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7일(현지 시각)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21개국은 인도 뉴델리에서 회의를 열고 만장일치로 사도 광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결정했다. 한국 정부가 기존 방침을 뒤집고 일본을 편든 결과였다.
‘친일매국’ 외교를 밀어붙여 온 윤석열 정권은 결국 일본 정부의 사도 광산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찬성했다. 미국이 ‘한일관계 개선’을 통한 한·미·일 군사협력을 강조해 왔다는 점에서 배후에 미국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사도 광산은 일본 니가타현 사도시에 있는 광산이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제가 전쟁 물자 조달을 목적으로 조선인 1,500여 명을 강제동원해 착취한 바 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16세기~19세기 중반으로 시기를 특정해 사도 광산의 등재를 신청해 왔다. 일제가 식민침탈을 본격화한 메이지유신 이후 19세기 후반~20세기 중반 시기를 아예 들어내는 꼼수를 부린 것이다.
사도 광산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미국은 어떠한 태도를 드러냈는지 흐름을 짚어보자.
‘등재 반대’ 뒤집은 윤석열 정권
사도 광산의 등재는 지난 2006년 일본 사도시와 니가타현이 일본 문화청에 세계유산 등재를 신청한 뒤 18년 만의 일이다.
윤석열 정권 출범 이전까지 한국은 일본이 강제동원을 인정하지 않는다며 일관되게 사도 광산의 등재를 반대해 왔다. 유네스코는 역사 문제 등으로 관련국이 반대하면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거부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기존 방침을 뒤집은 윤석열 정권이 사도 광산의 등재에 앞장선 것이라 할 수 있다.
가노 다케히로 유엔 주재 유네스코 일본 대사는 사도 광산의 등재가 결정되자 “일본은 한국인 노동자들이 처했던 가혹한 노동 환경과 그들의 고난을 기리기 위해 새로운 전시물을 사도 광산 현장에 이미 설치했다”라고 말했다. 강제동원에 관한 언급 없이 ‘노동자의 노동 환경’에만 집중한 것이다.
그런데도 윤석열 정권은 사도 광산의 등재를 환영했다.
7월 27일 조태열 외교부장관은 라오스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일본이 미리 사도 광산 현장에 설치한 전시물은 물론 추도식 등 관련 후속 조치 이행에 있어 우리 정부와 긴밀히 소통하며 진정성 있는 모습을 계속 보여주기를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외교부 고위 당국자도 “우리의 목표는 등재 반대가 아닌 우리의 아픈 역사 전체가 정확하게, 제대로 기록되게 하는 것”이라며 “협상 전력을 (일본이) 이행 조치를 확보하는 데 투입했고 또 하나의 결과물을 주머니에 챙긴 것”이라고 주장했다.
7월 28일 산케이신문, 요미우리신문, 교도통신 등 일본 유력 언론은 일본 정부가 강제동원 표현을 빼는 대신 당시 열악했던 노동 환경을 전시 시설에 설명하겠다고 밝혔고, 한국 정부가 사도 광산의 유네스코 등재에 찬성했다고 보도했다.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하려는 미국의 노림수
미국은 윤석열 정권에 사도 광산의 등재를 찬성하라고 압박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 정황을 동북아시아지역에서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미국의 구상에서 찾아볼 수 있다. 패권이 저문 미국은 자신을 대신해 북·중·러를 상대할 ‘전쟁 돌격대’로 한국과 일본을 앞장세우려 한다. 미국이 최근 몇 년 새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를 진행하는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사도 광산의 등재를 반대했다면 한일관계가 삐걱대면서 미국의 구상이 어그러졌을 것이다.
윤석열 정권 들어 사도 광산이 ‘제2의 군함도’가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것도 미국과 관련이 있다.
앞서 지난 2015년 7월, 박근혜 정권은 일본이 강제동원 역사를 전시하겠다고 약속했다며 군함도의 유네스코 등재에 동의했다. 하지만 일본은 지금까지도 군함도 전시에서 조선인 강제동원을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
당시 미국은 버락 오바마 정부 시기였다. 출범 뒤 이른바 ‘아시아 귀환’ 정책을 내세운 오바마 정부는 ‘한일관계 개선’을 통한 한·미·일 군사협력을 밀어붙였다.
이런 시각에서 박근혜 정권이 군함도 등재에 찬성한 배경에 오바마 정부의 간섭이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만하다.
미국은 군함도가 등재되자 한일 양국 간 ‘위안부 합의’ 체결에 노골적으로 개입했고, 2015년 12월 ‘위안부 합의’가 통과됐다. 그러나 한국 국민 대다수가 ‘위안부 합의’에 반대했고, 그 뒤 박근혜는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권력을 잃고 탄핵당했다. 한·미·일 군사협력을 강화하려 한 미국의 노림수가 박근혜 탄핵으로 어그러진 것이다.
그러던 가운데 일본의 역사왜곡과 상관없이 한일관계를 개선하겠다는 윤석열 정권이 등장하면서 흐름이 바뀌었다.
미국의 의도를 보여주는 실마리가 있다.
앞서 미국은 2023년 3월, 윤석열 정권이 제안한, 일제의 식민침탈을 인정하지 않은 ‘일제 강제동원 피해 제삼자 변제안’에 적극 환영했다.
이후 윤석열 대통령은 2023년 4월 24일 미국 방문을 앞두고 워싱턴포스트와 대담에서 “한국의 안보 문제가 너무 시급하기 때문에 일본과의 협력을 미룰 수 없다”라면서 “100년 전 일어난 일 때문에 일본에게 사과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미국 국무부는 같은 해 4월 26일 미국의소리를 통해 “한일 양국이 역사 문제 해결을 위해 함께 노력하고 있는 것을 고무적으로 생각”한다면서 “한일 양국이 민감한 역사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우리는 공동의 역내, 국제 우선순위를 진전시킬 기회를 만들고자 3자적으로 나아가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또 미국은 같은 해 8월 미국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의를 통해 동맹 수준의 한·미·일 군사협력을 강조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올해 윤석열 정권은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며 네이버 라인야후 강탈을 노골적으로 시도하는 일본 정부에 변변찮은 항의조차 하지 않았다. 반면 윤석열 정권의 대일 저자세 기조 속 한·미·일 군사협력은 눈에 띄게 가속해 왔다.
사도 광산이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결정된 때와 맞물린 7월 28일, 도쿄에서 한·미·일 국방부장관 회의가 열렸다. 한·미·일 국방부장관 회의에서는 ‘한·미·일 안보협력 프레임워크 협력각서’가 채택됐다.
이는 윤석열 정권이 ‘한일관계 개선’을 통해 한·미·일 군사협력을 강화하겠다는 미국의 뜻을 따른 것이라 볼 수 있다.
사도 광산이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시기에, 한·미·일 국방부장관 회의가 열린 것이 과연 우연일까? 윤석열 정권을 향해 ‘한일관계 개선’을 압박한 미국의 입김이 작용했을 것이란 의혹의 눈초리가 가시질 않고 있다.
미국의 관점에서 한일관계 악화는 한·미·일 군사협력의 걸림돌이 되므로, 협력에 방해가 되는 걸림돌을 치우라고 윤석열 정권에 요구했을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윤석열 정권의 사도 광산 등재 찬성 역시 미국이 주도하는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의 연장선상이라 할 수 있다.
야권에서도 국민의 뜻을 거스르며 미국과 일본을 추종하는 윤석열 정권을 성토했다.
7월 29일 박찬대 민주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일본의 전쟁 범죄의 왜곡에 거수기를 자처하니 대한민국 정부인지 일본 총독부인지 헷갈릴 지경”이라며 “지금도 일본은 조선인 동원에 강제성을 조금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라고 일갈했다.
같은 날 김재연 진보당 상임대표는 7차 대표단 회의에서 “철 지난 신념을 부여잡고 위험천만한 한·미·일 군사동맹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이라면, 지금 당장 멈추게 해야 한다”라면서 “더 이상의 외교 참사를 막고 한반도 평화를 지켜내기 위해 윤석열 대통령을 운전석에서 끌어내려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윤석열 정권 아래에서는 앞으로도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를 이유로 우리 역사와 국민이 희생당하는 상황이 지속될 듯하다.
<저작권자 ⓒ 자주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일본, 미국, 사도광산 관련기사목록
|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