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처지에서는 이진숙이 참으로 고마울 것이다.
언론장악을 위해 현재 필요한 사안들을 이진숙이 이틀 동안 다 처리했으니까.
그래서일까.
윤 대통령은 지난 1일 이진숙에게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 위원장 임명장을 주면서 “수고가 많다”라고 말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진숙이 방통위 위원장으로 있었던 기간은 사흘이었다. 임명되고 사흘 만에 국회 본회의에서 탄핵소추안이 통과돼 직무는 정지됐다.
이진숙은 탄핵소추안이 상정되면 사퇴하던 전임 위원장들과 행보가 달랐다.
이동관·김홍일 등은 탄핵소추안이 상정되면 스스로 사퇴했다. 왜냐하면 탄핵소추안이 통과되면 위원장의 직무가 정지되어 방통위의 업무에 차질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동관과 김홍일에게는 YTN 민영화와 문화방송(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새 이사 선임 의결 등 언론장악을 위한 방통위의 핵심 사안이 남은 상황이었다.
8월 2일 탄핵소추안이 상정되었지만 이진숙이 사퇴하지 않은 이유는 방통위원장으로서 현재 자신이 할 역할을 다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진숙은 지난 7월 31일부터 이틀 동안 위원장으로서 급한 일(?)을 다 했다.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심판하는 동안 이진숙은 일을 안 해도 월급을 꼬박꼬박 받으면서 빵과 포도주를 실컷 사서 먹을 수 있게 됐다.
이틀 동안 이진숙이 한 일을 살펴보자.
7월 31일 이진숙은 이른바 ‘2인 체제’ 회의를 열고 방문진 이사와 KBS 이사 임명·추천안을 의결했다.
오는 13일부터 임기가 시작되는 방문진 이사에 김동률 서강대 교수, 손정미 TV조선 시청자위원회 위원, 윤길용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 방송 자문 특별위원, 이우용 언론중재위원회 중재위원, 임무영 ‘임무영 법률사무소’ 변호사, 허익범 법무법인 허브 대표변호사가 임명됐다. 성보영 쿠무다SV 대표이사가 감사로 선임됐다.
한겨레와 오마이뉴스, 뉴스타파 기자 등으로 구성된 ‘언론장악 공동취재단’에 따르면 이진숙이 임명한 방문진 이사들의 면모가 아주 화려하다.
MBC를 정권의 ‘입’으로 만든 김재철이 사장이었을 때 요직을 맡았던 인물이 2명이다.
이우용은 당시 MBC 라디오 본부장을 맡으며 방송인 김미화 씨, 김종배 시사평론가의 라디오 하차와 프로그램 폐지를 주도했다. 당시 MBC PD 협회는 사상 최초로 이우용을 제명했다.
당시 MBC 시사교양국장이었던 윤길용은 이명박 정부에 비판적인 보도를 해온 「피디수첩」에서 최승호 피디 등 6명을 타 부서로 전출시킨 인물이다. 현재 ‘가짜뉴스 뿌리뽑기 범국민운동본부’, ‘공영방송 정상화 범국민투쟁본부’ 등 보수언론단체에 몸담고 있다.
임무영과 허익범은 검사 출신이다.
임무영은 이른바 ‘부산 스폰서 사건’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부산 지역 건설업자 정 모 씨가 20년간 검사들에게 성 접대를 했는데 그중에 부산지검 검사였던 임무영의 이름도 있었다. 또한 임무영은 2020년 1월 18일 광화문에서 열린 ‘문재인 퇴진 국민대회’에서 “사회 전 분야가 이미 빨갛게 물들어 있다”라는 말을 한 바 있으며, 장애인을 폄훼하는 발언을 하는 등 편협한 생각을 지닌 인물이다.
김동률은 “한국에서 대통령 부인으로 살아가기란 참 어려워 보인다”라는 등 김건희 씨를 옹호하는 기고 글을 여러 번 썼다. 또 다른 기고 글에서는 “관변 언론은 이제 민영화의 수순을 밟아야 한다. KBS1, EBS 정도만 공영 언론으로 존재해도 한국인은 아무런 불편함 없이 살 수 있다”라며 ‘공영방송 민영화’ 지지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손정미는 조선일보 기자로 20년 이상 근무한 인물이다.
이들은 임기를 시작하자마자 MBC 사장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사람으로 앉히면서 MBC를 장악할 것이다.
그리고 다음 달 1일부터 임기를 시작하는 KBS 이사에는 현재 이사인 권순범·서기석이 유임됐다. 신임 이사로 이인철 변호사, 류현순 한국정책방송(KTV) 전 원장, 이건 ‘여성신문’ 전 부사장, 허엽 영상물등급위원회 부위원장, 황성욱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전 상임위원이 임명됐다.
연임하는 서기석과 권순범은 지난해 김의철 KBS 전 사장을 해임하고 박민 KBS 현 사장의 임명을 제청해 KBS를 망가뜨린 인물이다.
이인철은 이진숙이 참여한 보수언론단체인 ‘공정언론 국민연대’(공언련)의 발기인 출신이다. 그는 2016년 10월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과 문재인 대통령을 ‘공산주의자’라 주장하는 일명 ‘문재인 공산주의자 필리버스터’를 각각 1시간과 45분간 진행해 파문을 일으킨 인물이다.
류현순은 2014년 4.16 세월호참사 당시 KBS 길환영 사장 체제에서 부사장을 지냈으며, KBS 장수 프로그램 「6시 내고향」 진행자가 KBS 노조에 가입하자 진행자를 강제로 교체했다.
허엽은 보수언론단체인 ‘바른언론 시민행동’에서 활동하면서 지난해 국힘당과 함께 「후쿠시마 괴담 어떻게 확산되나?」라는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사 지원서엔 “KBS 사장은 국가기관 방송으로서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정확하고 과감하게 반영해야 한다”라고 적었다고 한다.
황성욱은 지난해 방심위 통신소위원장 당시 인터넷 언론인 뉴스타파 심의를 강행해 논란을 빚은 인물이다.
8월 1일 이진숙은 방통위 산하기관인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사장으로 민영삼 사회통합전략연구원장을, 시청자미디어재단 이사장으로 최철호 전 선거방송심의위원을 임명했다.
민영삼은 윤 대통령 대선 캠프에서 국민통합 특보를 지냈으며 김기현이 국힘당의 대표였을 때 당 홍보본부장을 맡았던 인물이며, 최철호는 이진숙이 발기인으로 참여한 공언련의 공동대표를 맡았던 인물이다.
이처럼 이진숙은 이틀 동안 방송장악을 위한 일을 급하게 다 처리했다.
그래서인지 이진숙은 8월 2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출석 요구에도 몸이 아프다며 출석을 거부한 채 자신의 탄핵소추안 통과를 지켜봤다.
윤 대통령은 주요 공영방송의 지배구조와 소유구조 개편을 어느 정도 매듭지은 만큼 위원장 공백이 장기화해도 정권에는 큰 부담이 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한 것 같다. 그래서 이번에는 이진숙을 사퇴시키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저작권자 ⓒ 자주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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