유럽보다 더 많은 탄약을 생산하고 있다”라고 했다.
앞으로 북·중·러 등 반서방 진영의 국제 입지는 더욱 커질 듯하다.
정반대로 무기 생산량, 비축량이 부족한 서방 진영의 우려와 근심은 나날이 깊어질 듯하다.
(계속)
<저작권자 ⓒ 자주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아침햇살, 미국, 무기 관련기사목록
|
많이 본 기사
아침햇살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